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창덕궁의 비원
3여년만의 첫 여행, 설레는 마음으로 목적지인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공항은 낯설었지만, 많은 여행자들로 북적거려 오래전이지 않은 여행금지로 페쇄 하다시피한 사건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서울로 나들이 가는 주목적은 남편의 여권갱신신청으로 ‘독일대사관’방문 때문이다. 처음엔 남편 혼자서 하루안에 볼일만 보고 올려고 했는데, 이참에 3,4일 머물면서 나의 버킷리스트인 ‘서울궁궐 투어’를 하자고 제의했고 그 여정들을 준비했다.
나의 마음 한켠의 항시 간직하고 있었던 ‘낭만 버킷리스트’중 한 가지는 이문세의 ‘광화문거리’의 가사처럼,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아름다운 한컷을 장식한 광화문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그리고 궁궐들중 창덕중의 비원을 거닐어보는 것이었다. 비행시간 한시간이면 오고갈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내조국의 수도인 서울을 내 인생 4번 정도 밟은 것 같으다. 매년 최소 2번씩 유럽이나 동남아시아로 여행하는 횟수에 견줄수 없이 적은 횟수이다.
나는 국내여행을 선호하지 않았다. 독일인 남편과 어쩔수 없이 국내여행을 할라치면, 남편의취향에 맞는 호텔, 음식선정 등등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었으며, 언어 문제로 통역까지 도맡은 가이드가 되어야만 했다. 그이유로, 영어가 보편적인 언어가 되는 제3국으로 주로 여행을 다녔다. 가이드가 아닌 여행자로 즐길수 있는 나라로. 유럽은 남편의 가이드로 편하게 갈수 있으니 물론 최애 여행지였다.
창덕궁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건축과 조경이 잘 조화된 종합 환경디자인 사례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공간 분위기를 읽게 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건축사에 있어 조선시대 궁궐의 한 전형을 보여주며, 후원의 조경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왕실 정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덕궁 방문은 인터넷 예약이 필요하다는 지인의 선물로 오후 3시 30분 외국인을 위한 투어에 예약이 되어 가게 되었다. 티켓을 보니 1시간 30분이 투어소요 시간이라 안내되어 있었다. 예약시간이 가까워지니 창덕궁 앞에 30명정도의 외국인 여행객들이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투어가이드가 자기소개와 비원의 간단한 역사배경을 이야기하고 투어가 시작되었다. 궁궐로 들어서자마자 이미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아직 이른 봄이라 궁궐정원의 꽃들과 나무들이 여행객들을 활짝 반겨주지는 않았지만, 그대로의 웅장하고,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자태는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걸어서 비밀스러운 정원 깊숙이 들어갈수록, 이름답게 비밀스럽게 위치한 정원들이 자태를 들어냈다.
그들은 여기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어떻게 나며 지냈을가? 무슨 소 일거리로 긴 하루를 보냈을까?, 정원을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며 거닐었을까?, 그들은 행복했을까? 등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하며 그 답들을 찾아볼려고 가이드의 해설에 귀기울이며 눈으로는 궁안들을 유심히 살폈다.
창덕궁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조성된 정원이라 기슭을 넘을 때마다 드러나는 후원의 모습은 고즈넉하고 과히 매력적이었다.
과연, 왕들은 이 기슭들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왕족의 귀하신 지체로 걸어서 오고 갔을까, 비가 올때는 진흙당 일터인데,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일터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듯이 걸었다. 하지만, 가파르고 경사진 흙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나의 호흡은 가파지고,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왕들은 걷지 않았을거야”
가이드에 의하면 정조임금이 사랑했던 부용지, 가장 하이라이트인 부용지 연못에 이르러 보니, 과연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 공간이며, 왕이 주최하는 야외 연회가 열리었던 장소라는 설명이 이해되었고, 그 모습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명성답게 모든 외국인 여행객들이 그 자태와 아름다움을 사진에 간직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렇게 기슭을 오르고 내리며 많은 왕족들의 크고 작고 아담한 궁들과 후원들을 둘러보고 나오니, 궁궐밖으로 인도하는 담벼락들이 보였다.
가이드의 작별인사와 관객들은 박수로 감사를 하고 그룹들은 각기 헤어졌다. 나는 잠시 궁궐안과 궁궐밖의 경게선에서 서성거렸다. 궁궐밖을 고개 돌려보니 러시아워로 거리엔 많은 인파와 차들로 북새통이었다. 다시 그 시끄러운 세상으로 들어가기가 싫어 시선을 돌려 궁궐안을 보니, 모든 관광객들이 물러가기를 기다린듯 뿌연 석양의 빛이 커텐을 치듯 궁궐의 담장들을 휘감아 감싸더니 그곳의 옛 주인들이 궁들의 문을 열고 나와 여유롭게 후원을 거닐고 있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퇴근시간이라 택시를 잡기 힘들겠다는 판단에, 남편과 나는 광화문의 숙소까지 걸러가기로 했다.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병씩을 사서 손에 들고 걷기 시작했다. 낮고 아름다운 기와지붕들의 북촌 한옥마을을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눈 사진을 찍으며 구경했다. 많은 젊은 친구들로 카페마다 북적였다. 젊은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인파들을 피해 도로뒤의 숨겨진 골목길들을 찾아드니 바람도 한층 더 서늘했고 고즈넉했다.
십여분을 걷다보니, 긴 광화문거리가 시야야 들어왔다. 한복을 입은 여러나라의 관광객들이 제각기 포츠를 취하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긴 광화문 거리를 한폭의 사진으로 찍었다. 담장안으로 경복궁의 화려한 기와지붕들이 보였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무거워지는 다리로 숙소에 돌아왔다.
조선 경복궁 디스커버리는 내일 오전의 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