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묵상(0902)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삿 1:19~21).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해야~~~~~‘믿음’이란 슐라이에르마허의 말처럼 ‘절대의존의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즉 내가 0%가 되고 하나님이 100%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계명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신다. 이는 곧 믿음을 전제로 한 절대적인 순종이 곧 그의 백성들이 복을 받는 길이요 번영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은 각 지파별로 기업 분배를 마쳤지만, 아직 미정복 땅이 있어 각 지파별로 이를 정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져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지파 중 많은 수효와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닌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가나안 족속 토벌의 선봉이 되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수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고 또한 그들에게 할당된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은 두려워하여 싸움을 피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철 병거는 나무에다 철을 박거나 둘러싸 그 강도를 높여서 사용하던 전쟁용 무기로, 유다 지파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이는 무기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이었다. 전쟁의 승리는 군사력이나 무기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데에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정복하기 쉬운 곳만 정복하고 정작 정복해야 할 곳은 장애물로 인해 정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불신앙적인 행동은 그들을 뒤이어 동일한 싸움을 수행했던 다른 지파들에게도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겨 그들 역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채 실패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결과는 반드시 실패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면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불신한다면 실패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하기 좋고 쉬운 일들만 하고 어려운 일들을 만나면 피하고 내팽개치는 삶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비록 지금은 그 명령대로 살기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결국 복의 길이요, 평안의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믿음을 전제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순종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믿음으로 감당하기보다는 회피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이 땅의 전쟁이든, 영적 전쟁이든 모든 전쟁이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십자가를 질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901)
* 사사기는 어떤 책인가?
여호수아서까지 잘 따라오셨나요? 여호수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셔서 가나안을 정복하도록 하고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분배하는 과정까지 묵상했습니다. 오늘부터는 사사기를 통해 백성들이 여호수아 당시 하나님께 순종하던 모습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과 우상숭배에 빠져 번번히 패배하고 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사기는 백성들이 죄를 짓고 다른 민족에게 정복당해 하나님께 간구하여 사사를 통해 구원시켜 주면 다시 침묵하는 등 다섯 단계가 반복되는 순환구조를 보여줍니다. 사사기 전체가 어떤 내용인가를 먼저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한 장 한 장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살펴봅니다.
사사기(Judges)란?~~~~~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약 350년간의 암흑기로 빠져 들어간다. 여호수아가 고별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하고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가나안을 정복하던 세대들이 모두 죽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 이에 사사기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여, 압박과 구원이 반복되는 일곱 번의 순환과정으로 이어지며, 이스라엘의 부패상에 대해 두 가지 예증을 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우선 1:1~3:6절까지는 ‘타락’이 주제로, 이스라엘에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가나안 족속에게 줄곧 패하여 대적들을 내어 쫓지 못한다. 백성들은 한 사람의 지도자가 없어서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나, 실상 그들의 실패 원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를 향한 순종이 결여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가나안 거민 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가나안 거민 들로 인해 오히려 만연되는 도덕적 암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 병에 걸리게 된다. 이어 3:7~16:31절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주제는 ‘구원’으로, 이 부분은 일곱 번의 배반과 일곱 번의 압제와 일곱 번의 구원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일곱 번의 순환과정은 서로 연결되어 점차 죄를 가중시킨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을 줄 모르고 계속해서 순종과 배교 사이를 오간다. 사사들은 이 연합이 결여된 시기에 군사적으로, 민사적으로 백성을 지도한 자들이다. 사사기에는 13명의 사사가 언급되어 있고, 사무엘상에 4명의 사사(엘리, 사무엘, 요엘, 아비야)가 더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17:1~21:25절까지 이어지는 세 번째 주제는 ‘부패’로 사사시대의 종교적 배도와 사회적 도덕적 부패를 실례로 들어 다루고 있다. 특별히 19~21장은 성경에서 가장 타락한 이야기를 다룬다. 사사기는 이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말씀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로 끝을 맺으며, 결국 왕이 출현하게 되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내일부터 한 장 한 장 살펴보면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함께 느껴 보시기 바란다.
오늘의 묵상(0831)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향하라 하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수 24:22~24).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자세~~~~~우상숭배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지만, 종교개혁자 칼빈은“하나님을 다르게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의 반열에 포함시켰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되 올바르고 합당한 자세로 섬겨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대표들을 세겜으로 부른 다음 서약식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지난날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한 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우상을 멀리하도록 단호히 신앙적 결단을 돕는다. 이에 백성들은 이방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결단한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여전히 백성들이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갈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백성들로부터 재차 다짐받은 후 비로소 언약을 세우고 기념비를 세워 증거를 삼는다. 사실 죄악된 이방 문화가 채 뿌리 뽑히지 않았고 여전히 죄의 유혹의 요소들이 산재해 있었던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맹세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처럼 쉽게 결단을 내린 것은 한편으로는 매우 긍정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심히 염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연약한 인간은 본래 죄 가운데 태어나 죄의 유혹에 빠질 소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계속 축복 대신 강한 경고의 말을 들려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세겜의 언약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세에 대해 알려 준다. 먼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 죄의 모습을 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과 물질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같은 구원의 길을 믿고 받아들이는 신앙적인 결단을 통해 구원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됩니다(칭의). 이후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며 이웃과 화목한 삶을 통해 십자가의 도를 완성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성화). 그러할 때 하나님의 예비하신 영적 가나안 땅인 하늘나라에 온전히 들어가서 영화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 말을 간직하고 오늘 하루도 승리하세요. 9월이 시작되는 내일부터는 사사기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기도 :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구원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 살면서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한 예배가 되지 않도록 항상 살피게 하여 주시고,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행여나 부지불식간에 우상을 섬기지 않게 하시고 항상 바른 자세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0830)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수 23:12~13).
말씀에 순종만이 살길이다~~~~~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자신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깨닫고 고별 설교를 하기 위해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지난날의 모든 행사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열심히 섬기기를 당부한다. 특별히 여호수아는 이방인과의 교제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불순종과 배교(背敎)에 따른 형벌 등을 언급한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지 수십 년이 지나 이제 임종을 눈앞에 둔 여호수아가 한 가지 확신하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이스라엘의 앞날이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별 설교에서 백성들에게 오직 모세의 율법을 힘써 지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과의 혼인과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시켰다. 그것은 가나안 족속과의 혼인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이방 풍습에 물드는 것을 막고 또한 하나님께 대한 배교행위인 우상숭배 행위를 막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과의 교제 대상이 아니라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이스라엘의 불신앙적 행동으로 인해 그 일은 단숨에 성취되지 못하고,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온전히 성취되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들과의 교제는 단호히 배격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과의 교제는 장차 자신들에게 올무와 덫이 되며 또한 채찍과 가시가 되어 자신들을 괴롭힐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그의 경고를 무시하므로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약속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지만, 비록 언약 백성이라 할지라도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이방인과 동일한 형벌을 내리시는 공의로우신 분임을 명심해야 한다.
죄악과의 사귐은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서서히 자신을 괴롭게 하고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올무가 될 것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태어났지만, 들릴라라는 이방 여인에 빠져 하나님과 부모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어 하나님의 영이 떠나므로 결국 눈도 뽑히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율법은 지키면 복이고, 어기면 멸망일 뿐, 중간 지대에서 율법 없이 사는 길은 없습니다. 율법에 대한 불순종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죄와의 교제를 엄격히 배격하고 처음부터 올바르지 못한 일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기쁨)동산에서 쫓겨난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보다는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을 추구하며 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도 교회 안의 신앙인으로 머물며, 세상에서는 온갖 죄악 속에서 손가락질 당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거룩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 받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9)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수 22:10~12).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된다~~~~~여호수아는 르우벤과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등 두 지파 반의 용사들을 불러 장기간에 걸친 정복 전쟁 동안 수고한 공로를 치하한 후 그들에게 권고와 더불어 축복을 하고 여러 재물을 주어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가도록 조처한다. 그런데 귀환하던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용사들은 요단강가에 이르러 거기에 큰 단을 쌓는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요단 서편 지파 사람들이 오해로 흥분하여 그들과 싸우기 위해 실로에 모였고, 사실 여부 확인차 조사단을 구성하여 파견한다. 사실 온 가족을 뒤로한 채 요단을 건너 5년여란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내고 다시금 요단을 건너 자기들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은 이들 요단 동편 두 지파 반 용사들에게는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그들은 요단 서편 강가에 이르러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신 사실을 기념하고 자신들도 요단 서편의 지파와 동일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해 큰 단을 쌓았다. 따라서 이들의 행위는 매우 신앙적인 행동이요, 민족적 화합을 위한 애국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요단 서편 지파들은 그들의 행동을 우상숭배 행위로 오해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물론 동편의 지파가 충분한 의사 전달과 이해의 요청도 없이 일을 성급하게 추진함으로써 오해를 받게 된 것은 실수였음이 틀림없지만, 이에 대하여 차분하고 확실한 상황 분석도 없이 흘러가는 소문을 듣고 전체가 분노의 소리를 높인 서편 지파들도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양쪽 지파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며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고 했지만, 서쪽 지파는 요단 동편 지파가 새 제단으로써 서로 분리하여 신앙을 가지려는 것으로 보았고, 동편 지파는 분리를 염려하여 동일성을 유지하려고 단을 쌓아 증거를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편과 서편 지파처럼 우리도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서로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는 자칫 분리와 환란을 가져올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생각 없이 즉흥적인 판단으로 타인의 신앙생활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비록 선한 목적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염려와 근심을 끼치거나 신앙공동체 내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지만, 분리의 영인 사단은 어떤 방법을 쓰든지 우리를 분리시키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분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의 기도 : 우리에게 화평과 화합을 원하시는 하나님! 하지만 살면서 분리의 영인 사단과 영적 전쟁을 하면서 넘어지고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사단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검인 말씀을 늘 간직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자(trouble maker)가 아니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화평케 하는 역할(peace maker)을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수 21:43~45).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이스라엘의 조상,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불러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가나안을 그들과 후손들의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이스라엘 자손의 지도자들에게도 수차에 걸쳐 그 약속을 확인해 주셨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 및 레위인의 성읍 할당이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가나안 온 땅을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음과 저들이 안식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이로써 이제 하나님의 뜻이 다 성취되었음을 선포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잊지 아니하시고 변개(變改)치 아니하시며 반드시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종살이할 때라든가, 혹은 하나님께 범죄 하여 징계당할 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약속하신 이후 약 690년이 지났지만, 결코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요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그 하나님께서는 또한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신 약속, 곧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어 안식을 누리게 하시리라는 약속도 반드시 지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완전한 가나안 정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정복하고 차지해야 할 땅이 상당 부분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남은 원주민들을 두렵게 하시고, 또한 이스라엘을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도 없는 상태에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자손의 복을 허락하시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성취된 약속도 많지만,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고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이들처럼 재림이 없다고 하거나 더디 오리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고 깨어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 아담을 창조한 이후 한 번도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 100세에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 홍수로 세상을 멸하리라는 말씀을 믿고 묵묵히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노아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재림주로 오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마라나타’(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를 외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수 20:1~3).
도피성으로 피하라~~~~~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언제든지 죄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을 지닌 매우 연약한 존재들이다. 이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반드시 피할 곳을 예비해 두십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가 완전히 끝남으로써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창 12:7)은 그 약속이 주어진 지 약 690년 만에 온전히 성취되었다. 따라서 이제 남은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기에 필요한 사회규범을 새로 제정하거나 정비하는 것 뿐이었다. 이러한 것의 일환으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셨던 도피성을 세우는 명령을 다시금 여호수아에게 주신다. 사실 피의 보수법(창 9:6)에 따르면 살인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아무런 적의도 없이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자까지 무조건 죽이는 것은 가혹한 처사였을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복수를 위한 살인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하나님은 그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보장 제도의 하나로 도피성을 만들고, 우발적인 살인자가 피의 보수자의 손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인 자는 비록 도피성에 숨는다 할지라도 끌어내어 반드시 죽였다. 도피성은 요단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 개씩 이스라엘이 차지한 가나안 땅 전역에 걸쳐 골고루 선정되었고 도피성으로 구별된 성읍은 대부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도록 산 위에 위치하였고 성읍으로 가는 길도 넓고 평탄하게 잘 닦여 있었다. 이는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재빨리 도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도피성은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나그네도 이용할 수 있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도 인종과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상징한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살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피성으로 도망하는 길이었습니다. 이러한 도피성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예표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근본적으로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들을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 우리의 구속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피성에 피하여 성읍 장로와 대제사장에게 자신의 허물을 다 고해야 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께 다 고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나 위험에 처했을 때 인간을 의지하거나 다른 것으로 피하지 마시고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피하십시오. 반드시 우리가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늘의 기도 : 도피성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존재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함에도 부지불식간에, 때로는 의도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 우리의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죄를 지은 우리에게 도피성 되시는 예수님께 피할 길도 허락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6)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수 19:49~50).
참 지도자의 모습~~~~~단 지파에 대한 기업 분배를 끝으로 역사적인 가나안 땅 분배 작업은 완전히 끝을 맺게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가나안 정복과 분배에 있어서 여호수아만큼 지대한 공을 세운 지도자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아니하였고, 다만 자신이 거할 성읍 딤낫 세라 하나만을 이스라엘 자손들의 권유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서 위대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먼저 백성들을 위해 기업을 분배했다. 그리고 그런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위해 지극히 작은 성읍 하나를 기업으로 요구하였다. 딤낫 세라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산간지대였으므로 그야말로 여호수아 개인의 역할에 대한 대가로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사실 여호수아와 같은 위치에 있다면 얼마든지 12지파의 기업 분배 이전에 자기의 것을 먼저 챙길 수 있었고, 설사 챙기더라도 그의 공로를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다른 지파의 기업을 다 선정한 후 마지막에 자신의 기업을 선정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삶의 자세를 지닌 참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같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한 갈렙은 가나안에서 가장 먼저 헤브론 성지를 요구하여 기업 분배를 받았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러한 권한이 자기에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분배의 소명을 완수하기까지 결코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는 오직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하였을 뿐 자신의 공로를 전혀 내세우지 않는 청렴결백한 지도자였다.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한 그 자체가 여호수아에게는 큰 기쁨이었을 것이며, 하찮은 땅을 분배받았다고 해서 그 기쁨이 감소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도자로서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한 모범적이고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정치계를 비롯해 각 분야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참된 지도자의 부재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계에서조차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존경받기는커녕 돈 문제로 인해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기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여호수아와 같이 겸손하고 청렴하며, 이타적인 삶을 사는 모습은 더욱 빛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에 적어도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지도자가 나온다면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기독교의 이미지 제고를 통한 교회의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만 남기게 됩니다. 참된 지도자의 출현을 위해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이들을 들어서 쓰시는 하나님! 그동안 한국교회를 사랑하셔서 엄청난 부흥과 성장을 이룩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부응하지 못하고 개인의 영달과 욕심만 추구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손가락질을 당하고 심지어는 악취까지 풍기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참 지도자들로 거듭날 수 있게 하여 주셔서 다시한번 한국교회의 제2의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수 17:14~15).
개척 정신을 가지라~~~~~누구든지 미래를 대망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개척 정신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작은 기회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들이 그 기회를 키워나가기를 기다리신다.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분배받은 요셉 자손들, 즉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여호수아에게 그들이 큰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몫의 땅을 기업으로 받은 것을 불평했다. 하지만 그들이 받은 기업은 다른 어느 지파의 기업보다도 넓은 것이었고, 다른 지파에 비해 훨씬 좋은 토질의 지역과 광활한 땅이었지만 그들이 받은 기업 속에는 아직도 가나안 족속들이 남아있거나 개간되지 못한 미개간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아직 미개척지인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을 개척하여 기업으로 삼을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요셉 자손들은 그 땅이 철 병거를 소유한 가나안 족속이 살기 때문에 개척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불평하며 다른 땅을 요구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의 비겁함을 간접적으로 질책하며, 그들이 여호와의 권능을 의지하는 참된 믿음만 지닌다면 철 병거를 지닌 가나안 거민도 능히 쫓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고 있다. 이는 자신들의 환경과 여건만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라는 말이다. 사실 가나안 정복 과정을 통해서 보았듯이 전쟁의 최후 승리는 무기나 군사력의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있었다. 따라서 요셉 자손이 이전의 산 경험을 토대로 전투에 임한다면 그 승리는 보장돼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믿음 없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사실 인간은 어려운 환경을 개척하기보다는 쉬운 일을 택하고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환란과 시련을 극복하고 이 세상의 죄악과 싸워 승리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아이가 10원을 잃어버려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한 신사가 잃어버린 돈 대신 10원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더 크게 울며 하는 말이 “돈을 안 잃어버렸으면 20원이 되는 건데…”라고 하더랍니다. 이처럼 이기적인 욕심에 치우친 생각은 끝이 없는 불평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 자손들의 불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낙 자손이 거하는 난공불락의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겠다고 여호수아에게 요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척정신이며,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미래를 보장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실의 벽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개척하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이기고 싸우는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배우게 해 주신 하나님! 믿음을 통해 현실의 장벽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문을 만들어 열고 나갔던 신앙의 선배들의 불가능을 가능케 했던 믿음을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한 달란트 받았다고 불평하는 어리석은 종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활용해 개척 정신을 가지고 최선의 것을 남길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3)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수 16:5~10).
불순종은 멸망이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여부에 따라서 복과 화가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러나 처음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결국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북부 지역에서 가장 좋은 땅을 분배받았다. 특별히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이었음에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야곱을 통해 큰아들인 므낫세보다 ‘더 큰 자가 될 것’(창 48:19)이라고 하신 약속대로 기업을 먼저 분배받는 복을 얻었다. 에브라임 지파는 장차 남북 분열 왕국 당시 10지파가 모여 형성한 이스라엘 왕국의 실질적인 주도권자가 되었다(사 7:2-17). 하지만 이처럼 놀라운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신 20:16~17)을 거역하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종으로 삼은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에브라임 지파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조치였다. 더욱이 훗날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북 왕국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의 풍습에 물들어 우상숭배에 깊숙이 빠지는 죄악을 범하게 돼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켜 심판당하고 만다. 우리들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위반하여 세상과 타협해 나갈 때 그것은 결국 신앙생활에 있어 장애물과 가시로 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여라도 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요소들을 자신들에게서 제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으면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섬기는 것이 마땅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히려 세속적인 쾌락과 풍요로움에 젖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곁길로 빠져서 자기의 이익과 편의만 챙기려고 하는 때가 많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악은 무릇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는 성경 말씀대로 항상 주의하고 깨어서 사단에게 조금이라도 유혹의 틈을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의 명령이 때로는 우리에게 당장 해가 되고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순종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하루를 열면서 ‘불순종은 멸망, 순종은 복’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깊이 새길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악은 무릇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거룩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면서도 때로는 이기적인 욕심과 유혹 때문에 죄와 타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용서하여 주시고, 특별히 사업하는 이들이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을 반드시 기억하고 이익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082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수 15:13~14).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성경에서 훌륭한 이름을 남긴 신앙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노아 등 거의 모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 이들이 이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는 자,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일을 하기 원하는 자는 먼저 작은 일부터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믿음을 가진 자를 들어 쓰신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하나님이나 회중 앞에서 적극적이고 겸손한 자세를 가졌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복도 받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을 쓰신다. 민수기 13장에 보면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정탐 과정에서 10명의 정탐꾼은 아낙 자손과 철의 성벽만 보고 부정적인 보고를 함으로 백성들을 좌절에 빠뜨렸지만, 이들과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아낙 자손의 성읍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 한 장보다도 더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육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고 쉽게 절망하고 비관함으로써 불가능만을 생각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모든 것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하신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기 때문에 광야를 통과할 수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승리와 복의 비결은 바로 문제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라는 태산 뒤에 숨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실 복을 기대하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매사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갈렙은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이미 정복한 비옥하고 좋은 땅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아직 정복하지 못한 헤브론 땅을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적극적으로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가능하리라는 적극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한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제이콥슨이라는 사람은 “단순히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기만 하지 말고 당당히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 4:2)라고 했습니다.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구한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의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 우리에게 각각 달란트를 주셔서 적재적소에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쓰시는 줄을 알면서 조그마한 어려움 속에서 좌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고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을 용서하옵소서. 85세의 나이에 정복하지 못한 헤브론 땅을 과감히 정복하겠다고 나선 갈렙의 적극적인 믿음을 본받게 하시고, 우리가 처한 어려운 환경만 바라보고 실망치 않고 그 일을 통해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항상 하나님께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0821)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수 14:9~12).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때로는 넘지 못할 크나큰 장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뛰어넘지 못할 장벽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비결은 바로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다. 이는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다. ‘동행하다’(히, 할라크)는 의미는 ‘걷다’외에 ‘뜻을 좇다’, ‘삶을 살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간 에녹이나 노아에게 사용됐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제사장 엘르아살 및 이스라엘 각 지파의 족장들과 더불어 제비를 뽑아 요단 서편 땅을 아홉 지파 반에게 분배했다. 이때 갈렙은 유다 자손들과 함께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모세가 자신에게 주기로 약속한 기업을 줄 것을 요청하여 헤브론을 기업으로 얻는다. 85세라는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이미 정복된 넓고 아름다운 평야 지대를 요구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낙 자손이 살고 있는 미정복 상태의 헤브론 산지를 요구한 것을 볼 때 그는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아직 정복되지 아니한 약속의 땅을 한시라도 속히 정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고자 하는 진취적 신앙의 바탕 위에서 기업을 요구했던 것이다. 갈렙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아낙 자손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결코 힘이 빠지거나 나약해져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8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40대와 다름없이 강건함을 유지했고 의욕이 넘쳤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들에게 귀중한 모본이 아닐 수 없다.
갈렙은 그의 삶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를 온전히 좇았기에 가나안 땅을 정탐 후에도 마음에 성실한 대로 보고를 할 수 있었으며, 남들이 모두 피하는 정복되지 않은 헤브론 땅을 정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결코 인간적 욕심이나 만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불가능함이 없다는 절대적인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심을 순간순간 믿고 고백하며 담대한 용기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일익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승리는 곧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의 묵상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경영하는 기업과 삶 속에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이라는 고백을 통해 갈렙에게 허용했던 강건함을 비롯해 모든 복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오늘의 묵상(0820)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수 13:1~7).
신앙의 안일함을 버리라~~~~~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대부분 정복하였지만, 아직도 많은 지역을 정복하지 못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종결하고 땅을 분배토록 명령하신다. 이는 나이 많은 여호수아를 위한 배려였고, 한편으로는 7년여 동안 정복 전쟁을 치르느라고 지친 백성들을 쉬게 함으로써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미정복지(未征服地)를 남겨 둠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배반하고 죄악에 빠지지 못하게 하는 도구로 삼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남은 지역을 마저 정복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땅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일 뿐 아니라, 그 땅을 기필코 정복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완수한 것은 400년이 지난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였다(삼하 8, 10장).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착 이후 계속적 긴장감을 갖고 진취적 신앙을 견지하지 못하고 점차 안일한 신앙적 태도에 빠졌음을 시사해 준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그냥 단순하게 예수를 믿었으니 구원은 당연히 받는 것으로 치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의 것을 추구하고 쾌락에 빠져 안일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단들의 속임수에 너무 많은 신앙인들이 빠져 가고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전투다. 상대방(사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기에 결코 신앙생활에 안일함은 잠시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까지 그곳의 사람들은 여러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겼으며 마음껏 마시고 즐기는 쾌락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으로 인해 결국 땅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겨 버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겨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에 나태한 채 하나님보다는 쾌락과 물질만을 추구하다 보면, 이러한 유한한 것들을 잃는 것은 물론, 하나님과 가까이하지 못함에 따라 영적으로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와의 쾌락에 젖어 하나님의 사명을 망각했던 삼손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결코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처럼 마지막까지 영적인 안일함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구원을 우리는 값싼 은혜로 치부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안일한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봅니다. 언제라도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찾고 있는 사단과 싸우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영적 무장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영적인 안일함을 물리치고 항상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