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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험이 전혀 없으신 분들을 위해 현장의 소리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유치원선생들은 자신의 직업을 3D업종이라고 부른답니다.
dirty, difficult, danger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ㅎㅎ;;
그만큼 힘든 직업입니다. 얼마나 힘든가하면요.....
제가 취업한 원은
아이들보다 선생님이 먼저 행복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졌으며 본인 공부 때문에 행사때외엔 오지 않는 원장님과
일 잘 하고 성격좋은 원감님이 운영을 맡고 있는 연령별 한 학급씩 세 학급 밖에 없는 작은 규모의 원입니다.
여느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일은 많지만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시키면서도 미안해 하시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덜합니다.
한마디로 유아교육계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도 말입니다....
(리얼리티를 위해 1인칭 시점으로 바뀝니다.)
출근 첫날
맡은 교실 청소하는데만 하루 종일이 걸렸다.
떠나시는 선생님들 대부분이 교실을 대충 건사하시기 때문에 교실 상태가 많이 험하다.
마스크를 챙겨오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로 쌓인 먼지들.....
구석구석 먼지 털고 교구 및 교구장 닦고
사물함, 책상, 의자, 칫솔 소독기,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에어컨, 히터, 피아노, 텔레비전)을 다 닦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영역 구성에 들어갔다.
공부 제대로 안해놓았으면 큰일날 뻔 했다. 배운 내용을 기억해내서 영역구성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언어영역은 제일 안쪽 조용하고 밝은 자리, 쌓기 영역은 가장 넓은 자리이며 대그룹으로 모이는 자리 등등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기억하면서 구성해나갔다.
원감님이 지켜보시다가 아무 말씀 없이 나가셨는데
옆 초임샘반으로 가시더니 차분하지만 화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영역구성 다시하라고 하신다.
휴....다행이다.
영역 구성 끝났으니 이제 영역이름표, 교구이름표, 생일판, 날짜판, 환경판을 만들 차례.
요즘 일일이 만드는 사람이 어딨나. 키드키즈에 가입하고 폭풍다운로드 시작.
감사의 댓글을 다는 센스를 발휘하며 선배들이 올려준 귀한 자료들을 열심히 출력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벌써 아홉시.....그래도 난 운이 좋은 거다.
부담임으로 근무했던 원에선 일년 내내 선생들 퇴근이 아홉시였으니까.
초임은 1학기엔 거의 11시 넘어서 퇴근했었다.
출근 이틀째부터 입학식까지 어마어마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출력한 자료들 코팅하고 오려서 교구장에 붙이고
생일판 곱게 만들어 붙이고 날짜판 만들어 올려놓고 환경판 채우고 교실 모든 사물에 이름표 붙이고 일과표 만들어 붙이고
사물함 신발장에 이름표 붙이고 출석이름표와 활동이름표 만들고 일정표 만들었다.
활동지 파일과 작품집 라벨링하고 유아관찰일지 일일교육계획안 주간교육계획안 전화상담일지 폼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교구 채워넣기.
3월은 나와 유치원이 주제이기 때문에 관련 교구들을 자료실에서 찾아서 영역에 맞게 찾아 넣으면서 교구표를 붙인다.
학기초라 하는 일 많다고 교실 외의 일은 시키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교실 밖 환경정리는 환영메시지 출력해서 붙이는 정도로 마쳤다.
그 와중에 신체검사결과표 찾으러 가야지 원에서 지정하는 은행에 통장 만들러 가야지...진짜 바빠 죽겠네....
미리 해놓을 걸....ㅠㅠ
오티 때 아이들과 함께할 활동 준비도 해야한다.
함께 부를 동요 악보 출력, 동화 준비, 함께 만들 토끼사탕바구니 만들 재료 준비.
퇴근해서도 쉴 수는 없다. 최대의 복병 연안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든.
그래도 여긴 그동안 축적된 자료 뽑아주시면서 나름대로 수정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그냥 써도 된다고 하시네.
땡 잡았다! 주신 자료를 살펴보니 연안과 그에 따른 월안까지 있다 앗싸~~~
프로젝트 수업은 그대로 할 수 없어서 그 부분만 바꾸고 내가 흥미있는 세계여러나라 주제 보강해넣는 수준에서 마무리.
정말 큰 짐 덜었다.
이렇게 준비하고 새학기 시작한지 벌써 보름이 지났네. 그 보름 중 하루를 공개해볼까?
유치원 선생들은 종일 아이들하고 놀고 돈 버는 줄 아는 철없는 일반인들,
유치원 선생들은 예쁜 머리, 예쁜 머리띠하고 상냥한 말투와 편안한 미소로 하루를 보내는 줄 아는 뭘 모르는 일반인들은 보라.
이보다 더 처절할 수는 없다!
작은 원의 단점은 일 나눠할 사람이 없어서 자잘한 일들을 다 해야 한다는 것.
부담임도 없어서 차량지도도 직접해야한다. 차량은 정말 힘들어ㅜㅜ
아침 등원 차량 2회 하원 차량 2회인데 이번 주는 아침 등원 1호차를 타야한다.
8시 출근해서 보일러 틀어놓고 8시 10분에 차에 올랐다.
타는 아이들은 몇명 없는데 원에서 다소 먼 거리에 사는 아이들이라 시간은 총 40분이나 걸린다.
어머니들에게 원의 첫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최고 하이톤으로 인사하고 아이를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준다.
덜거덕 덜커덩 그렇게 돌아서 원에 들어온다.
얼른 아침음악(잔잔한 클래식)부터 틀고 오늘 수업일정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등원>자유선택활동(오늘의 각 영역별 메인활동은 알록달록 색칠하기 활동지(조형영역),
친구와 기찻길 만들기(쌓기 영역),
친구를 초대해요(역할영역),
동극 그네 좀 태워줘(언어영역),
배 접어서 꾸미기(종이접기 영역),
원목통에 여러가지 기둥모양 넣기, 뫼비우스 블럭(수 조작)
>정리정돈>간식먹기>인사나누기(출석부르기,날짜와 날씨 알아보기,하루일과 알아보기)>이야기나누기(계단오르내릴 때의 약속)
>동시낭송 및 확장활동>점심먹기>영어수업>체육수업>회상 및 평가
각 활동을 위해 3일에 걸쳐 세심하게 준비했다.
한가지만 보자면...동극 그네 좀 태워줘를 위해 지난 주에 동화를 함께 읽었고
동물인형출력해서 코팅하고 하드보드지와 융판을 이용해서 삼각대를 만든 뒤 동극 시연을 했다.
자료를 모두 언어영역에 비치한 뒤 아이들이 자유롭게 해보도록 준비했다.
이런 식으로 모든 활동마다 나의 노력과 숨결이 미쳤다는 것!
2시에 아이들이 귀가한 뒤 유치원 카페에 그주의 활동사진과 재밌는 사연들을 올렸다.
한주간 틈틈이 찍어둔 수십장의 활동사진들을 모두 분류하여 아이들 개인 폴더에 넣어둔다.
이렇게 미리 해둬야 학기말 앨범 나갈 때 일이 수월하거든.
다음 주 동시, 동요, 종이접기 자료 출력해서 게시하고 관찰일지 작성해서 철해두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일주일치 일일계획안과 함께 제출해서 결제받아야 한다.
다음 주 수업을 위해 무지개 물고기 비늘 오려놓고, 만들기 재료 재료실에서 꺼내서 사이즈 맞게 잘라놓고,
우유팩 씻어서 엎어놓았다.
청소하고(이렇게 말하니까 청소가 쉽지? 천만에.....일단 구석구석 먼지털고 교구장 책상 닦고 영역별로 깔려있는 매트 다 걷어놓고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칫솔소독기 알콜로 닦고 칫솔 양치컵 깨끗이 닦아넣고 아이들 물컵도 다 닦아서 소독기 안에 넣고
내가 맡은 공동구역 청소까지 마쳐야 청소가 끝나는 것) 회의에 들어간다.
아이들의 문제행동과 교육적 대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다음 주 일정 자세히 나눈다.
아이와의 관계만큼 중요한 건 어머니와의 관계. 관찰일지 보면서 특이사항 전화상담일지에 간략하게 기록한 후 전화걸기 시작.
친근하게 수다떨듯 시작하여 아이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타당한 칭찬 및 애정이 담뿍 담긴 유의지도사항들을 말씀드린다.
몇 분과 통화하고 나니 귀가 뜨겁구나...
이렇게 하루가, 일주일이 끝났네.
주말 동안 일안 짜고 교구 및 수업 정보 검색하며 지내겠지?
월요일엔 성공적인 일주일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화요일엔 다음주 주안 짜고
수요일에 결제받은 후 통과되면 수업준비 및 자료 준비하고 목요일엔 주안 및 한주 소식 인쇄하고
금요일엔 한주를 마무리하며 카페에 글 올리고 전화상담......
그래도 행사없는 학기초니까 한가한 편이다. 본격적인 월별행사가 시작되면 아흐.......
그래도 보름만에 활동지 내용이 달라지는 아이들, 우리 선생님이 제일 좋다는 아이들,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 나누기 수업 뒤에 끄적거린 그림에 구체적인 결과물을 그려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힘든 거 싹 잊어버리고 헤~~~웃어버리는 나는 천상 유치원 선생님이다!
말씀드린대로 저희 유치원은 일이 아주 편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저 정도입니다.
유아교사는 빠른 시간 안에 구체적인 교육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울 수 있어야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유연성있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교실에 흩어져 있는 어느 한명 놓치지 않아야 하고
아이들의 장단점 특별한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부모도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을 전문가의 눈으로 찾아내고 교육적으로 교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존재이면서도 권위를 세울 수 있어야 하고
어머니들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만큼 성격도 좋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크고 작은 일들에 상처받지 않을만큼 담대해야 합니다.
원장 및 원감 주임 선후배 동료교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조리사님 사무장님같은 분들과도 친해야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 다재다능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전 그렇지 못하고 그러려고 아주 애쓰는 중입니다만
간혹 재능은 있으나 마음이 없어서 아이들을 쓸쓸하게 하는 선생님
마음만 가득이고 재능은 없어서 아이들을 방치하게 되는 선생님
마음도 재능도 있는데 지혜롭지 못해서 좌충우돌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진지하게 자문해보세요.
그리고 자신없다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돌아서시고
자신있으시다면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도대체 왜 이런 것까지 외우라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들이 현장에선 내 스펙이 됩니다.
열심히 하셔서 현장에서 찬란히 빛나는 멋진 선생님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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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멋진 선생님이셔요. 보조교사도 없이 그 많은 일들을 혼자 해내시는 것 보면서 부끄럽기도 해요.
저..대단한 게 아닌데요....일단 저희 원은 원장님소신 때문에 반별 원아수가 이십명이 안돼서 쉬운 편이에요. 그리고 이십명이 훨씬 넘어도 만 4, 5세의 경우엔 부담임 없는 원도 많아요. 거기에 1학기엔 교실장학, 부모 참여수업까지 하는 원도 많답니다. 그렇게 되면 업무량이 엄청나게 되는 거죠.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거라고 보시면 돼요^^
체계적으로 정말 잘하시네요.저는 1학년인데..언제나 그런 배테랑의 포스를 풍길까요.ㅎㅎㅎ
저도 현장 경험이 전혀 없이 회사다니면서 배우고 있는데, 글을 읽으니 감이 팍팍 오네요~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
허.. 졸업해도 나이가 있어서 유치원에 취직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어린이집도 거의 유치원 수준이라고 하던데... 잘할 수 있을까 정말 의문이 드네요;;; ㅠㅠ
대단하시네요...
인력이 그정도로 부족하다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저렇게 피곤하고 힘든데 아이들의 각자의 발달에 맞는 세심하고 열정적인 교육이 나올수 있을까 싶네요.. 국가의 유아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 두 아이를 유아교육기관에 맡기고 일하고 있는 엄마로서 서글퍼 집니다.
각자의 발달에 맞는 세심하고 열정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거랍니다. 물론 차량운행이나 청소같은 부분이 해결되면 체력적으로 덜 힘들겠지만 그외 업무들은 세심한 교육을 위해 불가피한 것들이에요. 사실 교사들을 힘들게하는 건 업무량보다 학부모들일 경우가 많죠. 보여지는 것에 목매는 학부모들이 많아서 그에 부응하느라 세심한 상호작용보다 결과물에 신경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가정과의 연계학습이 이뤄지지 않아서 아쉬운 점도 많고....그래서 교사들끼리 그런답니다. 유아교육보다 부모교육이 더 절실하다고....^^;;
교육봉사활동하고나서 진짜 현실 절실체감 했습니다. 그동의 열정이 서글픔이 되어 녹아 내립니다.보람을 찾아 늦은 나이에 공부시작했는데 3학년이나 되어 과감하게 포기 할수도 없습니다.이노력과 열정의 댓가는 기다리고 있을까요 .
열정과 노력의 댓가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장"되어 있답니다. 힘들지만 얼마나 재미있고 보람있는지 몰라요. 꼬물꼬물한 녀석들 입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자극준 얘기들이 톡톡 튀어나오고 행동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소리지르고 싶을 만큼 좋답니다. 화이팅입니다!!!!^^
저도 보장된 그날을 위해 처음의 열정과 공부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잊지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