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이집트를 통일하여 왕국의 기틀을 세운 나르메르는 황소를 신격화했다. 거대 제국의 힘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황소에서 찾은 것이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아론은 백성들에게 금을 모아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경험한 지배 권력의 황소 같은 힘을 동경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에게 그것을 숭배하게 하였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황소의 힘이 백성을 통치하는 데 정치적으로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암몬의 주신 몰록(몰렉, 그모스)은 황소의 머리를 한 우상이다. 속이 빈 그 청동상에 불을 지펴 발갛게 달구어지면 그 위에 어린 아이를 올려놓아 태워 죽이는 인신제사를 행했다.
금융의 중심지 미국의 월스트리트 뉴욕증권거래소 근처에 동상이 있다. ‘돌진하는 황소상(Charging Bull)’이다. 이탈리아 조각가 모디카(Arturo Di Modica)가 설치한 것이다. 황소의 정력과 억제되지 않은 공격 본능을 금융자본의 이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황소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힘의 상징이다. 황소의 모양을 만들고 그것에 제사하는 나라나 민족은 힘을 숭상하는 자들이었다. 힘으로 약자들을 제압하고 착취하여 자기 이득을 취하는 제국의 야만을 드높이는 우상이었다. 이집트의 나르메르가, 아론이, 여로보암이, 암몬이 황소의 형상을 만들고 숭배했던 것은 그 힘을 동경하고 지향했기 때문이다.
힘으로 자기 뜻에 맞추어 질서를 만들고, 힘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며, 힘으로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게 인간 안에 내재된 근원적인 욕망이다. 그 욕망이 곧 죄라고 성경은 말한다.
기독교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가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오해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무속적인 기능을 가진 구원의 증표처럼 생각한다. 그가 왜 죽었고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교리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자신의 모든 죄를 한꺼번에 사면해주는 대속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참으로 단순하고 간편하기 그지없는 교리다.
이 얼마나 무속적인 확신인가. 무당의 주술 한 마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듯이 생각하는 그 편리함은 마치 편의점에서 손쉽게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 같다.
거대 제국의 압제 아래 고통받는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예수가 승리한 방식은 힘을 힘으로 맞서거나 제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힘으로 맞서 싸우기보다 힘에 스스로 희생당함으로써 그 힘이 가지고 있는 야만성을 폭로하고, 연약한 자들이 다시 역사의 무대 위로 부활하는 대서사를 만든 것이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는 말씀은 내 안에 있는 힘의 욕망을 포기하고 내려놓음으로써 이 땅에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기독교가 전파된 곳에 증오와 범죄, 불평등, 전쟁 같은 파괴적인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있는 곳에 여전히 힘을 숭상하는 가치관과 질서가 있다. 부도덕하고 타락한 인사가 기독교의 지원을 받아 정치인이 되고 국가 지도자가 된다.
기독교가 힘을 숭상하는 종교가 됐다는 얘기다. 탄압받고 고통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원의 종교가 아니라 힘 있고 돈 많은 자들, 권력의 편에 서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이 기독교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반대 편에 있음에도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그를 지지하고 선출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교회가 탄압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회적 약자의 모습이 아니라 못박아 죽인 로마 제국과 빌라도의 편에 서 있다는 얘기다. 제국의 탄압을 받던 교회가 제국의 비호를 받는 순간부터 제국의 종교가 된 것이다. 예수를 못박아 죽인 제국의 힘과 권력의 논리에 따르며 여전히 예수를 따르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예수는 힘을 숭상하는 자들을 혐오하고 경멸했다.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하는 자들의 폭력적 지배 방식을 짓밟아버리겠다고 요한계시록에서 장담했다. 힘으로 밀어붙이며 사람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황소 같은 정치권력, 황소 같은 자본 권력을 지지하고 그 편에 선다면 그들은 예수의 편이 아니라 황소 숭배자의 편이다. 오늘도 이 황소의 힘을 숭배하는 기독교에 의해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며 2차, 3차, 4차 …… n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 교회 안의 이 황소들이 예수를 죽이고 있다.
첫댓글 기독교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반대 편에 있음에도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그를 지지하고 선출한 것.....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