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도 쉽다고 한다. 한자나 영어에 견주어 우리 말을 한글로 적기가 쉽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쉬워 보이는 한글 맞춤법도 아주 까다로운 구석이 많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교정을 하거나 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은 맞춤법에 맞는 글을 제대로 쓰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띄어쓰기 기준과 교육부에서 펴내는 국정 교과서의 띄어쓰기가 서로 달라서 어느 기준을 따라야 할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실린 글이 우리 말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우리 ‘말법’이란 국어 문법과는 좀 다른 뜻으로 쓰인다. 문법이란 우리 말의 구성과 운용 규칙을 국어 학자들이 연구해 정리한 것이므로 학자에 따라 견해가 제각기 다르다. 그래서 서로 다른 견해를 한 가지로 통일하여 ‘학교문법’으로 정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 ‘말법’이라고 한 것은 학자들의 문법도 아니고 ‘학교문법’도 아닌 ‘우리 말 바로쓰기 기준’을 말한다. 이 기준은 이오덕 선생님이 정한 것도 있지만 이수열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여 우리 말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말 바로쓰기 기준도 한 가지가 아니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한글 맞춤법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띄어쓰기의 문제, 마지막으로 우리 말 바로쓰기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1. 한글 맞춤법 1988년 개정된 한글 맞춤법 총칙은 다음 3항을 정해 놓았다.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제3항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
1항은 우리 말을 글자로 적는 방법을 정한 것인데, 소리대로 적기와 어법에 맞게 적기를 절충해 놓았다. 예를 들어 ‘발바리’는 소리대로 적은 것이고, ‘바둑이’는 어법에 맞게 적은 것이다. 소리대로 적기 규정만 있다면 ‘발바리’와 ‘바두기’로 적는 것이 맞겠지만,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규정 때문에 ‘바두기’가 아닌 ‘바둑이’가 된다. 소리대로 적으면 쉬울 터인데, 왜 어법에 맞도록 하여 까다로운 맞춤법을 만들었을까? 그 까닭으로 ≪한글맞춤법강의≫(이희승, 안병희 공저, 신구문화사.)에서는 독서의 능률과 언어의 규칙성을 들었다. 그래서 ‘숟가락’과 ‘젓가락’ 같은 말이 생겨났다. ‘젓가락’은 ‘저+가락’이어서 ‘사이시옷’이 들어갔지만 ‘숟가락’은 ‘술+가락’이어서 ‘숟가락’이 되었다. 같은 경우로 ‘이튿날’, ‘반짇고리’ 같은 말이 있다.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와 표의주의 사이의 절충으로 이루어져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된소리 적기도 그런 경우다. 소리대로 적기에 충실한 경우는 ‘오빠, 으뜸, 가끔, 소쩍새, 뻐꾸기, 가꾸다, 가깝다, 몽땅, 산뜩하다, 일꾼’ 따위이다. 그런데 된소리가 나는데도 예사소리로 적는 경우는 ‘깍두기, 꺽다리, 낙지, 색시, 덥석, 몹시’ 따위가 있는데 ‘ㄱ’과 ‘ㅂ’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는 예사소리 글자로 적는다는 예외 규정 때문이다. 이 된소리 적기는 맞춤법을 어렵게 하는 큰 구실을 한다. ‘눈섭’이 아니라 ‘눈썹’이라고 배운 아이는 ‘눈곱’을 ‘눈꼽’으로 적고 싶을 것이다. ‘뚝배기’와 ‘곱빼기’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인터넷으로 검색한 자료에는 ‘언덕배기’가 ‘언덕빼기’의 잘못이라고 되어 있고, ≪한글맞춤법강의≫에도 그렇게 되어 있지만, 사전에는 ‘언덕배기’가 표준어라고 되어 있다. 현행 한글 맞춤법은 단순히 규정만 외워서는 안 되고 규정에 딸린 용례까지 모두 외워야 맞춤법을 제대로 쓸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수많은 예외 조항을 만든 탓이다. 사이시옷 문제도 맞춤법 바로 쓰기를 어렵게 한다. ‘머리말’과 ‘머릿말’에서는 ‘머리말’이 맞고 ‘장마비’와 ‘장맛비’에서는 ‘장맛비’가 맞다. 한자말의 경우에는 사이시옷을 쓰지 않지만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횟수(回數), 찻간(車間), 툇간(退間)’ 여섯 낱말만은 예외로 사이시옷을 받쳐 적게 되어 있다. 사이시옷 규정은 정할 때에도 말썽이 많았지만 지금 규정대로 쓰기도 쉽지 않다. 사이시옷은 토박이말끼리 또는 토박이말과 한자말의 합성어에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면서 뒷말이 된소리가 나거나, 뒷말의 첫소리 ‘ㄴ,ㅁ’ 앞에서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이 덧나는 경우에 적도록 되어 있다.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나 덧나는 소리가 안 나거나 본디 거센소리나 된소리이면 사이시옷을 적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머린말]이라고 읽기도 하고 [장마비]라고 읽기도 한다. 한자말은 된소리나 덧나는 소리가 있어도 사이시옷을 적지 않는다. ‘대가(代價), 초점(焦點), 유가(油價), 호수(號數)’는 뒷말이 된소리가 나도 한자말이라 사이시옷을 넣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글만 보면 ‘대가(代價)’인지 ‘대가(大家)’인지 알 수 없다. ‘수돗가’와 ‘수도세’, ‘우윳값’과 ‘우유갑’과 ‘담뱃갑’, ‘호수(號數)’와 ‘횟수(回數)’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구별하라고 할까? 그냥 외우라고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이시옷이 들어간 낱말과 들어가지 않은 낱말을 몇 가지 견주어 보자.
근사값/ 근삿값, 기대값/ 기댓값, 꼭지점/ 꼭짓점, 대표값/ 대푯값, 절대값/ 절댓값, 진리값/ 진릿값, 최대값/ 최댓값, 최소값/ 최솟값, 반댓말/ 반대말, 머릿말/ 머리말, 인삿말/ 인사말, 햇님/ 해님
표준어도 맞춤법 쓰기를 어렵게 한다. 표준어 규정 제1항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 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는데, 예전에 ‘중류 사회’란 말이 ‘교양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다. 실제 규정에 들어가면 표준어와 비표준어 또는 방언을 가르는 기준이 ‘더 널리 쓰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어떤 말은 표준어보다 비표준어가 훨씬 널리 쓰이는데도 비표준어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하길래’는 ‘~하기에’보다 훨씬 많이 쓰이지만 비표준어이다. ‘뗄레야 뗄 수 없다’는 말도 자주 쓰지만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써야 맞는 말이 된다. ‘맨날’도 ‘만날’의 비표준어이다. ‘까탈스럽다’도 흔히 쓰지만 표준어가 아니다. 맞춤법과 마찬가지로 표준어 규정에도 원칙을 정해 놓고 나서 예외를 두어 외우는 수밖에 없게 해 놓았다. 예를 들어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한다.”(제7항)고 해놓고, 몇 낱말에서는 예외를 두어 ‘수―’ 뒤에 거센소리를 인정해 놓았다. 도대체 왜 몇 낱말만 예외로 하는지 알 수 없다.
수강아지/ 수캉아지, 암강아지/ 암캉아지, 수코양이/ 수고양이, 암코양이/ 암고양이, 수병아리/ 수평아리, 암병아리/ 암평아리, 수펄/ 수벌, 암펄/ 암벌
복수 표준어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냥 외우는 수밖에 없다.
거슴츠레하다/ 게슴츠레하다, 노을/ 놀, 멍게/ 우렁쉥이, 넝쿨/ 덩굴, 찌꺼기/ 찌끼, 외우다/ 외다, 꺼림하다/ 께름하다, 나부랭이/ 너부렁이, 고린내/ 코린내, 구린내/ 쿠린내, 꼬리별/ 살별, 샛별/ 새벽별, 또아리/ 똬리, 새앙쥐/ 생쥐, 언제나/ 노다지
표준어 규정의 문제점에 대하여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상인 사회적 계층 문제에서는 ‘중류 사회’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이라는 표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중류 사회’를 ‘교양 있는 사람들’로 수정하였으나 전자의 중류 사회란 어느 사회 계층을 뜻하는지 불분명하며, 역시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는 계층적 정의 또한 그 범주의 불분명함은 물론이거니와 이 계층에서 제외되는 서울 사람들을 포함하여 나머지 지역 사람들은 ‘교양이 없는 사람들’로 비하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서울말’이란 허구적인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간과한 일본은 일찍이 ‘동경어’라는 기준에서 두루 통용되는 ‘공통어’라는 기준으로 규범어 기준의 지역적 제한을 없앤 것이다. 규범적인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논리도 과학성도 없는 규정에 기대어서 표준어를 규정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많다. (이상규, ≪방언의 미학≫, 283~284쪽.)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쓰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외래어’라 함은 “외국어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언중 사이에 익히 쓰여 국어화한 말”을 가리킨다. 한자어도 엄격하게 따지면 외래어에 들어간다. ‘담배, 빵, 고무’는 외래어란 느낌이 없을 정도로 우리 말이 된 것이다. ‘카메라, 오르간’ 같은 말은 각기 ‘사진기, 풍금’ 같은 우리 말이 있지만 ‘텔레비전, 라디오, 핸드백, 컴퓨터, 넥타이’ 같은 말은 우리 말로 대체할 말이 없다. ‘자장면, 짬뽕, 우동, 라면’ 같은 말은 거의 우리 말이 되었지만 여전히 외래어란 느낌이 남아 있는 말이다. 이 가운데 ‘우동’은 ‘가락국수’로 바꿔 써야 할 말로 지적하기도 한다. ‘덴뿌라, 오뎅’ 같은 말은 일본어라는 느낌이 강해서 ‘튀김, 꼬치’로 순화해서 쓰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외래어라 하더라도 국어화한 정도는 각기 다르다. 외래어 표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관용 표기를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가와 된소리 표기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싸인펜’이라고 소리 내지만 쓸 때는 ‘사인펜’이라고 쓴다. 창비 같은 출판사는 외래어 표기에 자체 기준을 적용하여 ‘피노키오’를 ‘삐노끼오’라고 적는다. ‘디지탈’도 ‘디지털’이라고 해야 맞는 말인데, 북녘에서는 ‘디지탈’이라고 적는다. ‘스티로폴’과 ‘스티로폼’은 어느 것이 맞는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다.
스티로폴 (독일어)Styropor [명사] ‘스티로폼’의 잘못. 스티로폼 styrofoam [명사] 발포(發泡) 스티렌 수지. 절연이나 충격 완화에 쓰는 물질로 상품명에서 유래한다. 발포스티렌수지 發泡styrene樹脂 <화학> 작은 기포를 무수히 지닌 폴리스티렌. 가볍고 단열성이 좋아 단열재, 포장 재료, 흡음재, 장식재 따위로 널리 쓴다. 상품 이름은 ‘스티로폴’이다. ≒발포 스티렌.
‘스티로폴’은 잘못된 말이라고 해 놓고 풀이에서는 상품 이름은 ‘스티로폴’이라고 해 놓았다. ‘스티로폼’은 영어식 표기로 쓰는데 ‘알레르기’는 독일식 표기를 쓴다. 그런데 요즘은 영어식으로 ‘알러지’ 또는 ‘앨러지’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다음은 흔히 틀리기 쉬운 외래어이다.
짜장면/ 자장면, 케익/ 케잌/ 케이크, 맛사지/ 마사지, 센타/ 센터, 수퍼마켓/ 슈퍼마켓, 쥬스/ 주스, 커피샵/ 커피숍, 써비스/ 서비스, 악세사리/ 액세서리, 로보트/로봇, 까스/ 가스, 카톨릭/가톨릭, 도너츠/도넛, 메세지/ 메시지, 카라멜/ 캐러멜, 부페/뷔페, 샌달/ 샌들, 텔레비젼/ 텔레비전, 플륫/ 플루트, 클랙션/ 클랙슨, 자켓/ 재킷, 자크/지퍼, 잠바/ 점퍼, 매니아/ 마니아, 라이센스/ 라이선스, 나레이션/ 내레이션
2. 띄어쓰기 현행 국정 교과서는 당연히 한글 맞춤법에 있는 띄어쓰기 규정에 따르고 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어긋나는 것이 많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교과서를 펴낸 교육부도 국가 기관이고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낸 국립국어원도 국가 기관이다. 띄어쓰기 규정은 한 가지인데, 용례는 두 가지가 되어 버렸다. 한글 맞춤법은 띄어쓰기 규정만 정했을 뿐 모든 낱말과 낱말을 어떻게 띄어 쓸지 용례까지 든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내기 전까지는 국정 교과서(그 가운데 초․중․고 국어 교과서)가 띄어쓰기 용례집을 대신하였다. 교과서 용례를 모아놓은 책이 원영섭 엮음 ≪초․중․고 교과서 159권에 따른 바른 띄어쓰기 맞춤법≫(세창출판사, 2000.)이다. 1999년 국립국어연구원(뒤에 국립국어원으로 바뀜)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내면서 띄어쓰기가 달라진 것이 있는데 이에 맞추어 낸 것이 이성구 편저 ≪띄어쓰기 사전≫(국어닷컴, 2004.)이다. 한편 ‘교육부 정책과제 답신 보고에 기초한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사전’인 이승구 편저 ≪띄어쓰기 편람≫(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1.)도 나왔다. 문제는 이 세 책에 있는 띄어쓰기가 제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교과서에서는 ‘왜냐 하면’이라고 적지만 표준사전에는 ‘왜냐하면’이라고 되어 있다. 교과서에는 ‘우리 나라’라고 띄어 쓰지만 표준사전에는 ‘우리나라’를 붙여 쓰게 되어 있다.(교과서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은 붙여 쓴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 나라’뿐 아니라 ‘우리 말, 우리 글’도 띄어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과서에는 명사 뒤에 ‘만하다’를 붙여 쓰지만, 표준사전에 따르면 ‘만 하다’로 띄어 쓰도록 되어 있다. 띄어쓰기 용례집을 견주어 보면 이렇게 다른 것이 천 개가 넘는다. 이미 시중의 국어사전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맞추어 개정되었고, 초등용 국어사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아이들은 교과서의 띄어쓰기와 일반 출판물의 띄어쓰기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띄어쓰기를 어렵게 하는 또 한 가지는 합성어의 구분이다. 본용언과 보조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붙여 쓸 수 있다는 허용 규정이 있다. 그런데 명사는 고유명사와 전문 용어만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한다. 따라서 합성명사가 아닌 경우에는 붙여 쓰면 안 된다. 문제는 어떤 낱말이 합성명사인지 알려면 ≪표준국어대사전≫을 일일이 찾아보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전에는 ‘초등학교’는 낱말로 올라 있지만 ‘초등학생’은 없다. 따라서 ‘초등 학생’이라고 띄어 써야 한다.
외딴 곳/ 외딴곳, 외딴 길/ 외딴길, 외딴 방/ 외딴방, 외딴 섬/외딴섬, 외딴 집/ 외딴집
위에 든 말 가운데 어떤 것을 띄어 쓰고 어떤 것을 붙여 쓰는지 원칙을 알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붙여 쓰고 있는 낱말은 ‘외딴곳, 외딴길, 외딴섬, 외딴집’인데, 교과서 띄어쓰기의 기준이 되는 ≪띄어쓰기 편람≫에는 ‘외딴길, 외딴방, 외딴집’을 붙여 써 놓았다. 이렇게 두 낱말을 붙여 쓰는 근거는 합성어라는 점이다. 국립국어원 정희창 학예연구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어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 띄어쓰기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알아보다’, ‘찾아보다’, ‘살펴보다’는 한 단어로 붙여 쓰지만 ‘생각해 보다’, ‘믿어 보다’, ‘써 보다’ 등은 한 단어가 아니라서 띄어 써야 한다. 또한 ‘물속’, ‘땅속’은 한 단어이고 ‘바닷속’, ‘숲속’은 한 단어가 아니다. 이러한 합성어에 대한 판단은 일관된 원칙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정희창, ≪우리말 맞춤법 띄어쓰기≫, 107쪽.)
어떤 낱말이 합성어인지 판단할 수 있는 원칙이 없으니 일일이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사전에 올림말로 올라 있으면 합성어니까 붙여 쓰고, 사전에 없으면 한 낱말이 아니니까 띄어 쓰라는 것이다. 합성어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관된 원칙을 세우지 않고 국어사전에만 의지하라는 것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합성어를 만드는 원칙을 세워서 어떤 낱말이 합성어인지 예측하기 쉽게 해야 띄어쓰기의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 말 바로쓰기 국어 순화 운동 또는 우리 말 바로쓰기 운동은 관청과 민간에서 함께 이루어져 왔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을 쓰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한쪽은 ‘국어 순화’라는 한자말을 쓰고, 다른 쪽은 토박이말을 쓴다.
남쪽에서는 1948년 문교부 편수국에서 주관하여 ‘우리말 도로찾기’를 간행하여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운동을 벌였다. 여기에서 시작하여 1976년에는 문교부에서 ‘국어 순화 운동 협의회’를 구성하여 대대적인 국어 순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예를 들면 운동 관련 용어 중에 ‘포볼’을 ‘볼넷’, ‘코너킥’을 ‘모서리 차기’, ‘사이드 라인’을 ‘옆줄’ 등으로 순화하는 운동을 전개했지만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희화의 대상이 되었다. 북쪽에서는 1964년 이래 말다듬기를 시작하여 1987년 ‘다듬은 말’ 2만 5천 개를 선정하여 발표하였으며, 여러 차례 어휘 정리 사업을 민족 주체성을 고양한다는 관점에서 전개해 왔다. (이상규, 앞의 책, 285쪽.)
위 글에도 나타나 있듯이 우리 말 운동은 그동안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한글학회에서는 1967년에 ≪한글학회 엮은 쉬운말 사전≫을 펴냈다.(이 책은 그 뒤 ≪고치고 더한 쉬운말 사전≫으로 나왔다가 지금은 ≪깁고 더한 쉬운말 사전≫으로 크기와 쪽수가 크게 늘었다.) 우리 말 운동가 가운데 1990년대 들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은 바로 이오덕 선생이다. 이오덕 선생은 1986년 글쓰기 회보에 <긴급 동의―우리 말을 바로 쓰자>를 발표하면서부터 우리 말 바로 쓰기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렇게 해서 ≪우리 글 바로 쓰기≫ 세 권이 나왔다. 또 ‘우리 말 살리는 겨레 모임’도 만들어 우리 말 운동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오덕 선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수열 선생과 남영신 선생도 잘못 쓰는 우리 말을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의 운동은 조금씩 견해가 다르다. 이오덕 선생의 ‘우리 말 바로쓰기’는 “밖에서 들어온 불순한 말(한자말, 일본말, 서양말)을 가려내어 깨끗이 하”는 일이다. 그 가운데 으뜸은 일본말인데, ‘역할, 입장, 납득, ―에 있어서, ―에도 불구하고, ―적’ 같은 말이다. 그런데 일본식 구문을 쓰지 말자는 말에는 동의하는 사람들도 일본 한자말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예 우리 말 바로쓰기나 국어 순화 운동을 국수주의 또는 언어순수주의로 비판하는 이도 있다.
저는 언어라는 게 우선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리 순수하지 못한 말이라도 절대 다수의 대중이 그 말에 이미 익숙해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 말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거니와 포기하는 게 꼭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는 ‘입장(立場)’이라는 단어를 포기할 뜻이 없습니다. 그걸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면 영 그 맛이 살지 않더라구요.(강준만, ≪글쓰기의 즐거움≫, 222쪽.)
한자말을 우리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순수주의다. ‘미소(微笑)’라는 한자말을 쓰지 말고 ‘방긋 웃음’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이는 언어를 이념의 틀에 가두는 것이다. ‘미소 띤 얼굴’과 ‘방긋 웃는 얼굴’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엷은 웃음 띤 얼굴’이라 표현해도 마찬가지다. (현병호, <표현과 소통을 위한 말과 글 교육>, 격월간 ≪민들레≫, 52호.)
그 다음 표적이 된 것은, 한국 한자음으로 읽기 때문에 한눈에 일본제 외래어인지를 알기는 어렵지만 일본어에서는 훈독을 하는 이른바 와고(和語)의 부류에 속하는 말들이었다. 예컨대 다치바(立場)에서 온 ‘입장’은 ‘처지’로 바꾸고, 데쓰즈키(手續)에서 온 ‘수속’은 ‘절차’로 바꾸자는 것이 순수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언어민족주의자들이 이 싸움에서 거둔 승리는 보잘것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입장’이 늘 ‘처지’로 대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같은 유형의 일본제 말들인 엽서(葉書: 히가키), 입구(入口: 이리구치), 출구(出口: 데구치), 할인(割引: 와리비키), 취소(取消: 도리케시), 조합(組合: 구미아이), 견습(見習: 미나라이) 같은 말들은 대치할 말도 마땅치 않다. (고종석, ≪감염된 언어≫, 89~90쪽.)
외래어가 됐든 번역투가 됐든,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몰아내 한국어를 순화하겠다는 충동은 근본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제5공화국 초기 삼청교육대의 저 악명 높은 ‘순화교육’의 ‘순화’다. 실상, 순결을 향한 집착, 즉 순화 충동은 흔히 죽임의 충동이다. 믿음의 순결성, 피의 순결성, 이념의 순결성에 대한 집착이 역사의 구비구비에 쌓아놓은 시체더미들을 잠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어 순화’의 충동에 내재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종석, 같은 책, 151쪽.)
이수열 선생은 이오덕 선생과 ‘입장’ 따위의 일본말을 쓰지 말자는 주장에는 동의하면서도 ‘―적(的)’이 붙은 말을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함께 하지 않는다. ‘역전 앞’이나 ‘매일마다’ 같은 겹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오덕 선생이 지적하는 ‘기간 동안’은 겹말에 넣지 않는다. 겹말에 대하여 국립국어원은 한층 너그럽다. 국립국어원 누리집(www.korean.go.kr)에서는 ‘기간 동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질문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기간’을 찾아보면 “어느 일정한 시기부터 다른 어느 일정한 시기까지의 사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안’은 “어느 한때에서 다른 한때까지 시간의 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두 낱말은 같은 뜻인 것 같은데, 흔히 “올림픽 기간 동안”, “짧지 않은 기간 동안”처럼 겹쳐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용례에도 “이 기간 동안 맡은 일을 다 끝내 주세요.”라고 되어 있는데, 바른 말법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 ‘~기간 동안’은 사용 가능한 표현입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을 예로 해서 말씀드리면, [[올림픽 기간] 동안]에서 ‘동안’이 받는 것은 올림픽이 시작하는 때부터 끝날 때까지의 ‘길이’입니다. 따라서 사전의 정의에 합당한 쓰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묻고 답하기 게시판에서)
‘박수치다’도 겹말인데 이에 대해 국어연구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박수의 ‘박’은 ‘손뼉을 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박수를 친다’는 중복 표현이라는 말씀은 원칙적으로는 옳습니다. 그러나 동어반복의 예들 중에 ‘역전 앞’, ‘앞으로 전진하다’, ‘해변가’와 같은 표현은 대다수 언중들이 의미가 중복된 것임을 비교적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역 앞’, ‘앞으로 나아가다’(앞으로 가다), ‘해변(또는 ‘바닷가’)’의 잘못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초가집, 외갓집, 처갓집, 종갓집’ 등의 예들은 앞의 예들과 경우가 좀 다르다고 봅니다. ‘초가, 외가, 처가, 종가’로는 어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껴져 ‘집’이라는 의미를 더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동어 반복’이라는 방법을 동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수를 치다’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묻고 답하기 게시판에서)
국립국어원에서도 국어 순화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은 잘못되었더라도 관용 표현으로 보고 인정하는 듯하다. 게다가 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을 모으지 못하는 점도 있다. ‘먹거리’를 둘러싼 논쟁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한겨레신문 교열부장이며 ≪바른 말글 사전≫을 펴낸 최인호 선생은 ‘먹거리’를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하고, ‘의’가 들어가는 겹토씨도 ‘―에로의’처럼 얼토당토하지 않은 표현은 걸러내야 하지만 ‘―으로서의’나 ‘―과(와)의’처럼 적은 단어로 뜻을 잘 전달하는 표현은 앞으로 허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한다. 우리 말 운동을 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잘 쓰이지 않은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새 말을 만들어 퍼뜨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도 있다. ‘곰비임비’나 ‘부라퀴’ 같은 말을 사전을 찾아가며 읽지만 나중에 읽으면 무슨 뜻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교사’를 ‘가배’로 ‘학생’을 ‘배가’로 ‘학교’를 ‘갈터’로 바꿔 쓰는 분들도 나름대로 우리 말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여길 것이다.
지금까지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 우리 말 바로 쓰기에 대하여 문제라고 여기는 점을 살펴보았다. 2004년 남과 북이 함께 ≪겨레말 큰사전≫을 펴내기로 하고 2005년에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전 편찬에 필요한 사항을 의논하고 있다고 한다. 편찬회의에서 맞춤법과 사이시옷, 외래어 표기 따위를 단일 규범으로 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기회에 문제점이 많은 현행 표준어 규정뿐 아니라 맞춤법과 띄어쓰기 규정도 함께 의논하여 남과 북뿐 아니라 우리 겨레가 누구나 쉽게 익혀서 쓸 수 있도록 우리 말 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말 바로 쓰기의 원칙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다듬어 나가야겠다.(2007. 12.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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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를 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또 헷갈리네요.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생각하면 글 쓰기가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