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피림과 메뚜기
민수기 13 : 25 – 33(14:1-38)
‘네피림’은 ‘대장부’란 뜻으로 초인적인 힘과 키가 큰 가나안의 원주민 아낙 자손들입니다. ‘메뚜기’는 네피림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 매우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네피림’은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 마귀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말한 것은 사탄 마귀를 두려워하며 자신을 비하하고 저주하는 말입니다.
‘네피림’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오늘의 ‘네피림’입니다. 사탄 마귀를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부인하고 자신이 스스로 ‘메뚜기’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열 명이 ‘우리는 메뚜기 같으니’(33)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은 성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메뚜기’의 탈을 벗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피림’은 노아 시대부터 존재했습니다. 노아의 후손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은 ‘네피림’이 거인족인 네피림이였습니다(창6:14).
그들의 후손 아낙 자손인 ‘네피림’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나는 풍성한 과일을 먹고 대대로 살았습니다(13:28).
모세가 보낸 열두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두루 살펴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들이 메고 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백성들에게 보이며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자손 네피림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듣고 백성들은 크게 낙심하고 어수선하고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을 조용하게 안돈시켰습니다(13:30).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은 ‘신장이 장대한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고 말했습니다(13:33).
‘거민을 삼기는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각 민족들 간에 전쟁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신장이 장대한 네피림은 메뚜기 같은 우리를 이길 것이라’고 ‘악평’하여 말했습니다. ‘악평’은 ‘모욕’, ‘중상’이란 의미로 약속의 땅을 나쁘게 악평하여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온 회중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라고 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14:2,3).
출애굽 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기 위한 부푼 꿈을 안고 2년 동안을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이 멀지 않은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그들을 환영하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대대로 정착하여 살고 있는 일곱 족속을 쳐서 멸하고 그 땅을 빼앗아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하여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길 같이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서 몰사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셨다는 것도 압니다.
그들이 가나안으로 온다는 말을 듣고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더 강한 신이라는 것을 알고 간담이 녹아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보낸 정탐꾼들은 가나안을 두루 다니며 정탐했을 때 그들에게는 보호자도 떠났고 이스라엘 자손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은 ‘네피림을 보았다’고 하며 ‘그 땅은 우리를 집어삼키는 땅이라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악평’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이스라엘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네피림’에게 이길 수 없는 ‘메뚜기’로 비유한 것입니다.
아낙 자손은 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나는 과일을 먹고 자란 키가 크고 힘이 센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광야를 광야에서 풀잎을 갈아 먹고 사는 ‘메뚜기 같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메뚜기 같다’고 말한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말이 아닙니다. ‘네피림’을 이길 수 없는 백성을 낙심케 하는 악평입니다.
우리 앞에도 겁을 먹게 하고 낙심케 하는 ‘네피림’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고 스스로 자신을 메뚜기와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는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33)고 말했습니다.
아낙 자손이 그들을 메뚜기 같이 보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간담이 녹아서 두려워했습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는 사람 앞에 자신의 낡고 작은 차를 보고 주눅이 듭니다. 좋은 옷을 입은 아이 앞에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가 기가 죽는 것은 ‘네피림’과 ‘메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성도 앞에 주눅 드는 성도가 있습니다. 서울에 대현 교회에 다닌다고 자랑하는 교인 앞에 어려운 작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이 자신을 메뚜기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은 ‘네피림’을 상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놋 투구를 썼고, 오천 세겔로 만든 비늘 갑옷을 입었고,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놋 단창을 메었고, 베틀 채 같은 창 자루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향하여 큰소리로 겁을 주었습니다. 그 앞에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은 두려워 떨며 숨은 것은 마치 네피림 앞에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과 하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골리앗을 보고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가노라’고 말하며 물맷돌로 쳐서 넘어뜨려 죽였습니다(삼상17:49).
여호수아와 갈렙은 ‘네피림’이라고 말하는 ‘아낙 자손에게는 보호자도 떠나고 없으나,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14:9)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믿는 사람은 ‘네피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와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일과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백성을 전멸시키신 것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다’(수2:9-11)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우리의 먹이(밥)라’(14:9)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먹이(밥)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친 이스라엘 사람들을 여리고 사람들의 재산을 전리품으로 가져와서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수6:18,19).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쳐서 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전리품으로 가져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일곱 족속을 전멸하고 그들의 재산을 여리고처럼 전리품으로 노략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 사람들이 살던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그들은 우리의 먹이(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속사적으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집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농사한 풍성한 포도와 무화과와 푸른 초장에서 키운 살찐 양과 가축의 젖을 먹을 것이며, 그들의 은금 보화와 모든 재물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가나안 사람들을 전멸하고 그들의 살던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될 것을 알고 ‘그들은 우리의 먹이(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 그들이 가나안을 쳐서 전멸하고 모든 성읍과 평지와 그들의 집과 전 재산을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게 분배하고 나누어 주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망하던 백성들은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14:2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들이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을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을 광야에서 돌아다니며 그들은 죽었습니다(14:34). 하나님의 뜻을 부정하고 거역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주신 가나안 땅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스스로 메뚜기라고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음부에 던져져 불꽃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당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를 돌아다니다 다 죽고 음부에 던져져 불꽃 가운데서 영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그들에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거역’이란 말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명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하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버려져서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다’(사43:4)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속죄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광야에서 풀잎이나 갈아 먹고 살다가 강한 것에게 잡아 먹히는 메뚜기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끝까지 넘어지지 않게 지켜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살게 될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자신을 메뚜기와 같이 비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저주하고 영원히 멸망 받게 하는 무서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면 원망하게 됩니다. 원망하면 미래와 내세는 매우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맙시다. 주님 오시는 날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그 집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합시다.
첫댓글 💖세상의 모든 희망은 언제나 오늘 부터 입니다.
언제나 함께하는 마음과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