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여자가 눈 덮인 골목을 몇 점 오려 널고 있었네
사내는 휠체어에 앉아 2층 옥상을 내려다보았네
그 여자의 빨래건조대를 아파트 3층 발코니로 바짝 끌어 당겼네
교회당 종소리가 얼음처럼 단단한 사내의 바깥공기를
말랑말랑하게 두드려주었네 빨래에는 그 여자의 지난 일주일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네 사내는 여자의 발끝으로 꼭 길 하나
흘려놓고 싶어 가만가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네
좀처럼 꿈쩍하지 않는 발바닥에 바퀴나 깃털을 달고 싶었네
빨래들이 햇살을 물고 금방 피라미 떼처럼 꿈틀거렸네
젖은 수건 한 장이 손을 뻗어 여자의 어깨를 어루만졌네
그 여자의 발끝에서 시가지 쪽으로 하얀 길이 달려나갔네
사내의 지루한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 멀리 있었네
여자의 눈에 쉽게 끌려온 시가지가 여자의 입술에 웃음을
새겨 넣었네 갑자기 빨래 한 장이 긴 줄에서 여자 앞으로
뛰어내렸네 잽싸게 빨래를 집어 들고 뒷덜미에 집게를
물리는 여자의 가슴이 높은음자리표처럼 출렁거렸네
사내는 목을 빨래처럼 길게 쭉 내밀었네 순간 2층 옥상과
3층 발코니 사이에 길이 척 놓였네 사내는 휠체어를
힘껏 앞으로 굴려나갔네 그 여자가 옥탑방 문을 쿵 닫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네 빨래들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고
햇살이 사내를 자꾸만 간질였네 눈이 녹아내리는 골목길 위로
두 개의 바퀴자국을 내며 사내는 굴러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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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 / 1961년 전북 진안 출생. 전북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재 전주 우석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