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에 간다.
김지명
철길 따라 아우라지에 간다. 국내에서 가장 길다고 알려진 레일바이크 타려고 강원도 정선 구절리역 매표소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약 7.2km를 레일바이크로 달릴 수 있게 만들어 2005년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레일바이크를 밟아 보려고 수백 리 달려서 구절리역으로 왔는데 땅거미가 기어오고 있었다.
숙박하려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모텔이나 여관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 민가만 몇 집 보였다. 민박하려고 민가에 들렸을 때 서울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새벽 5시에 표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지만, 앞에서 표가 매진되어 구하지 못했다는 정보를 흘렸다. 한나절 달려 너무나 먼 거리까지 왔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더라도 표를 구하겠다고 구절리역으로 왔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하여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추위에도 질서를 지키며 어둠을 밟고 적막 속에 갇혀 있다.
밤새 고생하기 싫어서 돈으로 불침번 대신하려는 젊은이들도 있다. 암표가 있다는 것을 아는 부유층의 젊은 부부는 모텔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지만, 이곳에서 밤이슬과 씨름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밤새 내린 이슬이 옷을 눅눅하게 하여 몸은 몹시 움츠려져 있지만, 이방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밤을 새웠다. 각지에서 모여든 남녀노소 마음은 하나같이 표를 구해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고생을 하고 있다. 먼동이 밝아지자 잠을 자지 못하여 눈은 따가웠지만, 올빼미 눈으로 밤을 지켜온 보람이 보였다.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수년 동안 계획했던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니 날고 싶은 심정이었다. 2인석 레일바이크에 앉아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어둡든 하늘이 밝아오면서 산허리를 감고 있던 안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한 폭의 동양화가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 산골에도 가을이 왔다고 오곡은 고개 숙였고 단풍든 이파리가 눈앞에 펼쳐 보였다. 소슬바람이 산 능선에 불을 붙였다. 단풍을 구경하려던 관광객은 레일바이크를 타고 유람에 나셨다. 선두가 출발한 지 한참 후 내 앞차의 뒤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노추산 기슭 구절리역에는 09시가 되어도 햇볕이 들지 않아 추위에 떨려서 강하게 페달을 밟았다. 갑자기 달려가니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져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아주 잘 잡혔다.
즐거운 기분에 들떠 간밤의 피로를 잊은 채 경관에 도취하여 잡념을 잃고 오르지 행복 속에 빠져 있었다. 비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있고 높은 산마루에는 단풍이 물들어 가을이 노추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레일바이크는 송천을 따라 달릴 때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철길 아래로 자동차가 달리고 있으며 송천(松川)의 맑은 물이 자연의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다. 첫 번째 터널을 빠져나와 절길 언저리에 낙엽송이 빽빽한 숲 사이에 사자와 호랑이를 만들어 놓고 스피커를 통해 실제처럼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야간에 운행한다면 이곳을 지나갈 때 놀라서 안전사고가 일어날 것 같았다.
앞차가 빨리 가지 못하여 밀리는 시간에 사진도 찍으며 앞차의 뒷모습과 뒤차의 앞모습을 찍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계곡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낙천적인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고 산은 급경사로 되어 있으며 적송들이 주종을 이루고 잡목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레일은 약간 내리막으로 되어 있어 빠른 속도로 달려갈 때는 가슴에 바람이 들어 낙하산을 타는 기분이었다. 공수특전단에 근무할 때 낙하산 짊어지고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던 순간을 추억해 보았다.
달리는 철길 자전거에 중년의 몸을 실었지만, 마음은 소년 같아 양손을 입에 모아 하늘이 쪼개지도록 함성도 날렸다. 두 번째 터널을 통과할 때 정선 아리랑의 애절한 사연이 깃든 노래가 흘러나오고 오색찬란한 조명은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달리는 철길 위에서 정서적인 운치에 도취하여 간밤에 고생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레일바이크에서 산천을 바라볼 때 단풍잎은 노추산으로 오라고 손짓하지만, 풍경은 활동사진처럼 흘렀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산마루에 걸쳐 있고 두부처럼 깎아진 절벽 아래는 송천이 자연의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수정처럼 맑은 청수(淸水) 철길 위에서도 땅바닥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정서가 깃든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을 향하여 신 나게 페달을 밟았다. 터널 속의 공포에서 벗어나 밝은 곳으로 빠져나올 때 강 건너편에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교량을 지나고 있었다. 철길 언저리에 구절초 쑥부쟁이 억새 등 다양한 야생화를 보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총각 시절에 오솔길로 데이트할 때 꽃길 걸었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건널목을 지나갈 때 레일바이크 타는 관광객이 열차인 것처럼 도로로 달려오던 자동차가 멈춰 서 있었다. 손을 흔들며 지나갈 때 승용차 안에서 손을 흔들어 답하면서 미소도 흘린다. 유아시절에 세발자전거를 타면서 손 흔들던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이었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마을은 보이지 않았지만, 송 천의 맑은 물은 정제한 수돗물보다 깨끗한 일급수가 흐르고 있었다. 철길 자전거는 강물보다 빠르게 달리지만, 반대편 도로에 차들은 레일바이크를 한순간 스쳐 가버렸다. 경사가 심한 산 아래는 계곡만 보이고 외딴 집 언저리에 논밭이 조금 보였다. 아우라지역은 처음에 여량 역이었는데 아우라지라는 이름이 독특하여 지금은 아우라지역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아우라지는 발왕산이 발원지인 송 천과 중봉산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뒤차에 쫓기는 기분으로 사진 찍었으며 주변 경관을 조망하기에 바쁜 마음으로 들떠 있는 기분도 잠시 어느새 종점인 아우라지역에 이르렀다. 아우라지 마을에는 가을걷이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철길 언저리에 심어놓은 콩도 수확하고 누렇게 익은 벼도 낫으로 베고 있었다. 재래식 농사일에 열정적으로 일하는 농투성이를 보면 내 어릴 때 시골생활이 기억났다. 역 구내는 기관차 한량 객차 두 량이 옆 레일에 놓여 노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우라지역사 곁에는 어물치 모양으로 만든 카페가 철길 자전거를 타고 온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우라지에 뛰어들어 피로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었다. 바일레이크 타는 즐거움을 노추산의 비경과 함께 가슴에 담아 구절리역으로 되돌아 왔어, 여치처럼 만든 카페에 앉았다.

첫댓글 와~~~~`재미있었겠어요!! 저도 가고 싶네요..근데 타는 시간은 대략 얼마나 걸린데요??
그래요 재미 좋았어요 함께 가 보실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