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용달(用達)의 의미
用 쓸 용; 쓰다, 베풀다, 부리다, 등용하다, 행하다, 다스리다,
들어 주다, 작용, 능력, 용도
達 통달할 달; 통달하다, 다다르다, 미치다, 나오다, 꿰뚫다, 자라다,
깨닫다, 생기다, 정통하다, 통하게 하다, 길이 엇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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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1톤짜리 화물 용달차를 본 것은 아침 출근길 비교적 한산한 도로인 정량동 거리에서 이었다.
아침 어물전과 함께 왁자한 하루를 시작하는 어항인 이곳 소도시의 출근길은
부지런한 생활적인 사람들과 함께 열린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범상하게 보고 지나쳤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은 것이 의미 있는 몸짓으로 다가 올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 용달차가 확 눈에 들어왔을까?
일전에 어디에서 본 듯한 말이 생각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1 톤짜리 화물차가 잘 팔린다는 말을 ....... .
용달(用達)의 의미는 거기에서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
‘두루 쓰인다.’ 는 그야말로 삶의 전후좌우를 꿰뚫으며
전천후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는 삶의 방편 그것이 바로 용달의 참된 뜻이 되는 것이다.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들, 생활적인 사람들은 어쭙잖은 체면, 혹은 염치 같은 것들을 달랑 내어버린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무거운 짐이요,
삶을 어렵게 하는 혹부리 영감 볼따구니에 달린 혹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거리에서 저마다의 삶의 무게로 지친 다리를 용케 견디며
오늘도 생활 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장한 우리의 이웃들,
꿈과 소망을 가슴 속에 곱게 간직하고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간다.
용달은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의 여의봉과 같아서
그 휘두르는 재주가 무궁무진하며, 변화가 무쌍하다.
왜 그런가?
삶을 지탱하는 기찬 아이러니와 힘이 무궁무진하게 솟아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용달(用達)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용달은 ‘두루뭉수리’와 맥을 서로 통하며
‘무엇이든지 부닥치면 한다.’는 삶의 기개와도 짝을 한다.
즉, 생활을 즐기며 삶의 희열을, 일하고 땀 흘리는 가운데 찾으며
그 가운데 재미를 추구하는 바로 ‘생활의 달인’들,
한마디로 달관(達觀)도사(道士)들이 바로 이 용달(用達)의 범주에 속한다.
용달(用達)이 들에게 부귀영화는 사치에 가깝다.
그들은 ‘일하는 것’을 필생의 주어진 사명(使命)으로 삼아
날마다 일 속에서 사는 의미와 가치(價値)를 부여하고 열심히 일하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꿈은 소박하며, 생활은 단순한 원리로 다가온다.
복잡하거나 고차원적인 무슨 고상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매일, 하루하루를 주어진 생계를 위한 포도청 달래기에 나서기만 하면 된다.
시절이 좋아서 무슨 일이던지 닥치는 대로 하며,
원근(遠近)을 가리지 않고 완력(腕力)을 아끼지 않으며,
잔꾀나 요령을 부리지도 않는다.
오직 우직한 근면과 성실을 식물로 삼고,
그저 묵묵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 권모(權謀)와 술수(術數)는 문자조차 상대하려 하지 않으며,
오직 순박함으로 모든 것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실천 준행할 뿐이다.
그들은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의 수고와 그 무게만큼만 준가(準價)를 원하며,
불로소득(不勞所得)을 미워하고, 무사안일과 나태를 무섭게 질타하며,
오로지 맑고 곧은 근로의 이념으로 질긴 생활의 씨를 말없이 뿌릴 뿐이다.
그들은 어느 누구의 평어(評語)에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세상 명리(名利)에도 초연하여
사실 그들이 세상의 무거운 것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근거는 희박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천적으로 그것을 차단하는 실용적이고
아주 효율적인 용달(用達)이 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일회적(一回的)인 삶을 살아간다.
어떤 철학과 생각으로 살든지,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살면 그게 참된 행복이다.
용달의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새길만한 것이다. 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