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 수풍석 뮤지엄*
정 복 선
그래, 몸이 물이고 바람이야
당신을 이룬 뼈대는 산맥의 모습이지
어느 한 별이 수십억 년 전
밤이고 낮이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왔을
그 처음 스토리를 떠올렸어
태초에 목숨 건 사랑과 모험을
가만 귀 기울여 봐, 느껴 봐,
달은 가깝고 빠른 공전에 하루가 짧았었다는
선캄브리아시대로부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까지
화산폭발과 대륙이동 지각변동을,
30억 년간 형성된 한반도에서
대지의 의기를 뿜어내는 바람이
땅의 피리소리와 하늘의 피리소리로 서로 화답함을**,
오늘의 화두는 지수화풍地水火風
당신이 바로 뮤지엄, 몸이라는 자연사박물관이지
이미 소멸했을지도 모를 행성의 한 조각이자
이내 돌아갈 한 빛이야
* 재일 한국인 건축가, 화가인 이타미 준(유동룡, 1935-2011)이 제주도에 건축한 박물관.
** 『장자』 내편 제물론에서 남곽자기와 안성자유의 대화에서 가져옴.
----애지 가을호 발표예정
자연이 인간을 품어 기른 것이지, 인간이 자연을 품어 기른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 속의 존재이며, 자연을 떠나서는 그 어떤 인간도 살아 갈 수가 없다. 쌀, 보리, 밀, 콩, 옥수수, 사과, 배 등의 농산물은 물론, 오징어, 멸치, 고등어, 붕어, 연어 등의 수산물도 자연이 품어 기른 것이고, 금은보석은 물론, 모든 화석연료와 강과 바다와 공기도 자연에서 솟아나와 생성된 것이다. 자연은 만물의 창조주이자 만물의 터전이다. 자연은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 따라 그 모든 것을 주재하며,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입장에서 종의 균형과 보존에만 관심이 있지, 특정한 개체의 번영과 행복에는 관심조차도 없다. 화산의 폭발과 수많은 대지진, 살인적인 더위와 살인적인 추위, 그리고 대홍수와 오랜 가뭄조차도 대자연의 질서이지, 그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정복선 시인의 [담다, 수풍석 뮤지엄]은 “오늘의 화두는 지수화풍地水火風/ 당신이 바로 뮤지엄, 몸이라는 자연사박물관이지”라는 시구에서처럼 대자연의 법칙을 노래한 시이며, 무사무욕한 마음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전언을 담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의 허장성세의 껍질을 벗기고 보면 우리 인간들은 물, 불, 바람, 흙의 결합체에 지나지 않으며,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물, 불, 바람, 흙으로 돌아갈 아주 작은 먼지이자 빛에 지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선캄브리아시대로부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까지/ 화산폭발과 대륙이동 지각변동을” 통해 “30억 년간 형성된 한반도에서/ 대지의 의기를 뿜어내는 바람이/ 땅의 피리소리와 하늘의 피리소리로 서로 화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고, 어느 누구도 이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느 누구나 예의범절을 잘 지키면 도덕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어느 누구나 법을 잘 지키면 법을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장자와 노자, 스토아 학파와 장 자크 루소 의 자연주의는 반자연의 토대 위에서의 외침이며, 우리 인간들의 오만방자함과 자연의 파괴를 꾸짖는 외침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숲과 어떤 악기도 필요없는 자연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정복선 시인의 [담다, 수풍석 뮤지엄]은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고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자연 속의 존재이며, 그 모든 욕망을 다 내려놓고, 한 줌의 먼지이자 빛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탄생은 죽음의 첫걸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이윽고 죽는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며,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이 아름답고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즐겁고 기쁘게 살다 가면 되는 것이다.
이 자연의 법칙, 이 자연의 질서에 너무나도 무식하고 너무나도 강력하게 반기를 든 생명체가 있으니, 그것은 모든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 인간들의 삶의 의지와 욕망은 더욱더 탐욕스럽고 뻔뻔스러워 지고 있는데, 오직 ‘인간 만세의 세상’을 위하여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파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인간들의 삶의 의지와 욕망에 반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는 하늘을 찌를듯 한데, 왜냐하면 이 지구촌 전체를 산송장들의 천국으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의 수익사업은 ‘실버산업’이며, 이 ‘실버산업’은 ‘죽음의 공포’를 이용한 ‘반자연적인 패륜사업’이라고 할 수가 있다. 80세-100세, 아니, 120세-500세의 산송장들이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이상형이고, 똥 오줌 싸는 냄새가 진동하는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인류 최초의 지상낙원이 된다.
우리 인간들의 삶의 의지는 이 지구촌 전체를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천국으로 만들고, 우리 인간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남극과 북극의 빙하와 설산을 다 녹이고, 천지창조의 첫날처럼 이 지구촌을 다 폭발시키게 될 것이다.
자연의 법칙,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리고 살아 남을 생명체는 없다.
오래 오래 산다는 것은 부채의 상환을 거절하는 채무자와도 같고, 오래 오래 산다는 것은 똥오줌을 싸며 전재산을 다 털어먹고 가는 악마와도 같다. 오래 오래 산다는 것은 모든 자식들을 다 불효자로 만드는 것과도 같고, 오래 오래 산다는 것은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들을 다 몰살시키는 저승사자와도 같다.
우리 학자와 우리 의사들은 이제, 제발, 그만 ‘장수만세의 마약’을 팔 것이 아니라, 천하제일의 명약, 즉, ‘인간 70의 존엄사’를 처방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하늘을 감동시키라’는 천벌을 받은 사람이다. ‘애지’, 즉, ‘지혜사랑의 이름’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해마다 노벨상 타고, 전인류의 존경받는 국민이 될 때까지ㅡ. 공부하고 글을 쓰라는 하늘의 천벌을 받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