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께 받는 사명
(사도행전 20 : 17-35)
타임지가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1위는 세상에서 가장 부자로 살고 있는 빌 게이츠도 아니고 클린턴 전(前) 대통령도 아니고 부시 현(現) 대통령도 아니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라는 여성 토크진행자였습니다.
그녀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윈프리의 네 가지 인생철학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남보다 설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네 번째 남보다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그녀는 혼혈아로 태어나서 가난과 아픔 속에 자랐지마는 혼자 공부하면서 성경의 모세를 통해서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게 부유함이 있다면, 내게 아픔이 있다면, 내게 설렘이 있다면, 내게 어떤 일에 부담이 있다면 그것도 사명으로 받아들인 그녀의 인생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남 도우라고 내게 맡겨주신 사명임을 알아야 됩니다. 몸과 마음에 아픔이 있습니까?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 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 주시는 사명임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설렘과 꿈이 있습니까? 그것도 나의 사명입니다. 어떤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을 도와주어야겠다, 교회에 좀 더 봉사해야겠다, 직분을 감당해야겠다, 그런 부담감이 있는 것은 피할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나의 사명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있는 장로들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면서 마치고자 하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기에 귀했고, 목숨까지도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이 자신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 사명을 받기 전에, 바울도 나름대로 사명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고 좇는 기독교인들은 잡아 가두고 죽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적인 신념에서 온 것이지,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지만, 신념은 자신으로부터 옵니다. 내가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은 신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명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으로부터 온 사명을 전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나라 전파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받은 사명도 사도바울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거닐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가졌다면,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우리 가정과 속해져 있는 공동체에서 사도바울이 받았던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그 사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윌리엄 부스는 구세군 창시자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열심히 전도생활에 힘썼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병을 얻었습니다. 진단 결과 중병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의사가 심각하게 충고했습니다. “이런 몸으로 전도생활을 계속하면 1년도 살지 못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부스는 깊이 생각한 후 마침내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전도생활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병을 이기고 구세군을 창설했으며 84세를 살았습니다. 그당시 84세이면 오래 산 것입니다. 윌리엄 부스가 고백한 말. “내가 젊었을 때 의사가 나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의사를 버렸습니다. 대신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습니다”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절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월리엄 부스는 자신의 질병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전하겠다는 사명을 깨닫고 복음에 사로 잡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회개하고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2.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모든 겸손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스스로 세운 종교적인 신념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교회를 핍박하고 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할 때에는 사람들을 죽이고 해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명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았을 때에는 그 자세가 아주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겸손과 눈물로 감당하였습니다.
잠언 22장 4절에 “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니니라”
야고보서 4장 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이 겸손이라는 표현을 쓸 때에 그 당시에 겸손은 아름다운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겸손은 노예가 그 주인에게 가지는 낮은 자세를 말합니다. 자신이 모든 겸손으로 사명을 감당했다고 했을 때에는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맹종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와 영광을 포기하고 없는 것과 같이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사명을 위해서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십자가 앞에 죽이고 종이 되어 겸손히 주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자기 권리와 영광을 포기하기까지 겸손하게 섬겼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진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실력이 있고 난 후에 겸손입니다. 사도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율법 업한 교훈을 가지고 열심히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에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해를 입혔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자신을 죽이면서 겸손과 눈물로 감당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자녀문제로 자신의 연약함을 느낍니다. 물질문제로 자신의 힘으로 한계를 느낍니다. 생각보다 큰 문제 앞에 보잘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주여 나를 불쌍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합니다.
에베소교회 첫사랑을 버리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니다.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하루도 살아갈수 없습니다. 눈물없이 지낸 적이 없습니다.
시편 126편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편 42편 3절에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3. 성령이 그들 가운데 교회를 보살핍니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삼년이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은혜의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셨습니다.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범사에 모본을 보여 주고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은 대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주고 시간을 주고 물질을 주고 나아가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까지라도 바치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는 자에게 행복이 있고 주는 것이 복입니다.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아무리 주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주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오른손이 하는 거 왼손이 모르게 하라.' 또 '하늘에 쌓아 두라. 냉수 한 그릇을 네 이름으로 줄 때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네 이웃에게 향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꿈, 끼, 꼴, 꾀, 깡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겸손과 눈물로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죽어도 감당하고 싶다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남모르게 흐르는 눈물이 있습니다. 남보다 아프기에 그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 때문에 그 아픔을 나누기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 갑니다. 약한 사람을 도울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줄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와 눈물과 성령으로 주예수께 받은 사명을 항상 기뻐하고 즐겁게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