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자칫 공동체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듯 하기 쉽습니다. 물론 때로는 객관화시키는 것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공동체를 객체화(客體化) 혹은 타자화(他者化, Objectification)시켜 마치 자신은 그 공동체의 문제와는 관계없는 듯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도 “요즘 교회들은 문제가 많아”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교회가 지닌 문제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입니다. 또는 “요즘 사람들은 정말 만족할 줄을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야”라고 말하면서 마치 자신은 그들과는 달리 매우 고결한 것처럼 여기는 태도와 같은 것이지요.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유다의 왕들과 백성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지고 바벨론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유다 백성의 고통과 아픔을 객체화시키지 않고 자신도 그러한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겪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계속하여 유다의 왕들과 백성이 짓는 죄에 대해서 지적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바벨론이 유다 왕국을 침공하여 유다를 멸망시킬 때에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굴복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유다의 왕들과 백성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처참한 결말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는 ‘이건 유다 백성이 내가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여전히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그러나 유다 백성은 이러한 꼴을 당해도 할 말이 없어. 그렇게도 내 말을 무시하더니 꼴좋다’라고 생각하며 자기를 유다 백성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1장과 2장은 남왕국 유다가 당하는, 예루살렘이 당하는 처참한 모습을 묘사하며 슬픔에 젖은 예레미야의 탄식을 기록하고 있는데, 3장으로 넘어와서는 그 고난을 당하는 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합니다(1절). 어떤 의미로 보면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향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한 자였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라 행했던 자였기에 유다 백성이 지은 죄로 인해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1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도 유다 백성(남왕국 유다 공동체)에 속한 자이기에 자신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자임을 자인(自認)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구구절절 유다 백성에게 내린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고통과 아픔이 자기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찾아와 자신을 고통과 아픔 속으로 몰아넣었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살과 뼈가 상하는 것과 같은 고통, 마치 죽은 자처럼 느껴지게 하는 무력감, 모든 길이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처럼 느껴지는 답답함과 압박감, 온갖 화살을 맞아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의 고통,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모욕감, 도무지 평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감을 절절이 경험하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유다 백성 중 한 명이기에 유다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절망감 속에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탄식합니다(18절).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끊어졌다는 것은 모든 것이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처절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예레미야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전했던 예레미야였기에 어쩌면 에레미야의 고통은 더욱 극심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시선에 대해 종종 “나를 제외한” 요즘 기독교인들의 문제, 교회들의 문제라고 여기면서 자신도 그 곱지 않은 시선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세간(世間)의 곱지 않은 시선에 비해 여전히 건강하고 좋은 교회들과 기독교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해, 요즘의 기독교인들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맞이할 때 그것을 내 문제로 여기고, 내 삶과 나의 신앙을 돌아보아 온전한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 내게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자신의 고통과 아픔으로 삼고 하나님께 향하는 예레미야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