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시조(時調)
고려 말기에 이미 형태가 갖추어져 있던 시조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훈민정음이 창제됨에 따라 더욱 발달하여, 국문학의 대표적인 문학 양식으로 확고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⑴ 내용상의 특징 : 주된 향유층인 사대부의 충의 사상과 자연관을 노래한 것이 많다.
① 유교적 충의 사상을 노래한 시조 : 정국이 안정되고 왕조의 기틀이 잡힌 뒤로는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다수 창작되었다. (예) 사육신들의 절의가(節義歌)
② 강호 한정가(江湖閑情歌) : 노장(老壯)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영향을 받아 자연 속에서 한가롭고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지어졌다. 자연을 유교적 충의(忠義) 이념과 결부시켜 표현한 작품들이 주로 창작되었다.
③ 기녀들의 시조 : 기녀들은 인간의 정서를 진솔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예) 황진이의 시조
④ 교화 목적의 시조 : 교화를 목적으로 한 작품도 지어졌다. (예)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⑵ 형식상의 특징 : 3장 6구 45자 내외의 단형 시조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점차 단형 시조가 중첩된 연시조도 발전하게 되었다.
⑶ 작가 : 학자들 사이에도 시조를 짓는 사람이 많아지고, 시조가 일반으로 널리 확산되면서 기녀 등 작자층도 확대되었다.
※ 시조의 시기별 작품 경향
① 조선 초 : 고려 유신들의 회고가, 충절가, 조선 개국 공신들의 송축가 (예) 길재, 원천석, 김종서 등
② 세조 즉위 직후 : 사육신 중심의 충절가 (예) 성삼문, 이개 등
③ 성종 이후: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낙천적인 인생관을 노래. 기녀(妓女)들의 참여로 작자 계층이 넓어짐. (예) 이현보, 송순, 이황, 이이, 정철, 임제, 황진이 등
※ 강호가도(江湖歌道)
*조선 시대 시가 문학에 널리 나타난 자연 예찬의 문학 사조로 자연에 도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과의 일치를 추구하였다.
*세종 ~ 성종 조의 융성한 시대를 지나 점차 정계가 혼란스러워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산천과 벗하려는 경향이 대두되면서, 관직을 떠난 가객(歌客)들이 산천에 파묻혀 강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는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시조의 영역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였으며, 영남 가단과 호남 가단을 이루는 성황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