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청년단 정함철 “깃발 들기 위해 왔다”
엉망 된 제주4.3추념식 행사장 앞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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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전 제주에서 영유아·노인 할 것 없이 제주도민 상대로 무차별적 학살극을 벌인 서북청년회의 정신을 잇는 ‘서북청년단’(서청)이 3일 제주4·3추념식에서 깃발을 들겠다고 행사장을 찾았다. 분노한 유족들의 거친 항의가 이어졌고, 행사장 앞은 추념식이 열리기도 전에 엉망이 됐다. 그런데도 서청은 적반하장으로 “역사 왜곡 말라”며 깃발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버텼다.
쌀을 더 많이 달라는 서청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끌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둔 제주4.3희생자유족회 감사가 직접 와서 “화해 자리를 주선해 볼 테니, 제발 지금 이곳에서 깃발 퍼포먼스만큼은 하지 말아 달라” 호소한 끝에, 그는 물러났다.
서북청년단 만나 설득하는 유족회 감사 ⓒ서북청년단 유튜브 채널 생중계 화면
엉망 된 75주년 4.3추념식 입구
“서청깃발 들려고 왔다”는 서청
서청에 아버지 잃은 유족, 호소
“화해자리 만들 테니 퍼포먼스 중단해 달라”
서청이 이날 오전 일찍 찾은 곳은 제주4.3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 앞이다. 앞서 서청은 지난 3월 23일 제주동부경찰서에 4월 3일 추념식이 열리는 공원 앞에서 오전 8시부터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추념식은 이날 오전 10시쯤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추념식이 열리기도 전에 공원 앞은 엉망이 됐다. 서청이 제주동부경찰서에 신고한 내용대로, 이날 오전 서청 차량이 공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추념식에 참여하기 위해 온 제주4.3 유족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살인마들이 여기가 어딘데 너희가 오느냐”라는 취지의 분노 어린 항의가 차를 둘러쌌다. 이 장면은 서청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됐다.
서청 정함철 씨는 창문을 내리고 유족들을 향해 “합리적으로 대화하자! 역사 왜곡 중단해!”라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도민들은 절규하며 달려들었다. “3만 명 죽인 놈들과 어떻게 합리적으로 대화를 해!!!”, “왜곡? (네가) 왜곡 중단해! 4.3왜곡을 중단해!!! …” 충돌을 막으려고 경찰이 차를 둘러싸 있었지만,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 보수단체인 서북청년단이 탄 차량이 집회를 위해 진입하자 4·3 단체 관계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제주도사진기자회) 2023.04.03. ⓒ뉴시스
경찰은 분노한 유족들을 겨우 막으며, 서청 정 씨에게 차를 빼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다. 하지만 서청 정 씨는 “저런 일당들에게 대한민국 공권력이 밀리면 대한민국이 뭔가?”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오히려 서청 집회를 할 수 있도록 몰려든 추념식 참석자들을 이격시키라고 요구했다.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공원 입구가 정리되지 않자, 경찰은 “(추념)식은 열어야 하지 않겠나, 차를 물려 달라”라고 재차 부탁했다. 이에 서청 정 씨는 “이 사람들이 방해하는 거지, 내가 방해하나?”라며 차를 빼지 않겠다고 버텼다. 계속되는 항의에, 서청 정 씨는 창문을 열고 “당신 민노총이지?”라고 분노를 자극했다. 또 이 장면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기자분들, 이건 아니잖아? 대한민국에 사상의 자유가 있다며? 자중시켜야 하는 것 아냐? 대한민국에서 김일성 만세 외쳐도 자유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잖아 이게 정상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에 뉴스 보고 왔는데, 이게 어디 화해와 상생이야? 왜 국민을 기만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이 살인자!!!”, “어디 4.3을 입에 담아!!!”, “사람 쳐 죽인 게 자랑이냐!!!” 등 분노해 절규하는 목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쏟아졌다.
4월 3일 제주4.3추념식 행사장을 찾아, 차량 안쪽에서 항의하는 주민들 찍으며 유튜브 생중계하는 서북청년단. ⓒ유튜브 채널 서북청년단 생중계 화면
정리가 안 되자, 박영수 제주4.3희생자유족회 감사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서청 차량에 탑승했다. 박 감사는 제주4.3 때 서청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다. 박 감사의 설명에 따르면, 박 감사의 아버지는 경로당에서 쌀 배급을 담당했는데 쌀을 과도하게 많이 달라는 서청 단원의 요구를 “주민들에게 줄 쌀이라 더 이상 못 준다”고 거절했다가 칠성통 서청 사무실로 끌려가 3일 동안 고문을 당하고 목포형무소로 수감된 후 행방불명됐다.
서청 정 씨는 박 감사를 만나 “(서청) 깃발을 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박 감사는 “나도 서청이라면 이가 갈리는 사람이다. 하지만 화해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 부분은 임원회의를 통해 검토해볼 수 있다. 화해를 위한 자리를 내가 주선하겠다”며, 이날 계획한 서청 깃발 퍼포먼스만큼은 미뤄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금 80세 넘은 어머니들이 다 덤벼든다는 것을 오지 말라고 제가 막고 있다”며 깃발을 화해도 없이 이 자리에서 들면 유족들이 참을 수가 없다고 설득했다.
서청 정 씨는 “서청 선배들 중 정말 그렇게 몰지각한 행동, 양민들 학살한 문제는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몇몇 행동으로 우리 서청 전부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제주4.3 학살극이 벌어진 때가 “건국 과정이었지 않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청 정 씨는 박 감사의 호소와 약속에 차를 행사장 입구에서 뺐다. 서청 차량이 행사장에서 멀어지는 과정에서도 분노한 도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