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 오는 6월 17일부터 10월 31일까지 <주명덕 Joo Myung-Duck: A Retrospective>을 개최한다.
총 500여점의 사진작업과 관련자료들을 선보이는 이번 회고전은, 주명덕(1940- )이 40여년 동안 꾸준히 다루어 왔던 한국적 소재들을 그 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명덕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혼혈아들, 인천 차이나타운, 고아 등 근대화의 뒤안길에 잊혀져간 기억을 되새겨주는 사진을 통해 본격적인 사회적 기록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그 작품들을 계기로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르포르타주의 개척자로 불리우게 되었다.
1960년대 초반 주명덕이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하여 사진을 처음 시작하던 당시 한국사진의 주류는 생활주의 리얼리즘이었다. 그런 영향 속에서 사진을 시작한 이후, 그는 1966년 <홀트씨 고아원>전시와 3년 뒤 발행된 사진집 「섞여진 이름들」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추적해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르포르타주의 개척자로 평가받은 주명덕은 1968년 월간중앙기자로 입사하며, 그 후 1970년대까지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황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전쟁고아들, 한국의 가족, 인천 차이나타운 등을 담은 초기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그는 사진을 통한 사회적 기록의 가능성을 제안해왔다.
1970년대 유신시절, 다큐멘터리 사진을 발표할 지면과 장소를 제한 당했던 상황에서 그는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한국’의 여러 문화들을 사진작업으로 보여준다. 절의 문살, 강릉 선교장 등을 찍은 사진이나 풍경을 다룬 사진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탐구해온 작업에서도 한국 사회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애정은 변함없었다. 자연 풍경, 도시의 전경, 다양한 인물 사진들에서도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것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자화상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작품에도 많은 외형적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작가는 한국적 자연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많이 발표하게 된다. 이 시기에 작가가 표현한 한국의 자연은 무엇의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면과 서정을 갖춘 풍경이다. 특히 1980년대에 시작하여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잃어버린 풍경 Lost Landscape> 시리즈는 오늘날 그를 대표하는 또 다른 사진작업으로 알려졌다. 또한 근작인 <도회풍경 Townscape> 시리즈에서는 한국의 자연을 다룰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자신이 살아온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역동적이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주명덕의 사진에 등장하는 장소와 인물 중에는 이제는 변해 버렸거나 사라진 것들이 많다. 그의 사진을 접한 오늘의 관객들은 잊혀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독특하고 애틋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작가의 사진이 기록적인 측면을 넘어서서 심미적 요인들과 조우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전통, 사람들이 지닌 순박한 마음을 사진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남겨보려는 작업”을 한다는 작가의 말은 사진이라는 한 매체 속에 일관성 있게 반영되어온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시개요
<주명덕 Joo Myung-Duck: A Retrospective>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대표적 원로인 주명덕의 40년 작품생활을 정리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경주아트선재미술관 전관을 재공사하여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지난 40여 년간 변화해온 작가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함은 물론, 관련 자료전까지 함께 마련됨으로써 ‘시대적 초상으로서의 사진’이라는 매체의 기록적 특성에 주목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크게 1. 습작시기 및 <홀트씨 고아원> 2.다큐멘터리 사진 I.월간중앙 시기, II. 한국미의 탐구시기, 3. 풍경 I (자연풍경), 4.풍경 II (도시이미지), 5. 헌정사진 및 인물사진 순으로 나열하여 연대기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전시구성은 관객이 작가가 걸어온 행보를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는 구조로 기획되어졌다. 또한 곳곳에 자료실을 마련하여 작품이외에도 작가의 활동시대의 시각자료들을 통해 시대적 배경 또한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사진사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생생하고 풍부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써, 작품들을 당대의 상황이라는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연출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회고전의 양상에서 탈피해, 작품에 대한 보다 풍부한 맥락을 부각시킴으로써 작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지난 40여 년간 작가 주명덕의 앵글에 포착된 풍경과 얼굴은 이미 사라진 대상들이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달라져가고 있는 대상들이다. 스러져가는 것에 대한 애잔한 느낌을 전달하는 작품을 통해 기록매체로서의 사진의 특성과 더불어 그것을 포착한 작가의 미학이 융합되어, 궁극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사진의 새로운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다각도에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나아가 예술작품과 예술가, 그리고 그 사회적 맥락간의 관계를 통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의미인 동시에, 여타의 기획전들과 차별성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또한 주명덕이라는 작가를 통해 한국의 예술 문맥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여 우리 미술계의 깊이와 폭을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1) 습작시기 및 <홀트씨 고아원> ‘현대사진 연구회’에서 처음 사진을 접한 주명덕이 1966년 첫 개인전<홀트씨 고아원>등의 전시와 사진집『섞여진 이름들』을 통해 당대 한국 사회에서 도외시되었던 문제들을 사진에 담았던 시기이다. <홀트씨 고아원>은 한국전쟁 이후의 혼혈 고아들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던 전시. 작가는 당대의 상황과 사회 문제를 동시에 반영한 작품군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 사진들은 우리나라 사진사에 주명덕이라는 작가를 르포르타주, 다큐멘터리의 개척자로서 자리매김하는 데에 일조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2) 다큐멘터리 I. 작가 주명덕이 1968년 월간중앙의 기자로 재직하면서부터의 작품들. 일반에게서 외면당하던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한 일련의 다큐멘터리 작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시기 주명덕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한국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를 포착해 사회적 기록매체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인천 차이나타운을 다룬 <한국의 이방(異邦)> 시리즈는 월간지에 처음 실린 본격 포토에세이로, 퇴락해가는 차이나타운의 모습을 연재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시기 작품들은 전후의 궁핍했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한편, 미군 기지촌• 무당촌• 고아원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지역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와 사진작가 켄 하이만(Ken Heiman)의 <가족(Family)>에 영향을 받아 사회학자 이효제 선생과 협업한 작업인 <한국의 가족>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업이다.
II. 유신 이후 1970년대의 암울했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작품들은 발표에 제한을 받았던 시기다. 더 이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된 작가는 다 다른 방식으로 한국의 산하와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절의 문창살, 지방의 유서 깊은 고택(古宅)등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전통을 담은 사진들이 생산된다. 옛것,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이 시기 작품에 담긴다.
3) 풍경 I :자연풍경 1989년 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주명덕의 개인전<풍경>은, 어둡고 정적이 감도는 작가의 풍경사진 시대를 예고한다. 일찍이 등산을 좋아했던 작가는, 1981년 겨울 즐겨 찾던 설악산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을 계기로, 이전과는 다른 풍경사진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자연을 담아내는 작가의 태도 역시 우리 사회의 그늘진 단면을 담아내던 애정과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일관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작가가 ‘찾아낸’ 자연의 모습은 어두우면서도 미묘한 톤의 변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구성적인 구도로 인해 흡사 회화작품처럼 표현적인 요소가 강조되어 있다.
4) 풍경 II : 도시이미지 한국의 도시풍경은 계량과 예측이 불가능하리만큼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도시풍경이 작가 주명덕 사진의 기록 대상으로 자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새롭게 생성되고 곧이어 스러져가는 빠른 변화의 양상은 한국적인 시간성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지난 20여 년 간 도시의 모습은 새로운 역사성과 장소성을 지닌 형태로 고스란히 작가의 사진 속에 반영된다. 한때 도시의 당연한 일부로서 낯익었을 건물과 거리는 작가의 사진 속에서 흔적으로 남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가능성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2004년 개최된 전시《도회풍경》(스타일 큐브 잔다리 서울)전은 서울이라는 장소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아온 작가의 시선을 담고 있다.
5) 헌정사진 및 인물사진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다양한 인물사진들은 주명덕의 작품세계에서 특별한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은 입적한 성철 스님의 모습이나 문화계의 주요 인사들의 소탈한 모습들, 혹은 이제는 중견이나 원로배우가 되어버린 여배우들의 앳된 모습들은 작가의 사진 속에 영원히 남는다. 당대의 사회문화적 아이콘이었던 인물들의 모습에서 시대를 읽는 이미지의 힘이 보인다.
자료제공: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