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정부는 의료 개혁을 앞세워서 의대정원 매년 2천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발표가 나기 무섭게 전공의들이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의료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의료공백은 현실화됐고 정부와 의사들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됐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실로 보기 힘든 그런 치킨게임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사협회의 새로운 회장단이 구성되고 급기야 의사들이 대정부 퇴진이라는 의사들에게서는 감히 볼 수 없었던 양상까지 보였습니다. 보수정권의 든든한 지원군들이었던 의사들이 현 정부에게서 등을 돌린 것입니다. 정부는 잠시 일부 양보라는 카드를 제시했지만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사들의 요구에 막혀버렸습니다. 정부도 총선을 앞두고 자칫 여당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해 현안 고수를 천명하게 됩니다.
총선은 끝났지만 의정 갈등은 그야말로 한발자국도 진전이 없습니다. 의료계가 의대교수들의 사퇴에 이어 주 1회 휴진과 사직 강행을 예고하면서 갈등 국면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이른바 서울의 초대형병원인 빅5 병원 교수들은 주 1회 외래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병원은 사실상 휴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환자와 의사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상태인데 어떻게 주 1회 휴진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극한 상황속에서도 휴진이 불가능한 병원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의사들이 그야말로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것입니다.
정부와 의사 양측은 각각 조금이라도 양보하거나 후퇴를 하는 것은 완전 패배를 의미한다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정부는 만일 여기서 의사들의 요구를 받아드려 의대정원 증원계획을 대폭 줄이거나 백지화할 경우 정부의 완패이자 정부의 해당 책임자를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의사들의 경우도 정부의 안을 받아드리거나 소폭 증원 축소안에 응할 경우 그동안 3개월 가까이 행했던 저항이 수포로 돌아갈 뿐 아니라 앞으로도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회담을 통해 출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야당대표는 의사들의 대변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국의 의사계와 민주당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시각의 소유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당 대표입장에서도 그야말로 원론적인 소리 즉 의사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드리는 선에서 의사들과의 갈등을 봉합하면 좋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야당 대표와 의사대표들이 만나 논의한 것도 아니니 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야당 대표 입장에서도 괜히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의정갈등의 책임이 야당대표로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래 저래 의정갈등은 해법도 묘안도 전무한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의대 증원이 확정된 32개 대학이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1천6백명 선에서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확정한 의대 정원 증원안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내는 이번 주가 의정갈등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의대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타협과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들의 증원 확대안만이 제출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방법은 정부나 의사들이 조금씩 물러나는 것밖에 없는데 양측 모두 앞에서 언급한데로 후퇴하는 자가 완패한다는 그 요상한 셈법을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세상에 완승 완패가 있습니까. 서로의 자존심 내지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그 이기적 계산법만이 의정갈등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데 무슨 해법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의 현실과 의사들의 성향 그리고 한국 의료계가 가진 여러 문제들에대해 종합적이고 다양하게 접근한 것이 아니고 그냥 의사들의 인원만 늘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에서 문제의 출발이 존재한다고 판단됩니다. 정부와 의사들이 서로 으르릉거리는 상황에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정부와 의사들은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웁니다. 환자와 환자가족들의 입장과 상황은 이제 그 어디에도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지금 한국 의료계의 모습입니다.
2024년 4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