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열’, ‘열정’이 제게 화두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는가, 정답이었는가, 잠시 회의에 젖게 되었습니다. ‘열정’과 ‘정열’의 뜻과 용례를 보면, 이 두 단어는 문맥상 서로 바꾸어 써도 의미에 차이가 거의 없을 만큼 비슷한 뜻을 나타냅니다. 사전의 정의만 보더라도 열정(熱情)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정열(情熱)은 가슴속에서 맹렬하게 일어나는 적극적인 감정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시작한 사촌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났기에 각자의 근황, 인생관, 삶의 방식을 얘기하던 중 사촌간에도 이리 다른 생활을, 사고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울대 역사학부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정년퇴직한 형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다니다 학생운동에 심취해 졸업하고도 교생실습을 안 해 교사자격증을 따지 않은 채 노동운동에 투신한 여동생, 해양대학교를 나와 한국원양산업협회에 근무 중인 동생, 부부 의사로 인술을 펼치고 있는 여동생 등, 현역은 현역대로, 퇴직한 이는 그들대로 자신의 삶을 나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제 가슴에 열정이라는 굵직한 화두를 던진 이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대안교육에 열정을 불살랐던 사촌 여동생이었습니다. 지난 봄 만났을 때 이승윤의 팬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번에 만나보니 이승윤 팬클럽 회원으로서 춘천에서 오는 딸과 장충체육관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할 정도로 빠져 있었습니다. 응원봉, 스카프, 슬로건 등 응원하며 즐길 거리 준비는 물론, 스탠딩공연에서 열심히 뛰기 위해 비싼 운동화도 하나 장만했답니다. 공연 중에 떼창 하는 구간은 미리 안내하기에, 떼창 연습도 했답니다. 얘기를 하는 내내 얼굴에 기대감과 행복감이 넘쳐났습니다. 사촌들과 헤어져 구미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열정’과 ‘정열’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름으로 열심히는 살아왔지만, 정열을 불태우며 열정적으로 산 기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쳤던 탁구에 빠져 연달아 네 시간도 쳤지만, 테니스도 열심히 쳤지만, 잘 치기 위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별도로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노래, 가수는 있되 거기에 빠져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일에 전혀 관심 없을 것 같은 자형이 전유진 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신기하게만 느꼈습니다. 차제에 팬클럽의 역사를 살펴보았더니, ‘70년대 초에 결성된 남진, 나훈아 팬클럽을 필두로 ’80년대 초 조용필로 이어져 현재까지 왔답니다. 팬클럽의 팬심이, 팬덤이 지나쳐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대상을 도리어 망치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됩니다. 하지만 순기능의, 긍정적인 팬덤이 대세인 게 다행스럽습니다.
50년여의 역사를 가진 국내 팬클럽에서 시작된 팬덤 문화는 이제 정치로도 넘어왔습니다. 좋아하는, 지지하는 이에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고 조언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일 터인데, 연예계와는 달리 부정적 요소가 너무 많은 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동조를 일상화하거나, 반대편에 선 이들에 대한 도를 넘은 비방, 저주가 일반화되어 버렸습니다. 이 또한 정치 혐오의 바탕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만 커질 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를 좋아하는 권리 당연히 있습니다만, 자신이 좋아하는 이 때문에 다른 이를 혐오하고 비난, 저주를 퍼붓는 행위는 정치를 망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이에게 “나 당신 좋아해.”, “나 당신 팬이야.” 하면 될 일입니다.
저도 사촌에게 자극을 받아 열정을 불태울 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미치고 싶은 대상을 찾아, 정열적으로 즐길 것입니다. 인생의 2/3 이상을 산 저이지만, 깊게 빠져들 거리를 찾는 설렘이 커지고 있는 즈음입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설렘이...
짧은 가을을 즐기기 위해 당분간은 가을 풍광에 잠시 미쳐 볼랍니다.
그저께는 하중도에서 가을을 즐겼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08834928
직지사 꽃무릇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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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수목원의 초가을을 만끽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605338641
낙동강체육공원에도 가을이 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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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터지도록 보고 싶은 날은(모셔온 글)=========
가슴이 터지도록 보고 싶은 날은
모든 것을 다 던져 버리고
그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가식으로 덮어 있던
마음의 껍질을 훌훌 벗어 버리면
얼마나 가볍고 홀가분한지
쌓였던 슬픔조차 달아나 버린다.
촘촘하게 박혀 치명적으로 괴롭히던
고통이 하루 종일 못질을 해대면
내 모든 아픔을 다 식혀줄
그대와 사랑을 하고 싶다.
깨웃음 풀어 놓아 즐겁게 해 주고
마음이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마냥 그리운 그대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내 마음에 있는 그대로
다 풀어 놓고 싶다.
어두운 절망을 다 걷어 내고
맨살의 따뜻한 감촉으로
그대의 손을 잡아 보고 싶다.
바람마저 심술맞게 불어오고
눈물이 겹도록 그리워지면
그대에게 내 마음으로 고스란히
다 전해 주고 싶어
미친 듯이 미친 듯이 샅샅이 다 뒤져
그대를 찾아내어 사랑하고 싶다.
가슴이 터지도록 보고 싶은 날은
그대가 어디론가 떠나 있어도
내 마음엔 언제나 그대가 곁에 있다.
-----용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