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병을 다른 말로 바꾸면 옳고 바름 집착증이다. 옳은 일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성자 수준으로 올리면 옳고 바름에 별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아보이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완벽하면 성자병에 걸린 사람이 곧 온전한 성자인데 불완전하여 오판이 발생한다. 그리고 나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름의 깨달음 이후 나의 이성과 행동은 거의 완벽하기에 나는 사과도 성자의 우월감을 기반으로 해왔다. 어른이 된 중생들은 권력으로 강요하지 않는한 큰 잘못을 하고도, 자주 잘못을 하면서도 절대 사과하지 않지만 성자인 나는 아주 가끔 발생하는 대수롭지 않은 잘못으로도 사과를 한다는 도덕덕 우월감이었다.
잘못한 일이 없어도 대의를 위해 무조건 사과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의 우월감을 기반으로 한 행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는 정말 크게 오판하고 크게 무례하고 크게 사과하고 겸손을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사람을 상대로...
그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배움터지킴이를 관할하는 부장이 새 학년도를 맞아 배움터지킴이 둘을 뽑는 절차를 밟는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이를 나에 대한 해임통보로 받아들이고 기분이 상하였다. 그건 해임통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나의 경험치에는 해임통보인 경우만 있어 오판을 한 것이다.
그 오판은 나로 하여금 부장에게 고작 석달동안 교문만 지키게 해놓고 무슨 근거로 해임을 하냐고 항의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갑질이라는 표현까지 써서 부장을 공격하게 만들었다. 젊은 부장이 해임이 아닌데 왜 그러시냐며 억울해하는걸 거짓이라 확신하면서...
특히 그 카톡을 나에 대한 해임통보로 받아들인 부분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배움터지킴이가 둘이니 둘 중 하나를 내보내기 위해서도 둘을 새로 뽑아 쫓겨나는 배움터지킴이의 반항을 막는 신중함은 부장의 자기보호를 위한 당연한 절차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성자답게 즉시 부장에게 사과한다. 역시 이 사과는 부족한 처신으로 오해를 자초한 부장을 배려한 오만한 사과였다. 부장이 거짓말을 했는데 증거가 없는게 진실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현직 교사인 아내에게서 현장 학교에서는 기존의 인력을 그대로 쓸지라도 채용과정을 다시 밟는 사례가 많다는 말을 듣는다. 젊은 부장의 항변대로 그 누구도 쫓아낼 마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 지나친 옳고 바름에 대한 집착이 잘못된 우월감과 확신을 만들고 그것들이 아무 죄없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 타인의 정당한 복수로 손해를 볼 수도 있구나...(이 경우의 손해는 배움터지킴이직 상실)
성자되는 일은 나와 남이 모두 잘되기 위함인데 남은 물론 나에게까지 손해되는 일을 발생시키다니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우월감에 근거한 과도한 확신의 빗장이 스르륵 풀려버린다. 그리고 마음이 더 행복해진다.
부장에게 진심으로 다시 사죄한후 싱글벙글하며 가족에게도 여전히 이성적이지만 감성적으로도 훨씬 너그러워진 나를 보고 아내가 빈정거린다.
"직장에서 잘릴거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가 유일할거다."
"직장은 잃을거지만 겸손을 찾아 더 행복해졌잖아! 진짜로 착해야지 착함이 오만함이 되면 모두가 불행해지는거야!
첫댓글
건강 최고의 사고방식이십니다
잘 하셨습니다. 천혜 선생님
저를 재위촉한다면 성자 부장이 맞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겁한 거짓말쟁이 부장이 멋진 남자인척 한 거겠죠. 어떤 결론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서울시교육청 2024학년도 지킴이 지침을 찾아 보니
동일학교에서 2번 재위촉(3년)을 할 수있고
그 이후에는 신규 위촉공고를 해야 하는데
기존 봉사자도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군요.
천혜님이 계신 학교는 지킴이가 두 분이죠?
천헤님은 봉사한 지가 3개월밖에 안 되었으니
공고없이 재위촉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지킴이 한 분이 혹 3년이 되었을까요?
그것도 아닌데 금년에 신규 위촉 공고를 낸다면
변수가 서너가지 예상이 되는군요.
저는 3개월, 다른 분은 1년 되었습니다.
저는 진실을 알고 싶어서 다시 지원을 했는데 그분은 기분 나쁘다고 아예 지원을 안 했습니다.
학교측의 의도는 명백해졌군요..
둘 다 바꾸던지 아니면 둘 중 한 사람만
바꾸고 싶던지.
지원을 잘 하셨습니다.
님 같은 분은 계속하셔야죠.
이의제기 과정에서 지원하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겠다는 사람에게 지원서를 내라고 했으니 재위촉하지 않는다면 정말 나쁜 교육자라고 봐야겠지요.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