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친구가 자전거 타고 골목길을 지나며 우리 집 앞에서 던진 한마디가 ‘빛’이었다.
“창수야, 교회 52번 가면 필통 준대이~.”
집에 들어와서 교회 가자고 권면한 것도 아니고, 문을 두들기며 내 손을 잡아 교회로 이끈 것도 아니었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다가 그냥 던진 말이었다.
그 소리가 크게 내 귓전을 때렸고, ‘필통’이란 소리에 나는 밥 먹다가 숟가락을 던지고 슬리퍼 끌며 친구의 자전거를 뒤따라 힘껏 달려갔다. 그때 출석한 교회가 지금의 대구 서성로교회다.
나는 그 길로 52번 교회에 출석했고, 52번 만에 필통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52번 교회 가면 받을 수 있다던 필통이 52주 1년 개근상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 52주 동안 하나님은 ‘내 인생’이라는 천지를 창조하고 계셨다. 흑암이 깊었던 내 인생에 빛을 만드시고 하나님나라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셨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내 인생과 영혼을 만져주셨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주일학교를 담당하셨던 김미자 권사님이 내 마음에 담아준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에 빛이 되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어느 주일, 공과 공부를 하면서 권사님이 마태복음 6장을 펼쳐서 함께 읽자고 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마 6:25,26
이 말씀을 읽고 어떤 설명을 덧붙이셨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명하고 굵직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콕 찌르듯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하셨던 권사님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창수 너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아직 장난기 많고 집중도 잘하지 못하던 5학년 어린 나이였지만,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솔직히 당시 내 형편은 스스로 귀하다고 여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고작 필통 하나 받으려고 교회를 다니던 나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내 귀에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공중의 새보다도,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하는 그 어떤 염려도 무색할 만큼 나라는 존재가 귀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안에 나도 알지 못하는 뭔가가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면서부터 가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귀히 여김을 받아본 적 없는 나였기에 귀를 의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미자 권사님의 입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마 6:30
권사님은 또다시 손가락으로 나를 지목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물며 창수 너일까보냐!”
그 말씀을 듣는데 울컥한 마음이 드는 한편, 전에 받아보지 못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권사님에게서 어머니 같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고마움과 친밀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곧이어 권사님은 “그러니 창수야, 너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라”라고 하시며, 그날의 결정적인 말씀을 내 마음에 심어주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 6:33
사실 권사님과 함께한 공과 공부는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33절까지 함께 읽은 것, 그리고 중간에 내 이름을 불러주며 내가 누군지 말씀해주신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듯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나의 내면에서 운행하며 나를 창조하고 조성하고 계셨다.
- 롬팔이팔, 한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