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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76회>
씬 상주 죽령 쪽 예천 성(밤)
환호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수많은 횃불들이 일렁이고, 견훤이 손을 들어 이들을 무마하고 있다.
견훤 자랑스러운 대 백제국의 군사들이여! 우리는 오늘 뜻 깊은 날을 맞았느니라. 우리는 오늘 밤 사이로 이곳 예천을 지나 안인현, 은평현을 도모하였다. 그리고, 지금 영안현을 향해 진군 중이다.
모두들 와......(함성소리)
견훤 우리는 한 때 저 금성을 도둑질 당하고, 한동안 침체했었느니라. 허나, 이제는 아니다. 이곳 상주 일대의 우환이 오늘로써 싹 사라질 것이니라. 그리고, 우리는 저 높고 험한 조령 산맥을 넘어 마진을 쓸어 버릴 것이니라.
모두들 와.........
견훤 또한 우리 군대는 지금 왕건이 있던 조령을 공격 중이다. 이 역시 또 날이 밝는 대로 함락될 것이다. 대 백제국의 위엄이 천하를 울릴 것이다.
모두들 와..........
견훤은 기고만장해있다. 불끈 쥔 그의 주먹에 힘이 넘쳐 보인다. 최승우가 웃고 있다. 그리고, 여러 장수들이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씬 조령(새벽)
여명이 트는 가운데 이곳에서도 백제군이 다가오고 있다. 세 형제가 홍유, 김락과 더불어 그들을 보고 있다. 개미떼처럼 그들은 공직과 두 태자의 지휘아래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다. 유금필이 고개를 젓는다.
유금필 적의 숫자가 너무 많소이다.
홍유 이곳의 수장이 유금필 장군이시오. 내 생각으로는 퇴각을 명하는 것이 옳을 것 같소이다.
김락 이 사람도 그렇게 권하고 싶소이다. 싸워봤자, 헛일이예요.
능산 그러하옵니다, 장군. 용단을 내리시오소서.
박술희 (한숨) 사정으로 보아 이미 죽령도 절단이 난 것 같습니다. 우리를 도우러 오던 지원군은 모두 전멸당하고, 죽령도 결단이 났을 것이고,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퇴각하시지요, 형님.
유금필 (무겁게 끄떡인다) 참으로 부끄러운 날일세. 우리의 총사 왕건 장군님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날이 되었네.
모두들 ........
유금필 퇴각하라! 이곳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적들이 이곳을 제거하는 동안 전원 퇴각하라! 신속히 퇴각하라! 우리는 충주까지 퇴각한다.
두형제 예, 장군.
그들은 달려가며 큰소리로 퇴각하라를 복창한다. 군사들이 우왕좌왕 움직이기 시작한다. 입술을 깨무는 유금필의 표정에서.
유금필 도대체, 조정이란 무엇 하는 곳이란 말이오? 우리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죽어가고 있는데, 애꿎은 사람이나 잡아다가 역적이니 뭐니 누명을 씌워 죽이려하니 어찌 전쟁이 잘 될 리가 있단 말이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무엇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오?
홍유 ...... (무겁게 끄떡인다)
김락 동감이외다. 저 사람들은 전선의 상황을 너무 몰라요. 이 밤으로 수천의 목숨이 날아갔소이다. 그런데도, 저들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소이다. 안타까운 일이예요.
유금필 그런대도 우리 총사 왕장군님은 저들을 위해 밤이나 낮이나 충성을 부르짖고 계시오이다. 소장은 그것이 더 안타깝소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란 말이오이까? 백성을 위한 것이오이까, 아니면 저들 권력자들을 위한 것이오이까? 소장은 그것이 궁금할 것 뿐이외다.
눈을 감는 유금필의 표정에서.......
씬 송악 황궁 외경(낮)
복지겸 (E) 방금 전에도 세번째 전령의 보고를 받고 오는 길이옵니다.
씬 동 황궁 내원
복지겸이 종간에게 보고를 하고 있다.
복지겸 죽령의 전 전선이 화급하다는 전갈을 받았사옵니다.
종간 음....
복지겸 뿐만 아니라, 조령 또한 대대적인 기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눈을 감고 말이 없다)
복지겸 견훤왕은 오천의 대병을 몰아 죽령으로 갔고, 죽령의 환선길 장군이 조령으로 보낸 지원군 천명은 모두 전멸하였다 하옵니다.
종간 .........(역시 말이 없다)
복지겸 전령이 그곳을 떠난 지 이틀이 되었으니, 지금쯤 어찌되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상황이 예측이 되옵니다.
종간 도대체, 장수 하나 둘의 역량이 그토록 차이가 난단 말이오?
복지겸 어찌하겠사옵니까, 현실이 그러하니?.......
종간 왜, 왕건이 지휘를 하면 전선이 유리하고 어찌해서 환선길 장군이 지휘를 맡고 나서 그렇게 무너질 수 있단 말이오? 이래가지고 어떻게 앞으로 많은 전쟁을 치를 수 있단 말이오?
복지겸 현실이 그렇다고 말씀드렸사옵니다.
종간 현실, 현실, 현실.......... 답답한 말씀만 하시는구료. 이것은 장수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오. 패전의 책임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소이까?
복지겸 ..........?
종간 오늘날 상주 전선이 이렇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환장군의 책임이라기 보다도 이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왕건이의 책임이 더 큰 것이오. 저 죄인 왕건 말이오. 아니그렇소이까?
복지겸 ......내원어른....
종간 그리고, 신라와 백제 우리 마진이 어울려 싸운 지가 오래되었소이다. 다시 말하면, 서로간의 영토 전쟁은 앞으로도 수 십 년, 아니 수 백년을 더 갈지도 모르는 일이오. 군사나 땅은 잃었다가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조정의 일은 그렇지가 않소이다.
복지겸 .........
종간 나라안의 사정이 단단하고 확실하게 서야 바깥의 일도 제대로 풀리는 것이오. 그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십시다. 오늘 조회가 열린다하니 그때 논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지금은 대역죄인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가 더 중요한 때이오, 아시겠소이까? 일의 선후가 그렇다는 말이오.
복지겸 .........폐하께 사정을 말씀 올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어, 허 이렇게..... 내가 말하지 않았소이까? 그까짓 수 천명의 군사가 죽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지금 눈앞에 있다고 말이오.
복지겸 ........
종간 오늘 폐하께서 조회를 겸하여 죄인들에 대한 친국을 여신다고 하셨소이다. 그 결과를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하십시다.
복지겸 알겠사옵니다, 내원어른.
씬 동 대전
궁예가 생각에 잠겨 있다. 황후 연화가 그런 궁예를 보며 말한다.
연화 폐하, 환후는 어떠하시옵니까?
궁예 보시다 싶이, 이제 괜찮소이다.
연화 많이 걱정했사옵니다. 참으로 이렇게 일어나시니,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이만한 다행이 없사옵니다.
궁예 고맙구료.
연화 금강산에서 온 설부라는 도인이 폐하를 살리셨사옵니다. 그 도인을 찾아 후한 상급이라도 내려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그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그냥 놓아두시구료. 진정으로 도를 아는 자들은 속세의 상급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법이외다.
연화 하지만.......
궁예 그것보다도 이보시오, 황후.
연화 예, 폐하.
궁예 내가 만약에 죽었더라면, 황후는 어찌하려고 했소?
연화 .....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궁예 허허, 그냥 해본 소리오. (한숨을 지으며) 나는 말이오, 지난 번 내원에게도 이야기를 하였소이다만은 한참 동안 저승을 헤매고 다녀온 사람이오. 죽었다가 깨어나보니, 정말로 세상이 달리 보입디다.
연화 어떻게....... 말이옵니까?
궁예 모두가 사악한 것들 투성이오. 나는 저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는데, 저들은 그것을 잊고 있어요. 나는 은혜로써 저들을 대했는데, 저들은 악으로써 나를 대하더라 이 말이오.
연화 .........?
궁예 나는 저 끝없는 북방의 대륙의 제국을 꿈꾸고 있는데, 이 소인배들은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 헐뜯고 자신들의 밥 그릇만 찾을 생각을 하더라 이말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오이까?
연화 이해가..... 갈 것 같사옵니다.
궁예 이래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소이다. 나는 뼈저리게 느꼈소이다. 그리고, 너무도 무섭고 공포스럽다는 것을 알았소이다.
연화 무엇이 말이옵니까, 폐하?
궁예 죽음 말이오, 죽음을 경험하고 보니 세상이 너무 짧고 허망하다는 것을 느꼈소이다. 이 세상에 나왔으면, 그 허망함을 깨고 진정한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오. 나는 그것을 이루고자 몸부림치는데 저들이 따르지를 않고 있어요. 이제 그것을 보여주려하오.
연화 어떻게 말이옵니까?
궁예 세월이 가게 되면서 아시게 될 것이오. 사람들은 금방 나의 뜻을 알고 따르게 될 것이오. 길은 그것 밖에 없어....그것 밖에.......
연화 .............?
대전내관 (E) 폐하, 대소신료들이 모두 조당에 모였사옵니다.
궁예 조당이 아니다. 그들을 모두 의형대로 오라 하라. 죄인을 먼저 친국하고, 조회를 열 것이니라.
대전내관 (E) 예, 폐하.
궁예 대역죄인들을 친국하러 가야 하겠소이다. 기왕이면 황후도 같이 가시구료. 볼 만 할 것이외다.
연화 국사를 논하는 자리이옵니다. 어찌 신첩이.......
궁예 내 사랑하는 아우, 왕건이가 죄인이 되어 있는 자리이올시다. 볼 만하지 않겠소이까? 함께 가십시다, 황후.허허허.......
씬 의형대 옥사
옥사 문이 열리면, 옥졸들이 장일의 지시하에 죄인들을 끌어 내고 있다.
장일 죄인들을 모두 끌어내라. 어서!
왕건과 왕평달, 아지태, 두 사부가 줄줄이 옥사 문을 나선다. 그러나, 모두 묶이지는 않았다.
아지태 (끌려 나가며) 폐하께서 친국을 하시는가? 그러신가?
장일 나가보면 알 일 아니오. 어서가시오.
왕건은 심호흡을 한 번 하다가는 그렇게 묵묵히 따라간다.
씬 그 다른 옥사
그곳에서도 낭인들의 한 패가 끌려 오고 있다. 그들이 귓속말로 속삭인다.
낭인1 궁예가 산 모양이다. 직접 친국을 한다는 구나.
낭인2 궁예가 살았다면, 우리를...... 죽...죽일 것이 아니옵니까?
낭인1 그럼, 살기를 바랬느냐? 억울하구나. 궁예 놈이 살다니.... 그 땡초 놈이 살다니.....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낭인2 우리를 고문을 하다가 죽이겠습지요?
낭인1 너는 왜 그리 죽고 사는데 애착이 많으냐? 내 말대로 하거라. 궁예 놈이 살았다 하더라도, 이 조정을 휘휘 저어 버리는 것이다. 왕건이를 죽이고, 아지태를 죽이고, 그렇다면 절반은 성공을 한 것이야. 내 말 알겠느냐?
낭인2 그...그렇기는 하지만 서도.......
그들 그렇게 사라져 가면.....디졸브 되면서......
씬 의형대
대소신료들이 가득히 모여 있다. 종간, 은부, 박유, 염상, 금대, 장일과 더불어 유장자, 강장자, 복지겸, 왕식렴, 박지윤과 그 아들들 등 많은 신료들이 모여 있고, 궁예가 옥좌에 앉아 있다. 연화도 그 옆에 앉았고, 내관과 상궁들도 가득히 그 주변에 섰다. 그리고, 죄인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궁예 네 놈들이 나를 죽이려 했던 놈들이구나?
낭인1 그렇다, 이 애꾸놈아! 아직도 살아 있다니 참으로 목숨이 질기구나.
궁예 허허허. 나는 미륵이니라. 누가 나를 죽일 수 있단 말이냐? 미륵은 죽지 않는다.
낭인1 시끄럽다. 어서 우리를 죽여라.
궁예 걱정 말거라. 곧 죽여 줄 것이다. 그러나, 사는 길도 있다. 너희들 중 누구라도 이 사건의 전말을 바른 대로 말하는 자 있거든 살려 줄 것이니라.
낭인들 ............?
궁예 나는 미륵이다. 나의 관심법으로 보면, 누구도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느니. 자, 내가 입정에 들 터이니 대답할 준비를 하거라. 내가 너희들 마음을 곧 보겠노라.
궁예는 눈을 감는다. 신료들이 웅성거리며 보고 있다. 무릎 꿇은 왕건을 연화가 안쓰러운 듯 보다가 외면한다. 낭인1은 눈을 감고 있고, 낭인2의 표정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씬 그 곳
낭인2 (낭인1에게 속삭인다) 바른 대로 말하면, 살수 있다 하옵니다.
낭인1 못난 소리. 중심을 잡아라.
낭인2 하지만, 살려 준다 하옵니다....
궁예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그러다, 한 참 만에 눈을 번쩍 뜬다. 신료들의 면면이 모두 왕건의 일행들을 보고 있다. 궁예가 다시 말한다.
궁예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전선에 있어야 할 장수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왕건 폐하의 시해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아옵니다. 아마도 신이 오해를 받자와 이리 된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왜 오해 받을 짓을 하였는가?
모두들 .........
궁예 왜 그리 되었어?
종간 ...........
왕건 모두가 신의 불찰이옵니다. 용서하여 주시오소서, 폐하.
왕평달 모함이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옵니다. 폐하, 살펴 헤아려 주시오소서.
종간 이미 죄상이 다 드러났도다. 무엇을 살펴 헤아린단 말인가? 죄인들은 닥치지 못할까?
아지태 드러난 것이 무엇이오이까? 이 사람들이야 예언이니 뭐니 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이 아지태의 죄는 무엇이오이까?
종간 폐하께서 해를 입으시도록 한 것은 철원 공역을 책임진 그대의 죄이니라. 네 어찌 뻔뻔하게 그리 물을 수 있단 말인가?
아지태 허허허.... 폐하께 충성을 드리는 것도 죄라면 그야 어찌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원어른의 억지이외다.
종간 닥치지 못할까...........? 폐하, 어서 저들의 죄를 물으시오소서.
궁예 (낭인들에게) 자, 나의 관심법으로 그대들을 다 보았도다. 말하거라. 누가 시켜서 그리 하였느냐?
낭인1 여기 있는 장자 왕평달이 시켰다.
왕평달 네 이놈... 어떻게 그런 억지를 계속 부린단 말이냐?
낭인1 사실이오. 그렇게 하지 않았소이까? 나를 보고 저 애꾸눈 궁예를 죽이라고 말이오. 그리해야 여기 왕건 장군이 황제가 된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변사부 네 이놈... 도대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리하느냐?
모두들 ...........(술렁거리고)........
궁예 조용들 하지 못할꼬?
그러자, 좌중이 모두 조용해진다. 궁예가 천천히 일어나 옥좌를 내려가 낭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훑어 본다. 그리고, 히죽히죽 웃는다.
궁예 나는 분명히 관심법으로 너희들을 보았다 하였다. 그리고, 살 길도 일러 주었다. 헌데, 너희들이 살고 싶어 하지 않으니, 딱한 일이로다. 이봐라, 금부장.
금대 예, 폐하.
궁예 그 철퇴를 이리 가져오너라.
금대 예, 폐하.
금대가 철퇴를 들고 와 그 앞에 선다. 모두 긴장이 감돈다. 낭인1은 담담하고, 낭인2는 겁을 먹었고, 세번째의 낭인도 떨고 있다.
궁예 누구냐? 누가 보냈느냐?
낭인1 장자 왕평달이 시켰다 하였다.
궁예 (미소지으며 낭인2에게) 누가 시켰느냐?
낭인2 그것은 저..... 저.......
궁예 (다시 낭인3에게) 누구냐?
낭인3 (입을 앙 다물며) 왕평달 장자요.
궁예 왕평달이라...... (주변을 휘 둘러보고 나서) 금부장.
금대 예, 폐하.
궁예 길게 갈 것도 없다. 이 놈부터 철퇴로 쳐죽여라. 어서!
금대 예, 폐하.
금대가 낭인3 앞으로 다가가 철퇴를 두어 번 돌리다가는 그대로 내려친다. 비명 소리를 지르며 낭인3이 피를 내뿜는다.
궁예 계속 쳐라!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쳐라!
금대는 대답하며, 피투성이의 낭인3을 계속 내려친다. 신료들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선혈이 낭자하다. 낭인3은 그렇게 절명하였다. 궁예가 다시 낭인2에게 다가간다.
궁예 나는 관심법으로 다 보았다고 하였어. 누가 시켰느냐?
낭인2 바른 대로 말하겠사옵니다. 그것은 저.....
낭인1 아니된다. 입을 닫지 못할까?
궁예 저 놈도 때려 죽여라.
금대 예, 폐하.
그대로 철퇴가 다시 날아 간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낭인1은 단 두번의 철퇴에 숨이 끊어지며 말한다.
낭인1 안돼......말하면........ 안돼.......... (절명한다)
궁예 (다가가며) 자, 말하겠느냐?
낭인2 저희는 백제국에서 왔사옵니다. 그곳에서 파진찬 최승우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사옵니다. 왕평달 장자라는 말은 다 거짓이옵니다.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종간 .........(눈을 감는다)
궁예 친국은 끝났느니라. 이 자를 살려 보내라.
궁예는 다시 천천히 걸어와 옥좌에 앉는다. 연화도 또 강장자와 신료들도 모두 얼어 붙었다. 궁예의 표정은 냉혈 그 자체이다.
궁예 이렇게 간단한 것인데, 내원은 몰랐던 모양이구료?
종간 ..........
은부 ............
궁예 이제 갓난 아이인 어린 것들을 태자라고 하여 보위 문제를 논하였다든가? 이보시오, 장인어른.
강장자 (덜덜 떨며) 예, 폐...폐....폐하.....
궁예 장인어른도 아마 어린 태자를 빙자하여 이 옥좌에 앉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강장자 어인 말씀이시옵니다까, 신은 그저......신은 그저........
궁예 그리고, 이보시오, 왕장자.
왕평달 예, 폐하.
궁예 물론 조카를 황제 자리에 앉히고 싶겠지. 그러나, 황제 자리는 그런 것이 아니오. 그대들이 계속해 의심을 받는 것은 욕심 때문이오. 그대를 살려두면 계속해 의심을 받게 되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왕평달 .........
궁예 또, 내가 누워 있을 때 사람들은 병부령에게 달려갔다 들었는데..왜 그랬을꼬? 아마도 군사들의 힘을 빌리려 했던 거 같은데......과연, 그렇소이까, 병부령?
복지겸 폐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굽어 살피어주시오소서. 추호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나는 관심법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다 읽고 있어. 앞으로는 나를 속이지 말라. 내가 노여워 할 것이고, 또 철퇴를 들을 수 있느니라.
모두들 .........
궁예 경들은 모두 들으라.
모두들 예......
궁예 오늘의 이 일은 시작에 불과하니라. 앞으로 누구든 다른 뜻을 품거나 나를 속이는 자가 있거든 이 철퇴가 그 답을 보내 줄 것이야. 명심들 하라.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아지태는 죄가 없다 방면하라, 장군 왕건도 방면하라. 그리고, 계속해 오해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여기 장자 왕평달과 관련자인 두 사부는 내일 중으로 삼백리 밖의 외딴 섬으로 부처하여 다시는 뭍으로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번 친국과 조회는 이것으로 끝낼 것이니라.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들을 보는 궁예의 그 표정에서........
씬 황궁 외경(밤)
씬 동 대전
궁예가 박유를 보고 있다.
궁예 박학사, 그대가 금강산 도인을 데리고 왔다 하였는가?
박유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대는 나를 은연 중 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고마운 일이로고.
박유 신하 된 자가 그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어찌 고맙다 하시옵니까?
궁예 그대는 내원을 도와 많은 조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이번에 내원은 너무도 드러나게 일을 처리하였어. 과연 그리해서 이 나라에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이었는가?
박유 .........
궁예 모두들 제 생각만 하고 있단 말이야. 그대가 진정 이 나라를 생각하고 또한 내원 그 사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나의 생각을 잘 전해주게나.
박유 예, 폐하.
궁예 그리고, 온 조정의 뜻이 하나로 모일 때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야. 헌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해. 그래서 내가 나선 것일야. 그 점도 잘 일러주게.
박유 하오나, 폐하... 강한 것은 언젠가 부러지는 것이옵니다. 강온을 두루 잘 조화하여 신료들을 이끌어 나가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말게. 다 부질없는 짓이니까......그리고, 되도록이면 기회를 만들어 내 아우 왕장군과 내원 그 사람을 화해시키도록 해주게나. 자네가 가장 그 적임인 것 같으이.
박유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신이 노력해 보겠사옵니다.
궁예 빨리 환도를 해야 겠어. 이 송악을 떠나고 싶어....... 그만 가보게나.
박유 예, 폐하..하오면.....
박유가 예를 올리고 나간다. 궁예는 다시 단정히 앉아 염주를 굴리며 자신이 지은 경전을 본다. 그는 여전히 승려 그대로인 것이다.
씬 황후전
연화가 몸서리를 친다. 슬이가 보고 있다.
연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구나. 지금도 온 몸이 떨리는 구나. 어떻게 그렇게 눈 앞에 깜짝 아니하시고, 사람을 쳐 죽일 수가 있단 말이냐?
슬이 마마, 죄인들을 다루는 국문장이옵니다. 그리하실 수도 있사옵니다.
연화 아무리 그렇다해도......폐하께서 그리하시다니...믿어지지가 않아.
슬이 하지만, 마마 얼마나 명쾌하게 일을 처리하셨사옵니까?
연화 무엇이 말이냐?
슬이 물론 우리가 믿고는 있었지만, 폐하께서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진실을 가려 내시고, 왕장군을 구해주셨사옵니다.
연화 그거야 그렇다만은.... 슬이야.
슬이 예, 마마.
연화 폐하의 용안이 옛날과는 아주 다른 분 같아 보였다. 너는 그리 생각지 않느냐?
슬이 .소인도 그런 생각이...... 들었사옵니다만은.....
연화 달라지셨다. 폐하께서는 아주 달라지셨어.
도리질을 하는 연화의 표정에서.......
씬 송악 왕건의 집 사랑
왕건과 왕평달 두 사부, 그리고 오씨와 유씨이 모여 있다. 왕식렴 형제도 함께 해 있다.
왕건 죄 없이 먼 길을 떠나시게 되었사옵니다. 너무도 안타깝사옵니다, 숙부님.
왕평달 그래도, 우리는 목숨을 구했네. 이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왕건 두 분 사부님도 그렇게 먼 섬으로 가게 되셨으니, 가슴이 아프옵니다.
마사부 아니옵니다, 주군. 제대로 주군을 보필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참으로 죄스럽기 그지 없사옵니다.
변사부 그러하옵니다, 주군. 앞으로 왕씨 가문은 주군에 의해 모든 것이 달려있사옵니다. 부디, 자중자애하시어 큰 뜻을 이루시오소서.
왕평달 나는 비록 이렇게 떠나지만, 조카를 믿네. 그리고, 비록 폐하께서도 이야기를 하셨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게 있네. 나는 조카가 옥좌에 앉는 모습을 보고 싶으이.
모두들 .............
왕평달 사실이야. 그것이 우리 가문의 뜻이고, 돌아가신 형님의 뜻이셨어.
왕건 숙부님, 어인 말씀을...........
오씨 숙부님의 말씀이시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이라고 하셨사옵니다. 서방님, 숙연히 경청하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모두들 ......?
유씨 소첩도 아우님의 말이 지당하다 여겨지옵니다. 부디 큰 뜻을 세우시오소서.
왕건 .........
왕식렴 계속해 사양하고, 인내 하고, 또 충성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옵니다. 비록 이번에는 실패하였지만, 내원 그 사람은 계속해 함정을 파고 우리를 쫓을 것이옵니다.
왕건 불사이군이니라. 나는 이미 폐하를 주인으로 모셨다. 충성을 다하는 것이 나의 본분이니라. 숙부님도 그리 생각하시오소서.
왕평달 지금은 그리 말을 하지만, 머지 않아 나의 뜻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일세. 자, 우리는 아침이면 떠나야 하네. 지금부터는 주군의 예로써 인사를 올리고 싶으이. 자, 주군. 절 받으시오소서.
왕건 (당황하며) 숙부님.........
그러나, 이미 왕평달은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두사부도 엎드리고, 왕건은 맞절을 한다. 모두들 숙연하게 보고 있다.
왕평달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옵니다, 주군. 큰 뜻을 저버리지 마시오소서. 아버님께서 세우신 큰 원을 잊지마시오소서. 가문의 의지를 기억하시오소서.
왕건 숙부님........
그런 숙질간의 표정에서.......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 밖을 보면......
씬 동 집 마당
장수장의 수하들이 대문을 열면, 그곳에 박유가 서있다. 장수장이 보고 있다.
박유 나는 박유라는 사람이외다. 왕장군께서 볼 일이 좀 있어서 왔소이다.
장수장 어인 일로 오셨사옵니까?
박유 허허허. 뭐 그리 나쁜 일은 아니외다. 이 삼일 안으로 함께 폐하께 들어가 차라도 한 잔 하자는 이야기를 전하러 왔소이다. 허허...
장수장 안으로 드시오소서.
박유가 그렇게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면.....
씬 정주 유장자의 집 사랑
박지윤과 두 아들, 유장자, 장자1,2, 복지겸 들이 모여 있다.
박지윤 대단했소이다. 이 사람은 온 몸이 떨려서 도저히 친국 현장을 볼 수가 없었소이다. 지금도 떨려요.
복지겸 폐하께서는 달라지셨사옵니다.
장자1 헌데, 그 관심법 말입니다. 정말로 폐하께서는 그 관심법이라는 것으로 사람들 볼 줄 아시는 모양이옵니다. 아, 그러니까 저들이 술술 불지 않사옵니까?
장자2 놀라운 일이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일을 끝내시는지...
유장자 일에 결과는 잘 된 거 같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올시다.
박지윤 걱정이라니요?
유장자 폐하께서 피를 보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어찌 걱정이 아니겠습니까? 전장터도 아닌 황궁 안에서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하실 수 있는데도 피를 보셨다 이 말이올시다.
모두들 ..............
유장자 이것은 경고올시다. 너희들은 잘해라. 아니면, 죽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올시다. 못 느끼셨소이까?
모두들 .........(그제서야 끄떡인다)
유장자 또 있소이다. 예전의 폐하께서는 신료들을 대하실 때 늘 경어를 써오셨소이다. 헌데, 그 친국 현장에서는 어떠하셨소이까?
박지윤 정말 그렇소이다. 처음에는 그리 하시다가, 나중에는...... 모두 하대를 하신 것 같아요. 정말 그리 하셨어요.
유장자 뭔가 불길하고도 무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소이다. 그 관심법이라는 것......... 아마도, 앞으로 그것에 걸려서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것 같소이다.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씬 황궁 내원 외경
씬 동 내원 안
종간과 은부, 염상이 모여 있다.
은부 오늘 일을 어찌 보시옵니까, 내원어른?
종간 .........
염상 그동안 오래 폐하를 뫼셔왔사오나, 그렇게 눈하나 꿈쩍 안하시고 피를 보시는 것은 처음 보았사옵니다.
종간 결국은 보이지 않는 매에 의해서 나도 철퇴를 맞은 것일세.
은부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종간 왕건일가를 살려 주셨어. 아지태도.... 내가 그토록 간청을 드렸는데도, 그들을 살려 놓으셨어. 도대체, 어찌 하라는 말씀이신가? 이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시면서 이 종간이보고 어찌 하라는 말씀이신가?
은부 조금 전에 박학사가 연락을 취해왔사옵니다. 내일 왕장군이 대전으로 들 것이니, 함께 차라도 하시자구요.
종간 (눈을 감으며) 폐하께서 일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계셔.... 다시는 이번 같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일세. 참으로 원통한 일일세. 다 해결할 수 있었는데.......
씬 송악 저자거리(낮)
왕건과 박유가 함께 가고 있다.
박유 왕장군, 왕장자께서는 떠나셨소이까?
왕건 예, 아침나절에 두 사부님과 가셨사옵니다.
박유 참으로 애석한 일이올시다.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 분들인데...
왕건 폐하의 영이시니 어찌 하겠습니까?
박유 실은 왕장군이 대전에 들어가시면 내원어른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왕건 ........
박유 폐하께서는 두 분 사이를 아주 괴로워하시는 것 같았소이다. 두 분만 뜻을 합치면 정말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인데...
왕건은 대답이 없다. 그들 그렇게 황궁 쪽으로 가면....
씬 황궁 대전 복도
궁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대전 안
궁예가 박유를 중심으로 종간과 왕건을 나누어 앉히고 술을 들고 있다. 제법 안주도 풍성하다.
궁예 내원은 지금도 곡차를 하지 않으시오?
종간 예, 폐하. 아직도 배우지를 못하였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구먼. 모름지기 사내란 술을 해야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내원은 매사가 조심스럽고, 또 여유가 적은 것이오. 술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넉넉하거든. 아, 술독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자, 왕장군 한 잔 받게.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받으며) 신이 한 잔 올리오리까?
궁예 암, 암.... 아우가 주는 술을 받아야지.(받으며) 그보다도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병부령이 올린 장계를 보았네. 상주전선이 무너졌다더군.
왕건 신도 이곳에 오면서 알게되었사옵니다. 모두가 신의 잘못이옵니다.
종간 ..........
궁예 전쟁이란 한 번 무너지게 되면, 연이어 상처를 입게 되어 있는 법이야. 너무도 안타까워. 환장군 그 사람에게 총사를 맡기다니..... 환장군이 어디 머리가 있어야 말이지....이번 일은 어쩔 수가 없어. 그쯤에서 전선을 유지할 수밖에.... 자, 박학사도 한 잔 하시구료.
박유 소신도 술을 못하옵니다.
궁예 에잉, 이래가지고서야.... 원.... 자, 마시세, 아우. 두 사람은 차를 들고.
모두들 예, 폐하.
그들 술과 차를 마신다. 궁예가 술을 마시며 말한다.
궁예 왕장군, 왕장자는 떠났는가?
왕건 예, 폐하.
궁예 참으로 안되었어. 앞으로는 그런 불행이 없어야 할텐데. 내가 관심법으로 보니 왕장자는 여기 내원의 의심을 받을만 하였어. 아니그런가, 아우?
왕건 폐하께오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아마도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이런 아우는 이래서 좋단 말이야. 사람이 솔직해서 좋아. 이보시오,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부탁이오. 제발 왕건 아우와 잘 지내주시구료. 두 사람의 불화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겠소이까?
종간 ........
궁예 나는 일찍이 도를 깨친 사람이오. 그리고 나의 관심법은 사실이외다. 나는 다 알수 있고, 볼 수 있소이다. 그대들은 정직하고 충성스러워요. 허지만, 내원께서는 너무 강직하고 경직되셨소이다. 또, 왕건 아우는 몸을 굽혀 내원의 의심을 풀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 같아. 두 사람은 모두 나의 왼팔과 오른팔이오. 갈 길이 멀어요. 너무 절박해. 절박하단 말이야. 오늘 부른 뜻을 아시겠소이까, 내원?
종간 예, 폐하.
궁예 알겠는가,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어느덧 내 나이가 사십이 다되었어. 시간이 없어. 제국의 꿈은 절실한데 시간이 없단 말이야. 시간이....
모두들 ..........
궁예 내원은 곧 천도를 준비해주시오. 그리고, 아우는 다시 전선으로 가게.
두사람 예, 폐하.
궁예 언제 이 삼한을 통일하고 또 언제 저 대륙을 도모한단 말인가? 갈 길은 먼데 언제까지 집안 단속만 하고 있으란 말인가? 언제까지.....
그런 궁예의 절박하고 답답한 표정에서...
씬 충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풀이 죽은 환선길, 이흔암, 부상을 당한 김락, 그리고 홍유, 배현경, 유금필, 능산, 박술희 등이 모여 있다.
환선길 조령도 죽령도 모두 빼앗겼소이다. 우리 마진국이 지금껏 이런 참패는 없었소이다.
이흔암 상대는 견훤왕이었소이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군사도 우리보다 많았고요.
배현경 그러나, 총사께서 처음부터 치밀한 작전을 세워야 했소이다. 완전히 우리가 농락을 당한 꼴이 되었소이다.
김락 그건 그렇소이다. 우리는 군사의 대부분을 다 잃어 버렸소이다.
홍유 이제와서 지난 일을 이야기해봐야 무얼하겠소이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죽령 쪽은 그나마 고창군이 아직 아군의 수중에 남아 있는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허나, 이미 조령도 빼앗기고 이 충주도 언제 견훤왕의 대군이 몰려올지 모릅니다.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이흔암 무슨 대비? 군사가 있어야지?.......
유금필 곧 조정에서 무슨 지시가 내려 오지 않겠습니까? 하회를 기다려보시지요.
박술희 조정에 영이 내려오기 전에 견훤왕이 조령을 넘어서 이곳으로 온다면 문제가 아니겠소이까? 무엇으로 그를 막겠소이까?
능산 그건 그렇지가 않네. 견훤왕이 이곳까지 오려면 중간에 사불성에 있는 아자개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어렵네. 워낙 길이 험하고 먼 거리이기 때문일세. 허나, 그것이 쉽지가 않을 것이야.
환선길 옳거니. 허허허..... 나도 알고 있소이다. 그 부자간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다지요?
이흔암 아무리 그래도 그들 부자는 같은 편이고 우리는 적이올시다. 사이가 나쁘다 한들 그렇게까지야 되겠소이까?
유금필 아니올시다. 일단은 기다려 볼 필요가 있소이다. 지금까지로 보아서는 이렇다 저렇다 속단할 수가 없소이다. 두 사람 사이는 참으로 미묘하니까 말입니다.
그 위로 낄낄 거리는 아자개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씬 사불성 외경
아자개 (E) 하하하, 뭐라고? 견훤이가 조령을 넘지 못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씬 동 성 안
아자개가 배를 쥐고 웃는다. 능애와 신검이 와있다.
아자개 왜, 지들끼리 넘어보라고 그러지? 조령 산맥이 무슨 시시한
야산에 고갯마루인 줄 알았나보지? 하늘 아래 그렇게 높은 재가 또 어디있다고?
계모 그러게 말이옵니다. 호호호... 견훤이가 도움을 청하다니,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으리.
아자개 왜 아니겠소이까? 암, 그럴테지...조령으로 넘어서 충주로 가자면, 군수품도 많이 필요할 것이고, 중간에 군사도 충원을 해야 하고 그럴만한 기지가 필요하거든. 이 근처에 우리 사불성만한 데가 또 있나?
신검 할바마마, 저희 대 백제군은 이미 죽령 일대를 모두 평정하였사옵고, 적의 수급을 수천이나 베었사옵니다. 아버님께오서는 이제 조령을 넘어 충주로 가시려 하옵니다, 도와주시오소서.
능애 그러하옵니다, 아버님. 모두가 아버님이 계시는 이곳의 평안과 백제군의 훗날을 위한 일이옵니다. 부모와 자식간이 아니옵니까? 도와주시오소서. 사불성의 도움이 있어야 빠른 시일에 조령을 넘을 수가 있사옵니다. 적군은 지금 지리멸렬이옵니다. 지금이 기회 중 기회이옵니다. 사불성을 빌리게 하여주오소서.
아자개 일 없다. 그런 소리 말거라. 여기가 무슨 주막집인줄 아느냐? 빌려주고 말고 하게.... 니들끼리 한 싸움이니, 니들 끼리 해결을 하거라. 먼 거리를 와서 그대로 조령을 넘어가든지.... 아니면, 그만두던지.
신검 할바마마.......할바마마........
아자개 이놈아 귀청 떨어지겠다. 왜 그렇게 불러 대느냐?
신검 할바마마께오서 이리하시오면 저희 손주들이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이제 그만 하시옵고, 아버님과 웃으며 지내시오소서. 소손의 간청이옵니다, 할바마마.
아자개 나는 말이다. 오래 전에 일찍부터 너의 아버지와 관계를 끊은 사람이다. 그놈이 내 곁을 떠날 때, 얼마나 오지게 하고 갔는 줄 아느냐? 성까지 바꾼 놈이다. 그 놈이... 볼 일 없다. 나가거라. 도움이고 뭐고, 다 귀찮으니 어서 가거라.
신검 할바마마...... 아무리 그래도 혈연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이옵니다. 살펴 헤아려주시오소서.
계모 아, 헤아릴 것도 없다고 하시잖아. 그만 가보라고 하는데 그러네...
능애 아바마마....
아자개 피곤하다. 난 니들만 오면 피곤해. (눈을 감고 기대며) 졸립구나. 그저 이럴 때 박술희라도 있으면 재미가 있을 터인데....
대주 아버님, 지금이 농담하실 때이옵니까? 오라버님을 도와주시오소서.
아자개 졸립다는데 그러는구나.
대주 아버님......
아자개는 대답이 없다. 어느새 코를 골고 있는 것이다.
씬 죽령 예천성
견훤이 최승우와 함께 먼 들판을 보고 있다. 그리고, 쓸쓸히 웃는다.
견훤 이보게, 파진찬.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우리 태자와 내 아우 능애가 사불성으로 갔네. 허지만, 나는 그 결과를 알고 있어. 아마도 어려울 것이야.
최승우 그리 생각하시니 소신을 그나마 안심이 되옵니다. 사실 그것이 문안인사차 보낸 것이지, 어디 꼭 사불성의 도움을 얻고자 한 것이옵니까?
견훤 파진찬이 그리 생각하니, 다행일세.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스럽네. 내 비록 일국의 황제가 되었으나, 아버님의 일만은 어쩔 수가 없으니.....
최승우 그럴수록 더욱 더 기회와 이유를 만드시어 가까이 하시오소서. 열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하였사옵고, 낙숫물에 바위구멍이 뚫린다 하였사옵니다.
견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발목을 잡히니, 답답해서 해 본 소리요.
최승우 허허허.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은 대 성공이옵니다. 지금 장군 김총과 추허조가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일선군 이남의 십여 군현을 모조리 공략하고 있다고 장계를 올려 왔사옵니다.
견훤 나도 보았네. 참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야.
최승우 이쯤에서 전선을 정리하시고, 황도로 돌아가시오소서. 거기서 다시 계획하실 일이 많으실 것이옵니다.
견훤 그리하세나. 하하하.......이번에 궁예왕이 아주 혼줄이 났을게야.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 뻔하였는 데다가, 이곳 조령과 죽령 일대도 다 무너졌어.
최승우 어디 그 뿐이옵니까? 왕건 장군이 소환되어 가 있사옵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이 일대를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그것도 큰 성과이옵니다.
견훤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려. 허허허.... 참으로 이번만은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것 같으이. 암.....
씬 송악 왕건의 집 사랑
왕건이 모든 가솔 들을 모아 놓고 있다.
왕건 폐하의 영이 떨어지셨소이다. 내일이면 환도를 단행하게 될 것이오. 나는 곧 전선으로 갔다가 그곳을 안정시킨 후에 돌아오게 되오.
오씨 알고 있사옵니다.
유씨 그럼.... 언제쯤 돌아오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그것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그리 오래 있지는 않을 것이오. 두 부인께서도 내가 이야기 했듯이 철원으로 가게 될 것이오.
유씨 우리들이 왜 철원으로 가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왕건 이 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모든 신료들은 다 의무적으로 가는 것이오. 이보게, 신 아우.
왕신 예, 형님.
왕건 식렴 아우도 광평성의 벼슬을 하고 있으니, 철원으로 가야 하네. 이제 이곳 송악은 아우가 맡아서 운영해야 할 것이야.
왕신 짐이 무겁사오나, 노력해보겠사옵니다.
오씨 서방님, 결국 서방님께서는 이 송악을 되찾으셨사옵니다. 아니그렇사옵니까?
왕건 그게 또 무슨 말씀이시오, 부인?
오씨 몰라서 물으시옵니까? 이곳에 황도를 지으신 분은 바로 서방님이시옵니다. 폐하께오서는 철원으로 가시고, 이 엄청난 궁궐이 서 있는 송악은 옛 주인이신 서방님께 다시 돌아왔사옵니다.
모두들 ..........?
오씨 이러니 도선대사의 예언이 어찌 거짓이라고만 할 수 있겠사옵니까? 송악의 황궁이 서방님께 저절로 돌아오지 않았사옵니까?
왕건 어, 허..부인. 그 무슨 무례한 말씀이오? 그만 하시구료. 농이 지나치시오이다.
오씨 송구하옵니다. 그저 해본 소리이옵니다.
왕건 자, 그러면 모두들 준비를 하도록 하게. 철원 일은 식렴 아우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이곳 일은 신이 아우가 잘 해주게나. 나는 곧 떠나야 하네.
두형제 알겠사옵니다, 형님.
왕건 천도라...(도리질 하며) 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아지태 한 사람이 들어와 나라에 너무도 큰 해악을 끼치는구나.
왕건은 그렇게 한숨을 쉰다. 그 얼굴에서.....
씬 길
환도길이다. 궁예와 연화를 비롯해 상궁 내관들과 이를 호위하는 내군들이 연도를 가득히 메우고 있다. 종간과 아지태, 박유를 비롯하여 전신료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수많은 군사들과 짐바리들도 끝없이 따른다. 카메라는 다시 철원으로 가고 있는 궁예의 표정을 보여주면서....
해설 철원환도. 궁예가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바꾸고 연호를 무태라고 한 지 일년 만인 서기 905년, 단기로는 3238년인 그 해 7월, 궁예는 드디어 철원의 축성을 끝내고 거국적인 환도 길에 올랐다. 그리고, 이후, 숨어 있던 그의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야심..... 그랬다. 그것은 야심이 아니라, 삼한의 통일과 대륙의 꿈을 향한 궁예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때부터 궁예의 폭정이 기록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76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