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감상노래감상
68년도에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난 박후기시인.
2~3년전 우연히 '뒤란'이란 단어를 검색하다가 발견했다.
몇수 보고는 상당히 꽂혔다.
본래 어릴 때 아버지와 형을 잃고 자라나며 기지촌이나 사회의 빈곤층과 소외층에 대한 시를 중점적으로 읊은 모양이다.
여성 페미니즘. 엄마도 각별하고 공장등 다문화사회의 애환에도 조예가 많고...옆집사는 앨리스란 시와 소설...
네 수만 옮긴다.
뒤란의 봄
그 해 가을,
지구를 떠난 보이저2호가
해왕성을 스쳐 지나갈 무렵
아버지가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함석을 두드리는 굵은 빗줄기처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미군부대 격납고 지붕에서
땅으로 내리꽂힌 아버지가
멀어져 가는 보이저2호와
나와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질 무렵,
겨울이 왔고
뒤란에 눈이 내렸다
봉분처럼
깨진 바가지 위로
소복하게 눈이 쌓였다
주인 잃은 삽 한 자루
울타리에 기대어 녹슨 제 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고
처마 밑 구석진 응달엔
깨진 사발이며 허리 구부러진 숟가락
토성(土星)의 고리를 닮은
둥근 석유곤로 받침대가
눈발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겨울의 뒤란에는
버려진 것들이 군락을 이루며
추억의 힘으로 자생하고 있었으니,
뒤란은 낡거나 상처받은 것들의
아늑한 정원이었다
눈물이 담겨 얼어붙은 빈 술병 위로
힘없이 굴뚝이 쓰러졌고
때늦은 징집영장과 함께
뒤란에도 봄이 찾아왔다
울타리 아래 버려진 자루 속에서
썩은 감자들은 싹을 틔웠고
나는 캄캄한 굴뚝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은 김승옥 소설 염소는 힘이 세다 에서 인용
옆집에 사는 앨리스
1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단추 같은 동정(童貞)을 떼어 버렸다
2
교련 선생한테 따귀를 맞은 날엔
집에 가지 않았다
첫눈이 내렸고
미군부대 정문 앞에서 여자 친구를 기다렸지만
그 애는 오지 않았다
바람 불고, 앨리스가 지나갔다
3
Room for Rent!
빈 방이 있었지만
경호는 지하방에서 먹고 잤다
보일러실 파이프라인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면
술에 취한 경호가
연탄불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문을 열어주곤 했다
4
나는 지하방에서 기타를 퉁겼고
앨리스는 담배를 피우며
베개 대신 두툼한 팝송대백과를 베고 누웠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헬리콥터 조종사였다
경호는 앨리스 아버지의 항공잠바를 훔쳐 입고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기도 했다
눈이 그칠 것 같지 않던 겨울이었고,
5
술이 떨어질 것 같으면 나는
부대 앞 가게가 문을 닫기 전에
소주 두어 병 더 사다 놓고
쥐포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잠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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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비열도
격렬과 비열 사이
그 어딘가에
사랑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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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조문
신장 팝니다. 대학병원 장례식장 화장실, 앙상한 볼펜 글씨 벽에 기대어 간결하게 몸을 팔고 있다. 누군가 근친의 죽음을 들여다보러 왔다 변기에 앉아 제 슬픈 처지만 들여다보고 갔나 보다. 앓다 죽은 자 이제야 아픈 줄 모르고, 살아남은 자들 자기가 지닌 병명을 하나씩 꺼내 부르며 죽은 자를 위로한다. 모두 똑같은 얼굴의 조화, 죽음의 복도에만 피는 꽃을 만지며 나는 가장 느린 걸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온다.
동명의 소설은 1980년대 초, 미군기지 훈련장이 있는 '숲속의 집'을 배경으로 누나의 복수를 감행하다가 살인자가 돼 결국 19살에 생을 마치는 성규의 비극적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성규는 기지촌 10대들의 거처 대장인데 그의 여자친구 은미는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앨리스'라고 불리는바 미국에 시집갔다가 돌아와 ㅜ...후략....
제목 '옆집에 사는 앨리스'는 영국 록그룹 '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에서 따왔단다.
* 샐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윗집사는 제인 아랫집사는 제니도 보이든가^
혹시 맨아래쪽에 앨리스도 있으려는가..?^^
첫댓글 폭염속에서 휴일날을 잘 보내시고 계시는지요 오후시간에 음악소리와.
좋은글을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장마비가 주춤하는 사이에 폭염날씨를 보이네요.
찜통 더위에 몸 관리를 잘 하시고 다음주에는 태풍소식도 있습니다 즐거운 휴일날을 보내시길 바람니다.
작년인가 한두번 뵌 것 같은데...몇년전인듯한 것이 이상하네요.
건강하시고 알찬 여름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20여일 후면 입추라니 더위도 가라앉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