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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년과 실학, 그리고 공공성
글쓴이 김태희 / 등록일 2025-08-12
광복 80년이다. 광복의 꿈과 실천이 있었기에 광복은 가능했다. 1930년대 조선학운동은 광복을 향한 선인들의 학술문화운동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실학담론이 본격화되었다. 지난 8일 국회입법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성황리에 마친 ‘광복 80주년 기념 실학 학술대회’는, 이런 맥락에서 제1세션을 ‘조선학운동의 유산과 실학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준비했다.
이지원 교수(대림대)는 조선학운동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학인들의 학문적 실천이었으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민족국가를 지향한 학술문화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20세기 전반기 ‘조선학운동’은 21세기 오늘날 과거의 학문과 사상을 호명하며 ‘민’ 중심의 공공성을 모색할 때 유효한 역사적 경험으로 여전히 현재적이다”고 발표문을 끝맺었다.
자주·민주·민족 국가를 지향한 학술문화운동
조성환 교수(원광대)는 “실학이 지향한 근대의 기획은 최근 들어 그 효력이 다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된 ‘지구적 위험’을 배경으로 지적했다. 조 교수는 21세기 실학으로 홍대용의 지구학과 최한기의 기학을 주목했다. 홍대용은 인간과 만물이 평등하며, 지구는 활물(活物)이고 우주는 무한하다는 주장으로, 인간중심주의와 지구중심주의 등을 논파했다. 인간을 중심에 놓고 지구를 개발대상으로 삼았던 서구근대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홍대용의 주장에서 찾은 것이다.
제2세션은 ‘국가 위기극복 담론으로서의 실학과 공공성’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했다. 조선후기 국가적 위기극복을 위해 제도개혁론을 전개한 전통을 우리가 실학이라 말하는데, 제도개혁론의 주요 가치가 공(公)이었다. 최근 공공성 약화를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실학의 현재성을 환기해 주었다.
송양섭 교수(고려대)에 의하면, “공(公)은 민산의 균등화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인정(仁政)과 덕치의 근거”로 인식되었다. “공에 입각한 경장론은 현실사회를 비판하고 유교적 이상사회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으며, “유형원의 공은 정치권력의 공정성과 도덕성의 차원에서 분배의 균평·균등의 의미로 쓰였다.”
유형원의 『반계수록』과 정약용의 『경세유표』는 공공성을 높이려는 국가 기획이었는데, 양자는 차이가 있었다. 정호훈 교수(서울대)에 의하면, 『반계수록』은 공전제의 이상을 최대한 관철하려 했던 데 비해, 『경세유표』에서는 공전과 사전을 1:8의 비율로 구성한 토지제도를 제시하여 공과 사의 균형을 도모했다.
백민정 교수(가톨릭대)에 의하면, “다산을 포함해서 성리학자들이 공(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치우치고 기울어짐이 없으며 과불급이 없는 중(中)의 상태로 이해했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은 공과 사를 심성론의 도심과 인심과 연결하여 이해했다.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권력의 균형과 공정한 운영을 고심했다. 백 교수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정치적 중도주의에 관심을 표방했다.
실학자의 국가 기획, 공(公) 이념과 공사의 균형
제3세션 라운드테이블의 발제를 맡은 강동호 연구소장(공공선연구자협동조합)은, ‘피크 코리아’가 표현하듯 우리 사회의 여러 위기적 징후를 지적했다. 문제의 근원으로 시장자유주의의 실패를 지목하고, 극단주의의 부상을 우려했다. 그 대안으로 공화민주주의를 제시하며, 공공선(公共善)과 지속가능발전을 지향할 것을 촉구했다.
학술대회의 발표 내용을 소략하게나마 복기해보았다. 실학의 경세론은 다분히 국가중심적 접근방식이었다. 여전히 국가제도가 중요하지만, 오늘날에는 건강한 시민사회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시민교육과 언론이 매우 중요하다. 차별과 혐오,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무책임한 유튜버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 “같은 물을 마셔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격언이 흥미로웠다. 이지원 교수가 발표에서 인용한 것으로, ‘조선학’이란 용어가 조선학운동의 맥락과 달리 일제의 동화주의와 친일적 문화주의의 맥락에서도 사용된 점을 비유한 것이다. 이 격언은 백민정 교수가 음양론을 설명할 때 다시 떠올랐다. 음과 양처럼 대립하는 요소가 짝을 이룬 개념을 둘러싸고, 공존과 상호보완의 논리가 나오기도 하고, 이와 달리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나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기조강연을 맡은 이만열 명예교수(숙명여대)는 “민족분단과 외세의 압박, 미래의 불확실성 등을 선학들이 터득한 ‘실학적 지혜’로 새롭게 극복해가는 학인들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가 국가의 공공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제도적 정비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성원들의 공공의식과 공직자의 책임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글쓴이 : 김 태 희(정치학자, 역사연구자)
- 다산연구소 이사장
- (전) 실학박물관장
[저서]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빈빈책방, 2021)
〈실사구시 제창자 양득중〉(공저)(경인문화사, 2021)
〈정약용의 삶과 글〉(실학박물관, 2019)
〈반계 유형원과 동아시아 실학사상〉(공저)(학자원, 2018)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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