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책’ 이름을 빼앗긴 사람>
2023101241 철학과 현재은
우리는 보통 상대를 지칭할 때 이름, 직함 등으로 부르곤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라고 부르면 상대는 학생이란 이름에 맞는 의무와 성격을 부여받는다. 이것을 정명사상이라고 한다.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이 있기에 존재를 인정받는다. 공자는 ‘~답게’를 강조하였다. 이름에 맞는 의무를 지라는 의미이다.
책에서는 피곳 부부와 두 명의 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여보/엄마 밥 줘(요)” 피곳 부인은 자신의 이름을 잃고 여보 또는 엄마로 불리며, 가정에 대한, 좋은 말로는 봉사 안 좋게 말하면 노예가 된다. 남편은 회사에 가고, 아들들은 학교에 간다. 그러면 여보이자 엄마인 피곳 부인은 그들이 더럽히고, 사용한 모든 것을 정리한다. 그게 아내(엄마)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아내(엄마)의 의무는 무엇일까. 예로부터 여자는 남편을 도와 집안을 평화롭게 내조하는 것을 의무로 삼아왔다. 요리도 여자의 몫, 청소도 여자의 몫. 집안일은 모두 여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시대에는 여자들의 사회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졌다. 예전처럼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집안일만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아내(엄마)의 역할은 시대에 흐름에 맞춰 변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아직도 그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여성이 하는 집안일이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노동은 비천이 존재하지 않고 중요하다. 그러니 집안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여자는 결혼하는 순간 이름이 사라지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이것은 노예와 다른 바 없다. 만약 엄마, 아내, 여보 이런 말이 아닌 그의 이름으로 불렀다면 조금 더 인격적인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이름은 정말 중요하다. 자신을 나타내는 이름을 잃는다면 매우 혼란스럽고 이름이 대체되는 순간, 돌려받지 않는 이상 반복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는 돼지가 된 남편과 아이들이 엄마의 소중함을 알고 같이 일을 한다. 엄마가 없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아내(엄마)는 이제 의무를 존중해주고 같이 하는, 시대에 맞는 신분으로 거듭났다. 이런 모습이 지금 현대 사회에도 많이 적용되어야 한다.
첫댓글 "책에서는"이라고 했는데 "돼지책"을 말하나봐요.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하네요. 아내와 엄마, 여자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관념과 그에 따른 역할이 부여된 관념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서술한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여자가 남자에 비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불러지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 아내(엄마)는 이제 의무를 존중해주고 같이 하는, 시대에 맞는 신분으로 거듭났다. 이런 모습이 지금 현대 사회에도 많이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돼지가 된 남편과 아이들이 엄마의 소중함을 알고 같이 일을 한다."는 내용만으로는 엄마, 또는 아내, 그리고 여자가 어떤 "주체적인 행위"를 했는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군요. 이 부분도 소개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