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우리 2/홍일선
올해 칠순이신 우리 어머니는
앉으나 서나 농사 걱정으로
마음이 편지 않으시다
두 눈 가만히 감으셔도
둑 너머 큰 논 다랭이논
물꼬 넘치는 소리 들리고
꼬불꼬불 논드렁길
동부콩 주머니콩 여무는 것
다 보시는 흙의 어머니
당신의 한평생 고운 꿈
다만 저 흙 속에 묻어두고
여름 되면 보리 팔아
겨울 되면 쌀 팔아
자리쌀 고피채 허덕이면서
자식들 공부시킨 우리 어머니
우리들이 철 나 셈이 들어
흙의 원만이 가득핀
보리밭 잊어버리면서
석우리 떠나 돌아오자 않아도
삼복더위 무심한 보리밭
미풍에 나부끼는 보리꽃 쓰다듬셨다
어머니 흰 머리카락만큼
변한 세월 덧없이 흐른 보리밭으로
고속도로 휑하니 뚫렸는데도
논밭 팔아 이웃들 떠나가는데도
어머니가 김매던 슬픈 밭고랑
지나온 발자욱만 바라보셨다
멀리 공장 연기 시커멓게 번지는
들녘에서 당신의 젊은 날
아련히 피어오르는 꿈 바라보셨다
아아 석우리를 떠나라고
그리하여 흙을 배신하라고
공부시킨 게 아니었는데
어머니 우리들은 석우리를
너무 멀리 떠나와 있습니다
농사지을 사람 없어
낙심하고 계신 어머니 얼굴
여기서도 선히 보입니다
다들 어디로 떠났기에
묵히는 땅이 저리도 많은가요
뜬금없는 시절 속으로
부질없는 노다지 꿈속으로
죄다 숨어버린 것인가요
석우리 떠나서는
단 하루도 못 사시는 어머니
보리가 겨우내 언 땅에서
이렇게 뿌리 깊이 내리고
어떻게 열매가 영그는가를
어머니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석우리 떠나 흙의 힘 떠나
우리들이 서울에서 얻는
돈이나 명예 집이나 지위
그런 것들 모두 거짓입니다
저 벌판에 홀로 서 계신
어머니 기다림 잊고서는
우리들이 지금 누리는 사랑
그까짓 것 모두 거짓입니다
날 가물 때 쩍쩍 갈라진
석우리 논밭 한가운데
우리들의 목마른 그리움
끝내 살아 있다고 믿으시는
어머니, 어머니만 정말 우리 집이고
우리들의 따스한 사랑입니다
석우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젠 호미도 저를 주시고
그만 논에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