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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방낙조
나는 알았네
세방리에 와서
섬과 섬이
저문 하늘을 내려 받아
바다의 무릎에 눞히는 순간
천지는 홀연히 풍경이 되고
홍주빛 장엄한 침묵이 되고
어디선가 울려오는 아라리 가락에
일렁이며 잠겨드는 섬의 그림자
때로는 꿈도 꽃이 되는가
저 놀빛에 붉게 젖어
한 생애 황홀한 발자국을 찍네
―― 하순명, 「세방낙조」 전문
▶ 여행일시 : 2023.1.7.(토) ~ 1.8.(일), 흐림, 미세먼지 아주 나쁨
▶ 여행인원 : 3명(아내, 나, 아들)
▶ 여행거리 : 승용차 운행거리 932km
일기예보대로 서울은 간밤에 큰 눈이 내렸다.
그러나 날씨가 포근하기도 하여 고속도로에는 눈이 다 녹았다.
주말이라 길이 막힐 것을 염려하여 이른 아침에 서둘러 나섰다.
안개 낀 고속도로다. 진눈깨비는 잠시 오다 말았다.
대전쯤 지날 때 주변 경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엷은 졸음 사이사이로 차창 밖 산릉을 바라보는 것에도 있다.
비록 관산(觀山) 아닌 간산(看山)이지만, 가본 산이라면 그 때를 회상하고,
아직 가보지 않은 산이라면 저기를 어떻게 오를지 궁리하는 것이 즐겁다.
2. (황전휴게소 언덕바지에서 바라본) 왼쪽은 천황봉, 멀리 오른쪽은 월출봉
광양 백운산의 서쪽 위성봉들이다.
3. 선암사 가는 길
선암사는 주차장에서 1.0km 떨어져 있다.
날씨가 포근하기가 봄날 같았다.
계류를 끼고 산모퉁이 돌고 도는 길이다.
이 길로 들기 전에 길 양쪽에 다음의 시구를 각각 새긴 돌기둥이 있다.
放出曹磎一派淸
劈開南岳千峰秀
조계(육조 혜능) 스님이 나타나자 온 물결이 맑게 되었고
남악(회양 懷讓) 스님이 등장하자 일천 봉우리가 빼어나게 되었네
8.15 해방 후 조선불교의 초대 교정(종정)을 지낸 학승인 박한영(朴漢永, 1870~1948) 스님이 지은 게송 대구라고
한다. 육조 혜능은 익히 들어왔지만, 회양은 낯설어 찾아보았다. 다음은 성광일보에 ‘이계묵 근도/노고산방에서
화옹거사’가 쓴 글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에 보면 남악회양선사(南嶽懷讓禪師)가 어느 날 마조선사(馬祖禪師)가 열심히 좌선을(坐禪)
을 하는 것을 보고, 하루는 벽돌을 가지고 와서 마조스님 앞에서 열심히 갈았다. 좌선하던 마조선사가 물었다.
스님!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회양선사가 말했다.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아니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그래!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얻을 수가 없다면 앉아서 참선(參禪)만 한다고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보게! 소에 수레를 채웠는데 만약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그대 생각에는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겠는가?(打車卽
是), 소를 때리는 것이 옳겠는가?(打牛卽是).
마조 선사는 그 말을 듣고 바로 확철 대오(廓徹 大悟)를 하였다.”
4. 멀리 산은 조계산(장군봉)
나는 선암사 가는 길에서 이 경치를 가경으로 꼽는다.
노거수(굴참나무?)도 아름답고, 그 뒤로 우뚝 솟은 조계산이 가슴 설레게 한다.
5. 승선교(昇仙橋)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400호다.
안내문의 내용이다.
“계곡의 폭이 넓어 아치(虹霓) 또한 유달리 큰 편이다. 아랫부분에서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이 완전한 반원
형을 이루고 있는데, 물에 비쳐진 모습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의 원을 이룬다. (……) 이 다리는 숙종 39년(1713)
에 호암대사가 8년에 걸쳐 완공했다고 전한다.”
6. 승선교
계류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물에 비쳐진 모습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의 원을 이룬다고 하여 여기저기 그럴만한 곳을 찾았으나 수량이 적어
그런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7. 선암사 일주문 현판
선암사 일주문은 2022.12.28.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200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시대 아도화상(생몰연대 불상)이 창건했다
는 설이 있다. 조계문으로도 불리는 일주문에 대한 기록은 1540년 중창되었다고 한다. 일주문 앞쪽에는 ‘조계산
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이, 뒤쪽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涼山海川寺)’라고 전서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선암사는 천년이 넘는 고찰답게 고색창연하다.
선암사 다른 건물에서도 그렇지만 나는 일주문 건물보다 현판 글씨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글씨를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어 퍽 아쉽다.
8. 범종루 ‘太古叢林曹溪山仙巖寺’ 현판
서예가 목인 김종주(木人 金鐘柱, 75)의 글씨다.
9. 만세루 ‘六朝古寺’ 현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에 나오는 내용이다.
“달마대사가 살았던 육조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절이라는 뜻인데,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92)의
부친으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익겸(金益兼)의 글씨로 전한다. 그의 글씨를 따로 본 것이 없어 서가
(書家)로서 김익겸을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글씨만은 굳셈과 멋을 한껏 발휘한 명작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육(六)
자를 쓰면서 가로 획을 치켜 올린 것에서 자칫 딱딱해 보일 글씨에 숨통을 열어주었다는 느낌이다.”
만세루 건물 뒤쪽에 걸린 주련이다.
전에는 대웅전에 걸렸는데, 만세루 뒤쪽으로 옮겨 걸었다.
巍巍堂堂萬法王 높고 높아 당당한 만법의 왕
三十二相百千光 삼십이상에서 백천가지 빛을 발하네
莫謂慈容難得見 자비로운 얼굴 뵙기 어렵다 말라
不離祇園大道場 기원정사 큰 도량을 떠나지 않네
육당 최남선이 만세루에 걸어놓고 싶었다는 고려 때 문신이었던 노봉 김극기(老蜂 金克己, 생몰연대 미상)의
고시 「선암사(仙巖寺)」이다.
寂寂洞中寺 적적한 산골짜기 절
蕭蕭林下僧 쓸쓸한 절 아래 머문 스님
情塵渾擺落 마음속 티끌 온통 씻었고
智水正澄凝 지혜의 물 정히 맑게 고였네.
殷禮八千聖 8천 성인에게 큰 절 올리니
淡交三要朋 담담한 사귐은 삼요의 벗일세
我來消熱惱 내 와서 들끓는 번뇌 식히니
如對玉壺氷 옥병 속 얼음 대한 듯하네
10. 无量壽閣 현판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낙관 ‘老阮’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사용한 여러 호(號) 중의 하나이다.
무량수(无量壽)는 ‘아미타불이나 그 땅의 백성의 수명이 한량이 없는 일’을 뜻한다.
무량수각은 곧 아미타불을 봉안하는 전각이며, 극락보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11. 大雄殿 현판
대필로 힘차다.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글씨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순조의 장인이다.
12.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조계산
13. 광나무
열매와 잎이 쥐똥나무의 그것과 흡사하여 이렇게 큰 쥐똥나무도 있는가 놀랐는데 자세히 둘러보니
‘광나무’라는 명찰이 달려 있다.
광나무는 쥐똥나무와 같은 물푸레나무과이고, 그 유사종으로 왕쥐똥나무가 있다.
14. 선암매
정식 이름은 ‘순천 선암사 선암매’로 천연기념물 제488호이다.
이 선암매를 보려고 선암사를 찾기도 한다.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돌담길에 50주 정도 있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 홍매화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최고 약 600년이라고 한다.
17. 낙안읍성 뒷산인 백이산(伯夷山, 582m)
낙안산성 일대의 지형을 바다의 형국으로 보고 이 산봉우리에 배를 맨 자국이 있어 배이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향토문화전자대전)
18. 낙안읍성 성곽 길(성곽 길이 1,410m, 높이 4 ~ 5m)
역사와 민속 그리고 생태가 어우러진 순천 낙안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선정대한
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다.(홈페이지 소개)
19. 낙안읍성
낙안읍성 홈페이지 맨 처음에 나오는 낙안읍성지원사업소장 정윤택의 인사말이다.
“600여 년의 역사와 전통 민속문화, 낙안팔경이 조화를 이루며 넓은 평야와 풍요가 넘치는 樂土民安의 땅
낙안읍성입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 오롯이 이어져 오면서 옛 정취를 여유롭게 느껴볼 수
있는 문화체험의 장입니다.
원형이 잘 보존된 성곽, 관아 건물과 소담스러운 초가, 고즈넉한 돌담길에 이르기까지 옛 추억을 되살려 힐링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는 낙안읍성은 최근, 2011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와 함께 2011 CNN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선, 2015 한국 관광 100선 선정, 2019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는 등 낙안읍성은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사적지로서의 중요지정문화재인 성곽, 민속가옥, 객사, 충민공 임경업 군수 비각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312동의 초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읍성에는 98여 세대 228여 명의 주민이 직접 거주하는 살아있는
민속촌입니다.
또한, 소리의 고장인 낙안읍성은 동편제의 거장 국창 송만갑 선생과 가야금병창 중시조 오태석 명인의 생가가
있고 …”
26. 텔레비전 드라마 ‘나의 나라’ 스틸 사진
27. 낙안읍성 사계 중 가을, 사진을 사진 찍었다.
28. 점심 밥상
무릇 여행은 돈 쓰는 맛이라고 한다.
아마 여행 중 먹게 되는 그 지방의 맛있는 음식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낙안읍성 안에도 음식거리가 있지만 읍성 바깥에 가까운 음식점을 골랐다.
흔히 관광지의 음식점은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뜨내기손님이라 대접이 시원찮다는 얘기를 듣는다.
음식은 맛없고 가격은 비싸고 하여 바가지를 썼다는 개운하지 않는 뒷맛을 남기기 일쑤다.
그런데 여기 음식점(아마 다른 음식점도 그럴 것이다)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미향정식(2인분)과 꼬막
비빔밥(1인분)을 주문했는데, 반건조 서대구이도 맛있고, 낙지호롱이도 맛있고, 꼬막무침도 맛있다. 여러 반찬이
다 입이 착착 달라붙는다.
이러니 반주가 없을 수 없다. 낙안읍성 민속주는 탁주인데도 각별한 맛이다. 맛있는 술이란 이런 맛이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용량 750ml, 에탄올함량 12%. 가격은 음식점 15,000원, 일반 가게에서는 12,000원이다. 이 탁주
맛을 보고 나니 다른 탁주는 싱겁기 짝이 없어 (당장은) 못 마시겠다. 이런 고급 탁주는 노란 양재기 잔에 마시는
것이 실례라 고급스런 자기 잔에 따라 마신다.
술병에 쓰인 문구다.
“1597년 8월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에 도착했을 때
백성들은 장군의 입성을 환영하며
술독을 가지고 와 장군께 올렸다.
난중일기 中”
술병에 쓰인 문구대로 그러했는지 ‘난중일기’에서 찾아보았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맞다.
이때 ‘난중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97년 8월 9일 (정묘) 맑다. [양력 9월 19일]
일찍 떠나 낙안군에 이르니, 오리까지나 사람들이 많이 나와 환영하였다. 백성들이 달아나고 흩어진 까닭을 물으
니, 모두 하는 말이, "병마사가 적이 쳐들어온다고 퍼뜨리며 창고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그 때문에 이와 같이
백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관청에 들어가니 적막하여 사람의 소리가 없었다. 순천부사 우치적(禹致績)․
김제군수 고봉상(高鳳翔) 등이 와서, 산골에서 내려와서, 병마사의 처사가 뒤죽박죽이었다고 말하면서 하는 짓을
짐작했다고 하니, 패망한 것을 알만하다. 관청과 창고가 모두 다 타버리고 관리와 마을 사람들이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하고서 말하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십리쯤 오니, 길가에 동네 어른들이 늘어서서 술병을
다투어 바치는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억지로 권했다.(…)
낙안읍성을 나와 점심 먹고 세방낙조를 보려고 진도를 향한다. 거리 165km.
오늘 일몰시간은 17시 38분이다.
미세먼지가 워낙 심하여 그 시간보다 더 일찍 해가 질 것이다.
가까스로 일몰 직전에 당도했다. 조금만 더 일렀으면 훨씬 더 좋을 뻔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보려고 전망대에 몰려 있다.
29. 세방낙조
32. 애기동백
동백은 꽃망울 맺혔고, 애기동백은 벌써 끝물이다.
35. 멀리 가운데는 진도 최고봉인 첨찰산(485m)
부드러운 산릉이 포근하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첫댓글 세방 낙조 일품입니다. 저는 가을이면 금노에서 보전 뒷개 선착장(전남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 1150-5)에 가서 봅니다. 선배님 다음에 진도 오시면 꼭 연락 바랍니다. 식사 대접하고 싶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후배님 말씀대로 다음에는 뒷개 선착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진도에 가면 후배님에게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6이세진 꼭 진도 오시는 날 미리 알려주세요. 서울에 있을 때, 2번 정도 뵙는데. 고행에서 뵈면 식사 한번 차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첨찰산 여귀산 동석산 산행 잘 아실겁니다. . 진도에는 3개 명산이 있습니다. 첨찰산. 여귀산. 지력산. 꼭 지력산 정말 멋진 산이니 한번 느껴보세요. 세방낙조 뒷산이 그 줄기입니다. 밑엔 소전 선생님이 모란장 수여하니, 재경향우회 일동이. 평보 서희환씨에게 진도 3개 명산의 정기때문이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11월에 저도 세방낙조
찍어 왔어요
해가 다 떨어져도 돌아가기가 아쉽
더군요 멋진곳이에요
이때는 날이 무척 맑았군요.
보기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