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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는 엄마 같은 절집이다. 가까우니 자주 찾아갈 수 있고, 북한산 응봉 아래 안긴 절의 모습도 편안하다. 진관사에는 마음속 번뇌를 꾸짖는 스님의 엄한 죽비는 없다.
대신 정원 같은 절집과 엄마가 해준 밥처럼 맛있고 건강한 사찰 음식, 그리고 단아한 비구니 스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요리를 배우는 프로그램이 있다. '마음을 비우라' '나를 찾으라'는 집착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고향에 있는 엄마한테 왔다 가듯, 내 집 뒷동산 같은 절집을 천천히 거닐다 가면 된다. 진관사 효림원에서 방문객과 다담을 나누는 진관사 주지스님 계호스님과 총무스님 법해스님
단아한 비구니 사찰, 진관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송추IC에서 나와 10km 갔을까? 매가 날개를 편 듯한 응봉능선 아래로 산사 하나가 멋스럽게 앉아 있다. 신혈사의 후신인 진관사는 1011년 고려 8대 왕 현종이 천추태후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진관(津寬)스님을 위해 지은 천년 고찰이다. [왼쪽/오른쪽]진관사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해탈문 / 진관사 계곡 따라 사찰로 들어가는 나무 데크 길 한국전쟁으로 크게 소실된 진관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63년 진관사의 주지로 오신 진관(眞觀)스님과 2006년 부임한 지금의 주지스님인 계호스님 대의 일이다.
두 분 모두 비구니로서 진관사는 13분의 비구니 스님들이 절집을 살뜰하게 가꿔가는 단아한 사찰이다. 진관사 특유의 섬세함과 아늑함에는 이러한 인연과 업이 있다. 극락교를 건너 진관사의 중심으로 오르면 '마음을 씻는 다리' 세심교를 만난다. 다리 앞에 종무소가 있고 종무소 2층은 스님과 다담을 나눌 수 있는 보문원이다. 종무소 좌측에는 전통차를 맛볼 수 있는 연지원이 있다. 차와 사람, 작은 웃음과 이야기가 있는 이곳은 진관사의 문화 공간이다. 절의 문턱을 낮춰 누구나 와서 향기로운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으로 조성했다. 연지원의 편액에 담긴 의미가 운치 있다. '송풍자명(松風煮茗)', 솔바람으로 차 싹을 달인다는 의미다. [왼쪽/오른쪽]진관사 연지원. 누구나 와서 차 한 잔을 들고 갈 수 있다. / 연지원 편액 송풍자명(松風煮茗). '솔바람으로 차 싹을 달인다'는 의미다.
진관사의 사찰 음식
연지원 뒤편으로 사찰 음식 체험 공간인 향적당과 제호의 향기가 있다. 진관사의 긍지이자 근래 색다른 관광 아이템이자 대안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찰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사찰 음식에는 오신채, 즉 파, 마늘, 부추, 달래, 양파를 쓰지 않는다. 그럼 무슨 맛으로 밥을 먹느냐고? 분석해보건대 진관사 사찰 음식의 차별성은 장류와 식감에 있는 듯하다. 진관사의 장에는 순한 감칠맛이 있으며, 음식 재료 고유의 식감을 최대한 살린다.
[왼쪽/오른쪽]진관사의 장독대 / 진관사의 주지 계호스님은 오랜 기간 사찰 음식을 연구해왔다. <사진제공·진관사> 사실, 사찰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즉 '공양'을 불교의 교리로 접근하면 그 심오함과 엄격함을 감당하기 힘들다. 음식을 마련하고 그것을 먹는 행위 하나하나에 담긴 불교의 가르침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일체의 존재는 먹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또 먹음으로 인하여 사라진다." "이 음식이 어디서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을 없애고 이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쉽지 않다. 식사 때마다 따라갈 수 있겠는가? 그러려면 출가를 해야 할 것이다. 이교도가 감히 해석해보건대, 사찰 음식은 풍요가 주는 역설에 대한 대안으로서 불교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고지방과 고열량, 고단백 등 풍요로움으로 포장된 인간 탐욕의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맞춤 포교가 아닐까?
진관사의 사찰 음식 진관사의 사찰 음식 체험 '아빠가 배우는 행복한 산사음식'
진관사 사찰 음식의 차별화와 경쟁력은 '착하게 맛있다'는 점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밋밋하지 않고, 분명 싱겁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느낌은 아니다. 비워진 그 무엇을 또 다른 무엇으로 채웠기 때문이리라. 진관사 총무스님인 법해스님은 그것을 '정성'이라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해준 밥이 맛있는 것"이라며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근거를 내신다.
진관사의 태극기와 국행수륙재
[왼쪽/오른쪽]북한산 응봉능선 아래 펼쳐진 진관사 / 진관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널찍한 잔디가 깔려 있다. 진관사의 문화 공간에서 장독대를 지나 너른 대웅전 마당으로 간다. 대부분의 산사가 산비탈에 자리를 잡아 불당 앞 공간이 비좁은 데 반해, 진관사는 대웅전과 명부전 앞에 널찍한 잔디마당이 펼쳐져 있다. 대웅전 마당에 들기 전, 주지스님이 계신 나가원 앞에 서면 북한산 산세와 어우러진 진관사의 불당과 경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대웅전과 명부전 우측으로 독성전, 칠성각이 나란하다. 나한전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화재를 피한 건물이다. 칠성각 설명판에는 제법 소상한 설명과 함께 빛바랜 태극기와 노승의 사진이 들어 있다. 2008년 칠성각을 해체 복원할 때, 기둥 사이에서 여러 항일신문과 함께 낡은 태극기가 발견되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대표적인 항일 승려로 손꼽히는 백초월(1878~1944) 스님의 것으로 초월스님은 1919년 3.1운동 이후 진관사에 들어와 경성 지역의 불교계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2008년 칠성각을 해체 복원하다 발견된 초월스님의 태극기
진관사의 국행수륙재(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는 진관사를 대표하는 불교의식이자 훌륭한 역사문화 콘텐츠다. 수륙재는 물과 뭍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에게 불법을 설파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이다. 진관사의 국행수륙재는 조선 태조가 진관사에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하고 수륙재를 베풀면서 이후 왕실에서 직접 주도하고 후원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연산군 때까지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행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왼쪽/오른쪽]마음을 씻는 다리 세심교 / 세심교를 건너면 템플스테이 공간이 나온다.
대웅전과 칠성각을 둘러보고 다시 종무소 앞 세심교로 내려온다. 세심(洗心)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다리를 건너 함월당으로 향한다. 달을 머금은 함월당(含月堂)과 그 옆으로 산비탈에 이어진 길상원, 공덕원, 효림원은 진관사의 템플스테이 역사관이다. '마음속 정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 부족함이 있다면, 하루 정도 진관사에 머물며 마음속 쉼표를 찍고 가보자. 함월당 마루에서 좌선 <사진제공·진관사> 진관사의 템플스테이 역사관(함월당, 길상원, 공덕원, 효림원)은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사진제공·진관사>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에 빛나는 템플스테이 역사관은 효율적인 공간 활용은 기본, 세련된 현대식 인테리어와 함께 한옥의 단아함과 절집의 품위를 더한 최고의 공간이다. 진관사에는 테마와 시간에 따라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있으니, 나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선택해 참여할 만하다. 여행정보진관사
아빠가 배우는 행복한 산사음식
진관사 템플스테이
주변 음식점글, 사진 : 이병유(여행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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