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에 온?
모처럼 *철이형과 만나기로 하고 공릉동을 방문했다. 한 주간동안 집에만 있었을 것 같았던 *철이형. 그에게 바깥공기를 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철이형은 이곳에 입주한지 2주가 되었다. 이 말은 새로운 세상에서 홀로서기의 삶을 산지가 일주일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처음 일주일은 그들이 배정받은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센터에서 정착교육을 받는 기간이다.
물론 하나원에서 3개월동안 정착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가상의 공간에서 받는 교육이고 진짜는 하나센터에의 동행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가상세계에서 북한이탈주민이 정착교육을 받았다면 이제 직접적으로 병원이나, 주민센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진짜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주간의 교육이 끝나면 그들은 비로소 이 땅에서 홀로서기의 삶이 시작된다.
“형 동네에 거의 다 왔어요. 전에 말했던 식당이 열렸네요. 먼저가서 기다릴까요?”, “목사님, 오날, 우리 아파트에 온? 밖에서 먹는것보단 집에서 먹는 것이 조티 않나요?” 뜻밖의 배려에 잠시 주춤했다. 나름 바깥공기도 쐴겸, 내가 좋아하는 맛집에 가서 즐기려 했는데, 갑자기 아파트로 들어오라니. ‘아직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나?’ 정착지원을 하는 나는 만남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내가 편한 공간, 익숙한 공간으로 그를 이끌려 했다. 그러나 지금 *철이형은 자신의 공간으로 나를 초대하고 있다. 나는 그의 초대에 잠시 망설였지만, 그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 그를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띵동~ ‘*철이형~’
문이 열리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형의 모습이 보인다. 집안 한켠에는 고기를 구울수 있는 불판이 준비되어 있다. “목사님, 오날은 기냥 안에서 먹으면 안되갔시오? 밖에 나가 먹으멘 입맛두 안맞구. 집이 편하지 않갔시오?”, “불편하실것 같아서, 밖에서 보자고 한건데.”, “일 없시오. 내가 딤치도 만들었시오. 불고기랑 먹으면 맛날 거야요.”북한에서는 삼겹살과 같은 불판에 굽는 고기를 불고기라고 한다. 김치도 내가 좋아하는 북한식 백김치. 형이 준비한 음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밖에 나가 먹으멘, 남들의 눈치가 보여서. 내가 말이 틀리잔나요. 남들 눈치 보며 먹을일 있나? 기래서 준비했시오. 여기서 먹으멘 내가 가져온 우리 동무들 영상도 보고, 우리 여성들이 어떻게 노는지 영상도 보구, 목사님도 궁금한게 만티요? 여기서 물어보멘, 대답도 들을 수 있구, 기게 조가티요? ”,
지금까지 내가 정착지원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배워야 한다며, 억지로 나오게 해 밥을 먹였던 것이, 내심 미안해 졌다. 그들과 밖에서 식사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열심히 끌고 나왔는데, 반면 그들의 거슬리는 말투가 튀어 나올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었는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던 것을, 나만 난처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은 더 난처했다는 것을. 내심 그동안 정착지원을 했던 *국이형과 광*이, 금*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생각을 못했네요. 식당에서 먹는것이 편하지 않으셨을텐데.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형님, 일부러 사주신 불고기 맛있게 먹고, 지난번 다 보지 못한 영상들도 보여주세요.” 영상에는 형이 키운 고양이며, 작업반 사람들, 그리고 같은 회사 여직원들이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2022년 설날을 맞아 자체적인 공연을 준비해서 발표한 모습들. 영상에 한 사람, 한 사람 등장할때마다 그가 누구고 과거에 자기와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이야기하며 서로 웃기도 하고, 응답도 하고. 어느덧 설명하는 형의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찼다.
“형, 아파트는 지낼만 하세요? 고향에 계실때도 아파트에 사셨나요?” 북한에서는 아파트를 살림집이라고 한다. 외래어를 안쓰려는 북한인지라, 순우리말로 된 살림집이 정겹게 느껴진다. 보통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아파트에 안 살겠지만, *형은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평양사람이기에 궁금했었다.
“내가 살던 살림집은 매우 좋았디요. 여기는 2층이라 낮아서 벌레가 들어오디요. 방충망이라고 하나, 피앙에 있을때는 기런거 없어도 벌레가 없었디요. 17층이야요. 우리딥이, 아마 여기두 없을기야요. 차가 10대도 넘게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있어요. 광복거리, 우리 살림집은 그곳, 제일 좋은 위치에 있었디요. 80년 평양축전이라고 굉장히 큰 축제가 있었는데, 우리 아파트는 그곳에 그때 지어졌어요. 33층이니 높디요? 우리딥이 아주 넓고 좋아요.”
형식적으로 북한의 모든 아파트는 국가의 소유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에 살 수 있는 권리는 매매되고 있다. *철이 형도 러시아에 외화벌이를 다녀오며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광복거리에 있는 아파트의 입사증을 샀다. 입사증은 집에 들어가는 권리, 우리의 주택매매계약서라고 볼 수 있다. 입사증을 사면, 뒷돈을 주고 소유권을 이전하듯, 관리를 매수하여 국가 장부를 고치게 된다. 북한은 이렇게 부동산이 거래되고 있다.
실제로 2014년에는 라선의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광고도 있었다. 남산 18호동 살림집이라 불리는 살림집의 분양광고였는데, 이 아파트는 중국의 민간기업과 라선의 지방정부 산하의 조직이 합자로 만들어진 아파트이다. 당시 라선에서는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였으니, 세간의 이목도 끌었던 광고였다.
이 아파트는 라선시 중심부인 남산동에 위치하는 15층짜리 아파트로 라선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분양모집이 되었다. 북한은 외국인과 북한주민이 한 건물에 같이 살수 없다. 남산 18호동 살림집은 총 60세대가 들어갈수 있는데 당시 60%가 분양 완료되었다고 한다.
아파트 분양이 일상적인 우리는 ‘그게 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각해 보라 북한에서 아파트 분양이라니! 아파트 분양은 북한의 사회가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분양가는 또 어떤가? 당시 24평형 아파트가 11만 9000위안, 당시 한화로 196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이 금액는 당시 라선의 건설현장 노동자의 1달치 임금이 한화 25만원 정도라고 했을때 78개월을 모야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에서도 일반 월급자들이 집을 살수 없는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 아닌가?
물론 라선이라는 공간이 북한이 자본주의의 유입을 준비하는 시험장과 같은 공간이어서 그러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북한의 사회가 얼마나 자본주의적인 사회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목사님. 나 북한의 딸이 시집갈때 입사증으로 집을 사줘야 돼. 북한은 말이디, 원래는 국가가 책임을 져 줘야 하건든, 기런데, 기탄거 없서. 북한은 말이디, 자신이 자본주의의 병페를 말하는데 정작 북한은 말이디 자신들이 말하는 자본주의 자기야. 그리고 자신들이 말하는 사회주의가 한국이구. 내가 이거이 대해서 강연도 할 수 있서.”
*철이형의 열띤 토론에 어느덧 약속했던 점심시간이 끝났다. 갑자기 초대된 그의 아파트에서 나는 형이 자랑하는 평양의 아파트를 가보고 싶었다. 그 옛날 몇몇의 한국인사가 평양축전에서 함께 어울렸던 그곳, 그곳을 *철이형의 아파트에서 바라보며, 2023년에 서울 아파트에서 불고기를 같이 구워먹었던 때가 있었었지라며 말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