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에서 줍는 사색의 조각
문희봉
악기는 명을 다하면서 소리를 남기고, 물감은 명을 다하면서 그림을 남긴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 석 자를 남기기 위해 열심히 뛰고 달린다. 그 결과 향내 나는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구린내 나는 이름을 남겨 가문과 모교에 먹칠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문인이 되려면 문학 소재 시장에서 장보기를 잘해야 한다. 언어의 밭에 널려 있는 여러 소재들을 낚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디어진 감각에 신선한 윤활유를 제공하기 위해서 어떤 이는 호수나 바다로 달려나가 대어를 낚는 꿈을 성취한다. 조어대회에서 월척을 낚아 금빛 찬란한 메달을 가슴에 안는다.
또 어떤 이는 강가나 냇가로 나가 오랜 세월이 궁글리고 다독여 만들어낸 수석과 상면하는 기쁨을 맛본다. 수석 전시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성취의 희열을 맛본다.
어떤 이는 산과 들로 나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바람, 꽃, 사람의 향기를 가득 지닌 야생화들과 만난다. 그들만이 간직한 순수와 만나 삶의 기쁨을 구가한다.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必有我師)라 했다. 여럿이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많은 것을 얻는다. 고관대작한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거리에서 풀빵을 굽고 있는 아낙네일 수도 있고,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휴지를 줍는 사람일 수도 있다. 고철을 줍는 사람일수록 하루 일당이 꽤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철은 대개 고물상으로 간다. 임자를 만나면 고가에 팔리는 행운도 누린다.
문병 갔을 때 극진히 아내를 병간호하고 있는 남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서 나는 한 떨기 장미꽃을 피우는 호사를 누린다. ‘현재 아주 어려운 상태지만 이 상태로라도 내 곁에 오래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말에서 삶의 참가치를 발견한다.
나는 헌책방에 자주 간다. 서가에 꽂혀 있는 고태 나는 책들의 제목을 훑어 내리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린다. 아주 희귀한 고본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득남 ․ 득녀의 기쁨을 누린다.
나는 가끔 고물상도 방문한다. 고물상에 들러 눈 쇼핑을 한다. 어떤 때는 생활필수품을 손쉽게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이리저리 뒤적일 수는 없지만 너른 매장(?)을 바라보다 보면 ‘아, 이것이구나!’ 하는 것과 만나는 횡재도 한다. 그러면 지체 없이 악수를 청하고 그것들을 품 안에 넣는다.
그것뿐인가. 이른 아침 리시버를 귀에 꽂고 열심히 달리는 이순의 체구에서, 사나흘이 멀다 않고 내 책꽂이에 꽂혀지는 신간 서적들에서 고귀한 조각들과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잠자는 의식 세계에 자극을 주는 일은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품만이 아니다. 움직이면 얻게 된다. 자재 수집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항목이다. 훌륭한 건축물은 훌륭한 자재 사용이 전제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진주들이 널려 있다. 배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건질 수 있는 보석들이다. 자연 진주뿐만 아니라 인공진주도 만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발품을 팔지 않고는 손에 넣지 못한다.
발과 가슴으로 빚는 문인이라야 한다. 내 무딘 신체에 신선한 울림을 제공해 주는 것들은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열심히 움직여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시간만 나면 다독, 다작, 다상량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하여 보잘것없지만 작고 아담한 집 한 채 완성한다. 견고하고 사용하기에 편리한 집 한 채,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집 한 채 얻고 만족의 미소를 짓는다.
불상은 석공이 돌을 쪼아서 조각한 게 아니라 바위 속에 숨겨진 불상을 석공이 찾아낸 것이라는 어느 대문인의 말이 가슴에 진하게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