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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대적 복음의비밀 원문보기 글쓴이: jycc
How I Know The King James Bible is The Word of God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아는가
James L. Melton 지음 / 이우진 옮김
킹제임스성경을 주제로 한 좋은 글들이 이미 많이 있습니다. 이 글 또한 같은 주제를 다루며,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간략하고 단순한 형태로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설명하고 있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주제에 대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이제 제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설교자들과 성경교사들이 자신들은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거나 혹은 선호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킹제임스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선호하고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회중이 그 성경을 선호하고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들 자신이 신학교에서 킹제임스성경을 추천하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그것을 선호하며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대학”에서는 킹제임스성경이 단지 하나의 번역본에 불과하다고 가르치며 어떠한 번역본도 무오할 수는 없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오늘날 “평범한” 사역자들은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믿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는 그러한 문제가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그 이유를 이제 제시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제가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12가지 이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주께서는 선하시도다. 그분의 긍휼은 영존하며 그분의 진리는 모든 세대에 지속되는도다.”(시 100:5)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이러한 말씀들은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전수되어야 한다고 분명한 어조로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우리를 위해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는 무오한 성경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아마 “모든 번역본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죠. 어느 하나만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아니죠.”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양한 번역본들은 제각기 다른 본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십니다(고전 14:33). 만일 모든 번역본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부패되고” ”변개된” 것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은 그러한 것이 있다고 고린도후서 2:17과 예레미야서 23:36에서 말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일 모든 종류의 성경들이 다 순수한 말씀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왜 성경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고 경고하신 것인가요(계 22:18-19)?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변개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만일 성경변개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경고를 하셨겠습니까?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한 권의 책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킨 많은 종류의 책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 아니라면, 무엇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란 말입니까? 모든 세대를 통해 전수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책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다른 성경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경은 번역이 잘된 훌륭한 번역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책이 무오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즉 자신들이 사용하는 책에도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킹제임스성경을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된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 것처럼 참된 책도 한 권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님의 말씀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그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그것을 읽고 싶습니다. 성경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전혀 오류가 없는 한 권의 책이 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2. 킹제임스성경은 왕이 번역을 명령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임하실 왕국입니다. 주님은 “왕들의 왕, 주들의 주”인 분이십니다(계 19:16). 전도서 8:4에는 “왕의 말씀이 있는 곳에 권능이 있나니 누가 왕에게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번역된 성서들과 달리 킹제임스성경은 왕의 명령 하에 번역되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을 허락한 왕의 이름은 “제임스(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구약성경에서는 “야곱”으로 불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견주고, 사람들과 견주는 능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창 32:28).
영어권의 새로운 성서들은 대부분 군주국이 아닌 미국에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부 형태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군주국이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국 왕의 명령 아래 성경을 번역하게 하신 것은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왕의 명령 아래 번역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3. 킹제임스성경은 판권이 없는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1611년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왕실판권(Crown Copyright)”으로 인해 흠정역 성경을 인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은 당시 성경 본문이 왕실의 명령에 의해 번역되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을 뿐 실제로 출판할 수 있는 권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4백년 동안 킹제임스성경을 인쇄하기 위해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인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아무런 로열티를 그 누구에게도 지불하지 않고 8억부 이상 인쇄되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성서들에는 결코 적용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딤후 2:9)
새로운 성서들은 인간들의 작품이지만 킹제임스성경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전통적으로 킹제임스성경은 권위를 부여받은(Authorized) 성경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에 걸쳐 성령님께서 사용하시고 복주신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판권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매년 수백만부씩 인쇄되어 선교지에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에 판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옮기는 일”을 통해 완벽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옮기다(번역하다)” 혹은 “옮겨졌다(번역했다)”는 말은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그리고 매번 하나님께서 “옮기시는 분(번역자)”이 되십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본(version)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오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학자들이 “옮김(번역)”에 대해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사무엘기하 3:10, 골로새서 1:13, 히브리서 11:5을 찾아본 적이 있을까요?
“그 맹세는 곧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옮기고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다윗의 왕좌를 세우는 것이라, 하매”(삼하 3:10)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골 1:13)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그들이 찾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증언을 가졌느니라.”(히 11:5)
사무엘기하 3:10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국을 다윗에게로 옮기신다고 증언합니다. 골로새서 1:13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둠의 권세에서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주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5에서는 하나님께서 에녹을 옮기셔서 그는 죽음을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매번 “옮기시는(번역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점이 무엇일까요? 요점은 만일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면 “옮겨진 것(번역된 것=번역본)”은 완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했을 때 그들은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해야만 했습니다(마 1:23, 막 1:2, 눅 4:4, 요 15:25, 행 1:20, 7:42, 고전 2:9, 갈 3:13 등).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번역본이 무오할 수 없다면 히브리어 본문(구약성경)의 번역을 담고 있는 신약성경의 “최초의 원본”도 결코 무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은 성령님의 인도 아래 구약성경을 번역하여 인용했을 것이며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성령님의 인도 아래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은 이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고(요 16:13) 자신들이 받은 고등 교육만을 신뢰함으로 성령님을 소멸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벧후 1:21)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영감을 주신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 사람들이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요 14:23).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시고 번역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입니다. 그들은 킹제임스성경의 헌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잘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부족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말씀을 보존하기 위한 의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킹제임스성경이 맺은 열매가 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므로 우리는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썩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썩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7-20)
하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도록 인도하셨으며 결국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지난 몇 세기간 복음을 증거했던 위대한 설교자들은 모두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리 선데이(Billy Sunday)는 백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으며 그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스펄전(Spurgeon), 무디(Moody), 휫필드(Whitfield), 웨슬리(Wesley)는 모두 킹제임스성경의 사람이었으며 이러한 사람들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사역에 풍성한 복을 주셨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왜냐구요? 킹제임스성경이 좋은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번역된 성서들은 악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현대의 번개된 성서들은 불신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현대의 변개된 성서들은 교리도 제대로 모르는 영적 아기들만을 양산해 내고 있습니다. 현대의 변개된 성서들의 출생 뒤에는 그것으로 돈을 벌려는 ‘탐욕’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경고합니다(딤전 6:10).
성령님께서는 현대의 변개된 성서들이 아닌 킹제임스성경이 바른 성경이라고 증언하십니다. 저는 항상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심지어 구원받기 전에도 말입니다. 저에게 그렇게 믿으라고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들과 뉴에이지 성서들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논쟁에 대해서는 구원받고 나서 몇 년 동안 아예 알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킹제임스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으며 새로운 역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대학교 중에 80% 이상이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 매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믿게 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믿기 위해서는 신학자들로부터 다년간 교육을 받아야만 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은 사람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성경 말씀을 믿지 않고 사람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이 세상 어떤 책을 통해서도 하지 않으셨던 일을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하셨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새로운 역본들보다 암송하기 쉽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장엄한 문체를 접하는 독자들은 자신들이 읽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세상의 그 어떤 책들(현대의 역본들)에서 받을 수 없는 감동과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읽으면 다른 성서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과 그 밖의 변개된 다른 성서들에는 서로 다른 저자가 그 뒤에 있습니다. 우리는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열매가 좋기 때문입니다.
6.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전한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메시지”라거나 혹은 “신뢰할 만한 사본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자세는 데살로니가전서 2:13에서 말씀한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있게 일하느니라.”
현대 성서들의 번역자들은 마치 창세기 3:1에 나온 뱀처럼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라고 말하며 회의적인 자세로 성경의 무오성 문제에 접근합니다. 성경을 변개시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인류역사 초기의 범죄입니다. 그러고 성경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성경 번역자들 및 제작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우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이 미혹되도록 허락하십니다(겔 14:1-9, 살후 2:10-12, 왕상 22장).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번역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백년 동안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모두 무자격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자신들이 받은 고등 교육만을 신뢰하며 교만과 자만으로 가득 차서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 성경번역위원회를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그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학문은 현대 번역자들의 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용하셔서 성경 번역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치거나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을 번역자로 임명한 왕의 명령을 받들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던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7.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정직하게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번역자들이 사용한 이탤릭체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전반적으로 불필요하고 불공평합니다.
킹제임스성경에 사용된 이탤릭체야말로 번역자들이 정직하게 번역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숙어가 변화하며,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하기 위해 특정한 단어를 첨가하는 일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특정한 단어를 첨가해야만 하는 경우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여 독자들이 어떤 단어가 첨가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번역자들에 의해 임의로 첨가된 것인지 독자가 알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최초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탤릭체 단어들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이탤릭체로 된 단어들을 첨가하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좋은 예를 사무엘기하 21:19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엘하난이 죽인 것은 골리앗이 아니라 골리앗의 형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역대기상 20:5에서 그러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사무엘기하 21:19에 “~의 동생(the brother of)”이라는 단어를 첨가하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탤릭체로 표시한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들이 그렇게 번역하도록 인도해주지 않으셨다면 사무엘기하 21:19과 역대기상 20:5은 서로 모순을 일으키게 됩니다(신세계역본에서는 이 부분에서 모순을 일으키고 있음).
이탤릭체의 정당성에 대한 다른 예는 요한일서 2:23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 구절에서 뒷부분인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는 부분은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될 당시 필사본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구절에 첨가하고 이탤릭체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부분이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이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필사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이탤릭체로 처리하여 본문에 넣음으로써 바르게 번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을 인도해 주셨다는 또 다른 증거는 시편 16:8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moved.)”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는 “그분께서(he is)”라는 부분이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에 의하면 이 부분은 삭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에 의하면 이 부분이 삭제되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25에서 시편 16:8을 인용하며 이탤릭체로 된 단어도 함께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For David speaketh concerning him, I foresaw the Lord always before my face, for he is on my right hand, that I should not be moved.)”
여기서는 “그분께서”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인도해 주지 않으셨다면 번역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이탤릭체는 정직한 번역이라는 표시입니다. 이탤릭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더하는 것도 아닙니다. 독자는 어디서 번역자가 단어를 첨가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자들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 단어를 첨가했고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직함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현대 성서들의 번역자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직하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8. 모든 새로운 번역본들은 킹제임스성경과 스스로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서들은 서로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권의 책, 킹제임스성경과만 비교합니다. 이러한 것은 킹제임스성경이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책이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왜 모든 현대의 성서들이 킹제임스성경만을 대적해서 대열을 갖추는 것일까요? 왜 다른 성서들을 공격하지는 않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탄은 자신의 왕국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만일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마 12:26)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한 권의 책, 하나님의 책, 킹제임스성경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주장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최종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종권위를 가지고 있는 우리를 애써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하며, 정직하지 못하고, 확고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 권의 책 킹제임스성경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그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공격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성서들이 비교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9. 킹제임스성경의 번역 시기가 적당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변개된 성서들과 같이 배교하고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의 마지막 교회 시대입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3장에 계시된 일곱 교회 중 마지막 시대를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3:14-22을 현대의 배교한 교회와 비교해 본다면 라오디케아 교회야말로 오늘날의 교회 시대를 잘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지근한 교회 시대는 19세기 말에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할 것입니다. 새로운 성서들은 미지근한 성서들이기 때문에 미지근한 교회에 딱 들어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시작되기 수백년 전에 번역되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교회사 중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 번역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가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8-10)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완성되었을 때는 아직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불신앙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습니다. 1611년에는 번역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과학적인” 무리들이 없었습니다. 번역자들의 작품에 영향을 끼칠 “시민혁명”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여자들이 “남녀평등”을 외치기 전이었으며 인본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이었습니다. 자유주의와 현대주의로 무장한 설교자들이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상이 설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이었습니다.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나이롱” 신자들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세상과 타협해 버린 미지근한 설교자들은 20세기가 되기까지는 몰려오지 않았습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역은 1700년대와 1900년대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대한 선교사역을 위해 성경을 예비하셨다고 믿는 것은 온전히 타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킹제임스성경을 주심으로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변개된 성서들은 이 시기가 지난 후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함으로 위대한 선교사역에는 동참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된 역사적 시기가 적절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0. 어느 누구도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입증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됩니다. 킹제임스성경도 그 안에 오류가 있다고 증명되기 전에는 무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증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킹제임스성경의 오류”라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진리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오류도 입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난 4백년 동안 어느 누구도 오류가 있다고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1. 필사본들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과 다른 번역본들이 동일하다고 믿는 것은 미혹된 것입니다. 현존하는 필사본들 중 95%의 필사본들은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번역본들을 지지하는 필사본들은 5%에 불과합니다.
“바티칸사본(Vaticanus)”과 “시내사본(Siniaticus)”으로 알려진 4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패한 두 개의 필사본이 새로운 성서들을 지지하는 대표 주자입니다. 이 두 개의 필사본은 천주교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 본문에 수정을 가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가복음 24:44에서 제외하신 외경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새로운 성서들은 이들 부패한 사본들의 본문을 담고 있습니다. 5%의 필사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새로운 성서들이 95%의 필사본들의 지지를 받는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인 수용본문(Textus Receptus, Received Text)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으며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일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시리아의 안디옥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행 11:26). 다른 성서들은 안디옥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서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이탈리아의 로마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유래한 필사본으로부터 나온 성서는 필요없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집트는 세상의 유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불러내셨고(출 3~14장), 자신의 아들을 이집트에서부터 불러내셨습니다(호 11:1, 마 2:13-15). 창세기 46:34에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모든 목자가 가증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목자라고 불리십니다. 사도행전 28:11에 의하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미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서는 이집트 출신의 사람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교리적으로 바로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6:9에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사람이 스데반과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필사본으로 만든 성서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서방 원문”에 속하는 원문 중에는 로마로부터 온 원문들이 있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그곳으로부터 온 원문이 필요할까요?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온 음녀는 중세에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천주교에 대한 묘사가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18:2에서도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리고 A.D. 70년에 로마인들은 예루살렘을 아예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로마는 다니엘 7장에 묘사된 두렵고 무서운 짐승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때 “부활한 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것입니다(단 7:2, 계 13장). 로마는 자신들의 부패한 종교 시스템을 거부한 2억명의 사람들을 죽인 핏값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로부터 온 “성서”는 그리스도인들과 아무런 관련을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필사본 계열은 단 하나만 존재합니다.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유래한 “비잔틴 원문(Byzantine)”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디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반면 로마와 이집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것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대부분의 필사본들의 증거로 인해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2. 킹제임스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39).
참된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분의 신성, 처녀탄생, 피를 통한 속죄, 육체적 부활, 영광스러운 재림이나 그 밖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교리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성서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들을 이곳 저곳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근본적인 교리를 다루고 있는 성경의 많은 중요한 구절들을 변개시킴으로서 새로운 성서들은 우리의 사랑하는 구원자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주님의 처녀탄생에 대한 교리가 이사야서 7:14, 누가복음 1:34, 2:33 등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피에 대한 교리가 골로새서 1:14, 사도행전 20:28, 에베소서 1:7, 그리고 요한계시록 1:5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대한 교리는 사도행전 1:3, 누가복음 24장, 그리고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신성에 대한 교리가 사도행전 10:28, 요한복음 9:35, 그리고 디모데전서 3:16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변개된 새로운 성서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리를 요한계시록 11:15, 디도서 2:13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록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성서들은 킹제임스성경과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영광을 증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독자 중에 이러한 저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어떤 종류의 성서든 그것을 킹제임스성경과 위에서 제시한 구절들을 찾아 비교해 보십시오. 만일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출판사로 연락을 주시면 비교해 볼 수 있는 더 많은 구절 목록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성서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책들은 주님께서 요한복음 5:39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증언하지 않기에 감히 성경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변개된 성서들은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여 거짓 증언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단 한 군데에서도 우리 주님의 신성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책보다도 종교개혁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만한 다른 이유가 없다 할지라도 이 것 하나만으로도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첫댓글 완전한 성경,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 KJV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 다면 저는 KJV라 답할 것입니다.
원어성경?이 완전하게 보존된 성경인가? 확인해 봐야 겠지만 시간이 걸리겠지요...
원어성경도 종류가 수십가지 수백가지가 됩니다.
중요한 한것은 어느 사본에서 번역한 원문인가가 중요합니다
당연히 다수사본에서 번역한 원문이 잘 보존되었고요
다수사본에서 번역한 원문도 변개된것은 아니지만 빠진게 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다수사본외에 모든것을 조사해서 완벽하게 번역한 성격입니다.
저도 많은 햇갈리는 부분들을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엇습니다
그리고 킹제임스성경이 진짜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이 좀 상당히 잇어야 합니다
잉글리쉬 스탠다드 바이블이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