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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에 바람으로 오시는 그댄 뉘신가요? (백두대간 율전~고치령 산행일기) /梅谷堂 김 경숙 *일시: 2/27, 7시 30분 신갈 출발 *날씨: 경기지방 청명, 소백산 짙은 운무 (10:30) 영주 단산면 좌석리 고칫재팬션 도착 (11:20) 고치령 (11;50) 헬기장 (12;05) 이정표, 국망봉9.2Km 고치령1.9Km (12;23) 마당치, 국망봉8.3Km 형제봉3.7Km 고치령2.8Km(형제봉 갈림길) (12;39) ▲암봉(1,594m) (13;48) ▲1031m봉 (14;04) ▲헬기장(1032m) (14;08) 연화동 갈림길(국망봉5Km, 연화동3Km, 고치령6.1Km) (14;15) 바위능선 우회로(점심) (14;24) 우량경보기 표지판 (14;29) 이정표, 국망봉4Km 고치령7.1Km (14;33) 헬기장 (14;55) ▲1272m봉 (15;07) 신선봉 갈림길(국망봉2.3Km 신선봉1.5Km 고치령8.5Km) (15;25) 늦은맥이재(국망봉2.1Km,고치령9.0Km, 어의곡주차장(율전)5.8Km) (17;22) 어의곡주차장 (18;40) 어의곡주차장 출발 성큼 다가와선 봄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만한 날씨이다. 기다림은 늘 순탄하고 기쁨으로만 찾아와 주는 것이 아닌가 보다. 순조롭게 잘 이어 지길 바랬던 백두대간길이 얼마 가지 못하여 갈팡이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 라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삶의 치열한 경쟁속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산악회들의 타인을 생각하는 봄날 따스한 화합의 장이 하루빨리 열리길 바라면서, 급한 마음에 한구간이라도 마루금을 빨리 이어보자는 심정으로 껑충 뛰어 소백산 구간 산행길에 합류하여 보기로 하였다. 한반도의 등뻐인 백두대간은 소백산록에 이르러 남한의 중심부를 형성함으로써 중원 과 영남을 가르는 대분수령을 이룬다. 하여 소백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한강과 낙동강 의 주요 수원이 되기도 하며, 소백산 줄기는 중부와 영남 지방의 기후와 생태계의 차 이를 낳기도 하고 사투리를 비롯한 중원문화와 영남문화의 차이를 가져다 준다. 이와같이 고치령에서 죽령에 이르는 구간은 이런 소백산록을 포함하고 있어서 참으 로 의미있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오랜 역사의 향기가 배여있는 고치령을 출발 하여 상월봉,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등 이름 있는 봉우리들을 거쳐서 죽령에 이를 수 있기에 백두대간 전체구간 중 가장 멋진 산행을 할 수 있는 구간중 한 구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일찍 출발지에서의 날씨가 좋았던 관계로 지난번 소백산 산행길에 국망봉에서 내려다 보았던 고치령 방향의 백두대간 길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10시 30분경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고칫재팬션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경이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율 전에서 출발하였을 일이나 산악회 사정상 역방향인 고치령을 들머리로 하고서..
고칫재팬션에서 4.3Km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5분정도 고갯길을 오르면 단양군 영 춘면 마락리로 넘어가게 된다. 옛 지명들을 알아보다 보면 저어기 생활 풍속도를 짐작 할 만한 열쇠가 숨겨져 있는데, 마락리 경우는 이동수단인 '말'이 그것이다. 안내표석에 따르면 고치령을 넘어다니던 짐 실은 말들이 고갯길의 말굽이바위라는 좁고 험한 곳에 서 종종 벼랑으로 떨어져 붙여졌다는 이야기다. 안동대학교 민속학 연구소에서 내놓은 <고치재 山靈閣 조성>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1940년대 마락리에는 마구와 숙박시설이 있어 마부나 선질꾼에게 숙식을 제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치령이 생활도로로 왕성했던 것은 강원도와 기호지방(충청도와 영남) 을 잇던 죽령길이나 마구령길에 비해 고치령은 순흥도호부와 영월을 잇는 최단거리 길 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에서였을까? 6.25때 서낭당이 불타기 전만 해도 비각 안에 철마를 모셔 두었던 사연은..? 좌석리 마을 이장님의 도움으로 고치령까지 포터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발걸음이 빠르지 못한 핑계로 한다면 앞차로 남들보다 한발 앞서 이동하였어야 할 일 이나 이번에도 상야님께서 함께 동행 하여주시는 덕분에 여유로움을 부려 한걸음 양보 하여 뒷차로 오르기로 하였다.
앞서간 일행들 보다는 30여분 늦게 출발하였던 관계로 고치령 도착 시간이 11시 20분 이다.
* 산행코스 ; 고치령-1.272m봉-신선봉갈림길-늦은맥이재-어의곡주차장(율전) (약 14.8Km, 6시간)
- 단종과 금성대군을 모신 백두대간 고개 영주 고치령 - 산행이 시작되는 고치령(古峙嶺)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와 백두대간 너머 충 북 단양군 영춘면 마락리를 잇는 해발 760m의 고갯마루로서 현지인들은 '고치재'라 부른다. 고치령 정상은 백두대간의 중요한 길목이어서 각양각색의 표지기가 요란하 고, 장승이 서있으며 이정표엔 '국망봉 11.1Km, 마구령 8.0Km라 적혀있다. 강원과 충청 영남 등 기호지방을 드나드는 죽령과 마구령이 있지만 서낭당이 있는 곳 은 고치령뿐, 게다가 그곳의 서낭당은 단종대군을 태백산 산신으로 금성대군을 소백 산 산신으로 모시고 있으니 이쯤되면 고치령 서낭당의 내력에는 뭔가 범상치 않은 것 이 숨어있을 것같아 잠시 알아보고 넘어가기로 하였다.
고치령 내력이 궁금하여 알아는 보았으나 고치령 서낭당의 시초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한 자료와 설명에 의거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 역사의 한 귀퉁이에 고치령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사연은 세조 3년인 1457년으로 돌아간다. 단종 임금이 영월로 유배될 무렵 조카를 보 호하다 형인 수양대군의 눈밖에 난 금성대군도 순흥도호부로 유배지를 옮겨가는데, 이때 금성대군이나 밀사가 단종을 만나러 고치령을 넘어 영월에 다녔을 거라는 가능 성이다. 그러나 복위운동이 실패하고 목숨을 잃은 두 사람은 각각 태백과 소백을 지 키는 신령이 되자 두 성산(聖山) 경계인 고치령에 서낭당을 세웠다는게 요점이다.
비극의 실존 인물이었던 단종임금과 금성대군은 산신령이 되어 고치령 서낭당에 상 주하고 있으니 고치령은 재 아래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고갯길의 차원을 넘어 정의로 운 세상에의 염원을 실현시켜줄 통로쯤 되었을 법하다. 당시 순흥, 풍기 사람들은 너 나 할것 없이 이 산신당을 찾아와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해서 부석면과 단산면은 물 론 풍기 영주에서 와 치성을 드렸다. 6.25 때는 화재를 당하자 새목마을 사람들은 군 수 서장의 도움을 받아 서낭당을 다시 지어 올렸을 정도였다 한다.
고치령의 이정표엔 ‘국망봉 11.1km, 마구령 8.0km’라 적혀 있고, 산행은 산령각이 있 는 맞은편 서쪽 언덕을 올라가면서 시작이 된다. 일행들이 모두 고치령을 떠나고 맨 마지막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국망봉이 해발 1,420.8m이므로 고치령에서부터 대단히 가파른 길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11.1km 구 간을 4시간여에 걸쳐 오르기에 심한 가풀막이 아니고 서서히 오를 수 있어서 그런대 로 편안한 산행길이 이어져 간다.
고치령에서 잠깐 오르다보니 소백의 기운이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이 소백산에만 들면 박꽃향긴 늘 편안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소백산이 반기는 듯한.....ㅎ
고치령을 떠나 10여분 동안 가파르게 올라간 후 길이 순해지면서 오르막 내리막이 반 복되기 시작하는 지점에 첫 번째 119표지목(소백 10-03)이 있다. 그리고 다시 10여분 전진하면 처음으로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고치령 0.9km, 국망봉 10.2km’라 적혀 있다.
오를수록 꽃송이는 탐스럽게 피어난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기하학적으로 안개의 입자들이 찬공기와 만나 나뭇가지마다 눈부신 꽃을 피워내고 있다.
거기서 3~4분 올라가면 또 하나의 119표지목(소백 10-02)을 지나면서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그런 길을 10여분 올라가면 첫 헬기장이 나타나고,
헬기장에서 철쭉 군락지를 지나 3분 정도 가면 또 하나의 119표지목(소백 10-01)을 지난 후 갈림길을 만난다. 왼편 길은 완만한 우회로이고, 오른편 길은 오르막길이다.
마치 마법의 세계에 든듯 황홀한 기분을 느끼면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정갈한 꽃잎에 입술을 대어 빨아들여 보았다. 빨려들어오는 약간의 꽃잎을 씹으니 사각거리며 제법 씹히는 맛이 있다. 그것으로 갈증을 해소한 후..
오르막이라고는 하나 그리 급오르막이 아니므로 오르막 길 쪽으로 5분정도 올라가면 폐헬기장을 하나 지나고, 앞서 갈라졌던 길이 다시 만나면서 5분 정도 더 올라가니 이 정표가 서있다. 형제봉 갈림길이다. 고치령에서 45분 정도 걸렸다. 이정표 국망봉 9.2 km, 고치령 1.9km.. (12;05)
나 어때요? 요술나라 공주 같은가요?ㅋㅋ
그런데 과거 이곳의 이정표에 ‘해발 1,032m’라 적혀 있었고, 지형도에는 이 형제봉 갈림 길에 헬기장이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어서 처음 가는 사람은 헬기장을 찾느라 헤매기 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헬기장은 형제봉 갈림길에서 서북 방향 위쪽으로 2~3분 올라 간 1,032m봉 정상에 있으며, 이곳은 1,032m봉이 아닌 1,032m봉 아래쪽 산자락이고, 이 곳을 형제봉 갈림길이라 하는 것은 이곳 위의 1,032m 봉우리 서북방 2.8km 지점에 형제 봉(1,199m)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간 길은 1,032m봉 산허리를 왼편으로 우회해서 진행 하는 셈이고, 이곳부터 충북과 경북의 도계를 이루는 대간 길을 따라가게 된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밑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오랫만에 일행들을 만나는가 보 다 하고 다가갔다.
다가서며 보니 일행들이 아니다. 무박으로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가는 분들이었다. 그런 데 눈밭에 무릎을 꿇고 무엇인가 하는 듯 하기에, '뭣들 하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무릎 찜질을 하는 중이란다. 눈속에 무릎을 넣고 있다 일어서며 박꽃향기 보고도 해보라 한다. 먼 거리를 오다보니 무릎에 통증을 느꼈던가 보다.
일어선 채로 무릎을 눈위에 엎어지듯 꿇어 보았다. 손도 들라 한다. 모르는 척하고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잠시라도 나로하여 즐거움을 맛볼 수만 있다면 ... "날 보고 저렇게 순진한 아줌마가 있나 할테지?"ㅎㅎ
잠깐의 휴식을 겸하여 처음 보는 분들과 웃음을 나누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이 마당치(910m)이다. 형제봉 갈림길에서 15분 정도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갔다가 5분 정도 내리막을 내려가서 안부에 이르는 곳으로, 마당치(馬堂峙)엔 잡목이 우거져 어 두컴컴하다. 이정표, 고치령 2.8km 국망봉 8.3km 형제봉 3.7km..
마당치부터는 완만한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언덕에 올라서면 1,031.6m봉에 이른다. 마당치에서 30여분 걸리고, 고치령에서 1시간 40~50분 걸린다. 1,031.6m봉 오르는 길에..
1,031.6m봉을 올려다보며, 최고의 상고대이다.
1,031.6m봉은 봉우리라기보다 긴 능선 상의 어느 지점 같은 곳이다.
이정표에 ‘국망봉 7.7km, 고치령 3.4km’라 적혀 있으며, 여기에 이르면 비로소 신선봉, 상월봉 등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는 곳이다. 오늘은 짙은 운무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후 등산로는 오르막 내리막이 길게 이어지면서 전형적인 대간길을 나타낸다.
이 감격의 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데 상야님께서 뒤쫓아 오시지 않기에 잠시 멈춰서서 있자니 오른쪽 길이 아닌 곳에서 나오고 계셨다. 바위사진을 찍으려고 잠시 돌아들어 가셨 다는데, 이것이 칼바위.....? 짙은 운무속에 박꽃향긴 보지 못하고 지나왔는데.....ㅎ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고도는 점점 더 높아만지고, 이쯤에서 바위능선을 우회하 여 지나다가 오르막길을 올라 일행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는데, 짙은 안개와 능선상 의 특징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20-3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서..
이정표 형제봉 6.7Km, 국망봉 5.3Km, 고치령 5.8Km에서..(1;59)
119구조목 01-33에서..
다시 내리막길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나보다. 겹서리꽃이 피어나고 있다. 진행의 좌측방향에서 불던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오고 있다.
1,031.6m봉을 지나가면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옥대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고는 하나 오늘은 지난 날 국망봉 위에서 보았던 모습을 머리로만 그리며 지나는 수밖엔 없을 듯 하다. 1,031.6m봉에서 1시간 정도 전진하면 헬기장이 있다.
이어서 3~4분이면 연화동 갈림길에 닿는다. 고치령에서 2시간 40~50분 걸린다. 이정표, 연화동 3km 국망봉 5km 고치령 6.1km..
연화동 갈림길(1,015m)은 거기서 왼편(동쪽) 아래에 연화동마을과 옥대저수지로 이어 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이후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지면서 20여분 전진하면 폐헬기장을 하나 지나고, 이어서 5분이면 또 하나의 폐헬기장을 지난다. 우량경보기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서릿발이 꽂혀 글씨가 보이지 않기에 스틱으로 "북~"하고 긁어내었더니 상야님께선 "이쁘게 좀 긁지?" 하신다.ㅎㅎ..
금방이라도 어디에서 웨딩마치가 울려퍼질 듯 한데, 이 산중에 들리는 소리라곤 사각거 리며 다가서는 바람의 소리 뿐.. 후미를 장식하고 있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장단을 맞추고 있다.
이 아름다운 길을 지나며 솟아오르는 감격을 어찌하여야 할지?
그댄 안개속에 바람으로 오시나요?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신화처럼 싹을 틔워 절묘한 순간 그들은 꽃잎으로 일어선다. 햇살 한줌에도 일순간 무너져버릴 생이어도 영감처럼 스쳐 칼날처럼 곧추서서 번득이는 영광이여! 그댄 안개속에 바람으로 오시는가요? 서리꽃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댄 정녕 뉘시온지? 바람의 아들로 영혼의 꽃잎으로 아는 듯 모르게 마른 가슴 촉촉히 메웠다 한 점 이슬로 사라져버릴 허무한 꿈은 아닐테지요? (10.02,27)
이제 산봉우리 하나만 넘으면 늦은맥이재가 지척이다. 이정표, 국망봉 4Km 고치령 7.1Km..(14;29)
헬기장마다 산악회 유도지가 깔려있다. 대충 아는 길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선두 가 깔아놓은 유도지가 있기에 5m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운무속에서도 갈등을 겪지 않아 좋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마지막 폐헬기장에서 20여분 후 1,272m봉 오르는 길에 한마리 꽃사슴이 되어.. ㅎㅎ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면서 연화동 갈림길에서 1시간 정도 전진하여 오르막을 올라가면 신선봉(1,389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라져서 1,272m봉 아래를 통과한다. 예전에는 이 지점에서 신선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길이 없다. 벼랑을 타고 적설량이 꽤나 되어 보인다.
이 지점부터 고치령 이후 대체로 남서진하던 등산로가 완전히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 서 2~3분 내려가면 갈림길 삼거리가 나타난다. 1,272m봉을 우회하여 내려갔다가 다 시 정상으로 올랐다. 볼것은 없으나 포근포근 하니 녹아 있는 흙속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민 '너도바람꽃'이라도 한송이 혹여 볼 수 없을라나 하고, 스틱으로 낙엽을 들썩거려 보았다. 20여분을 그렇게 서성거렸는가 보다. 짙은 안개속을 산정에서 서성거리다 보 니 "너도 바람꽃"의 생각이 간절하다. 너도 바람꽃과 시인의 길 산을 덮어누르고 강을 집어삼키고 들꽃을 지워버린 안개가 내 하체마저 앗아가려 하는 순간까지도 앞에 나있던 길이 사라진줄도 모르고 길을 걸어가려 했다. 길이 보이는 것 같아 무작정 걸어 이 곳까지 다다르고 보니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던 길은 온데간데 없고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안개숲을 헤매고 있었다니 어디쯤일까 내가 지금 서있는 이 곳은 산일까, 바다일까 평야일까 땅일까, 하늘일까 땅밑으로 꺼진듯도 하고 하늘 위에 붕 떠있는 듯도 하고 짙은 안개에 가리워진 시야(視野)는 탈출구 없는 잠재의식속의 불꺼진 비상등이다. 바람은 안개를 가르고 습기를 몰아오지만 비상구는 보이지 않고 갈길은 멀고 목마름은 심한데 발아래 바스락이며 묵은 낙엽 사이로 고개를 내민 한 떨기 너도 바람꽃의 꽃망울이 불꺼진 비상등에 빛을 살리우는 희망으로 피어나고 있다. 너도 바람꽃을 흔들어 깨운 바람이 안개를 가르고 너도 바람꽃도 흔들흔들 나도 흔들흔들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내야만 하는 이 길을 너도 바람꽃도 그리고 나도 흔들거리며 피어내야만 하는 길이란 것을 묵은 갈잎 헤집고 언땅 디디고 일어서는 용기가 썩어문드러진 낙엽속에서도 향기를 피워낼 수만 있다면야 외로움 안고 가야만 하는 그 길을 기어이 찾아 나서리라 너도 바람꽃처럼 언땅에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흔들흔들 흔들거리면서라도.. (07.02,27)
이곳이 지금은 유일한 ‘신선봉 갈림길’이다. 거기서 오른편(북쪽) 길은 1,272m봉 아 래를 우회하여 신선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로 가면 신선봉을 거쳐 구인사로 내려 갈 수 있지만 통제구역이다. 상야님 신선봉까지 갔다 오자 하시는 걸 왕복 3Km나 된 다 하기에 그냥 내려가시자 하였다. 애초에 출발을 남들보다 30~40분 늦게 한 죄로 오늘만큼은 욕심을 접기로 해본다. 고치령팬션에서 이동할 때 앞차를 탔어야 좀 더 여유로웠을 것을, 국망봉까지 오르지 않을 생각을 하였었기에..... 이정표, 국망봉 2.3Km 신선봉 1.5Km 고치령 8.5Km..
구인사 갈림길에서 알바 조심하라 하더니.....ㅎㅎ
신선봉 출입을 금하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신선봉 갈림길에서 2~3분 내려간 안부의 넓은 공터가 늦은맥이재 삼거리이다. 마구령과 선달산 사이에 ‘늦은목이’와 이곳의 ‘늦은맥이’가 비슷하여 자칫 혼돈되는 수가 있다. 고치령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이 늦은맥이재에서 서쪽으로 충북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율전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지고, 거기 이정표에 ‘율전 5.0km, 국망봉 2.1km, 비로봉 5.2km, 마당치 6.5 km, 고치령 9.0km’라 적혀 있다. 이정표엔 없으나 거기서 상월봉이 1.3km, 30여분 오르면 된다. 비로봉쪽은 거쳐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번엔 늦은맥이재에서 어의곡리 방향으 로 하산하기로 하고서.. 늦은맥이재에서 어의곡리 주차장까지만도 5.8Km나 된다. 지난번 눈길을 걷던 식으 로라면 1시간 남짓 걸릴 일이나 이번엔 만만치가 않다. 길이 가파르기도 하지만 마 구잡이로 녹아내리고 있어서 길이 패이거나 푹푹 빠져버리기에 여간 힘이 든게 아니었다. 그나마 눈위라도 잘못 밟았다간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만큼 빠져들기 때 문에 한참 애를 먹으며 내려야 했다. 차라리 국망봉쪽으로 도는 것이 나을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쯤 내려오니 겨우내 얼어붙었던 개울이 풀리면서 제법 웅장한 소리를 낸다. 봄 의 행진곡이 들려오는 듯 경쾌한 감을 느끼면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마치 장마철을 연상케 한다.
여러차례 아슬아슬한 물길 건너기가 있은 후 마지막 물길을 건너면서.. 상야님께선 몇번의 좋은 기회를 놓쳤다 하시면서 박꽃향기 돌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 사진기에 담아내지 못하셔서 서운하신가 보다. "미친 척 하고 한번쯤 개울물에 빠져 줄 것을...."ㅎㅎ*^^*
어의곡리 주차장을 향해서.. 국망봉 비로봉쪽에서 내려오며 만나는 지점이다.
17;22 산행을 마치면서, 늦은맥이재에서 내려오는 길이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오늘 산행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 이 구간이 아 니었나 생각되면서, 우기 때에 이 길로 하산할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겨우내 쌓였던 눈 녹아 내리는 물의 양만도 적지 않은듯 하니 말이다. '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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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에 오셨네요 너무 아름답습니다 상고대며 눈꽃들이 늘 부럽답니다...이제 제주에서 또 다른 섬 가파도로 발령이 나서 그곳서 생활합니다 주말이면 뭇으로 나오지만 여기도 올레길 있고요 청보리 축제가 유명하고 4월 이곳을 계획하면 어떨련지... 김 시인님과 잘 어울리는 섬 같을것 같아서요^^
잘 지내시지요? 유채꽃이 물결을 이룰 제주도에 요즈음 이곳 산악회에선 많이들 찾아가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요즈음은 집을 비우기가 좀 어려워 제주도 산행을 못하고 있답니다. 시인님께서 가파도로 가 계신다니 언제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네요. 보고싶은 시인님도 만나고요.. 잘 지내시다가 언제가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뵈러갈께요. 이쪽에 오시게 되면 소식 주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게 아름다운 모습 간직하시고요....^^
행복하시고 문운 가득한 3월 되세요.
아름다운 봄의 화원에 행복의 꽃 가득 하시옵길.....^^
아무리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린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바람에 무너져 내릴 자연이고
빙화가 아무리 아름답게 피었다가도 햇살의 범주 안에 있으니
눈물꽃을 면하지 못하나 봅니다
우리네 인생도 광년의 눈빛과 심해의 마음을 지녔어도
일묘연 만왕만래에 불과하니 영원을 그리워하나 봐요
다리를 다치셨군요
다친 사연을 알 수 없으나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렵니다
늘 도둑글을 읽고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송구함으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바람따라....
쉬이지 않는 천천의 감성이 참으로 부러울 따름입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더라도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詩作하시길 바랄게요^하루의여유
아 이래서 오늘이 또다시 소중한 하루로 부각이 됩니다.
진작 살폈어야 할 것을
이렇게 찾아주시리라곤 짐작을 못하였습니다.
어디에선간 가끔씩이라도 글을 읽어주시지 않으려나 기대는 하였습니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소식인데
소리 소문 없이 늘 잘 계시리라 믿고 있었는데
저의 바람이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성함도 모르는 채 '하루의 여유'라는 닉네임만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윤성우'의 이름도 기억하겠습니다.
지금쯤 어느 문단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예전의 필력을 기억하고 있기에......
산악회에 들어 최초의 소중한 이름으로 기억하렵니다.
더없는 인연으로 간직하렵니다.
소식이 없어도 그리하였을 겁니다.
못잊을 이름이었습니다.
가야산 산행기에 올라있던 모습 어렴풋이 기억을 하고
어디에선가 한번쯤 그 모습 뵐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생각하였기에
가끔씩 글로 하여 힘들어질때 '하루의 여유'님을 떠올리며
힘을 내곤하였습니다.
제 힘의 원천은 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늘 좋은 기억속에 오래도록 함께 하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모습으로 사시다가
마음 내키시는 날 산행길에 한번 뵙기를 기대하렵니다.
들려주셔서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날에
감사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