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호박사랑
- 박승희
집 앞 담장을 둘러싼 주변은 어머님의 정성과 땀이 흠뻑 배인 곳이다.
이른 봄철 구덩이를 파놓고 호바씨앗을 틔운 그 자리에 거름을 듬뿍 준 덕분에
호박이 주렁주렁 열렸다. 늦가을 무등 수박처럼 넝쿨 속을 헤쳐 나와 누렇게 익어가는
호박을 대견하게 바라보곤 했다. 문간방에는 어머니가 이미 익은 것들을 따다 놓으신
호박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교인들이 1년 내내 농사 지은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갖다 바치던 옛날 교회의
제단을 보는 듯하다. 그것으로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애비야, 호박 여석 개 가지고 가. 이건 장모닌 가져다 드리고. 애비 처남댁에 이것 좀
갖다 드려." 무거운 것을 들기 힘들다며 차에 실어다 줄 것을 부탁하는데 다른 사람들
몫도 일일이 짚어주신다.
어머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 작년 겨울 막내딸 집에 살림살이를 도우러 가셨다
넘어지시는 바람에 앞가슴 뼈가 골절되어 한 달 동안이나 병원에 입원했었다.
"엄마가 식모야! 너 때문에 엄마가 다쳤잖아!" 막내 여동생을 호되게 나무라던 둘째
동생 정우 어멈이 "엄마, 이제 퇴원하시면 제발 진아네도 가지말고 농사일은 그만 하세요."
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병원에서 퇴원 하시자마자 농사일을 시작하셨다. 상추, 쑥갓, 파, 열무를
오륙십 평 남짓한 텃밭에서 가꾸시고 집 앞 울타리에 호박 넝쿨을 올리셨다. 그리고 어머님만
혼자 아는 곳에는 더덕을 심어 가꾸셨다.
"더덕이야, 먹어봐" 하시며 더덕을 내놓는 어머님의 그 정성에 코끝이 찡했다. 쑥갓이며 상추,
파를 다듬어서 우리 집 아파트까지 한아름 갖다 놓을 때도 있다. "이건 농약도 안쳤어. 나 간다."
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며칠 전에는 감을 한바구니 갖고
오셨다. 오년 전 모과나무 옆 자락에 심었던 감나무가 어머님 주먹 만큼이나 탐스럽게 열렸던
것을 따 오셨던 것이다.
일 년 앞을 보는 사람은 꽃씨를 심고, 십년 앞을 보는 사람은 나무를 심는다고 하더니 어머님
당신이 직접 심어 수확을 거뒀으니 감 한바구니의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지난 밤에도 서울 쌍문동에 사는 둘째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이제 할머니예요. 내년이면 팔십인데 힘든 농사 못 짓게 하셔요. 도토리도 그만 따러
다니시게 해야 돼. 산에서 넘어지시면 어떡하냐구요. 어머니 엄마 보약 지어드릴 거니까 통장으로
돈을 보내줘요" 어머니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은 내 마음이기도 하다.
1남 3녀를 낳으신 어머니가 젊어서 한 고생은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할 정도다.
한 많은 사연을 가슴에 안고 사신 어머님을 내가 살던 집에 남겨 놓은채 옆 동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온지 어언 18년이나 되어간다.
가좌동에서, 초등학생 대상 가좌한문예지학당의 훈장으로 사자소학을 가르치시던 아버님이
2002년 10월 갑자기 돌아가신 그 텅 빈 자리를 메꾸려고 더욱 열심히 호박을 가꾸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진 앞에 크고 좋은 호박을 놓아 두었다.
어머니를 뵈러 집에 들를 때면 "아범, 피곤하지? 보일러 켜 놓을테니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웠다가 가." 하신다.
"어머님, 기름값 걱정 마시고 보일러 틀어놓으세요. 감기 걸리시면 기름값보다 병원비가 더
들어가요.어머님 제발 뜨끈뜨끈하게 지내셔요." 어머니 곁에 누워 아버지 사진 앞에 놓인 호박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살아계실 때 잘 모셔야지.' 사진 속 아버지가 나직히 말씀 하시는 듯 하다.
어머니가 농사지은 호박을 제일 먼저 갖고 가는 여동생은 호박죽을 쑤어 동네 어른들께
대접해드린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엄마 잘 해드리고 싶어서 이번 겨울 저의 집으로 따뜻하게 모신다"고 전하는
여동생,동네 어른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어머니의 호박사랑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 흐뭇하다.
첫댓글 동하님 오랜만에 들르셨습니다. 즐거운 년말년시 보내고 계시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갑자기 어머니 다정한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니요. 내킴김에 전화 드려야 겠습니다.
어머님의 하늘같은 사랑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아침입니다 동하님~~저도 오늘 엄마보러갑니다 메리크리스마스~~~
흐믓한 마음 내려놓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 그 단어만 들어도 그리워 그리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겨운 글 감사합니다. 모처럼 엄마와 같이한 아침이라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역시 어머님이라는 단어는 모든이의 마음을 통하게 만드는군요! 이글은 제가 살던 지역(인천 서구)의 구의원에서 시의원으로 되어 활동하시는 분으로서 지역 문단에 등단하신 분이랍니다. 너무 좋아서 옮겨 보았는데 모두들 좋아하시니 저 또한 좋군요! 어머니를 존경하는 모든 분들에게 성탄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따님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까요? 이 세상에 계시지않는 어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어머니가...엄마가 되어 보니 더욱 절실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