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람보그
화원(畵員) 안 영 신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부산의 하단 대학가를 찾아갔다. 정문으로 이어지는 진입로와 주변의 건물들은 그전과 크게 다름이 없었으나, 줄지어 늘어선 상가의 외관과 업종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가판대나 노점상도 없이 깔끔한 거리는 젊음의 활력이 실종된 채 차분하게 정리된 표정으로 바뀌었고, 익숙한 브랜드 매장들의 존재로 인해 우리 아파트 단지 상업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인문대학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과 언덕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길어 보였지만, U자로 길게 휘어진 길을 따라 울창하게 우거진 숲을 관통하며 흐르는 맑은 공기와 멀리서 갯바람에 묻어오는 항도(港都) 특유의 정조(情調)는 여전했다. 언덕길 반지하의 인문대학 독서실은 놀랍게도 내부 구조와 시설물까지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강의실마다 바쁘게 수업이 진행되는 시간인데도, 학생 한 명 없이 텅 빈 독서실은 이상하리만치 적요했다. 독서실 입구 휴게공간 야트막한 담장 위에 걸터앉아서, 나는 마음 놓고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 보았다.
독서실 칸막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을 때, 람보그가 빵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까 학교 진입로를 따라 걸어 올라오면서 보니, 람보그는 포장마차 앞에서 빵을 팔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기다렸다가 몇 마디 이야기라도 하다 오곤 했는데, 중간고사 기간이라 바빠서 그냥 지나쳐왔다. 평소 나는 오전 9시쯤 등교해서 도서관에 자리 잡고 공부하다가 야간 강의가 끝나면 하교하는데, 오늘은 주간 강의도 없고 시험 기간이라서 점심까지 먹고 느지막이 나왔다.
람보그의 빵은 즉석에서 만드는 빵이 아니라서 별맛은 없었지만, 그가 가진 싹싹한 태도와 유머러스한 언변력이 바로 장사 밑천이었다. 특히, 강의가 끝나도 학생들이 학교에 많이 남아 있는 시험 기간은 평소보다 매상이 배가되는 성수기였다. 독문학과 야간부 재학생이라는 점과 함께 그의 독특한 외모 또한 빵 장사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람보(Rambo)란, 1980년대를 풍미했던 할리우드 액션 영화「람보」1·2·3편의 주연 배우 실베스터·스탤론처럼 갸름한 얼굴에다 쪼뼛한 매부리코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었다. 4학년에 올라와서 람보그라고 작명한 빵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호칭까지 아예 람보그로 바뀌게 되었다. 늦깎이 대학생에다 빵을 파는 노점상 겸 행상이었지만, 람보그는 금방 우리 대학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 되었다.
내가 람보그를 처음 만난 건 1학년 때였다. 2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며칠 후 국문학과 야간부 담당 교수 연구실에 들렀더니, 독문학과에 결시자가 한 명 있다고 연락처를 수소문해 알려달라고 했다. 추가 시험 날,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난 람보그가 핼쑥한 얼굴에 검은 양복을 입고 연구실로 찾아왔다. 나는 독문학과에 친구가 있어서 자주 왕래하는 편이었지만, 몇 명 안 되는 남학생 중에서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그도 나와 같이 27세 동갑내기로 문리대 야간 학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만학도였다. 이미 결혼도 한 상태였고, 선친의 뒤를 이어 횟집을 운영하느라 바빠서 결강하는 날이 잦았다. 2학년을 마칠 때까지도 학교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친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3학년 1학기 초, 화창한 햇살 아래 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점심시간에 라면이라도 한 그릇 사 먹을까 하고 구내식당으로 가다가, 잠시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학우들은 제주도로 졸업 여행을 떠났고, 나 혼자 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처지였다. 교내 방송 스피커에서는 학생들이 신청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 . 교정에 울려 퍼지는 애잔한 곡조의 그 노래는 쓸쓸하고 처량한 내 심사를 더 부추겨 주는 듯했다.
그때 소풍이라도 가는 양 큰 찬합에 담은 도시락을 들고 내 앞으로 지나가던 람보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지난해 말 횟집을 정리하고 일주일 전부터 고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동안 집 근처 제2캠퍼스 도서관에 나가다가, 오늘은 볼일이 있어서 이곳 제1캠퍼스로 왔다는 거다. 람보그는,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하니 교문 앞 할매집에서 막걸리 딱 한 잔씩만 하고 올라와서 공부하자며, 나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했다.
의기투합한 람보그와 나는 할매집에서 노가리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부친을 도와 장사했던 경험이 풍부한 람보그의 이야기는 쉬지 않고 이어졌고, 이야기하다 막간을 이용해서 노래도 한 곡씩 구성지게 불렀다. 가랑잎이 떨어지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 . 그가 들려주는 재담도 흥미진진했거니와 풍부한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이 돋보이는 노래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노래가 한 곡씩 끝날 때마다 옆자리 주객들은, 앵콜~, 하며 큰 박수로 호응했다. 내친김에 공부고 뭐고 다 접어두고 한 주전자 두 주전자 계속 청해서 마시다 보니 우리는 정말 어지간히 취했고, 또 무슨 술을 얼마나 더 마셨는지 그 다음날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도 둘이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우울했던 마음이 깨끗이 해소된 날이었다.
람보그는 그날 이후 다시 도서관에서 볼 수 없었다. 1학기가 끝나자, 문리대는 제2캠퍼스의 신축 건물로 이전해 갔다. 강의실을 오고 가다 몇 차례 얼굴을 마주치기만 했던 람보그를 다시 만난 건, 4학년이 되고 나서 얼마쯤 지난 후였다. 한 달을 못 채우고 고시 공부도 그만둔 다음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던 그가 학교 앞에서 빵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5월 한 달 동안 교생실습을 다녀온 후 다시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이제 졸업반이 되어 시간적 여유도 좀 생긴 데다가, 그가 학교 앞에서 상주하다시피 했으므로, 자연히 우리는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람보그 포장마차 옆 튀김집에서 그와 만났는데, 그것은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켜놓고 그가 펼치는 재담과 노래를 즐기는 유쾌한 자리였다. 가게 주인아줌마는 람보그의 말재간과 노래 솜씨에 반해서 으레 TV도 끄고 우리 옆에 와서 구경하다 가곤 했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던 날. 오후가 되자 야간반 학생들만 드문드문 보일 뿐 독서실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한산해졌고, 마지막 시험을 앞둔 나는 감기 기운 때문에 심신이 좀 지친 상태였다. 마침 빵 상자를 들고 지나가던 람보그가 내게 다가와, 끝까지 시험 잘 치르고 하교할 때 조용히 둘이 만나자고 했다. 시험을 끝내고 약속한 중국집으로 찾아가니, 람보그가 고급 요리에다 고량주를 시켜서 내게 권했다. 갑장 친구야. 니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장학금도 계속 타는 걸 보니, 내가 다 고맙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사정을 잘 이해해 주는 람보그가 내심 고마웠다. 중국집에서 식대를 계산하고 나온 람보그는 호기롭게 택시를 불러 나를 태우고 남포동 번화가로 진출했다. 그는 울긋불긋한 네온사인 간판이 반짝이는 가라오케로 나를 안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반주에 맞춰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한 곡 없었지만, 화려하고 흥겨운 업소 분위기에 도취해서 기꺼이 풍류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람보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그 이듬해 졸업을 하루 앞두고 학교에 찾아갔을 때였다. 국문학과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가까스로 창원의 한 사립 고등학교 교사로 임용이 확정된 나는, 인문관 로비에서 말끔한 양복 차림을 하고 온 그와 마주쳤다. 나는 학과 연구실에 인사하러 올라온 길이었고, 그는 자동차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업해서 홍보차 찾아온 것이었다. 나이는 젤 많아도 젤 먼저 선생님이 되었구나. 람보그는, 비로소 내가 백수 처지에서 벗어나 취직했다는 소식을 큰 소리로 홍보하러 나온 사람 같았다. 그날 저녁의 조촐한 축하연에는 튀김집 주인아저씨까지 합류해서 우리 둘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 후 나는 창원에서 3년 동안 바쁘게 교직 생활을 하다가 경기도 수원으로 옮겨왔다. 졸업 후 10여 년 동안은 동창 모임이 있어서 매년 부산에 다녀왔지만, 그때마다 길이 어긋나서 람보그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동창 모임도 흐지부지 중단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소원해지면서 하나둘 연락조차 끊기고 말았다. 몇 해 전 우연히, 람보그가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근근이 호구지책을 꾸려가고 있다는 근황을 풍문으로 들었다. 그토록 뛰어난 화술과 사회성을 가진 람보그가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어렵게 산다는 소식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같은 직장이나 동네에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던 사람도 사회적 관계가 끝나고 나면 차츰차츰 잊게 마련이지만, 람보그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사람도 세상에는 더러 있는 법이다. 람보그와 나는 대학가에서 오고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친해진 사이였다.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겠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인문관에서부터 옛날 튀김집 건물까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그 시절의 희미한 자취를 찾아보고 되살려내면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래도 람보그가 내 앞에 나타나는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대학가를 떠나 외부인이 된 지 오래된 사람이란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음에 또 부산에 오면 대학가가 아닌 시내로 나가서 람보그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리라. 이제는 좀 더 여유롭고 편한 자리로 내가 그를 초대해야 하겠다. 그리고 무방비했던 내 가슴 깊숙이 그가 투척했던 말을 한 번쯤은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다 고마웠다, 갑장 친구야!
첫댓글 입담 좋고 외형적인 사람이라면 어딜 가도 살아남아요.
담에 내려가거든 대학가가 아닌 호텔을 돌며 지배인 찾으면 될 것 같은 느낌.
지배인으로 나이가 너무 많은가?...
오랫동안 못 만나서 그의 건강 상태는 잘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라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음이 가는 사람입니다.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 가수나 예능인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여러모로 많이 아쉬운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대학의 추억을 소환하는 글을 만났습니다.
젊은 시절의 느낌과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내신 글 잘 보았습니다.
괴로운 대학 생활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남 다른 이야기 거리가 몇 개 있네요.
특별한 글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몇 편 더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추억과 좋은 친구가 있네요.
'람보그' 라는 별명에서 멋진 모습이 그려지네요.
실베스타 스탤론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기관총을 든 근육질의 람보 그림을 하나 그려볼 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외모만 비슷했지 성격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아서요(영화 속 모습).
그래도 람보그는 람보처럼 강인한 면모가 언뜻 언뜻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안목련
전선야곡
이 두 제목의 노래에
먼저 정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부산 하단,
아,좋지요.
대략 기억나는 학교가 있네요.
참, 친구찾기 팁을 하나 드리자면
라디오 CBS 오후 4시~6시
두 시간동안
박승화의 (가요속으로) 프로가 있어요
5시 2부 첫 곡이 끝나면
(라디오 친구를 소개합니다)라는 코너가 있는데
여기에 사연을 보내면
어쩌면 람보그님을 찾을 수도 있어요
한번 방송 청취해 보시고
친구분 찾으시기 바랍니다
현재 127명?이 연락이 닿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과 코너 시작한지 2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월~금) 요일에만..
하루 한 명씩 소개합니다
친구든, 연인이든, 스승이든, 옛 전우든
누구라도 다~~
노래도 7080 위주의 곡들로 진행되구요
제가 퇴근 무렵에 꼭 듣거든요.
말이 길었네요
말 한 마리도 없는 제가 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10여 년 넘게 연락이 두절되다 보니 찾아보기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수소문하면 람보그의 근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아요.
퇴근 할 때 차에서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군요.
라디오 프로는 시간 날 때 한 번 들어보고 괜찮으면 사연 보내 볼게요.
대단한 인연이군요!
반갑게 다시 만나기를 빕니다.
이제와 돌이켜 보니, 요즘 세상에선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의 친구였네요.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샌님들뿐이었는데,
그래도 주변에 람보그가 있어서 한 시절 행복하게 보냈지요.
저도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인터넷에는 안 나오네요. 만나면 너무 반가울 듯 합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지난 세월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저는 적극적으로 수소문해서 만나볼 작정입니다.
누구나 꼭 한번쯤은 다시보고 싶은 람보그 같은 친구가 있나봅니다. 추억의 글 잘 감상했습니다.
순수했던 학창 시절에는 그런 친구를 만나 좋은 인연 맺을 수 있었지요.
사회는 날로 첨예한 이익 사회로 변질하고 있지만,
내가 먼저 베풀면서 좋은 인연 만들어 나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