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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7: 16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 요 17: 19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요 17: 16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
14절에 언급된 말씀이 어순만 바뀌어서 반복되고 있다. 즉 두 절에서 '우크 에 이신'(*)와 '여 투 코스무'(*)의 순서가 뒤바뀌어졌다(개역 성경은 변화가 없음).
14절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이유로 서술되었지만 본 절은 악으로부터 보전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일터이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 짓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는 것, 즉 거룩함과 온전함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고 우리는 우리가 받은 거룩과 의를 잘 유지하며 죄를 짓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4. 진리로 거룩하게 ( 17: 17 – 19 )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 17 아버지의 말씀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1]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거룩하게 하다'는 것은 성별'(consecration)에 대한 것으로 세상과 분리(分離)된 삶을 의미한다. '거룩하게 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하기아조'(*)는 '깨끗하게 하다'를 뜻을 가진 '카다리조'(*)와 다른 측면에서 사용된다. (Reynolds, Bernard)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aJgiavzw 하기아조) "거룩하게 하다, 깨끗하게 하다, 성별하다"의 뜻으로 이 용어는 단순히 "깨끗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진리 안에서 온전히 보존되어 살도록 해달라는 부탁이다.
"거룩"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만 있는 성스러움을 말할 때 사용된다.
* 창 2: 3 -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출 3: 5 -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셨다.
* 출 19: 6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거룩한 것'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 레 2: 3, 10 – 3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0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 레 6: 17 -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물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제자들은 이미 예수의 말씀에 의하여 깨끗함(purification)을 받았다(15: 3). 물론 그들이 깨끗함을 받은 것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세상에 속해 있으나 세상과 분리된 삶을 의미하는 '성별'과는 다르다.
이미 깨끗하게 된 제자들은 진리 안에서(*, 엔 테 알레데이아) 깨끗게 된 그 신분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는 지금 제자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성부께 간구하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예수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16절) 그 자신과 같은 거룩함이 은혜로 그들에게 주어지기를 원한다. 구약에서 '하기아조'는 선지자를 불러 세상과 구별하여 세울 때 사용되었다.
* 렘 1: 5 -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을 맡겼다.
* 출 28: 41 -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따라서 예수는 자신이 성부에 의해 거룩하게 되어 세상에 보냄을 받으심 같이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 파송하실 때에 하나님에 의해 성별되기를 간구하고 있다.
* 요 10: 36 -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진리'는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 요 8: 32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거룩하게 하는 실행자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시다(Bernard).
* 요 16: 13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가 지상 사역 동안에 선포하셨던 것이며 성령은 그 선포된 말씀을 근거로 활동하신다.
2]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본 절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계시만이 성별을 가능케 한다(L. Morris).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진리이며 생각하시는 것, 행하는 것, 모두가 동질(同質)의 진리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예수에 의하여 선포되어 현실 가운데서 '진리'로 나타나신다(Reynolds).
본 절에서 '진리'는 헬라어 본문에서 관사 없이 사용되었다. 이는 앞의 '진리'와 구별시키기 위함이다. 즉 상반절의 '진리'와 구별시키기 위함이다. 상반절의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여기서는 그 말씀이 '참되심'을 의미한다.
(1)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함의 방편이다.
* 시 119: 9, 11 – 9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엡 5: 26-27 –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 딤후 3: 16-17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2)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제자들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인격과 말씀을 거룩하게 하셨고 제자들은 그의 말씀을 통하여 거룩함을 얻는다. 그것이 구원이다.
성경은 성도들의 구원과 거룩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이다.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배우고 묵상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 점점 더 거룩해지고 온전하게 될 것이다.
요 17: 18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
단순히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명을 부여해서 보내는 사명의 대 위임(the Great Commission)이다(마 28: 18-20).
이것은 11제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요 17: 20).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사명이다.
1]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제자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한다. 강조법으로 사용된 '나를'(*, 에메)과 '나도'(*, 카고)가 '보내심'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즉 예수가 성부로부터 사명을 부여받아 세상에 오심같이 자신도 역시 제자들에게 서명을 주어 세상에 보내신다.
그렇기에 예수가 성부에게서 받은 사명을 제자들도 수행하게 된다. 그렇지만 제자들 스스로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근거로 활동하시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을 때에야 제자들은 그 사명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
특히 혹자는 본 구절 가운데서 '보내신 것같이'가 방법에 있어서 유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유사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 절에서 두번 반복된 '보내다'의 헬라어 '아포스텔로'(*)는 '펨포'(*)와는 달리 어떤 사명을 부여해서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내신 것같이'는 사명을 주는 방법에서뿐 아니라 보내시는 자의 인격이 동일함을 가리킨다.
본 절에서 두 번 언급된 '보내다'는 헬라어 본문에서 둘 다 부정과거형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제자들이 사명을 부여받아 보냄을 받아 활동한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일이다.
그런데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미 이전에 사명을 주어 보내셨던 것처럼 말씀하시기 때문에 모순된 진술을 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는 공생애 초기에 제자들에게 사도적(使徒的) 임무를 부여하셨다.
* 마 10: 5 -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 막 3: 14 -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그렇지만 이 임무는 지속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는 20: 21에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다시 현재형을 사용하시어 '보내노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본 절은 과거에 제자들에게 부여하신 사도적 임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더 나아가서 제자들이 이후에 그 사명에 따른 삶을 살게 될 것을 암시한다.
구약의 한 예로 다윗은 왕으로서 인정되는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실제로 왕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한 것은 몇 년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 삼상 16: 13 -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 삼하 2: 7 -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2]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는 자신뿐 아니라 제자들이 사명을 부여받은 사역의 장소를 지칭하여 '세상'이라는 말을 언급하셨다. 요한에게 있어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대립(對立)된 영역을 뜻한다.
* 요 8: 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요 18: 3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어떤 때에는 사탄에 의해 대표되는 집합적인 인격체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 요 14: 27 -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처럼 요한은 '세상'을 주로 그리스도와 대립된 것으로 설명한다.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일 4: 4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 요일 5: 4-5, 19 –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세상'을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셨다(3: 16). 이런 점에서 예수는 이 사랑의 계명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자기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계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셨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이 서로 하나가 되고 또한 그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시고, 기도에서도 제자들과 그들의 말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해 간구하신다.
* 요 13: 34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 15: 12-13 –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와 같은 말씀들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대한 사랑을 강조한 것이다.
* 요 13: 1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자들이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사명도 함께 강조되고 있다. 이 사명에 따라 세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룩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초대되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향한 제자들의 파송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세상을 그리스도에게로 초대하는 동일한 사명을 갖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Reynolds, C.K. Barrett, 케세만).
요 17: 19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예수께서 죄가 있거나 아직 깨끗하지 못하시기 때문에 (aJgiavzw 하기아조) "거룩하게"를 사용하신 것은 아니다. 70인 역(LXX)에서 구약을 옮길 때 이 단어는 제사장을 성별하는 경우(출 28: 41)와 희생 제물에 대해서 성별 할 때 사용되었다. (출 28: 38. 민 18: 9).
이제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시고(히 3: 11) 또한 제물이 되심으로 거룩하게 하신 것이다.
* 사 53: 7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예수는 10: 36에서 자신이 성부에 의해 거룩하게 되심을 언급하셨으나 본 구절에서는 자기 스스로 거룩하게 하신다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그렇지만 여기에 어떤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
(1) 70인 역(LXX)에서 '거룩하게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아조'(*)는 다음 두 경우에 사용되었다.
① 제사 임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을 성별하는 경우에 사용하였다.
* 출 28: 41 -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 출 29: 1, 21 – 1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1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② 희생 제물에 대한 성별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 출 28: 38 -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 민 18: 9 -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아니한 것은 네 것이라. 그들이 내게 드리는 모든 헌물의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물은 다 지극히 거룩한즉 너와 네 아들들에게 돌리리니
본 절에서 예수의 거룩하게 하심은 두 개의 의미를 모두 가졌는데,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희생 제물이 되심과 동시에 그 예식을 집행하는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의 거룩하게 하심은 갈보리의 언덕을 바라보는 것이며 그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L. Morris).
혹자는 예수께서 '내가 내 자신을 아버지께 거룩하게 하여 드린다'라고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구약의 희생적 개념에 적용하는 것을 반대한다(Lenski). 그러나 그는 자의적인 죽음과 속죄적 죽음으로서의 거룩하게 하심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바렛(Barrett)은 '위하여'(*, 휘페르)라는 말에 강조점을 두어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또는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 등과 같은 성만찬적인 용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 막 14: 24 –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 막 1: 45 -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수의 거룩하게 하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과 같은 자의적인 대속적 죽음이다.
* 요 15: 13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혹자는 이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자아 성화'(自我聖化)의 비밀이라고 설명했 다(Luthi, L. Morris).
2]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의 죄를 씻는 일차적인 목적에 머물지 않고 '히나'(*)가 이끄는 또 하나의 목적을 제시한다. 그 목적은 제자들의 복음 사역을 위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거룩은 예수와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의 성결은 아버지의 은사에(17절)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자신의 사역을 계승하여 지상에서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거룩하게 되기를 간구하면서 그들을 위해 죽음을 맞는다.
* 살후 1: 12 -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본 구절에서 '진리'는 17절 상반절의 '진리'와는 달리 관사(冠詞)가 없다. 이를 전치사 '엔'(*)과 함께 부사적 용법으로 해석한다면 그 뜻은 '진실로'가 된다. 그러나 이 해석을 취할 경우 본 구절의 의미가 상반절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 '진리'는 17절 상반절의 '진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관사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과는 다른 방법, 즉 예수에 의해 선포된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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