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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주일설교 예수님의 장례식
본문: 누가복음23:50-56
제목: 예수님의 장례식
오늘은 누가복음23:50-56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장례식”
여러분은 최근에 장례식에 다녀오셨습니까?
누구의 장례식이었습니까?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생각을 하였습니까?
저는 지난 주일에 아주대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언젠가 저희교회에 오셔서 설교해 주셨던
수원북부교회 원로목사님이셨던
고창덕 목사님이 장례식장이었습니다.
고창덕 목사님은 제가 만나는 동네목사회라는
5명의 모임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함께 발칸 지역의 선교사님을 돕는 포럼을 함께 하였고
그리스 여행도 함께 하였습니다.
저하고는 동갑이었고 2년 전에 먼저 조기 은퇴하셨습니다.
교회에서 사택과 차량 그리고 생활비와 병원비와
농어촌 지역 목회자들을 돕는 사역과
선교지를 돌아볼 수 있는 비용을 받으셔서
은퇴 후에도 지방으로 선교지로
활동을 왕성하게 하셨습니다.
한 일 년 정도 활동하시다가 몸이 안 좋으시다고
모임에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여름쯤 혈액암이 발병하셨다고
치료하시다가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셨고
그렇게 12월 21일에 소천 받으셨습니다.
부고장을 받게 되었는데
나이가 67세라는 부분에서 마음에 충격이 왔습니다.
제 나이가 67세이기에 그랬던 듯합니다.
물론 부모나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죽는 것도 보았습니다.
수많은 장례식에 참여하여
염도 돕고 관을 들기도 하고
여러 부분으로 경험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은 느낌은
죽음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영정사진을 준비하면 됩니까?
수의를 준비하면 됩니까?
유서를 써 놓으면 됩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저는 장례식을 볼 때 참 낭비적인 요소가 많음을 봅니다.
이번 장례식 때도 최소한
100개 이상의 화환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통로가 꽃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물론 꽃을 팔고 가꾸는 사람들에게는 좋지만
그 많은 것들이 낭비된다는 생각에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염을 할 때 쓰이는 수의입니다.
그리고 염을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염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무덤에 묻혀서 시신이 흩어지지 않고
잘 썩어 갈 수 있기에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꼭꼭 묶어야 했고
그것을 정성스럽게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죽으면 냉동고에 있다가
입관하고도 냉동고에 있다가
대부분 화장을 합니다.
그러면 일상복을 입든지,
수의로 꽁꽁 싸매든지 달라진 것은 없고
다 불태워져 한 줌이 흙이 되고 맙니다.
그저 전통이니, 하던 것이니 그냥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도 많은 돈을 들여서 그렇게 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분들이야
돈이 얼마나 들든지 해야겠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는 한번은 생각하고
나의 장례식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장례식은 어떠하였습니까?
1.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은 전혀 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제자들이나 가족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실 줄 몰랐습니다.
33세 이셨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잡히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그렇게 십자가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짧은 시간 안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56절은 보면 돌아가신 뒤에야
그저 몇 여인만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할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러 갔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갑자기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죽음의 길이었고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아시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제삼 일에 부활하여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과정을 받게 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듣지 않았고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반드시 죽는 길입니다.
죽음 후에는 주님을 만나는
영광의 길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알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길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원함 때문에 예수님은 죽어서는 안되고
영광의 자리 세상에 왕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거부하며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죽임 당하심을 아셨고
그 길을 항거하지 않고
그 길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차분하게 죽음으로 나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뭐라고 하든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든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준비한 장례식은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갔을 뿐입니다.
2.예수님의 장례식은 어떠했습니까?
십자가 형으로 죽은 죄수들은
매장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고 매우 존경받는 의원이었고
그래서 그의 발언은 기꺼이 관철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공회의 결의와 행사에 참여하거나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믿었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미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존귀하게 장례식을 치러드리기 위해
빌라도에게 가서 그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사형 당한 사람의 시체는
매장할 권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빌라도와 유대인과 사이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이 부탁한다고 해서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법과 상황을 넘어서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일은
참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먼저 그렇게 행하는 것은
예수님를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사실을
온 세상 그리고 산헤드린 앞에서
고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공개적으로
예수를 옹호하지 못했던 숨어있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산헤드린의 위협은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요셉의 심령과 생활이
한가지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 편에 버젓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무서워서 숨어들고 배반하였을 때
그는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빌라도는 요셉의 요청을 응답했을까요?
보통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은
여러 날이 지나야 죽게 됩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니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을 보내 예수님이 죽은지 오래냐고 묻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빌라도도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했지만
되어진 일을 보면서 그리고 요셉이 요청을 했을 때
상황을 보고 밀려서 응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장례식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이 죽으면 묻힐 묘에
예수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가 가져온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세마포로 예수님을 감쌌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사59:9에서 미리 예언한 말씀
“그는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라는
말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뭘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뭘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셨을 때
그의 장례식은 최고의 부자가 누릴 수 있는
장례식을 행하였습니다.
3.그렇다면 우리는 장례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것을 보고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은 그러합니다.
그저 수의를 준비하고 상조를 들고
묘 자리를 알아보면 될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무엇을 하셨습니까?
1) 사랑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기시기도 하셨고
나중에는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다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계속 말씀하고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이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딴 생각을 하고
예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심하게는 배신까지 하고 저주까지 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자들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요
또한 마지막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 안에 있지 않는 것이며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신 분이었기에
죽기까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이고
그분이 보내신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한다면
죽을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미워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2024년 마지막 주를 보내는 여러분 자신은
여러분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부분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잘못한 사람을 끝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 번째의 모습은
사람들을 끝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도 용서하셨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욕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용서하셨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까지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들을 벌할 수도 있고
함께 욕하고 조롱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을 써서 그들을 처벌하거나
혼내 줄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이 사용하신 것은 힘이 아니라
끝까지 용서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하였기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에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심판자가 되기를 원하고
처벌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못하고
어떻게 행동할까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큰 힘과 능력이 있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용서를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물론 힘든 일입니다.
용서는 그 사람의 죄를 내가 받아들이는
곧 같이 지고 가려는 마음입니다.
용서는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과 틀어진 관계가 회복되며
함께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고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행하셨습니다.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것이 죽음의 길이어도 그것이 고난의 길이어도
그것이 손해보는 일이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십자가를 질 수 있으며
어떻게 부활의 주님이 되어
영광의 자리로 가실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무당의 말을 따라 난리를 일으키는 자들이 있으며
아내의 말을 따라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자들이 있으며
사람들의 말을 따라 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승승장구하는 일로 보이지만
결국은 멸망이요 죽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사탄의 뜻을 따르는
어리석고 악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듯이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오늘 본문처럼 죽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고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만왕의 왕으로 모든 이의 경배를 받으실 분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죽음은ㅠ 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재산이 있다면 잘 정리하여 공평하게 상속해 주거나
선한 일에 사용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장례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녀들에게
유언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며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죽음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지금 용서하고 살아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다 용서했다면
여러분은 죽음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십니까?
그 일을 순종하여 행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죽음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나의 죽음은 오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죽음을 준비하여
주님을 따라 영광의 자리로 갈 수 있는
성도님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