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날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일과 중 단체 급식은 신경이 많이 쓰인다. 식단 구성이나 조리 과정에서 영양사나 조리사의 노고가 큼은 잘 안다. 식중독 예방은 기본이겠지만 어쩌다 기상 이변으로 교육과정 운영에 차질이 생겨 일과가 단축될 때 계획된 분량의 많은 식료품 자재를 안전하게 보관 처리함도 예삿일이 아닐 것이다. 학교 관리자와 학년부장들도 고심할 때가 있다.
요즘 교실 풍속도는 밤낮이 뒤바뀐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밤늦은 시각까지 학원 수강이나 인터넷 게임으로 밤을 새기 예사다. 이러다 학교에 와선 아침부터 책상에 엎디어 자거나 축 처져 있는 학생들이 상당수다.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는 이런 학생들을 다그쳐서 잠을 쫓아가며 끌어가야 하기에 수업진행이 많이 힘들다. 이러다 점심시간을 맞으면 학생들의 생기가 넘친다.
신선한 재료에 영양이 듬뿍한 식단이 차려져 나온다. 나는 점심만 먹는다만 대부분 학생들은 저녁까지 학교 급식으로 해결한다. 나는 집사람이 몸이 불편해 아침밥을 손수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해놓고 출근한다. 밥에 뜸이 드는 짧은 시간 내가 손쉽게 장만하는 반찬이 된장국이다. 멸치다시를 우려내고 두부, 버섯, 양파, 마늘, 풋고추 등을 넣고 끓이다가 된장을 두세 숟갈 풀면 끝이다.
학생들도 점심시간이 기다려지지만 아침밥을 부실하게 먹고 출근한 나도 마찬가지다.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나온 반찬을 집지 않지만 나물이나 생선은 언제나 식판을 초과 분량으로 채워 깨끗이 비웠다. 학생들은 학년별 학급별 정해진 배식 절차에 따라 점심을 먹는다. 인성부에선 날짜별로 돌려가며 급식 지도교사를 정해 배식구 줄서기와 좌석 배치나 퇴식구 정리를 도와주고 있다.
급식소 입구에 붙여 놓은 문구에 ‘수다날’이 있다. 수요일은 자기가 배식 받은 음식을 다 먹는 날이라는 뜻이다. 영양사는 수요일 식단은 냉면이라든가 국수 같이 잔반 양이 적게 나오는 것으로 짜 놓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구월 들어 첫 주 수요일은 내가 급식 지도교사를 맡은 날이었다. 4교시 수업을 끝내고 급식소로 가서 줄서기 상태를 살펴보고 퇴식구에서 식판 정리를 점검했다.
‘수다날’이 무색할 만큼 잔반이 나오고 있었다. 식단은 고구마카레라이스였다. 반찬과 후식은 유부장국과 텐더또띠아와 배추김치와 블루베리통통스무디였다. 튀긴 닭고기를 감싸 먹는 또띠아와 블루베리요구르트는 깨끗하였는데 카레라이스와 유부장국을 남긴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카레를 담은 대접과 블루베리 먹은 껍데기를 치울 통까지 있어야 했으니 퇴식구는 평소보다 복잡했다.
급식 지도 중간에 교사 배식구로 가서 다른 선생님들 꼬리서 식판에 밥을 퍼 담았다. 닭고기 요리인 또띠아는 건너뛰고 블루베리통통스무디는 두 개를 집었다. 또띠아를 먹지 않아 한 개 더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집사람한테 가져다주고 싶어서였다. 욕심 많게 두 개 먹는다고 누가 눈치 줄 사람도 없겠지만 나는 쑥스러워 블루베리통통스무디 한 개는 바지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짧은 시간에 식사를 끝내고 퇴식구로 가서 식판을 정리했다. 여느 때 같으면 바로 교무실로 돌아왔으나 급식 지도 당번이라 퇴식구 주변에 머물렀다. 그때 카레라이스를 비운 대접을 쌓은 바구니가 와르르 쏟아져 영양사와 조리사가 급히 다가와 정리했다. 나는 교사가 지도를 잘못해 일어난 일처럼 여겨져 행주로 바닥에 흘려진 음식찌꺼기를 닦아냈다. 그냥 밟고 지날 수는 없었다.
오늘이 ‘수다날’인데 잔반통이 가득 채워지고 있어 지도교사 잘못인 양 싶어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거기다가 퇴식구는 노란 카레국물로 얼룩져 평소보다 더 지저분해 지도교사 무능력이 드러난 듯해 자존심이 상했다. 임무를 끝내고 급식소를 빠져나오니 영양사가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넬 때 나는 책임을 못다 해 미안할 뿐이었다. 바지 호주머니엔 블루베리통통스무디가 볼록했다. 13.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