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고유명사를 가진
민족은 동이족뿐입니다.
바로 그 숫자의 고유명사는
다름 아닌 인생의 태교학 입니다.
지구촌에서는 우리 동이족만이
숫자를 단음으로 읽는 명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 이--삼--사--오--육--
칠--팔--구--십--이라고도 읽고,
그리고 또 그 숫자의 의미를
단어單語로 읽는
발성이 별도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하나, 두울, 서이, 너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라 합니다.
고래로부터 동이족만은
숫자를 이렇게
단음으로 읽는 단어가 있고,
그 의미를 읽는
발음이 별도로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도
의미를 읽는 의성이 있고
무량한 철리를 읽는
의음인 두문이 별도로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숫자의 명호를
읽는 단음이 있고
그 숫자의 의미를 읽는
단어가 별도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숫자에 단음이 있고
그 의미를 읽는
단어가 있게 되었을까요?
그 답을 이 자리에서 밝혀 두렵니다.
동이족만은 보통 숫자를
계산용으로
쓸 때는 단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단어로는 흔히
논밭의 평수는 한 마지기,
두어 마지기 서너 마지기라고 합니다.
또 한 곡식을 적재한 양을
한 섬, 두 섬, 석 섬, 넉 섬이라합니다.
이 같은 숫자의 고유명사를 아직도
농촌의 촌락에서는 많이들 쓰고 있습니다.
숫자를 이렇게 단음이나 단어로 읽는
저 숫자의 고유명사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그 깊고 높은
고유명사의 뜻을 밝혀 두려고 합니다.
왜냐면 저 고유명사에는
소중한 인생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모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임신을 해서 해산하는
열 달 동안을 읽는 달수에
고유명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달수의 고유명사를
태교학이라 합니다.
그 태교학의 내용을
좀 상세히 밝혀 두려고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성교를 하다가
남성이 여성의 자궁에 사정을 하게 되면
여성의 자궁 안에는
남성이 사정한 그 호르몬 속에
수억 마리의 정충들이 바글바글 합니다.
자궁에서 이 정충들은
서로 죽기 살기로 투쟁을 합니다.
투쟁하는 목적은 여성에게만 있는
난소의 엄격한 선택권 때문입니다.
그 선택권이란?
여성의 난소에만 있는
일편단심의 엄격한 선택권입니다.
저 독특한 선택권 때문에
수억 마리의 정충들은
사생결단하고 투쟁을 합니다.
최후의 승자가 아니면 자궁 안에
난소에만 있는 일편단심이
절대로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저 수억 마리의
정충들은 죽기 살기로 투쟁을 합니다.
투쟁을 해서 최후로 선택된
정충 하나를 난소가 품어 안게 되면
신성한 일편단심과
일심동체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유일신격인 정자하나가 난자와
일심동체가 되었다면
비로소 임신이 된 것입니다.
천만다행으로 임신이 되었다면
그 순간부터 그 정충은 마음의 삼성三性이
빚어내는 돌풍으로 오색구름과 같은
식심의 식정인 오음五陰이 일어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