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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수의 결말은 상당히 쓰기 싫게 끝이 났다.
여전히 분량 고려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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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 써야했지만, 지금 쓰는 게 더 자연스러워서 지금 말하자면,
반수는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
10학년도 원서시작 전에, 마음에 생각하고 있던 반수 얘기를 끄내자
처음에는
아버지는 반수의 필요성을 못 느끼셨고, (전과 추천)
어머니는 대놓고 반대를 하셨다.
원서 쓰기 전 유명하다는 점집??까지 가서, 내 10학년도 원서가 어떻게 풀릴지 물으면서 (다 떨구지는 않는다고 했댄다.)
내 사주가 2010년( 2011학년도 수능실시 ) 에 안 풀린다며
내가 1년 더 수능공부하면 서울대는 갈 것 같냐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ㄲㄲㄲㄲㄲ' 웃으면서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고 하면서 완강히 반대하셨다.
자식이 1년 더 개고생 하지 않은걸 바란 거겠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는 그냥 아닥하고 1년추가였다.
사주 자체 해석을 하면서, 점집에 갖다버릴 돈이 있으면 그냥 나한테 달라고 했다. (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 )
내 자체해석
[10학년도 원서 다 떨구지는 않을 것] => 원서 3패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 뿐더러, 점집까지 왔다는 건 이미 하향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 (쫄대로 쫀 상태)
[2010년에 안 풀린다]+[서울대 못감]
=> 원래 수능 때 잘 풀리는 인간 소수다. (자기가 100% 만족할 결과를 얻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이과 수험생 A가 서울대 이상(의학계열 포함) 갈 확률 <<넘사벽<< 그 미만으로 갈 확률
게다가 2011학년도 수능 자체가 이미 응시인원폭증(71만)에다가, 연세 수시 80%등 수시 대폭확대 + 정부의 수능 '듄아일체'론 까지 나온 상태라서 그냥 누가봐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이 논리로 밀어붙이고
여기에다가 고3담임의 '1년 더 해보는 게 낫겠습니다.' 지원 사격까지 받아서
반수테크를 무사히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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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군 최초합하고 나서, 마음 제대로 잡고 반수 공부를 시작했다.
일단은 고3때 방치하고 그 때문에 수능 때 테러당한 외국어부터 시작했다.
방학 내내 외국어 7+수리랑물리3 의 비율로 공부했다.
(물리는 물2로, 수능볼 것은 아니었으나, 원활한 1학기 대학공부를 위해서 했다.)
그리고 개강 후 5월까지는 별일이 없었다.
오티엠티새터 이딴 거 죄다 불참했고, 개강파티 하나만 갔다.
개파에서 몇몇 말 통하는 형/동기가 생겼고 이후 같이 수업듣다 보니까, 자그마한 인맥 라인이 생겼다.
인맥은 10학번 내에서만 쌓았고 (09이상은 '전혀' 모른다. 게다가 반수니까 소모임/동아리 이런 것도 죄다 안했다.)
쌓은 인맥들은 [노는 인맥]은 아니었다.
그냥 학교수업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대학과제+인강+자습을 꾸준히 공부하며 최대한 규칙적으로 살았다.
문과 1학년보다 공대 1학년 과제가 얼마나 빡칠만큼 많은건지 깨달았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가고, 4월 중간고사가 지나간 뒤에 (중간 때가 좋았다. 아침 8시~9시 시험보면 그날 학교 끝이니까)
4월에 무시험으로 붙은 5월 대성 야간반(=반수반)을 들어갔다. ( 대성 재종 선착순 기준도 넘긴 성적이었으니까, 야간반은 가볍게 들어갔다.)
덕분 5월~6월 대학 기말까지, 반수 생활 헬게이트가 열렸다.
이 때부터 대학 생활이 괴로워졌는데 크게 세 가지 이유였다.
1. 학원-학교 같이 다니면서 피로증가 + 피로누적 (고3 수능 이후에 제대로 못 쉬었다. 반수 시작이 빠르기도 했고)
2. 남들은 대학 멀쩡히 다니면서 노는데, 나는 뭐하는가 싶은 생각 (3월에도 문제였지만 축제인 5월에 더더욱 심했다.)
3. 2학기 때 이렇게 시간이 없어서야, 수능 제대로 볼 수나 있으려나 싶은 의문
(한양대가 1학년 2학기 휴학되게 바뀐 걸 안 사실은 여름방학 때였다.)
여하튼 반수헬게이트 기간 (5월초~6월초)를 보내면서, 6평도 같이 보게 되었는데
(6평날 목요일에 수업3개가 있었는데, 2개가 휴강이 나고 1개는 그냥 토꼈다. 아마 이 때 주위 사람들도 내가 반수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6평 본 다음주에 기말고사 월화수 보고 나서 1학기가 끝나가지고, 다소 어색할 수도 있었던 상황은 금방 끝났다. 그렇지만 기말 자체는 X망했다. 물리 같은 경우 그냥 문제 거의 못 풀고 각종 공식만 써내고 나왔다.근데 B+ ㄲㄲㄲㄲ)
6평 시험은... 언외탐은 잘 기억 안나지만, 1학기 때 대학으로 시간이 분산된거 생각하면 그냥저냥 나왔는데
(물1은 안 봤던걸로 기억. 30분 내에 못 풀 듯 싶었다.)
문제는, 생전 처음으로 수리 등급에 '2'가 찍혀있었다.
5월에 학원+학교 같이 다니면서 시간이 촉박해지니까, 수리 공부시간을 대폭 줄인 게 문제였다.
그나마 6평 떄 고난도로 평가되는 문제는 맞췄는데, 주관식 1번부터 시작해서 (18번 틀린것도 난생처음이었다.)
정줄 놓은 연산이 난무했다. 나중에 내가봐도 어이없어서 웃었다.(15에다가 4를 더해야 하는데, 4를 곱하는 식)
그래도 일단 1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기말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아침 자습 + 야간반 수업에 전부 참석했다.
이 때가 제일 좋았다.
고3~삼반까지 3년 중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무조건 6월 기말 이후 ~ 9월까지다.
대학과는 달리 주위에 나랑 '목적이 동일 ~ 유사한' 사람들이 모인 상태였고,
같은 야간반에 한대반수팸, 고등학교 때 얼굴 정도 알던 몇몇을 알게되어 그들과 같이 공부했다.
주위로 집중력이나 시간이 분산될 이유가 없으니까, 수능에 집중했고 이 때 모의평가 결과도 정직하게 나왔다.
50만큼의 공부량을 집어넣으면, 50의 결과가 나오고 / 100만큼 넣으면 100의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확고했던 상태라, 정말 딴 눈 안팔고 집중했다.
월~목 => 아침자습+수업 다 참석 (새벽 6시 30분에 집에서 나가면 집에 밤 11시쯤 돌아왔다.)
금 => 수업만 참석 (3시쯤 나가서 11시에 돌아왔다.)
토=> 자습 참석 (아침6시 ~ 대성 재종에 있던 고딩친구랑 저녁 먹고 돌아왔다.)
일 => 휴무
6월~9월까지 내내 저랬다. 중간에 휴가로 한 2~3일 쉰 거 이외에는 그냥 쭈욱 저 생활을 유지했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모평 결과도 잘 나왔다.
6월대성부터 빌보드에 들었고 이후 9월 대성까지, 8월 월례를 제외하고는 전부 빌보드에 들었다.
모평후기 딴 건 쓸 가치가 없고, (사설 후기 써봐서 뭐하냐...도 문제지만 사설은 기억에 없음)
9평만 추리면
일단 9평날에.. 태풍이 와서 피해가 커가지고 몇몇곳에서는 9평이 다음날로 연기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대성에서도 9평이 정상시간보다 1시간 후에 실시되었다. (마강에서는 완전히 정전되가지고, 아예 점심먹고 시험시작ㅋㅋ
각설하고
언어는 ebs 반영 끝내주게 되었다. 문학은 당연했고, 심지어 비문학에서도 복붙 수준의 문제가 나왔다. 문제는 어려운게 몇몇개 있었는데, ebs 반영덕택에 체감난이도가 확 낮아져서 1컷이 94인가.. 하여튼 개판이었다.
수리 = 평가원장 10새리의 낚시를 이 때 눈치챘어야 했다. 6평 이후에 분명히 '어렵지 않게' 낸다고 했는데 개뿔. 시간 개빡빡했고 결국 30번 문제는 풀지도 못하고 냈다.
외궈 = 9평 당시에는 난도 극악이라고 꼽혔다.(11수능 이전)
빈칸이 워낙 뜬구름 잡는 소리거나, 얼핏보면 똑같은 보기 2개를 박아놔서 빈칸의 정답률이 비참했다. (게다가 3점짜리)
탐구
물1,화1 => 별 기억없음
생1 => 신유형이 좀 나왔는데 재밌었다.
화2 => 마지막 페이지 빼고 좀 과하게 쉬웠다.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에 10분 가까이 투자해서 풀었던 걸로 기억함
6월부터 이뤄진 상승세의 절정이 9월이었다.
성적표는 11학년도 수능 이후 싸그리 강제폐기 되어서,
지금은 메가의 등급컷이 '얼마나 정확했나' 싶어서 찍어둔 거 밖에 없다.
(실제 물1의 백분위가 93%였고 화1이 99%인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는 정확한 듯?)
성적이 잘 나와서 좋았다기 보다는, 노력대비에 정직하게 나와서 좋았다.
9평 이후에 본 9월 대성에서도 9평보다는 등수는 다소 하락했지만 꾸준히 빌보드에 들었다.
ㅡㅡㅡㅡㅡ 여기서부터 암울타. 설날부터 감기걸린 상황에서 적은 글이라 그 암울함이 더할것 ㅡㅡㅡㅡㅡㅡ
정말 슬펐던 건, 위에서 '절정'이 9월이었다는 거다.
고3 때. 성적이 반수 때에 비해서는 '절대적'으로는 낮았지만
7~9월 시절이 높았고, 10월부터 급하락세였다가 수능때 그냥 푹 하락한 경험이 있던터라
고3때의 성적 분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9평이후에도 여름방학 떄 지속하던 공부 패턴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바뀐게 있다면 시기가 시기인지라 언수외탐 모두 문제풀이를 섞고, 10월말부터는 문풀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언어/과탐은 기출과 ebs를 병행했고
외국어는 ebs에 치중했다. 말 그대로 ebs 반영 영어 책당 10회독은 했으니 '듄아일체' 자체였다.
문제는 수리였다.
고3때 수능 말아먹게 만든 신의 한수 = 9평이후 과탐에 몰빵하고, 언외를 놓아버린 것
그나마 고3때는 9평때 과탐이 2243 지옥을 헤메고 있던 터라 변명거리라도 되었다.
그런데 반수 9평이후에, 평생 잊지못할 패착을 하나 저질렀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쌍욕밖에 안 나온다.
이름도 기억 안난다. 평가원장 이 썅X이 9월 가형이 1컷 78로 어렵게 나오자, 공식 기자회견인가 인터뷰인가를 해서
'수능 때 수리가형은 쉽게 나올 것입니다. '
이렇게 '공식적으로' 말했다. 신문에도 관련 기사가 실렸다.
고3 때(2010학년도) 6,9평 때 수리가형이 헬로 나오니까 (1컷이 71 / 74점)
'수능 때는 쉽게 낼 것입니다.' --> 실제로 6,9평보다 월등히 등급컷이 높아졌다. (88/89점)
전년도 사례를 생각하고 수리 공부패턴을 바꿨다.
고난도 푸는 시간을 줄이고, 각종 모의고사에 치중했다. 실전에 치중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나마 ebs 파이널이나 포카칩 모의 같은 좀 머리좀 요하는 모의고사는 10월 중반까지해서 다 끝냈다.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는 말 그대로, '시간 관리용' 모의고사 정도 밖에 풀지 않았다.
(각종 사설모의도 이때는 그냥 거저주기 문제로 바뀐다.)
정말 순진하다 못해 멍청했고, 약 3주간의 수리공백에 대한 대가가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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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평이후로 돌아오면,
9평부터 수능까지 별 일이 없다. 반수 때는 오히려 고3때보다 기억이 더 단순한게...
학원 자습 나간 이후에는 하루가 진짜 단순했다. 주간 패턴이 일정하고 딱히 놀러나간 일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10월 초에 연의 수시를 보러 갔다. (놀러 갔다고 하는게 정확할 것이다.)
그 날에 비오고 날씨가 좀 찼는데, 시험장 입장 가능 시간을 잘못 알아서 밖에서 1시간 정도 헤맸다.
(놀러 갔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 논술 시험본다는 게 어떤건지 알아보러 간거니까.)
그리고 수시 보고 오고나서 아팠다. (1시간동안 캠퍼스 본다고 바람맞으면서 싸돌아다닌게 컸다)
10월 내내 미약한 감기나마 계속 있었고 ( 푹 쉬어야 했지만, 고3때의 경험때문에 그냥 몰아부쳤다.)
몸 상태가 좀 낫다 싶더니만, 수능 전주 금요일에 또 코와 목이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갔었다.
<학원 자습은 수능이 있는 주의 화요일까지, 그러니까 수능 전전날까지 계속 나갔다.>
수능 전주에 앓았지만 완치된 상태로 셤장에 갔던 고3때와는 달리,
수능 때 목이 약간 아픈 상태로 갔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들이부은 시간과 노력을 믿고,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 수능이라 믿었다.
시험장은 고3때와는 달리 좀 먼 영동일고였다. (삼반 때도 이 곳으로 갔다.)
아빠 차를 타고 영동일고를 둘러싼,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내려서 걸어갔다.
수능 시험장에는 고1,2들이 수능 때 먹을것을 나눠줬다.
어떤 여자애가 나눠준 귤+초콜렛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말하며 두번째 수능셤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8시 20분인가 감독관이 들어왔고, 내 두번째 수능이 시작됬다.
언어 - 어려워질 건 알았다. 6,9평이 1컷이 95에 육박하고 표점이 개판이었으니...
게다가 08언어헬/09수리헬/10외궈헬(상대적으로) 이니까 11때는 언어헬이라고 예상해서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근데 씨1바... 언수외 종합 셋트로 헬이었다.)
하지만... 언어가 해도 너무했다. 난 언어를 쓰기->비문->문학 순서로 푸는데
(비문도 언어/예술소재는 맨 처음에 안풀고, 문학은 소설부터 푼다)
보통 언어가 8시 40분 시작에 10시 끝이면, 비문 다 풀면 9시 20~30분 사이어야 했다.
11 언어가 헬인이유가 비문이 개헬이었다. 9시 40분이 되었는데도, 비문 1지문 통째로 남기고
문학은 손도 못댄 상태였다. 머릿속에서 아 ㅆㅂ... 조트망. 이딴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문학부분을 날려풀었다. 감대로 풀고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다시 비문학 '소프트'를 찍다시피하고 간신히 시간맞춰냈다.
수리 - 5번문제부터 조짐이 좋지못했다. 좀 꼬아놨다.
그래도 5번은 가볍게 풀면서,
[3점에서 꼬았으니까 4점은 쉽겠지. 평가원에서 쉽게 낸다고 했으니까ㅋ]
1시간 후에.. 일단 30번까지 문제 1회독을 다 하고 나서, 내가 얼마나 순진한 개빠가였는지 깨달았고
30분 후에, 시험시간 5분 남았는데 아직 다 못푼 문제도 5개 남아있는 상태를 맞이했다.
객관식 ㄱㄴㄷ에서 ㄷ이 헷갈렸던 문제 (하나는 지로함문제 였고, 하나가... 8번인가 그랬다.)
는 ㄷ이 전부 맞다고 찍었다. ( 근데 ㄷ이 두문제 다 틀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 중 1개만 맞았어도)
주관식 3문제는 그냥 감오는 대로 컴싸를 휘둘렀다. (23?? ,24,25번. 당연히 1문제도 못 건졌다.)
문제 25번은 선지가 길어서 읽지도 못했다. (나중에 다시 보니까 존나 쉬운수열이었다...)
살면서 제일 맛없는 점심을 먹고나서,
(고3 떄 같은 반인 애를 우연히 만났다. 가형 ㅅㅂㄹㅁ 얘기를 나눈뒤 나머지 과목 잘 보라면서 헤어졌다.)
외국어 - 진짜 정직하게 70%를 ebs에서 냈다. 듣기 풀면서 독해 푸는걸 11수능 때 처음해봤다.
듣기가 ebs 복붙이라서 다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원래 문법/빈칸을 제일 나중에 푸는데, 그래서 뒤에 장문까지 쭉쭉 풀었다.
문법/빈칸있는 2~3페이지로 돌아오니까 30분이 조금 안 남더라.
그리고 [3점]이 2문제나 있었던 빈칸 문제를 보았다.
...... 뭔 말이지...단어는 아는 거 같은데?...
차라리 시간이 빡빡했으면 싶었다. 못 푸는 문제를 바라보면서 30분동안 있는 건 극히 괴로웠다.
그래서일까 별 기억이 다 떠올랐고, 내가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몇몇 대성학원 선생들의 말이 떠올랐다.
'EBS에서 나오는 문제는 다 맞출꺼고, 니들이 해야하는 건 고난도 독해이다. 수능때는 고난도 3점독해가 나올것이고 여기서 판가름난다.'
대성학원 강하영T의 말이 떠올랐고, 동시에
'9평보니까, 평가원에서 가형 난이도를 제대로 조절 못하는 거 같다. 1컷 80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맞춰 수리 공부해라'
대성학원 이수정T의 말이 떠올랐다.
언어에서 멘붕이 시작되었고, 수리가 멘탈에 쐐기를 박았으면,
외국어에서 멘붕 후 멘탈복구가 되지 않도록 뒷정리까지 깔끔히 되었다.
외국어 종료 후, 화장실에 가는데 교복입은 고3무리들이
'야 외국어 전나 EBS 반영쩔었다. 졸라 쉽지 않았냐. 1개 틀리면 2등급 될듯' ===> 이러고 단체로 떠들고 있었다.
1년전 내 모습이 데자뷰되었다. '내가 다 풀 정도니까, 외국어 쉽지 않았겠냐??'
속으로 실컷 쳐 웃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으나 입가에 미소정도는 띄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놈들 죄다 재ㅋ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년전 내 모습이 얼마나 웃긴건지 이 때서야 깨달았다.
과학탐구를 보기 전에 이미 마음을 비웠다. (그래서 멘붕 상태에서도 과탐이 그나마 '겉보기에' 괜찮게 나온 듯 싶다.)
물1 - 11번인가 보기ㄴ에 존나 어려웠는데, ㄱㄴㄷ 선지가지고도 풀린 문제가 있었다. 시간은 20번 풀 때 약간 후달린듯 싶다.
화1 - 쉬웠다. 3페이지까지는... 4페이지가 개념이 어렵다기 보다는, 상당히 조건 따지기가 뷁스러웠다.
생1 - 기억전무
화2 - 10수능보다는 낫게 푼 걸로 기억. 생1부터 이미 기력이 쇠진했는지는 몰라도 기억이 없다.
화학2 마무리가 되면서 시험이 끝이 났다.
시험장이 멀어서, 게다가 주변 지리에 어두워서 (영동일고 바로 앞이 2호선 신천역인걸 삼반 수능볼 때야 알았다.)
잠실역까지 30분 이상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진짜 허무했다. 이렇게 끝내려고 1년간 이 짓거리했던 게 아니었는데
집에와서 채점을 했다.
언어 - 원점수가 10때보다 1점 낮았지만, x나게 어려웠으니까 1등급은 나오리라 믿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수리 - 채점하기 싫었다. 이미 다 끝난 건 알았지만 미리 확인하기 싫어서 가장 나중에 채점하려고 했으나
빌어먹을 메가가 수리 채점안하면 외국어 채점이 안 되었다.
그래서 못푼 5문제에다가 3점 짜리 하나 더 틀려서(28번) 기어이 78점을 확인했다.
외궈 - 3점짜리 전멸하고 문법 하나 나가고, 빈칸 2점에서도 나갔다.
과탐 - 화1 47점 뺴고 원점수 기억은 안난다. 하여튼 물리(95%) 뺴고는 전부 1등급이었다.
ㅡㅡㅡㅡㅡ여기까지 내 반수史 끝ㅡㅡㅡㅡㅡ
수능 (11월 18일) 끝나고 나서 시작된 멘붕은
성적표 수령 ~ 원서기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동안 겪었던 멘붕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때 생긴 멘탈이탈은 그 다음해 5월까지 복구되지 못했다.
지금도 예전 멘탈이 복구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아예 멘탈이 새로 생긴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훌천에서 11수능 이후의 내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듯 해서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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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화생공. 1차는 발표 / 2차 아직 미발표
근데 최초 노리고 쓴 거 아니니까, 솔직히 최초합 발표도 의미는 그닥없닼ㅋㅋ
삼퀴한테 뭔소리ㄲㄲ
닥치고 현역이 甲이긔
게다가 너님이 연대다니면, 짝짜꿍하면서 같이 다닐 확률이 상당하다.ㅋㅋㅠㅠ
영동일고면 송파쪽사나 보네.. ㅎㅋ 반갑다 나도 삼수함 ㅋ
ㅇㅇ 맞음.
고딩학교 ㅇㄷ나옴??
쪽지보냈다 ㅋ
개쩌는 TRG ㄷㄷㄷ
원치 붙을꺼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