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왕국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보는 예레미야의 슬픔은 극도로 치달았습니다. 11절에 표현했듯이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자기 몸의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토로(吐露)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유다 왕국의 백성은 무자비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거센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쓰러져 갑니다(11절, 12절). 그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고, 해결해 줄 수 없을 정도로 무참하게 파괴되어 희망이 사라져 버렸으니 비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3절).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온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노와 징계이니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기에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1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유다를 이방민족으로 손을 통해서 치시겠다고 하셨기에 유일한 희망이신 하나님께도 손을 내밀기 어려우니 참으로 참담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고, 그 영광스러움을 가졌었기에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늘 당당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원수들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해 비웃고 조롱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16절). 그래서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울부짖고,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물 쏟듯 해보지만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18절, 19절). 그럼에도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 앞에 눈물을 강처럼 흘리며,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쏟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진노이시기에, 유일한 해결자도 오직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유다)의 남녀노소(男女老少), 그리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무자비하게 죽는 처참함을 당하고 맙니다(20절, 21절). 그런데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진노와 징계이기에 더욱 고통스럽습니다(20절~21절).
이러한 처참한 비극이 찾아온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어리석은 묵시(默示)를 의지하며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며 따랐기 때문입니다(14절).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만 듣고 따르면서, 정작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하는 선지자들의 말에는 귀를 닫고, 오히려 그러한 선지자들은 박해하였기에 하나님께 돌이키지 못하고 죄악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되, 그러한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마치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22절). 유월절 등의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과 유다 전역(全域)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은 매우 장관(壯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 왕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마치 절기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몰려들 듯이 유다 왕국을 향해 걷잡을 수 없이 거세게 밀려오는 모습으로 빗댄 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마음은 통한(痛恨)의 눈물을 쏟으며 비통(悲痛)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비참한 결말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때가 늦기 전에 하나님 앞에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하다가는 결국 모든 기회를 잃고 처참하게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님, 날마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