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속 선과 악
학번: 2023101142 / 이름: 손준석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꽤나 인기를 끈 진격의 거인에 대해서 소개할까 합니다.소재가 신선해서 일본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공중파 예능에도 종종 나올 만큼 말이죠. 개인적으로도 스토리를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화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 잘못 만들어지게 되며 이도 저도 아닌 삼류 액션 만화로 변질될 때도 있는데, 다행히 액션과 스토리 모두 잘 잡아내었다고 생각합니다. 진격의 거인의 스토리는 주인공 에렌 예거는 성안에서 사는 평범한 소년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초대형 거인이 성벽을 허물면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수많은 거인들이 몰려와 살고 있던 마을은 초토화되고 어머니가 거인에게 잡아 먹힙니다. 그날 이후로 에렌은 거인을 모두 구축해버리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에렌 예거는 거인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조사병단 (조사병단은 인간 거주지를 둘러싼 거인의 외벽을 넘어가고, 거인의 기원과 정체성을 밝혀내는 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이 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진실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한 내용은 진격의 거인 1~3기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소개 하고싶은 내용은 진격의 거인 4기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진격의 거인 4기는 3기의 마지막화를 끝으로,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되고, 벽 외부에 존재하는 ‘마레’라는 나라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레와 파라디 섬에 얽혀 있는 내용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 내용은 몇 천 년도 전인 과거인 마레의 정복전쟁을 통해서 전개됩니다. 과거 마레는 강국으로, 마레가 타 국가들을 지배하고 다녔죠. 이 때 노예 취급 받는 에르디아 혈통인 한 소녀가 우연히 거인의 힘(최초의 거인)을 얻게 됩니다. 소녀는 에르디아 왕가(프리츠)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프리츠는 거인의 힘을 이용하여 억압하던 마레를 역으로 억압하게 됩니다. 그 후로 자식들을 낳고, 먹고 반복을 하여 아홉 거인이 탄생하게 됩니다. 세력은 더욱 강력 해졌고, 거인의 힘을 이용하여 마레를 수천 년간 지배합니다. 이 때 후대 제145대 프리츠 왕은 자신의 정복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에르디아 백성들과 함께 이 이주하였고, 그 곳이 파라디 섬입니다. 또한 마레는 억압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마레인 입장에선 에르디아인에게 수천 년간 지배를 당해왔기에 에르디아인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오와 혐오가 쌓이게 되고, 결국은 에드리아를 악마의 후예라 칭하며 몰살 하려하고, 주인공 에렌 예거는 그에 맞서서 파라디 섬(에드리아 인이 사는 섬)을 지키기 위해서 마레와 전세계를 구축하려고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본 철학적인 요소]
제가 진격의 거인을 통해서 바라본 철학적인 요소는 '도덕적 상대주의' 입니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적 가치와 판단이 문화, 시대, 사회, 또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주요한 두 가지 유형은 문화적 상대성주의와 개인적 상대성 주의입니다. 도덕적 상대주의에도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만 제가 주요하게 바라본 두가지 유형은 "문화적 상대성주의"와 "개인적 사회성 주의" 입니다. 문화적 상대성주의에 따르면 도덕적 가치는 특정 문화나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정의되며, 각 문화나 사회는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문화나 사회에서 행해지는 행동을 그 문화나 사회의 도덕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다른 문화에서는 선으로 여겨지더라도 다른 문화에서는 악으로 여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진격의 거인 속 에렌이 파라디 섬을 지키기 위해서 마레와 전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파라디 섬에 사는 에르디아인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인류를 몰살 하려합니다. 인류를 몰살한다는 행위에 대해서 마레와 타 나라입장의 문화에서 바라 본다면 단순한 살해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파라디 섬 속 에르디아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는 단순히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즉, 특정 문화와 상황에 따라 같은 행동이라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에 선한 행위, 악한행위라고 정의하기 힘들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두번째는 로 바라본 철학적인 요소는 "개인적 상대성주의" 개인적 상대성주의는 도덕적 판단이 개인별로 상대적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가치 체계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떤 것이 한 사람에게는 선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악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주인공 에렌 예거는 작품속에서 " 나는 자유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내 자유의사가 선택한 거지..."와 자신 스스로를 "자유의 노예" 라고 칭하며 자유에 대한 가치를 높게 생각하고있습니다. 자유를 위해서 희생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듯이 어기며, 그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반복되는 전쟁, 의미 없는 희생 이런 희망 없는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1차,2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나온 실존주의 사상이 떠올랐습니다. 실존주의는 20세 중반에 등장한 철학적 운동으로, 인간의 존재와 의미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존재적 문제와 고통, 자유, 존재, 죽음의 의미 등을 탐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한 운동으로, 이전에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철학적 탐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실존주의와 관련된 대표적인 작품 중 '변신'에서는 인간이 당면하는 불안과 고통,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실존 주의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사회의 관습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 장면이 마치 에렌 예거와 겹쳐 보였기에 저는 진격의 거인 속 자유를 추구하는 에렌의 모습에서 실존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존주의를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실존주의에 대한 보편적 정의는 전무하다. 철학의 보편적, 본질적 관념을 설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던 사상가들이 대부분인만큼 이는 당연한 귀결일 지 모른다. 그러나 "본질적 가치"에 대해 의심하고 해체하여 인간 개인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내재적 가치를 긍정하는 것은 아나키즘과 맞닿아 있고, 존재 그 자체가 가진 긍정적 가치에 대해 탐구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외로 진격의 거인 1~3기의 내용을 통해서는 벽에 둘러싸였지만 이 작은 세상에서도 있을 것은 다 있었고, 권력 구조부터 시작해서 자본가 계층, 일반농민 계층 등 마치 중세 봉건시대를 연상시키는 사회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인류의 존폐가 걸려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인간 본질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나타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밖으로 탐사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움직임을 싫어하는 지배 세력을 통해서 변화에 있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태초의 수렵 채집 사회에서 인간 사회는 계급주의적 속성보다는 서로 협력해 나가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정착생활을 하고부터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권력구조가 생기게 됩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욕심이라는 것이 강해지고, 이후 인간 사회는 서로의 것을 빼앗기 위한 다툼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의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살아왔다고 볼 수 도 있죠. 하지만 이 만화에서도 볼 수 있듯 형태만 달리 지금의 인간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느낀 점]
만화,소설, 영화 등 많은 작품을 접해왔지만, 진격의 거인처럼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 인상적이어서 "진격의 거인 속 선과 악"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써보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진격의 거인에서 명확한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놓인 상황에 의해서 같은 사람이 악이 되고 때로는 선이 됩니다. 정말 모순적이라고 볼 수 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위와 같은 내용은 신화 속 이야기 "오이디푸스 왕" 에서도 이런 모순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구국 영웅으로 나라의 환대를 받으면서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왕비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행복한 미래를 시작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니 그는 패륜아였습니다. 자기 손으로 죽인자가 알고 보니 아버지였고, 지금의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 였다는 지금의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 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결국은 자신을 더욱 운명안에 갇히게 만들었음을 깨닫고, 자신 스스로의 눈을 찌르고 세상과 연을 끊게 됩니다. 인간의 의지가 결국 인간의 자유를 더욱 뺏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진격의 거인 속에서도 상세하기 드러낸다고 봅니다. 에렌 예거가 거인과 세상 밖에 인류를 구축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 그리고 그런 에렌 예거가 거인으로 변해서 학살한다는 두가지 모순을 통해서 작가는 오이디 푸스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순적인 속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고 느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도 결국 이런 모순성에서 벗아 날 수 없고, 만약 선과악을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 사람 이야말로 가장 쉽게 악에 빠질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생략 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한번 보시는 것도 추천 드립니다!!
첫댓글 "인류를 몰살한다는 행위에 대해서 마레와 타 나라입장의 문화에서 바라 본다면 단순한 살해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파라디 섬 속 에르디아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는 단순히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도덕적 상대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류 지성사를 통해 꾸준히 축적되어 온 것이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입장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외의 존재를 말살시켜야 한다는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서 지금은 훨씬 더 인간 아닌 존재에 대한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 또는 개인의 권력은 내려 놓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지요. 상대주의적 도덕론, 또는 특수 윤리에서도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인정되고 있으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