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연상호 감독, 좀비, 122분, 2026년
연상호의 좀비 시리즈로 봐도 되겠다. <부산행>에 각인된 관객은 군체를 보며 처음엔 어딘가 익숙함을 느끼게 되고,
살짝 실망할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연상호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연상호식 좀비의 변주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
연상호와 최종규는 완벽한 한팀이다. 만화가 시절부터 우리 사회의 파시즘적 폭력을 사이비 종교를 통해서,
좀비물을 통해서 은유하는데 집요함을 보여왔다.
군체로 움직이는 좀비들도 개인의 파시즘적 망상의 위험을 폭로한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며 우리는 전염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다, 더구나 극우의 시대, AI의 등장은
현대문명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통제할 수 없는 폭주의 불안을...
한편 이번 영화에서 좀더 눈에 띄는 장면은 인물의 성격변화가 고정적이라는 점이다.
악인은 끝내 악인이고 선인은 끝내 선인이다. 그럼으로써 부당한 현실을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지만,
인간성에 대한 고찰에서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중성에는 보탬이 되겠지만....
한편으로 정부에 만연한 관료주의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모든 권력 지향형 인간들이 가진 폭력성, 그리고 약자 안에 내면화된 강자 논리인 약육강식은 여전히 반복된다.
(이하 스포?)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주인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부산행>의 연대보다 환멸과 고립을 더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자매애랄까?
웅장할 만큼 압도적인 역동포즈로 정지한 좀비들 사이 스마트폰 연대로 서울을 구한
여주인공의 대조가 좋았다.
사실 우리들 자아도 이미 소비의 군체가 아닐까?
그 속에서도 소외된 채 진실을 추구하는 고독한 개인의 자기충실성을 감독은 응원하는 것이 아닐까?
스타벅스의 탱크데이와 광화문의 받들어총이 등장하는 이 시대에.
연상호의 블랙코메디가 아직 유효한 이유일 것이다.
= 시놉시스 =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에서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한다.
건물은 순식간에 봉쇄되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고립된다.
처음에는 짐승처럼 기어다니던 감염자들은 점점 진화하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사람을 식별하며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생명공학자 ‘권세정’과 생존자들은 자신의 몸에 백신을 주입했다고 신고한 ‘서영철’을 찾아
구조대가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상황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게 변해가고,
‘서영철’은 감염자들을 앞세워 생존자들 앞을 막아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