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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장산에서 남쪽 산 첩첩 조망
息藏峰巒碧岹嶢 식장산 봉우리 푸르고 드높으니
海中三山可與四 바다 가운데 삼신산과 함께 넷이 되겠네
僧徒來卜此隩區 승려들이 와서 이 구역 차지하여
新刱樓臺名鳳寺 새로 누대 세우고 봉서사라 했지
―― 우재 송시열(尤齋 宋時烈, 1607~1689)
주1) 식장(息藏)은 ‘食藏’의 다른 표기이다.
주2) 삼산(三山)은 발해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蓬萊)ㆍ방장(方丈)ㆍ영주(瀛洲)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식장산이 삼신산에 견줄 만큼 아름답다고 본 것이다
▶ 산행일시 : 2023년 1월 23일(토), 맑음
▶ 산행코스 : 법동 매봉중학교 근처, 법동구민공원, 봉황마당, 계족산, 봉황정, 임도삼거리, 성재산, 절고개, 팔각
정, 남도정, 고봉산, 길치고개, 능성, 갈현성, 삼정동, 대전도시철도 판암차량기지, 통영대전고속국도 판암나들목,
망태골, 참지뱅이, 담암밭, 임도, 세천근린공원(2.5km) 갈림길, 식장산문화공원, 식장루, 헬기장, 식장산 정상,
대성동 삼거리 주차장
▶ 산행거리 : 산악회 공지거리 약 19km
▶ 산행시간 : 7시간
▶ 교 통 편 : 신사산악회(26명) 대형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신사역 5번 출구
07 : 24 - 죽전정류장( ~ 07 : 28)
09 : 58 - 법동 매봉중학교 근처, 법동구민공원, 산행시작
10 : 12 - 능선
10 : 19 - 봉황마당
10 : 48 - 계족산(鷄足山, 423.9m), 봉황정(鳳凰亭)
11 : 14 - 성재산(△399.1m)
11 : 50 - 390m봉, 휴식( ~ 12 : 00)
12 : 14 - 고봉산(古鳳山, 334.7m)
12 : 20 - 길치고개
12 : 45 - 능성(陵城, △313.8m)
13 : 07 - 갈현성(葛峴城, 263m), 점심( ~ 12 : 22)
13 : 50 - 대전도시철도판암기지
14 : 40 - 임도
14 : 50 - 세천근린공원(2.5km)과 식장산문화공원(2.0km) 갈림길
15 : 38 - 식장루(食藏樓)
16 : 00 - 식장산(食藏山, 596.7m)
16 : 58 - 대성동 삼거리 주차장, 산행종료
18 : 00 - 버스 출발
20 : 00 - 신사역
2-1. 계족산, 성재산, 고봉산(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대전 1/25,000)
2-2. 식장산(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대전 1/25,000)
▶ 계족산(鷄足山, 423.9m)
설날 전날에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을 간다. 설날을 맞이한 민족대이동 행렬에 낀다. 온전하게 갈 수 있을까
며칠 전부터 갈까 말까 고심했으나 버스전용차로를 믿어보기로 했다. 죽전, 신갈 동탄까지는 순탄했으나 그 이후
부터는 몰려드는 차량들로 버스전용차로 구분 없이 거대한 주차장이다. 안성까지 그런다. 버스전용차로에 다소
숨통이 트이고 9시가 넘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나오느라 아침을 거른 회원들은 요기도 하고 또 용변을
보기 위해서 휴게소에 들르려고 했다.
다른 때는 옥산휴게소에 8시 30분 이전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차량들이 길게 늘어선 그 입구에만 9시 10분이 넘
었다. 어쩌면 차량 한 대가 빠져나가면 한 대가 들어가고 하는 모양이다. 이래서는 옥산휴게소를 들르는 데 1시간
도 넘게 걸릴 것 같다. 우리의 엄한길 진행대장님이 그냥 지나치자는 어느 회원의 의견을 들어 모든 회원들에게
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었다. 휴게소를 들르지 말자는 데 만장일치다. 오늘은 산꾼들만 모였다. 산이 급하다.
이에 부응하듯 전용차로는 트이고 계족산 들머리인 매봉중학교 근처까지 단숨에 왔다. 산행준비는 차안에서
마쳤다. 버스에 내리는 족족 잰걸음 한다. 대로를 간다. 경부고속도로를 굴다리로 지나면 법동구민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지나자마자 대로 왼쪽 사면에 산릉을 오르는 데크계단이 보인다. 거기로 올랐어도 좋았는데 몇몇 선두
일행을 쫓아 직진한다. 산중골방죽 아래 Y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간다. 물론 오른쪽 길도 계족산을 간다.
대로는 농로로 이어지고 ┫자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골짜기 길을 버리고 왼쪽 사면을 오른다. 가파르고 긴 데크계
단이다. 오늘 아침 기온이 영하 17도에 육박할 거라는 일기예보를 보고 내복과 겉옷을 잔뜩 껴입었더니 비둔하거
니와 오뉴월 땀난다. 겉옷이라도 벗는다. 한 피치 길게 오르면 계족산 남릉 길이다. 소나무 숲길 공원 산책로다.
곳곳에 간이운동시설과 장의자가 있다. 어째 산을 가는 것 같지 않다. 이곳 동네사람들은 운동화 신은 간편한
차림으로 오간다. 중무장한 우리의 행색이 어색하다.
정자가 나오고 ‘봉황마당’이라고 한다. 그 안내판 글이다.
“계족산은 일명 ‘봉황산’이라고 불리었을 만큼 ‘봉황의 기운’을 가진 산이다. 봉황은 신비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며
성스럽고 귀한 동물이다. 계족산은 이러한 봉황의 기운을 가진 대전의 진산(鎭山)이자, 나아가 전국적 명산으로
거듭난 산이다. ‘스토리가 흐르는 녹색길’의 세 갈래 길(동춘당 생애길, 덕을 품은(懷德)길, 산디마을 산신제길)이
만나는 중심 마당인, 이곳 봉황마당은 ……”
닭을 봉에 비유했다. 하기는 자라나 잉어, 붕어 등과 닭을 넣어 끓이고 달인 탕을 용봉탕이라고 하니 그 격이 아닐
까. 계단 길을 오른다. 약간이라도 가파를만하면 계단을 놓아버렸다. 계단길이 지겨워 가드레일 넘어 생사면 돌길
을 오르는 이도 있다. 숨이 가빠질 무렵 계족산 주릉 ┳자 갈림길이다. 왼쪽이 계족산, 봉황정 0.2km이다. 돌길 오
르막이다. 계족산. 널찍한 공터다. 조망은 그다지 트이지 않는다. 옆의 봉황정이 경점이다. 계룡산과 대둔산이 훤
히 보인다.
멋들어진 鳳凰亭 현판 전서는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가 썼고, 봉황정 천장 한쪽의 걸린 「鳳凰亭記」는 1991년
당시 관선 2대 대덕구청장인 송일영(宋日永)이 짓고, 서예가 장암 이곤순(長巖 李坤淳, 75)이 썼다. 이 902자
「鳳凰亭記」가 사뭇 감동적이다.
“옛부터人傑은地靈이라하였듯이이대덕구는山川이秀麗하고風光이明媚하여三國이래長遠한역사위에서數多한忠
臣烈士와縉紳名公을배출한湖西의鄒魯之鄕으로뿌리를내렸으니이는이고장의背山主嶺으로의연히솟아오른鷄足
靈山의精氣를받았음이분명하다계족산은 千年을유유히흐르는錦江을옆에끼고한반도의中嶽鷄龍靈峰과照應하여
金屛山食藏山寶文山과손을잡아한밭을옹위하는主山이되었다멀리서우러르면흡사鳳凰이端坐한모습이어서 古人
은鳳凰山이라불렀다지만……”
3. 봉황정에서 조망, 멀리는 대둔산
4. 봉황정에서 조망
5. 봉황정 현판
서예가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 글씨다.
6. 성재산에서 대청호 쪽 조망
7. 성재산에서 식장산 쪽 조망
8. 성재산에서 대청호 쪽 조망
9. 성재산 가는 길옆에 있는 ‘바위를 품은 부부나무’. 팽나무라고 한다.
안내판 내용이다.
“백제의 한 마을에 사이좋은 부부 정유와 완이가 살고 있었다. 행복하던 부부에게 불행이 찾아오게 되고, 아내
완이는 원인 모를 병에 걸린 남편의 병이 낫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하였다. 남편의 병수발 도중 잠깐 잠이 든 아내
완이는 꿈속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 노인은 ‘이 바위에 정화수를 올리고 정성을 들여 100일간 먹이면 나으
리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다음날부터 노인의 말처럼 100일간 정성을 들이니 정유의 병은 씻은 듯이 낫게 되고
부부는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후 정유와 완이 부부를 닮은 팽나무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켜주듯이
바위를 보호하면서 자라났다고 한다.”
10. 오른쪽 멀리가 식장산
11. 대청호 건너 뒤가 환산
계족산은 『동국여지지』에 조선시대 회덕현의 진산으로 가물 때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왔다고 한다.(在縣東三
里。鎭山。世傳天旱山鳴則必雨。). 회덕이 백제 때 우술군(雨述郡)이었다고 하니 비와 관련이 있었나 보다. 한편
‘대덕’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대전읍의 부 승격 당시에 대전과 옛 군 명칭인 회덕을 한 글자씩 합쳐서 지은 것이
라고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성재산 가는 주릉 길에서 은진(恩津) 송공(宋公)이라 새긴 비석과 무덤을 두 개 보았다. 하필 송
씨인가 했는데 이곳 계족산 아래 회덕은 우재 송시열을 비롯한 당대의 내로라하는 송씨 가문이 살던 본거지였다.
그들의 계족산을 든 여러 시문을 볼 수 있다. 옥오재 송상기(玉吾齋 宋相琦, 1657~1723)의 「감회가 있어 다시 앞
의 운자를 써서 짓다(有感 復用前韻)」도 그중 하나다.
歸來一室傍雞峯 계족산 기슭의 집으로 돌아오니
谷口茅茨覆數重 골짜기 어귀를 띠풀이 겹겹이 뒤덮었네
末路浮生何處樂 늘그막 뜬 인생 어디에서 즐길쏜가
淸朝我輩幾人容 맑은 조정에 내 벗이 몇이나 있는고
川華受月添新白 밝은 시내에 달빛 내려 더욱 희고
山翠逢秋失舊濃 푸른 산은 가을 들어 예전 녹음 잃었네
不識紫薇花下醉 모르겠다, 자미화 아래 취하는 것이
何如庭畔撫孤松 뜨락 소나무 어루만짐과 비교해 어떠한지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김기 박종훈 이관성 정만호 (공역) | 2013
‘자미화(紫薇花)’는 배롱나무꽃인데, 자미화에 취한다는 것은 벼슬살이에 도취되는 것을 말한다. 중국 당(唐)나라
때 배롱나무를 중서성에 많이 심었으므로 중서성을 ‘자미성(紫薇省)’이라고도 한다.
또한 우재 송시열과 사돈인 서하 이민서(西河 李敏敍, 1633~1688)는 「우재의 시에 차운하다(次尤齋韻)」에서
계족산을 들어 우재를 한껏 치켜 올렸다.
雪後招邀興未闌 눈 온 뒤 맞으니 흥 다하지 않는데
一時高躅在林關 한때의 높은 자취 숲속에 있구나
村名職號依然地 마을 이름과 관직명 그대로고
往哲今賢仰止山 옛 철인과 지금 현인 산처럼 우러르네
世德增光冥會際 세덕이 묵묵히 합하는 때에 더욱 빛나니
神交想像唱酬間 신교로 수창하는 사이를 상상해 보네
應知鷄足山前水 응당 알겠구나 계족산 앞 물이
遠接寒棲九曲灣 멀리 한서관 구곡 굽이에 닿았음을
옛 철인은 주희(朱熹)를 가리키고, 지금의 현인은 송시열을 가리킨다. 《시경》의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길을 걸
어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를 들어 두 사람의 고상한 덕행을 표현하였다. 신교는 정신적인 교유를 뜻하는 말이
다. 송시열이 시대를 거슬러 주희와 정신적으로 교유함을 말한다. 한서관(寒棲館)은 중국 무이산(武夷山)의 무이
정사(武夷精舍) 안에 있는 관 이름으로 주희가 살던 무이산의 계곡이 아홉 굽이였기에, 송시열과 주희가 시대를
거슬러 서로 통하였음을 말한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장성덕 전형윤 이주형 (공역) | 2018
▶ 식장산(食藏山, 596.7m)
봉황정을 내려와 남쪽 임도 삼거리 방향인 주릉을 간다. 대전 둘레산길이다. 둘레산길은 둘레길과 다르다. 둘레길
은 산의 둘레를 도는데 반해 둘레산길을 이 고장 둘레에 솟은 산을 넘는 것이다. 길 좋다. 쭉쭉 내닫는다. 임도 삼
거리가 금방이다. 임도는 성재산을 돌아 넘는데 그 가운데로 산을 오르는 등로가 잘 났다. 당연히 직등한다. “노면
이 미끄러우니 등산을 자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플래카드가 친절(?)하다. 367.9m봉을 오르고 등로를 왼쪽으로
0.3km 비킨 옆구리봉이 성재산이다.
12. 대청호 주변
13. 계족산 주릉 길, 봉봉이 산성 돌무더기다.
14. 능성에서 조망, 멀리는 계룡산이다.
15. 식장루에서 조망, 맨 왼쪽이 계족산
16. 보문산 주변
17. 앞은 보문산
18. 멀리는 계룡산
19. 식장루에서 내려다본 대전시내
들른다. 성재산이 경점이다. 대청호 일부와 그 주변의 올망졸망한 산들, 대청호 건너 환산, 오른쪽 멀리 식장산이
보인다. 삼각점은 1등이다. 대전 12, 1959. 성재산 내려 야트막한 안부인 절고개를 지나고 주릉을 간다. 팔각정,
남도정을 지나고 돌무더기 쌓인 봉봉을 넘는다. 390m봉. 동쪽으로 조망이 훤히 트여 장의자 놓인 쉼터다. 오늘
산행 첫 휴식한다. 주릉은 옛 산성이었다. 돌무더기는 삼국시대 성의 유허다. 387.5m봉 내렸다가 등로 비킨 고봉
산성 석축 잠깐 오르면 고봉산이다.
아무 볼 것이 없다. 고봉산에서 곧바로 풀숲 헤치고 내린다. 안부는 차도가 지나는 길치고개다. 길치고개의 옛
지명은 질현(迭峴)이다. 일부 고서에는 질치(迭峙)로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땅이 유난히 질퍽거려서 질티고개
라 했다고 하는데, 고개가 길다 하여 길치고개 · 길티고개로도 불리고 있다(한국지명유래집). 길이 많아 헷갈린다.
이정표의 ‘대전둘레길 잇기 5구간’ 방향표시를 꼭 붙들고 간다. 돌무더기 봉을 오르고 내린다.
그중 큼지막한 봉우리는 능성이다. 정상은 너른 터로 여러 운동시설이 있고 조망이 아주 좋다. 식장산이 눈에 잡
히고 보문산이 무척 가깝다. 능성을 길게 내린다. 갈현성 1.1km 줄달음한다. 갈현성은 제법 성 모양이 남았다.
갈현성 남문 쉼터에 내려 늦은 점심밥 먹는다. 식장산 들머리인 세천근린공원을 13시 30분쯤 통과하면 넉넉할 거
라고 했다. 바쁘다. 대알바가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르고 그저 줄달음 한다. 일행 한 사람과 나 둘이 간다.
안부에 둘레산길 잇기 이정표 살짝 옆으로 용운동 둘레산길, 판암주공아파트 2.4km 방향표시가 있다. 이 길이 더
잘났다. 식장산으로 곧장 가는 것처럼 보인다. 무심코 따라간다. 방향이 점점 서쪽으로 틀어지기에 뒤돌아가려고
하는데, 일행이 생사면 치고 내려가서 도로 건너고 개울 건너서 식장산 자락에 붙으면 되겠다고 한다. 지도에도
실경에도 그렇게 보였다. 생사면 수북이 쌓인 낙엽 지치고 내려 무덤 지나고 산자락 동물내습을 방지하기 위한
그물 넘고 농로를 내려 도로다.
삼정동 버스승강장이다. 이때만 해도 도로를 왼쪽으로 거슬러 올랐으면 나았다. 대로(그야말로 대로다)를 교통신
호 받고 건너니 높은 담벼락 길게 두른 대전도시철도 판암차량기지다. 그 정문을 지나고도 한참 더 가서 통영대전
고속국도 판암나들목이다. 고속고로라 무단 횡단할 수 없다. 판암주공아파트 동네까지 간다. 갑천(甲川) 건너고
아파트 옆길을 간다. 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를 굴다리로 지나고 개심사 방향 표시판을 만난다. 개심사는 자꾸
오른쪽으로 가기에 우리는 가급적 왼쪽 길을 따른다.
참지병이와 담암밭 지나고 산골짜기 포도밭 어구다.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성과 만나 식장산 가는 길을 다시 확인
한다. 그 길은 식장산 남릉을 간다. 나와 함께 온 일행(한 사람이다)은 그리고 가고, 나는 식장산 북릉을 오르고자
왼쪽 포도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잡목 숲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멀리서는 완만한 사면이 의외로 가파르다. 긴
다. 땅은 얼었고 스틱은 벗겨나고 연신 엎어진다. 내 거친 숨에 낙엽 헤친 먼지가 날린다.
임도에 올라선다. 산허리 도는 임도다. 왼쪽으로 간다. 임도는 산굽이 돌고 돈다. 임도 바리게이트 넘어 세천근린
공원에서 올라오는 차도와 만난다. 세천근린공원 2.5km, 식장산문화공원 2.0km, 내가 온 방향은 개심사 1.7km
다. 대알바를 하지 않았더라면 세천근린공원에서 능선에 붙어 꾀꼬리봉, 독수리봉을 넘어 식장산을 오르려고 했
는데 무산되었다. 아쉽다. 둘레산길 잇기를 아무렇게나 만든 게 아니다. 거기에 도전하다니 너무 순진했다.
20. 식장루에서 남서쪽 조망
21. 보문산 주변과 그 뒤쪽
22. 식장루에 걸린 사진, 식장산 너머로 해오름이 장관이다.
23. 왼쪽이 서대산
24. 서대산, 3년 전에 서대산 정상에 시설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25. 식장산 정상에서 남쪽 조망
26. 식장산 정상에서 남쪽 조망
차도도 식장산으로 간다. 그렇지만 나는 능선을 간다. 첫 능선 길은 인적이 낙엽에 묻혀 흐릿하였는데 봉 넘고
차도와 만나 한 구비 돌면 정자가 나오고 그 위로 능선 길이 뚜렷하다. 정자에 배낭 벗고 잠시 휴식한다. 막판
스퍼트 낸다. 첨봉을 오른다. 발자국계단이 났다. 다행스럽게 진창길이 땡땡 얼어붙었다. 산허리 돌아온 차도와
만나고 식장산문화공원 식장루다. 조망 좋다. 산 높이 598m봉에서 이만한 조망을 갖고 있는 산은 그리 흔하지
않다.
문화공원에 세운 시설물에 쓰인 식장산의 유래다.
식장산(食藏山, 598m)은 대전시 동남쪽 교외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충북 옥천군 군서면과 군북면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제 때 군사들이 성을 쌓은 뒤 군사용 식량을 많이 저장하고, 신라의 침공으로부터 대전 지역을
방호하던 군사전략적 요새의 기능을 담당했었다는 고문헌의 기록을 근거로 삼아서 식장산(食藏山)이라 불렀다는
유래와 먹을 것이 쏟아지는 밥그릇이 산꼭대기에 많이 묻혀 있다고 해서 식기산 떠는 식장산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함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식장루도 그 위의 운동장만한 군부대 헬기장도 조망이 훤히 트인다. 식장산 정상은 조금 더 가야 한다. 군부대 철
조망 따라 오른쪽 울퉁불퉁한 사면을 길게 돈다. 더러 가팔라 철조망에 손가락을 끼고 오르내린다. 식장산 정상.
바위 아래 아담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여기에서 조망은 식장루에서의 조망과 또 다르다. 충남 제1고봉인 서대산
과 그 주변의 울근불근한 산릉은 물론 산 첩첩 너머로 대둔산이 가경이다. 식장산이 이러다니, 식장산이 갑자기
좋아진다.
식장산이 낮에는 이러하고 밤에는 대전시내 야경을 보는 최고의 명소라고 한다. 서대산 아래 저 무수한 산들을
알지 못한다. 다만 감탄할 뿐이다. 조망으로 따진다면 식장산에 대한 우재의 ‘바다 가운데 삼신산과 함께 넷이
되겠네(海中三山可與四)’라는 시구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 위 군부대에서는 이보다 더한 절경
이 펼쳐 보이리라.
하산. 일단 고산사 이정표를 따른다. 급전직하로 내리쏟는 능선 길이다. 약수터 지나고 여러 갈래 길에서 가운데
를 잡는다. 골로 떨어지고 계류 건너 고산사에서 0.6km 내려온 임도와 만난다. 천년고찰이라는 고산사가 등로 옆
이었는데 들르지 못해 아깝다. 동네길이 나오고 이윽고 대성동 삼거리 주차장이다. 해찰 부려 산행시간 7시간을
억지로 채운다. 18시에 버스는 출발한다. 1시간이 남았다. 근처 음식점은 삼겹살집 한 곳만 영업 중이다. 모처럼
일행들과 어울러 삼겹살 굽는다.
서울 가는 길. 텅 비다시피 한 경부고속도로롤 지체 없이 달린다. 청주휴게소에 들렀는데도 서울 신사역까지 2시
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집에 가는 지하철 또한 한산하여 덜 깬 취기로 졸다가 환승역 놓칠까봐 정신 바짝 차린다.
27. 서대산
28. 서대산 앞쪽 산릉
29. 식장산 정상에서 남쪽 조망
30. 식장산 정상 표지석
31. 식장산 정상에서 남쪽 조망
32. 멀리는 대둔산
33. 멀리 왼쪽은 대둔산, 그 왼쪽 뒤는 천등산
34. 앞 오른쪽은 보문산 일부
35. 식장산 내려오면서 남쪽 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