<세상사는 이야기 >
"도찐 개찐 아닌가?"
수필가 김 병 호
며칠 전, 안과에 갔었다. 얼마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이 끼고 눈이 침침하였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지냈는데, 아내에게 “요즘 눈이 좀 안 좋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당장에 안과에 끌려가고 말았다.
우리가 찾아간 안과는 전에 백내장 수술도 받은 적이 있고, 그 후에도 몇 번인가 드나든, 말하자면 안과로는 단골의원이었다.
이름은 K안과였지만, 실제로는 K씨 성을 가진 원장은 없었고, 혼자서 개업하기 힘든 젊은 의사들 7~ 8명이 한 건물에 모여서
<아무개 원장>이란 각자의 이름을 걸고 영업하는 합동 의원이었다.
접수를 받는 여직원이 “전에 보시던 아무개 원장님은 다른데 가시고 새로운 원장님이 오셨는데,
새 원장님께 진료를 받아도 괜찮으시겠어요?”하고 물었다.
무슨 대단한 병이라고? 하는 생각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병원에 가면 의례, 의사가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라든지, 아니면 “어디가 안 좋으세요?”하고 환자에게 묻고,
환자가 증상을 이야기하면 의사는 이것을 경청한다. 이렇듯, 의식이 있는 환자의 진료는 대체로 문진(問診)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새로 온 의사는 “어떻게 오셨어요?”하더니 “아침에 일어나면 눈곱이..” 하는데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예, 이 쪽에 턱 대시고, 눈을 크게 뜨시고 앞을 보세요.”하고 안구검사 기기로 시진(視診)을 시작하였다.
양 눈을 번갈아 한 30초나 보았을까? “예, 됐습니다. 환자분은 노안이 돼서 각막이 늘어나 있습니다.
안약을 드릴 테지만, 금방 좋아지지는 않을 거니까,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하시고...”
나는, 의사가 환자의 말도 들어보지 않고 너무 속단하여 처방하는 것 같아 불안하였다.
“아무리 노안이라고는 하지만 점차 시력이 떨어진 게 아니고, 갑자기 눈곱이 끼고...” 의사는 내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제가 설명을 드리고 있잖아요?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야기를 하세요.” 젊은 의사는 불쾌한 어조로 나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한 참 설명을 하더니 “일단 약을 넣어보시고 1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
”다른 증상은 없나요? 각막에 염증이나...“ 의사는 그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식염수로 눈을 씻으면 훨씬 눈이 잘 보이던데, 그건 계속해도 될까요?“
의사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제가 하라는 것만 하세요. 제가 전문가니까 제 말을 들으시고,
제가 시키지 않은 것은 하지 마세요. 소금물로 씻는 것, 하지 마세요.“
‘뭐 이런 놈의 의사가 다 있어?’ 나는 순간적으로 욱하는 성질이 치밀었다.
“이 보시오, 당신은 의사라는 사람이 말투가 왜 그 모양이야?” “왜 언성을 높이고 그러세요?”
“내가 말만 하려면 당신은 들어보지도 않고 내 말을 제지하고, 또 뭘 물으면 나무라듯이 말을 하니까 기분 나빠서 목소리가 높아지지.”
“이보세요. 제가 의사잖아요? 전문가가 말을 하면 환자가 들으셔야지요? 그런 식으로 받아드리면 진료를 해 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 진료를 할 수 없어? 나도 당신 같은 의사한테는 진료를 받고 싶지 않아. 환자의 이야기도 경청하지 못하는 의사가 개뿔이 전문가야?”
그리고 진료실을 나와 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니 뭐? 제가 전문가라고? 전문가 좋아하시네. 그래 전문가라 치자. 그런데 전문가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건 모르시나 봐?
인격을 갖춘 전문가와 인격을 갖추지 못한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인격 없는 의사가 환자를 사람으로 대하질 않고 정비소에 들어 온 자동차 취급을 하다니 원. “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까지, 이틀을 두고 씹고 나니, 나도 잘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에 분기를 참지 못해, 아들 벌의 젊은 의사를 상대해서 언성 높인 일도 찝찝하고,
욱하여 자리를 박차고 나온 치기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의사소통을 못하고 다퉜다면, 잘 잘못 간에 양쪽이 다, “피장 파장이요, 도찐 개찐 아닌가?”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한 마디만 하고 끝냈으면 어땠을까?
“원장님.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판사는 선고를 하고나서 피고의 최후 진술을 듣습니까?
판결을 내리기 전에 피고의 최후 진술을 듣습니까?”
첫댓글 그러셨군요.
그 의사분은 돈 많이 벌긴 틀렸네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