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부터 5일간 방영되었던 EBS 인간탐구 대기획 ‘아이의 사생활’이 엄마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설문 조사 참여 인원 4200명, 실험에 직접 참여한 어린이 500명, 국내외 자문 교수만도 70명이라는 대인원이 참여한 이 프로그램은 취재 기간만 1년이라는 대장정을 거쳐 전파를 탔다. ‘모처럼 만난 수준급 다큐멘터리’ ‘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 ‘아이 교육의 새로운 기준표를 제시해 준 놀라운 연구 결과’ 등의 리플과 함께 프로그램에 대한 엄마들의 반응은 뜨겁다. 접수되는 시청자 문의 전화는 한 프로그램당 하루 평균 1~2건, 방송 사고가 날 경우 10건 정도였는데,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하루 평균 25건의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대단한 피드백이다. 3월 한 번 재방송을 했는데도 다시 재방송 요청이 이어져 예정에 없던 5월 말 편성을 내부적으로 결정했다. 한국PD연합회에서 주는 ‘이달의 PD상’수상자로도 결정된 상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휴일, 밤낮도 없이 바쁘게 뛰어온 두 PD는 그러므로 지금 살짝 고무돼 있다. 인터뷰하던 날, 정지은 PD는 20여 곳의 출판사에서 사업 제안서를 보내왔고 DVD 제작 문의도 많다고 귀띔해 주었다.
최초 기획은 아들로부터 시작되었다
6세 아들을 키우면서 엄마 입장에서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판단 기준이 되는 매뉴얼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 장난감 자동차만 보면 사달라고 조르는 통에 집에 200개가 넘는 자동차가 있지만 여전히 또 사달라고 조르고, 은 꼭 파란색만 입겠다고 떼를 쓰는 아들을 보며 ‘남과 여’ 편을 생각했다. 또 부모라면 누구나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고민한다. ‘도덕성’ 편은 이런 출발선상에서 나왔다. 남을 배려할 줄도 알면서 자기주장이 있는 아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면 이는 ‘자아 존중감’ 편에 해당한다. 또 아이의 재능은 무엇이고 그를 위한 최소한의 충분 조건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통해 ‘다중 지능편’이 기획되었다.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사건도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무관치 않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할 당시 조승희 사건이 발생했다. 프로그램과 연관해서 그 사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조승희는 공부는 잘했어도 가족 내에서 누나와 비교를 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자존감을 위해 인터뷰했던 하버드대 교육학과 조세핀 교수는 조승희 사건의 전문가였다. 그는 조승희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자존감이 매우 낮은 케이스였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자존감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일주일에 1~2회 정도 ‘나를 사랑하는 법’‘세상을 사랑하는 법’ 등을 주제로 자기 계발 강의를 하는 것. 사회적 책임과 무관치 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자존감과 도덕성은 지극히 ‘정서적’인 측면이지만 알고 보니 이게 바로 아이의 경쟁력이다
특히 자존감과 도덕성에 한해 얘기하자면, 방송 이후의 반응은 이 두 주제가 가장 좋았지만 부모 입장에서 도덕성과 자아 존중감이 솔깃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경쟁 사회에서 자라게 될 아이들에게 성과로 표출되지 는 정서적인 문제가 그리 급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건 사실이다.
머리 좋은 아이,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보다 많은 부모들의 교육 목표인 것. 이러한 시청자들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이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과 도덕성이라는 다소 뜬구름 잡는 주제가 결과적으로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경쟁력’이라는 키워드가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경쟁, 효율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태도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이가 더불어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하게 느낀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경쟁력 아니겠나. 제작진 스스로도 참신한 아이템이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웃음).
성인이 될 때까지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개념, 자아 존중감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자아 존중감’일 것이다.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개념인데 비단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인 나를 이해하는 데도 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때마다 나 자신을 반추해 보았다. 나의 심리 상태는 지금 어떤가. 저 나이 때는 어땠을까. 자존감의 형성 요인 등을 알게 되면서 과거의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오히려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이 되었는가 하면, 자신감이라 믿었던 감정이 오만함이었던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인의 자존감이 유아기, 아동기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성장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되짚어 보게 되었다.
괜찮은 아이에게 건강한 가정이 있었다
취재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와 부모들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고 실험을 진행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괜찮은 아이에게 건강한 가정이 있더라’는 사실! 예를 들어 자존감의 개념을 알고 나니,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벌써부터 그 기운이 느껴진다. 단지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최소 부모 중 한 명은 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임상학적 통계감이라고 할 수 있을 듯(웃음).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좇는 너무 앞서 가는 사교육이 아이를 망친다
아직 미혼이지만 1년간의 대장정을 마친 후 알게 된 사실은 ‘ 무 앞서 가는 사교육이 아이를 망친다’는 것.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이 주지의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뚜렷한 대안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아이를 마음껏 ‘놀게 해주기’에는 주변 학부모들이나 환경이 주는 자극과 충동이 무 많다. ‘다중 지능’ 편에서 아이들을 6개월간 트레이닝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도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방송에서는 언급하지 았지만 학원 몇 개 줄이는 것이 부모들에게는 쉽지 은 결정이더라.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아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라면 모르겠지만 스무 살 이후의 행복한 삶을 생각한다면 좀 더 길게 보아야 할 것이다.
자존감과 도덕성, 훈련될 수 있다
자존감과 도덕성은 분명 훈련되는 측면이 있다. 매체, 가정환경, 부모의 모범 행동은 수적인 요건이다. 아이를 건강하고 똑똑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훈련해야 한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마음가짐이 조금 느긋해질 수 있겠다고, 한 아이의 엄마로서 생각해 보았다. 덧붙이자면, 방송 후 다양한 검사 기관에 대한 문의가 많다. 부디 맹신하지 았으면 좋겠다. 다중 지능 검사의 경우 교육 정책의 최고 수장을 역임한 문영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가 진로 적성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개발한 것이고 자존감의 경우도 몇 가지 기 검사보다는 전문 상담이 더욱 효과적이다.
‘아이의 사생활’ 프로그램 간단 Review
1부 남과 여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는 다르게 키워야 한다. 그 이유가 되는 뇌의 성별 차이를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남자는 여자만큼 청력이 좋지 못하다. 이것은 여자들이 소리를 들을 때 양 뇌를 사용하지만 남자들은 한 뇌만 사용하기 때문. 남자들이 검은색을 좋아하고 여자들이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는데, 남자의 망막이 여자의 망막보다 훨씬 두꺼우며 남자의 망막에는 위치, 방향, 속도에 민감한 M세포가 많은 반면 여자의 망막에는 색과 질감에 민감한 P세포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 아이는 인형에 더 끌리고 남자 아이는 자동차나 기차를 선호하는 것. 여자는 공감형 뇌를 가졌고 남자는 체계화형의 뇌를 가졌다.
2부 도덕성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팀과 함께 등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도덕 지수를 측정했다. 제작진은 도덕 지수가 높은 아이 6명과 평균적인 아이 6명을 대해 몰래 카메라 상황에서 아이들이 규칙을 잘 준수하는지, 유혹을 이겨내고 자제력을 갖는지 등의 실험을 했다. 행동 실험 결과 도덕 지수가 높은 아이들이 집중력이 높고 스스로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있고 친구 사이에 인기도 있었다.
3부 자아존중감
자아 존중감은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고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심리적인 특성을 일컫는다. 등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ESM(Experience Sampling Method)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은 하루에 6번 울리도록 제작된 시계를 차고 시계가 울릴 때마다 수첩을 꺼내 그 순간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함께 있는 사람, 순간의 느낌이나 기분을 기록한다. 연구를 통해 자아 존중감 지수를 측정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긍정적인 신체상,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고 남의 마음을 읽는 공감 능력이 뛰어났으며, 문제 해결 능력과 갈등 조정 능력이 탁월했다.
4부 다중 지능
현재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고 있는 성인 남녀 8명을 상대로 다중 지능 검사를 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강점 지능과는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상대로 다중 지능 검사를 해보았다. 최고의 심장이식 전문의 송명근의 강점 지능은 논리 수학 지능이고, 발레리나 박세은의 강점 지능은 신체 운동 지능이며, 가수 윤하의 강점 지능은 음악지능이었다. 성공한 사람에게도 약점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약점보다 강점에 더 중점을 두고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있다.
5부 나는 누구인가
우리 몸에서 가장 가변적인 것은 바로 뇌다. 많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볼 때마다 우리의 뇌는 조금씩 진화해 나간다. 가능한 많은 자극을 주고 정보를 입력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지, 나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나’에 대한 궁금증을 펼쳐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