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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에 청둥오리 떼 날아들고 흰 구름 두둥실 물결 지는 초가을에 물들어 가는 동궁의 뜨락, 잣나무는 변함없는 늘 푸른 모습으로 오가는 이의 가슴 속으로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가을의 서정을 자아낸다.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었던 승경(承慶) 왕자는 세자였던 이복형 중경(重慶)이 성덕왕 16년(717)에 일찍이 죽었으므로, 그의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을 받아서 동궁이 되었다. 그날도 왕세자를 위한 경연이 끝나고 점심을 한 뒤 차회를 하고 바둑을 한 판 하자면서 이찬 신충(信忠)을 불러들였다. 실상은 바둑이나 차회는 명분이었고 앞으로 나라의 운영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어서 불렀다. 바둑은 핑계였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아직은 날씨가 더웠다. 월지(月池) 못이 바라다 보이는 동궁 앞의 잣나무 아래다 바둑판을 차려 놓고 세자와 이찬이 마주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오늘 날씨도 좋고요, 바둑이며 차도 함께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세자 저하,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외람되오나 소신이 먼저 흰 바둑알을 잡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고수이시니까요. 더러 한두 수 물러 주시기도 하고요.”
“낙석불상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던져 놓은 바둑은 다시 물리지 않는 게 기본입니다. 신문대왕께서 국학(國學)을 도입하여 유학(儒學)으로 새로운 통일 신라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일단 배가 떠났으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국학 중심으로 유학의 기풍을 밀고 나아감이 좋을 것입니다.”
“이찬, 내가 뜻을 펼 시기가 오면, 이찬을 잊지 않겠소이다. 만일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말라서 죽을 것이오.”
이찬 신충이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자에게 큰절을 올리며 다짐을 한다.
“저를 잊지 않으신다면, 신명을 다하여 주군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살펴 주십시오. 저 잣나무를 두고 다짐을 두옵니다.”
“이심전심으로 우리 의기투합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다만 내 몸의 건강이 따르지 않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오만... .”
“부디 옥체를 보중하소서.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주군을 섬기오리다.”
잣나무 숲에서는 구구새들이 구-구- 정겹게 울면서 날아든다. 더러 소쩍새들도 우는 소리도 들린다. 대낮이언만... . 이야기를 엿듣기라도 하듯이.
무슨 도원결의라도 한 듯 세자 승경과 이찬 신충은 의기투합하면서 차를 마신다. 맹약의 차라도 된 듯하다.
성덕왕은 재위 35년(702-737) 동안의 생을 마감하고 그 뒤를 이어서 세자 승경이 대관식을 치르면서 출자형 왕관을 쓰고 신라 34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그것도 16살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것이다. 같은 해 용상에 오르자 대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죄수를 사면해주고 정종(貞宗)을 상대등으로, 6관등이었던 아찬 김의충(金義忠)을 집사부의 중시로 삼았다. 아찬보다 상급자였던 이찬 신충은 아예 공신 명단에도 그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신충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잣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며 다짐했던 굳은 맹약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누굴 원망하며 탓하겠는가.
신충은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면서 배신감이 담긴 노래를 향가로 적어 잣나무 가지에 붙여 두었다. 그 노랫말은 이러했다.
마당의 잣이 가을에 시들지 않으니
너를 어찌 잊겠느냐 하시던
우러르던 낯이 계신데
달그림자 옛 연못에 지나가는 물결 애타듯
모습을 바라보나 세상 모든 게 싫은지고
잣나무는 신충의 노랫말이 걸리자 얼마 안 있어 누렇게 말라 들어갔다. 이상한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런 소문을 들은 임금은 사람을 시켜서 잣나무에 붙여놓은 노래를 가져오라고 했다. 궁리는 즉시 월지 옆 동궁 앞의 잣나무를 찾아서 나무에 걸린 노래를 떼어서 임금에게 바쳤다. 이 노래를 보고 깜짝 놀란 임금은 이찬 신충을 데려오라고 했다. 신충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임금이 머무는 대전으로 들어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읍을 하면서 인사를 올린다.
“전하, 소신 신충입니다. 찾으셨다고요. 옥체 강녕하심을 늘 염원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신충을 가까이 오라면서 두 손을 잡고 약술을 한 잔 권하였다. 그동안 격조되었음을 이르면서 사실상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이찬, 약속을 바로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오. 정사가 복잡하고 바빠서 그대를 잊고 지냈소그려. 이찬도 아시다시피 중시 의충이 사직하였으니 늦었지만 집사부의 중시를 맡아서 나를 도와서 살기 좋은 통일 신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그 뒤 조정의 중신회의에서 신충을 중시로 임명한다는 첩지를 내렸다. 때는 효성왕 3년(739) 임금의 어머니 소덕황후(炤德王后)의 아래 여동생인 혜명(惠明)을 왕비로 맞아들였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의 동생이니 이모가 되는 왕비였다. 말하자면 이모와 근친결혼을 한 셈이다. 세자의 나이 3살에 어머니 소덕왕후가 죽었고, 이모이자 왕비인 혜명의 돌봄에 힘입어 자랐다. 외할아버지이자 당대 실력가인 김순원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이모와 혼인을 한 것이다. 같은 해 임금의 아우였던 헌영(憲英)을 파진찬에 등용하면서 태자로 책봉하였다. 뒤에 35대 경덕왕이 되는 왕제였다. 아울러 파진찬 영종의 딸을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임금은 어머니 같은 혜명 부인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고 예쁘고 마음씨 착한 후궁을 가까이 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왕비에게 후궁은 눈엣가시였다. 왕비는 그녀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임금은 이를 아랑곳 하지 않았다. 왕비가 후궁을 미워할수록 임금은 더욱 후궁을 가까이 지내면서 사랑하게 되었다. 이모인 왕비는 임금의 외할아버지 김순원의 권력을 믿고 임금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왕과 왕비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왕비는 조카이자 임금인 효성왕도 모르게 후궁을 내칠 결심을 하고 외할아버지 김순원도 이를 묵인 방조하였다. 김순원은 당대 실세 중의 실세였다. 성덕왕의 계비인 소덕왕후도 효성왕의 왕비도 김순원의 딸이었다. 대대로 부원군으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남편인 임금이 밤마다 후궁에게 정을 주고 붙어사는 꼴을 그냥 두고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왕비는 시녀들을 시켜서 왕비가 머무는 중궁전 마루 밑에다 왕비를 저주하는 부적을 묻어 놓았다. 이 신물을 후궁이 숨겨 놓은 것처럼 꾸며서 그런 소문은 궁안에 널리 퍼졌다. 그것도 아랑곳없이 임금은 후궁과 더욱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낙엽 지는 어느 날 밤이었다. 두 청춘의 불같은 사랑은 끝 간 데를 모르게 타올랐다. 밤은 깊어만 갔다.
“궁주, 우리가 어떻게 무슨 인연으로 만나서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지 모르겠소이다.”
“전하,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껴주시니 예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말고 나를 믿으시오. 내 그대를 지켜주리다.”
“죽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전하”
조정 회의에서 후궁의 왕비 저주 사건을 문제 삼았다. 김순원은 아예 명령조로 말을 꺼내기 사작한다.
“후궁이 왕비를 저주했다는 부적이 나오고 날로 그 정도가 심해짐을 처단해야 합니다. 왕실의 법도는 말할 것 없고 후일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전하.”
임금은 외할아버지의 제안을 딱히 막아서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후궁을 처단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부원군께서 말씀하신 점을 충분하게 검토하겠습니다. 시간을 두고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에 후궁을 징벌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궁 안의 일은 내명부의 최고 책임자인 왕비가 처리하도록 함이 좋다고 봅니다.”
부원군도 달리 더 문제 삼기가 어려웠다. 조정 회의는 그렇게 결말 없이 끝이 났다. 왕비인 혜명 부인은 후궁을 음해하는 극약처방을 꾸민다. 후궁이 왕비의 처소는 말할 것 없고 돌아간 소덕왕후, 그러니까 시어머니의 사당 마루 밑에도 후궁의 저주 어린 부적이 나왔음을 문제 삼고 있었다. 저주하기 위한 신표를 흙에서 파냈다는 궁녀를 대동하고 내명부의 징벌성 재판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음 달이 임금의 생일날이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생일 다음 날이었다. 내명부 재판에 후궁이 궁녀들에게 붙잡혀서 끌려 나왔다. 왕비의 요청에 따라서 임금도 배석하도록 하였다. 궁 안의 상궁은 물론이고 모든 관계자들이 다 모여들었다. 대비전의 상궁이었던 김 상궁도 나왔다.
재판 아닌 여론몰이로 후궁을 단죄하겠다는 것이다. 왕비의 목소리에 시퍼런 칼날이 꽂혀 있었다. 후궁의 죄를 추궁하고 있었다. 후궁을 궁실이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궁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남궁은 바른대로 죄상을 말하여라. 모든 죄상을 이실직고해야 한다. 알겠는가.”
“왕비 마마, 하문하여 주십시오. 아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묻겠다. 네가 중궁전 마루 밑과 대비 사당의 기둥 아래 저주의 신물을 묻었다는 제보가 들어 왔는데 이게 모두 남궁의 소행이라는 게 사실인가.”
“왕비 마마, 제가 죽을죄를 지었다면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저주한 적이 없습니다.”
왕비는 더욱 버럭을 하며 저주를 위한 신물을 가져오게 하고 이를 파낸 후궁의 궁녀를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남궁에게 요물 같은 저주의 신물을 보여주고 이를 파낸 남궁의 궁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의 서 상궁은 들어라. 네가 남궁이 파묻은 신물을 파냈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인가. 네가 아주 죽기로 결심을 한 게로구나. 딱한 것.”
“... 그렇습니다. 제 아래 궁녀에게서 남궁이 시켰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궁, 나를 똑바로 보아라. 이래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너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왕비 마마, 살려주십시오,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사실을 말할 때까지 저 못된 것 주리를 틀고 하옥시키도록 하라.”
그때 임금이 나섰다. 시간을 두고 모든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왕비, 본인은 아니라고 죄상을 부인하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진상을 밝힌 뒤에 처결토록 하시오. 내가 아끼는 남궁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아도 되는 것이오. 남궁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오.”
왕비는 들은 척도 아니했다. 오히려 냉정하고 높은 목소리로 항변을 한다.
“전하, 이 일은 내명부의 책임자인 제가 알아서 할 일이니 왕실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지켜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무리 전하의 애첩이라도 나라 궁실의 법도를 어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임금의 말도 뒷전이었다. 날이 저물자 남궁의 주리를 틀어 옥에 가두어 두기로 했다. 밤 중에 임금이 왕비를 찾아갔다. 헛일이었다. 왕비의 처소에 외할아버지인 김순원이 와 있었다.
“부원군께서 말씀도 없이 웬일이십니까?”
“그러는 전하께서는 이 밤중에 웬일입니까? 저 못된 후궁 하나 때문에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하게 왕비의 처결을 기다림이 옳을 것이오. 왕실의 법도를 어기고 못된 짓거리를 한 후궁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는 없는 것이오. 전하가 용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나의 역할이 컸음을 잊지 말고 내 말대로 함이 좋을 텐데. 아니면 화백회의를 열어서 정식으로 전하의 소행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오. 그대로 돌아가시오.”
왕비는 자기가 무슨 임금이라도 되는 듯, 제조 상궁에게 명령조로 남궁에 대한 처결을 내놓는다.
“전하의 말씀도 있고 하니 일단 남궁을 하옥하고 며칠 뒤 다시금 문초하여 결정함이 옳을 것이다. 알겠는가?”
임금을 수행하던 중시 신충이 문득 부원군의 편을 거들고 나섰다.
“전하, 부원군의 말씀대로 침소로 돌아가심이 온당할 것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몸도 병약한 데다가 정치적인 입지도 약한 효성왕은 하릴없이 침소로 돌아갔으나 분통이 터지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더욱이 남궁을 생각하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탓할 수밖에. 남궁을 철석같이 지켜 주겠노라고 약속한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었다. 과연 이 나라의 군주가 누구인가. 자신이 허수아비 임금임을 뼈아프게 느끼고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고통을 호소하는 남궁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이러다 돌아버리는 건 아닌가.
임금은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후궁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지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임금은 새벽같이 대비전 사당으로 달려갔다. 촛불을 밝히고 어머니인 대비전 영전에 남궁을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어마마마, 남궁을 살려 주세요. 제가 어떻게 하면 후궁을 살려낼 수 있을까요? 남궁은 그렇게 어머니 사당에, 왕비의 중궁전 마루 밑에 저주를 퍼부을 짓거리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노여움 거두시고 남궁을 제게 돌려주세요.”
그 어떤 말 한마디도 들을 수가 없다. 언제 쫓아왔는지 동생인 헌영 세자가 와 있었다. 애걸하듯이 형인 임금에게 위로 겸 언질을 준다.
“전하, 아니 형님. 이제 이 상황에서 아무도 형님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어떤 좋은 결론을 낼 수가 없습니다. ... 이제 남궁을 잊으셔야 합니다. 이러다 형님 병 드시고 건강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형님, 제발요.”
“네가 언제 왔느냐. 어쩌다 우리 형제의 몰골이 이 지경까지 왔느냐. 내가 심히 부끄럽구나. 다시금 무슨 방도를 찾아보자. 알았어, 돌아가자.”
당시 중시였던 신충이 다음날 조정 회의가 열리기 전 아침에 왕비가 머무는 중궁전에 가 다과를 들고 있었다. 무슨 중요한 묘안을 내놓았던 것일까. 병약한 임금의 건강이 문제가 되니 우선 후궁의 처결을 뒤로 미루고 사가로 돌려보내어 겉으로는 남궁이 자숙하게 만들고 전하의 건강을 살펴봄이 급선무임을 강변하고 있었다. 당장 후궁을 죽이지 말고 본가로 돌려보내서 다독이면 전하의 체면도 세우고 중궁전의 너그러움도 알리는 계기로 출구를 삼아 보자는 것이다. 왕비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한 제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왕비 마마, 우선 그렇게 하심이 옳을 줄로 생각합니다. 내명부 다음 처결 모임에서 왕비 마마께서는 한발 물러서서 너그러움을 보여주심이 전략상 좋다고 봅니다. 이대로 강행하시어 전하의 건강이 악화되면 그 책임 또한 마마께도 좋지 않게 비칠 수가 있습니다. 잘 상량하시어 재가하시지요.”
“알겠소이다. 중시의 의견에 일리가 있소이다. 묘수입니다그려. 역시 중시는 지혜가 많구려. 내 후일 반드시 중시를 잊지 않으리다. 당장 내일이라도 재판 마당을 열어 전하의 심기를 편안하게 해드리도록 하리다. 두 걸음 전진을 위하여 한 걸음 뒤로 물러섬이 좋겠네요.”
다음 날 남궁에 대한 처결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궁성 안을 떠돌았다. 아마도 남궁이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쑥떡공론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니 임금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초조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다고 내명부 일을 가지고 임금이 간섭하는 것 같고.
예정대로 다음 날에 남궁에 대한 회의가 왕비 주재로 열렸다. 왕비 혜명은 마치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이 많이 누그러진 언사를 서슴없이 한다. 제조상궁인 서 상궁이 사회도 보고 전날 왕비에게 제안했던 중시의 의견이 담긴 제안을 할 속셈이었다.
“왕비 마마, 내명부의 법도대로 남궁에 대한 마지막 처결을 내려 주심이 옳을 줄로 생각하오니 말씀 내려 주시지요.”
왕비는 알았다는 듯이 남궁을 향하여 다시 전일의 물음을 확인하는 듯 되물었다.
“남궁은 들어라. 네 죄상에 대하여 사실대로 말을 하면 정상을 고려할 터인즉 솔직하게 너의 저주 사실을 말하거라.”
“왕비 전하, 저로 하여 마음에 걱정을 끼쳐 드렸다면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를 구합니다. 다시금 하늘에 맹세코 말씀드립니다. 저는 대비전 사당과 중궁전 마루 밑에 저주의 신물을 묻은 일이 없사오니 살펴 주시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왕비 전하, 살려 주십시오.”
조금 있더니 제조상궁이 상궁들이 의논한 안이라며 제안을 한다.
“대전의 전하께옵서 남궁의 일로 식음을 전폐하시고 잠을 이루지 못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상궁들의 짧은 소견을 모아 본즉 남궁의 죄목은 처형함이 옳으나 우선 사가로 내치시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아서 후일 처결을 하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십시오.”
왕비 혜명은 별 깊은 고민도 없이 아주 너그러운 얼굴을 해서는 제조상궁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내명부의 법도에 따라서 남궁은 오늘부로 일단 사가로 돌려보내어 반성하고 지내도록 하라. 추이를 보아가며 후일을 도모할 것이다.”
남궁을 사가로 방면해준다는 소식을 듣게 된 임금은 우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남궁이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절대적인 비밀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중시 신충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시켜서 중시 어른과 차를 나누도록 하라는 왕명을 내린다. 중시 신충은 궁리의 전갈을 받고 즉시로 대전의 임금을 찾았다. 용상에서 일어난 임금은 아주 반기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중시의 손을 잡고 어서 차를 하자고 권한다.
“중시, 내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지혜로운 길을 열어주니 고맙소이다. 참으로 이름대로 미덥고 충직한 대신입니다. 어서 차를 드시지요.”
한바탕 미친 듯한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임금의 체면이 조금은 살고 왕비도 체통이 사는 듯. 그러나 실상은 모두가 왕비 혜명이 꾸민 음모요, 사기극이었다. 임금이라도 힘이 없으면 조직이 없으면, 맥을 못 춘다.
남궁은 궁에서 내침을 당해 본가로 돌아간 뒤 모진 고문에 시달림과 억눌린 마음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두어 달 만에 사약을 받기 전에 스스로가 자진하고 말았다. 후궁의 아버지인 파진찬 영종(永宗)은 딸의 죄 없음을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너무나 황당무계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당시 파진찬은 네 번째 관등으로 군사 조직의 최고 책임자였다. 억울하게 죽은 딸의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효성왕 4년(740) 추운 겨울이었다. 파진찬 영종이 섣달그믐날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지나친 외척에 발호로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말은 맞았다. 본디 반란은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부사령관 격인 대아찬이 이러한 영종의 반란 정보를 중시였던 신충에게 밀고를 한 것이다. 궁성으로 쳐들어간다는 날짜에 중시는 특단의 조치로써 궁을 모두 비우게 한다. 잠시 피란을 가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군사들을 길목에 매복시켜 배치한 것이다. 영종의 날쌘 군사 5백여 명은 눈 덮인 월성을 넘어 밀물처럼 쳐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궁 안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말하자면 반란 정보를 미리 알고 청야 작전을 편 것이다. 이미 궁성의 문은 닫혔고 영종의 군사들은 독 안에 든 쥐였다. 매복한 정부군은 활을 쏘며 공격함으로써 영종의 군사들이 거의 죽었고 영종 자신도 잡혀서 무참하게 목이 잘리고 말았다. 반란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임금에게는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연일 쏟아지는 왕비의 잔소리, 아예 시어머니도 이런 시어머니가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무슨 정이 샘솟을 것인가. 둘 사이에 아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도 저도 아니었으니. 집안의 조카를 대하듯, 이모를 대하듯 그 이상의 관계 형성이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임금의 건강이었다. 무슨 나이 스무 살인데 호흡기 천식이 심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불량이었다. 백약이 무효라, 게다가 부원군 김순원의 잔소리는 아예 상왕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하자면 임금은 가혹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임금이라 해도 이름뿐인 자리였고 가시방석이었다.
임금이 의지하는 사람은 오직 세자인 헌영과 중시인 신충뿐이었다. 날로 쇠약해 가는 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제는 발걸음마저 허둥거림 현상이 생겼다. 매일 같이 어의가 왔다 가고 탕약을 들곤 하지만 이렇다 할 효험이 없었다. 세자 헌영을 불러들였다. 허위허위 무슨 일인가 하고 세자가 대전으로 달려왔다.
“전하, 저를 찾으셨습니까?”
“헌영아, 내 말 잘 듣거라. 요즘 내가 심신이 허해져서 그러니 다음 달 초순에 있을 국왕의 군사훈련 대열(大閱)에 내 대신 네가 중시와 상대등과 함께 현장에 가도록 해라. 중시에게 잘 말해 둘 터이니. 통치 공부를 해야 하느니. 앞으로 내가 얼마나 버틸 수가 있을지 가늠이 안 간다. 내가 죽고 없더라도 중시와 상대등을 모시고 나라의 정사를 잘 돌봐야 한다. 네 형수인 왕비도 잘 부탁한다. 나하고 부부의 애틋한 정은 없으나 집안으로는 이모님이고 어쨌든지 왕실의 어른 아니겠나. 나는 정상적으로 정무를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너도 나이가 열여덟 살이니 부지런히 정무를 익히도록 해야 한다.”
“전하, 아니 형님, 왜 그렇게 허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안 됩니다, 보령이 한참 활동하실 때입니다. 무슨 당치 않으신 말씀을요. 군사 대열일랑 중시 어른과 상의하여 제가 대신해 볼 테니 전하께서는 건강만 잘 챙기시면 됩니다. 몸이 좋아지시면 곧 새로운 형수를 맞이하셔야지요. 왕비의 자리를 비워서야 되겠습니까?”
“세자, 함부로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이런 몸으로 누구를 맞이한다고. 그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는 일이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건강회복과 죽은 남궁의 왕생극락과 나라의 안정적인 발전을 염원하는 것이야. 너야말로 좋은 배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임금 노릇을 제대로 못하니 영 말이 아니구나. 처가 세력에 휘둘려서는 정사가 올바르게 될 수가 없다.”
세자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형제라는 혈연의 강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임금은 틈만 나면 궁 안의 내불당에 가서 아미타불 존상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사랑했던 남궁의 왕생극락을 비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분황사가 바로 옆인데도 가고 싶으나 힘에 겨워 가기가 쉽지 않았다. 후궁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국왕으로서 권한도 제대로 행사 못 했던 회한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체성 없이 6년 세월을 자리만 지켰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울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참회를 하나이다. 용서를 구하나이다. 이처럼 나약한 죄인을 굽어살피시고 힘겹게 살아가는 중생들의 눈물을 닦아주소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후궁에게 저주의 죄목을 덮어씌운 걸 뻔히 알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못한 자신이 아니었던가. 때때로 꿈에 나타나서 울면서 자신의 죄 없음을 하소하는 듯한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는 나날이 가슴을 짓누르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내불당에 와서 예불을 하고 눈물로 지난날을 돌아보면, 지친 몸이지만 훨씬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더러 달 밝은 밤이면 월지 못에 나가서 물결 위로 흔들리는 달그림자를 보며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잦은 기침에 때로는 각혈도 되고. 허둥거리다 쓰러지기도 한다. 수행하는 내시들조차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 말라고 했다. 이런 임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용하게 부처님 앞에서 명상 기도하며 죽은 뒤의 세상을 맡기고 싶었다. 간절한 염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었다.
진달래 피고 지고 이제 녹음이 향기로운 5월, 꾀꼬리 소리가 궁성 안의 숲속에서 들려온다. 노을 지는 서악에 해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저녁 예불 종소리가 들린다.
세자와 왕비, 그리고 중시와 상대등을 대전으로 들라고 연통을 넣었다. 얼마 있다가
무슨 일인가 하여 대전으로 잰 걸음으로 들어 왔다.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 시간에 차를 함께 하고 싶었다고. 중시나 상대등이며 세자나 왕비는 무엇인가 유언 같은 고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심전심으로 넌지시 느끼고 있었다. 지치고 야윈 모습으로 임금은 차를 손수 따라주면서 함께 마시기를 권한다. 임금이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하기도 했다. 먼저 세자가 말문을 열었다.
“전하, 무슨 말씀이라도... . 몸도 편치 않으신데. 불편하시면 다음에 다시 들어올까요?”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 아마도 하늘이 내게 주신 천명의 시간이 저녁 노을 같이 이제 다한 것 같다. 내가 죽더라도 세자는 상대등과 중시를 모시고 나랏일을 무리 없이 잘 꾸려가기를 바란다. 두 분은 세자를 도와서 모든 백성들이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 주기 바랍니다. 내가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고 법류사 남쪽에서 화장하여 저 푸른 동해 바다에 내 뼈를 뿌려주시오. 왜구들의 침략을 막는 이정표로 삼아 준다면 좋겠소이다.”
이어서 함께 자리한 세자와 왕비를 향하여 나지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무슨 선정에 들려는 스님처럼.
“부인, 그동안 여러 가지로 나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내가 사랑한 후궁은 왕실을 저주한 죄목으로 그 젊은 나이에 죽었소. 그 사람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못 되고 아님을 잘 알고 있소이다. 너무 미워 하지 마시오. 진실은 하늘이 보시는 것입니다. 죄가 있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나에게 있는 것이고요. 부인은 때때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시오. 사람을 미워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아시지 않소이까. 내가 세자한테 부인을 잘 모시라고 했으니 노후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어머니 소덕왕후께서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뒤 이모 손에 자란 큰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되어 부부의 인연까지 맺었으니 참으로 큰 불연이라 하겠습니다. 모든 게 다 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행무상이라고. 나 대신 부디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라오.”
밤 하늘에 유성이 긴 빛을 발하며 사라져 갔다. 더러 유성이 삼대성(參大星)을 범하면 큰 이변이 일어났다. 바람도 없고 달이 밝은 깊은 밤에 임금은 영원한 잠에 들었다. 왕생극락의 꿈을 꾸면서. 아주 조용하게 선정하는 자세로 숨을 거둔 것이다.
임금의 유언대로 화장을 하여 달빛 춤추는 검푸른 동해에 그의 뼈를 뿌렸다. 흔들리는 별빛과 함께 사라져 갔다. 문무대왕처럼. 조국의 밤 하늘을 지키는 은하수 되는 꿈을 꾸면서.
(글 정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