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설음 만남과 이별
삶 속에서 익숙하면서 낯선 것은 만남과 이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이별하며, 앞으로도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만남과 이별의 경험을 통해 익숙하지만 첫 만남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또한 이별은 언젠가 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이별이 다가오면 섭섭하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만남을 통해 상대방을 소중히 했던 마음의 깊이와 일반적인 이별 후 괴로움의 깊이는 비례합니다. 바닥 모를 만큼의 깊은 만남이었다면 이별할 때에 답도 없이 아파하는 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오래된 익숙한 만남에 갑작스러운 낯선 이별은 말하지 못할 아픔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만남을 통해 상대방을 소중히 했던 마음의 깊이가 죽음이라는 이별을 접한 후에는 괴로움의 깊이가 비례하지 않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이별은 익숙한 사람들이 많지만, 죽음이라는 이별은 낯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익숙하면서 낯선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사람은 성장합니다. 만남과 이별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두려워하기보다 어려워해야 된다고 느꼈습니다.
과거에는 학교만 가면 지겹고도 반가운 얼굴들과 뭉쳐 항상 주변이 시끄럽고 따뜻했습니다. 굳이 학교가 아니더라도 동네만 돌아다니면 모여 있던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 아쉽게 집에 가곤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취해갔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생각 없이 웃고 떠들었던 잊지 못 할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익숙했던 일상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했던 일상들과 멀어지고, 익숙했던 친구들과 멀어지다보니 살다가 문득 외로워지는 날이 오면 그 익숙했던 순간들이 무덤덤하게 그리워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점점 더 기회가 적어질 익숙했던 친구들, 가족을 비롯한 고귀한 만남을 소중히 해야 됩니다. 이별하고 난 후 익숙했던 시간, 공간, 기억, 경험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한탄하지 않으며, 행복했던 추억들만 가슴속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멀리있는 친구만큼 세상을 넓어 보이게 하는 것은 없다. 그들은 위도와 경도가 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첫댓글 인간이 관계 맺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오래되었지만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른 많은 것들처럼 관계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시작할 때의 설렘과 끝맺을 때의 아쉬움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낯선 이와 관계맺으면서 낯선 감정이 드는 것, 그리고 익숙했던 존재와 끝맺으면서 다시 낯선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익숙한 존재이지만 그런 이들이 멀리 있을 때 오히려 나의 인식이 확장된다는 이야기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생각들의 중심에는 결국 '나'가 있습니다. 내가 있어서 그들과 관계 맺기를 시작했고, 끝을 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요? 이 점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