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온 편지
김윤덕 여론독자부 차장
다들 잘 있는지.
네 아버지는 어찌 지내는지.
늦바람 나 혼자 여행 간 마누라에 대한 노여움,
지금쯤 풀렸는지.
비엔나엔 무사히 도착했다.
두려움과 불안, 그러나 행복감 충만한 여정이었다.
이 나이에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덜컥 비행기에 올라탔으니 나도 참 당돌하지?
옆자리 남자가 대포처럼 코를 곤 것 말고는 기내식도
먹을 만했고, 좁은 좌석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입국 심사할 때 제일 떨렸지.
네가 적어준 예상 문제와 답을 수백 번 외웠는데도
게슈타포처럼 두 눈 부릅뜬 남자 앞에 서니
머릿속이 하얘지더구나.
그 남자가 "Where are you from?" 하고 물었는데,
내가 뭐랬는줄 아니?
"I am fine thank you a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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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다뉴브 강변에 있는, 작지만 아늑한 곳이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을 흉내 내자면,
'행복이란 오늘 아침 반찬으로 뭘 해먹어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남이 다 만들어놓은 음식을
접시에 담아 먹기만 하면 되니 여기가 천국.
첫날엔 현지 가이드를 따라 쇤브룬 궁전에 갔다.
이곳에 살았던 왕비 중 엘리자베스란 여인이
있었는데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유럽 전역에서
그녀를 보기 위해 궁전을 찾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는구나.
아침에 눈떠 잠들 때까지 거울 보는 게 일과이고,
허리 22인치를 유지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저녁밥을 굶었다
하니, 천하절색 부러워할 일 아니더라.
벨베데르 궁전에선 클림트의 '키스'를 보았다.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명화'라는데,
오히려 나는 이 궁전 3층 구석에 전시된 '웃는
조각상'들이 좋았다.
반달눈썹을 하고 헤벌쭉 웃는 사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 사람….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오니, 스트레스 많은
우리 딸에게 주려고 엽서 한 장 샀다.
가이드가 해준 재미난 이야기 들려줄까?
오스트리아 남자 히틀러의 꿈은 원래 화가였단다.
클림트가 다닌 비엔나국립미술대에 지원했는데
두 번이나 낙방한 뒤 정치인이 되었다지.
그래서 제2차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은 히틀러가
아니라 그를 떨어뜨린 미술대학 학장이라는구나.
그럴듯하지?
실은 골목골목 거미줄 전선에 매달린 형광등이
비엔나의 진짜 명물이다.
세계 최고의 음악 도시를 밝히는 남루한 불빛,
그 유쾌한 반전을 너도 보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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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를 만난 곳은 할슈타트로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였다.
비엔나에서 할슈타트까지 4시간이 걸리니,
가이드가 '사운드 오브 뮤직'을 틀어주더구나.
줄리 앤드루스는 노래도 참 잘하지.
폰 트라프 대령은 어쩜 그리 잘생겼는지.
다들 '도레미송'을 흥얼대며 즐거워하는데도,
그녀는 웃는 법을 모르는 인형처럼 창백하게 앉아 있었다.
'신이 내린 마을'이라는 할슈타트에서도 J는 혼자였다.
점심으로 송어 튀김을 먹을 때 내가
"비리지도 않고 참 맛있지요?" 했더니,
화들짝 놀라서는 고개만 끄덕였지.
다시 비엔나로 왔을 때 그녀를 데리고 슈테판 성당
근처 초콜릿 케이크로 유명하다는 카페에 갔다.
일명 비엔나커피로 불리는 멜랑시 두 잔과
케이크를 주문하고는,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느냐고,
이왕 떠나온 여행 즐겁게 다니라고 했더니,
별안간 J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더구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 가랑비 날리는 괴괴한
형광 불빛 아래서 J가 물었지.
"생의 한쪽 문이 닫히면 신(神)은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던데, 정말 그럴까요?"
이튿날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떠나는 J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 딸 서른 인생에도
이런 깊은 슬픔이 있었나 싶어, 목이 메었다.
#
왜 하필 비엔나냐고 물었니?
이 도시의 보도블록은
피아노 건반으로 돼 있는 줄 알았다.
발끝만 대도 모차르트의 선율이 울려 퍼지고,
광장엔 밤낮 없이 왈츠를
추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 또한 외롭고 고단한 사람들이
누추한 일상을 엮어가는 삶의 터전이더라.
파도치는 바다가 살아 있는 바다라는 걸
일깨워주는 곳이더라.
'모든 인생은 외롭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여행일까.
사랑을 잃고 울던 J, 10년째 오페라 무대에
도전하고 있는 노총각 가이드, 궁정악사 분장을 하고
음악회 표를 팔던 링 거리의 처녀들….
그들에게서 크나큰 위안을 얻었으니,
평생 모은 쌈짓돈을
이 여행에 투자한 것이 아깝지 않구나.
딸아, 나이 듦의 슬픔을 아니?
나 자신이 쓸모없어졌다는 자괴감, 세상은 미래를
향해 달리는데 나 혼자 과거의 시간에 갇혀
허우적대는 느낌….
나의 노고는 당연한 듯 치부해버리는 가족들이 미웠다.
어디 나 없이 살아보라며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고 싶었지.
근데 참 이상하지?
여행 와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심보 제일 고약한 서방님이라니.
미움이 곪다 지쳐 연민으로 삭은 걸까?
여름 상추에 보리밥과 된장 얹어
볼이 미어터지게 먹어보고 싶구나.
집 나간 마나님 무탈히 잘 있노라,
네 아버지에게 전해다오.
미안하다 전해다오.
-어느 카페의 글-
첫댓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방장님
좋은글 잘봤습니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하게
많이 웃음짓는 날되세요
좋은글
추천드립니다
모닝커피 한잔하세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감동글
감사 합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행복하시고 힘차게 활기차게 열어가세요
문창운영자님 안녕하세요..
감동 좋은글 오늘도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어버이날 되시고 늘 건강하시고
꽃길만 걸으시길 응원합니다,,,
추천드리고 갑니다,,
안녕 하세요..문창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쉼이 되는 시간 보내세요
추..3 드리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