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그가 던졌다. 악착같이 살아온 60평생을 내던졌다. 목숨과 맞바꾼 메모지 한 조각. 그게 삶과 맞바꿀 가치가 있었을까. 사회 밑바닥에서 상층부에 자리하기까지 어떻게 살아낸 인생인데….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하기까지, 그의 삶은 억척이었다. 대한건설협 부회장까지 지냈다. 이쯤 됐으면 성공한 삶이었다.
바닥에서 두레박을 타고 올랐으니 만족했으면 좋으련만…. 권력의 늪에 발을 디딘 게 비극이었다. 높이 오르면 호되게 떨어진다 했거늘, 그걸 몰랐음인가.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데, 그걸 몰랐을까. 뇌물인지, 정치자금인지, 사회에 환원했더라면. 내놓은 장학금이 300억 원이라 하니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은진수라고, '모래시계 검사'가 있었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뇌물로 받았다가 하루아침에 추락했다. 인재의 추락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전후좌우를 볼 때 성 전 회장은 나쁘지 않은 삶을 산 듯하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천 리를 달리는 준마도 험악한 산속에서는 너구리보다 못하다'. 그걸 알았다면 권력 언저리에서 몸을 망치지는 않았을 텐데….
중국 초나라에 화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형산에서 보석 원석을 캐어 여왕에게 바쳤으나 거짓을 아뢰었다 하여 왼다리를 잘린다. 다시 무왕이 즉위해 또 보석을 바쳤으나 이번엔 오른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당했다. 문왕이 즉위하자 형산에 올라 사흘 밤낮을 울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그의 말대로 돌을 가공하니 진귀한 보석이 되었다. '화씨의 벽'이라는 고사다. 진실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묻히긴 쉬우나 진실의 머리카락은 잘 보이지 않는 법. 죽음으로 대신한다 하여 진실의 문이 열리겠는가.
"모든 게 한순간 무너져 참담하다." 말 속에 속마음이 잘 담겨 있다. 조건 없이 도와줬는데 이럴 수 있느냐는 심경의 토로다. 개인적으로는 불운이다. '패밀리'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진골은 된다 여겼는데, 골품의 한계였나. 그 계층적 절망이 자리하고 있다. 스스로의 청원은 어디에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외톨이였다. 성공신화의 참담한 붕괴. 비극 속엔 늘 정치가, 권력이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웬 인터뷰이고, 메모 쪽지일까. 왜 하필 현 정부의 실세들만 골라 적시했을까. 정보를 종합하면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섭섭함이 담겨 있다. 충청의 칼이 충청의 아들을 벤 것도 아픔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줬는데 돌아온 게 칼날인가, 하는….
애당초 무리가 있었다. 이완구 총리가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건 지난달 12일. 그 다음 날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17일 대통령이 비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선언한 다음 날 경남기업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합동작전 펼치듯 하는 건 수사의 기본과는 동떨어져 있다.
검찰 수사와 성 전 회장의 자살까지는 22일이 걸렸다. 시간이 적잖게 소모됐다는 건 수사에 애로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성 전 회장은 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잘 되도록 다들 도와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어떻게 MB정부 피해자가 MB맨일 수 있느냐"고도 했다. 2007년 인수위 자문위원을 첫 회의 뒤 사퇴했으니 일리가 없지 않다.
2004년 이후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법적 책임은 경영인에 있다. 광물공사의 해외자원 개발에 수십 개 회사가 관여했는데 왜 경남기업만 타깃이냐.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을 다 털어도 없으니까 1조 원 분식회계를 했다. 변호사와 언론 전화통화에서 밝힌 말들이다. 사실이라면 먼지털이 수사, 가지치기 수사가 된다.
1999년 1월, 대전법조비리가 터졌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의 사무장이 사건 알선 등으로 수뢰한 법조계의 비리를 폭로한 것이다. 판검사, 경찰 등 연루된 사람만 무려 300여 명. 뇌물 받은 검사만 25명이었다. 뇌물 검사, 섹검, 브로커 검사란 신조어가 이때 나왔다.
'영원한 중수부장' 심재륜 대구고검장은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요구해 발칵 뒤집혔다. 그가 남긴 수사 10결은 '뼈대 있는 가르침'으로 남았다. '찌르되 비틀지 마라. 가지 치지 마라.' 수사 목적에 맞는 내용만 수사하고 별건수사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 성완종 리스트도 수사 목적이 자원외굔데 아들의 법인카드 사용까지 시비 거는 상황에서 불거진 부작용인 셈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엄정 수사를 약속하고 검찰은 수사팀까지 꾸렸다. 수사가 제대로 될까. 글쎄요다. 관심은 수사 결과가 아니다.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는 모양새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결과라면 파문은 오래 지속된다.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또 어쩌고. 세월호와 유병언, 자원비리와 성완종. 체면 구긴 검찰의 모양새가 닮았다. 웃는 건 전 정부요, 골치 아픈 건 현 정부다. 살아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난제만 남겨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검찰의 위상은 물론 정권의 명운이 이 사건에 달렸다. 신속하고 납득할 만한 수사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