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매수죄 관련 판결에 대한 평석-
―2011고합1212, 2011고합1231(병합)―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철학
jslee@konkuk.ac.kr
I. 서론
칸트가 영구평화론 제2추가조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의 저울과 함께 정의의 칼을 상징으로 삼아온 법률가는 법의 저울에 대한 외부의 온갖 영향요소들을 차단하기 위해 정의의 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저울 눈금을 자기 쪽으로 기울게 하려고 그 칼을 얹어 놓는다...”고. 칸트는 이로써 권력과 지성이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을 통찰하였고, 플라톤 이래로 지성사를 괴롭혀온 철인왕(philosphos-basileus)의 프레임을 말끔히 거부하였다. 권력의 보유는 지성의 자유로운 사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저울의 눈금을 흔들기 위해 들고 있던 칼을 올려놓지 않는 것, 이것이 아마도 자유로운 법치국가의 모델이다.
칸트의 이 말은 권력활동에 대해, 권력자 일반에 대해 들어맞겠지만 정치재판에서 썩 잘 어울린다.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십중팔구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과 법리의 뒤틀기가 필사적으로 진행된다. 놀라운 대목은 법담당자들이 최선을 다해 법을 관철시키고자 할수록 더욱 정치적인 성격만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정치사법은 순전히 법학적인, 법해석학적, 법학방법론적 문제라기보다는 법조사회학과 법조이데올로기의 핵심주제라고 생각한다. 법의 질병이자 법의 정신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서울중앙지법 제27형사부는 2011년 1월 19일 피고인 곽노현, 피고인 박명기, 피고인 강경선에 대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였다. 지난 4개월간 계속된 공판이 막을 내렸지만 변호인측이나 검찰은 동시에 항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최종적으로 종결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재판에서 승리자는 재판부이고,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양측에 성의표시를 하였다. 이 정도의 유죄판결로도 교육감직을 박탈할 수 있으므로 검찰의 요구를 충족시켰으며, 검찰이 전파했던 흉악한 매수 시나리오를 폐기했다는 점에서 변호인도 만족시켰다.
필자는 처음에 이 사건을 후보매수가 아니라 도덕적 부조행위로 규정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무죄판결을 기대하였다. 필자의 가정은 피고인들과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증명되었다. 재판부는 검찰과 다른 각도에서 스토리를 전개하였지만 피고인 모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데 큰 곤란을 겪지 않은 것같다. 무지막지한 검찰의 가정과는 달리 재판부가 나름대로 구성요건과 사실을 새롭게 파고들었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대체로 확립된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무죄판결이 정녕 불가능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침묵과 긴장의 틈새에서 거점을 만들고 유죄판결의 논리를 구성하면서 결국 피고인 박명기를 이 사건의 주범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글은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평석이다. 평석은 논평과 해석을 의미하는데, 필자는 이 판결을 논평하고 전략적으로 극복하려는 데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필자는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 피고인의 진술과 주장을 고려하면서 재판부의 판결을 검토하려고 한다. 사실인정은 재판부의 고유권한이라는 전제 때문에 학자들의 사명은 오로지 법리적 부분만을 검토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재판부가 법리적․정치적 의혹의 저수지와도 같은 이 조문을 잘 읽고 잘 해석하면 어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사실인정과 법리구성을 포함해서 그 사이에서 논의를 펼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II. 검찰의 스토리 검토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검찰의 후보매수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사퇴자의 이해유도행위에 주목했다. 재판부의 해석에 의해 제232조 제1항 제1호범죄와 제2호범죄가 어느 정도 명료하게 구별되었다. 유죄판결의 근거는 제232조 제1항 제2호범죄였지만 법원은 검찰의 후보매수 프레임을 전복하였다. 검찰이 재판부의 판결을 화성인판결이라고 덤비는 것이 우선은 자존심의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태도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아래서 검찰의 행태에 대해 판사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검찰은 어쨌든 거친 공세를 통해 항소심 재판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이미 위축시켜 놓았다. 검찰은 법의 저울에 이미 또 한 자루 권력을 칼을 얹어 놓은 셈이다. 이 무게를 재판부가 어떻게 극복할지도 참으로 궁금하다. 사법부와 검찰을 천부의 권력에서 국민의 권력으로 바꾸는 일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최소한 법학교육 개혁의 관점에서 검찰의 태도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법학교육의 핵심의 하나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 만들기이다. 스토리 만들기는 개별적인 사건 요소들을 수집하여, 하나의 전체 이야기를 형성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검찰도, 변호인도, 피고인도, 판사도 각자의 의미와 목표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든다. 행위자는 주인공으로서, 나머지는 관찰자로서 법적용자로서 옹호자로서 고발자로서 행위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법정은 온갖 스토리들로 착잡한 공간이다. 스토리의 대결과 전개는 엄청난 두뇌싸움이고, 다른 한편 스토리의 주인공(범법자)이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날것의 사실(brute fact), 사실 그 자체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쩌면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인지도 모른다. 행위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염두에 두고 있는 의미 속에서 어둠 속의 날 것이 진실로 구성된다. 적나라한 날것이 의미를 갖게 되고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 속에서 그 의미도 시간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조정된다. 그럴 때에만 인간은 그 많은 단편요소들의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고 표표히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기만, 자기기만, 과장을 배제한 날것의 사실을 찾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진실발견은 어려운 과정이다.
“너는 사실을 말하라 나는 권리를 주마”라는 법언(法諺)이 사실발견의 어려움을 쉽게 은폐한다. 관련자들은 날것의 사실을 말할 수도 없는데,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전제하고, 그러한 날 것의 사실을 말하면 판사는 우주설계자처럼 완전한 의미망 속에 그 요소들을 재조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스토리를 만들고 법을 선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판사도 이미 관련자들이나 피고인들이 전하는 가공된 사실을 판사 자신의 목적에 맞게 강조하고, 과장하고, 지우고, 망각해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검찰은 어떤가? 검찰은 직분상 사실과 증거(증언)에 입각하여 나름대로 탄탄한 범죄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탄탄한 이야기에 기반한 영화가 관객을 몰고 다니듯이 법정의 스토리도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이 설득력은 수사학적 기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증명된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검찰의 이 사건 스토리는 말 그대로 증거불충분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스토리 구성에서 궁금한 대목은 피의사실공표도 검찰의 계획된 직무행위인지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전이 정치재판의 착수방식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왜곡되고 과장된 정보를 특정언론에 중계하는 과정은 지지자와 동조자들에게는 피의자(피고인)에 대한 실망과 냉소를 안기고, 적대자들에게는 증오의 확고한 이유를 제공한다. 피의사실공표는 언제나 대중을 선동시킬 뿐만 아니라 재판부를 정치적으로 주눅들게 한다. 정치적인 사건에서 피의사실공표가 만연한 이유는 다 빼어난 정치적 효과에 있다. 피의사실공표는 법의 지배와 근절할 수 없는 정치검찰의 지배욕이 대결하는 지점이다.
곽교육감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은 단일화협상과정, 후보사퇴, 금원제공 간의 관계를 면밀히 규명하지도 않은 채 처음부터 의도적 연쇄성―후보사퇴와 급전지급 약속의 결부―이 존재하였다고 선포하고 이 사건을 파렴치한 후보매수라고 규정하였다. 더구나 후보직을 매수하고 대가를 시효가 지난 다음에 주고자했기 때문에 더욱 교활한 범죄라며 얼렁뚱땅 불렀다. 이런 식으로 검찰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스토리를 만들어 하이에나 언론과 자칭 도덕주의자들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하여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 땅의 율법가들은 관련자들에게 이미 감당하기 힘든 저주를 선포하였다. 곽교육감과 관련자들에 대한 묻지마 증오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검찰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여론을 왜곡하고 착취하였다. 물론 검찰이 관련자들의 미담이나 유포하는 한가한 알바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한다.
만약, 검찰이 언론플레이로 유포한 내용이 진실이라고 자부한다면 당당히 사전매수죄(제1호범죄)로 끝까지 가야했다. 검찰은 실컷 사전매수죄로 세상을 격동시키더니 사전약속이 없어도 유죄가 될 수 있다며 제2호범죄로 슬그머니 한발 빼고 공판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미 대다수 사람들의 두뇌는 흉측한 후보매수 시나리오로 일그러졌다. 재판부는 아주 다른 맥락에서 제1호행위와 제2호행위가 연속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제2호행위에 포섭된다고 해석하였다. 한편 제2호는 제1호와 달리 ‘사퇴시킬 목적’과 같은 엄중한 요건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제2호에 의한 유죄판결이 교육감 측에게 오히려 가벼운 것이 될 여지가 많은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후 검찰이 재판부를 비난하고 나선 행태를 볼 때 아마도 십중팔구 제1호범죄와 제2호범죄간의 구조적 차이를 미리 파악하지 못한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아가 검찰의 구형의견도 문제가 있다. 2011년 10월 중순에 시작된 공판이 4개월가량 진행되었다. 검찰수사에서 조사했던 피의자와 참고인뿐만 아니라 기타 관련자들이 증거조사를 위해 법정에 소환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매우 활달하게 사건을 증언하였다. 재판과정에서는 특별히 검찰조서의 공정성에 대해 피고인들이나 증인들이 의문을 제기하였고, 재판부마저 조사과정의 동영상을 직접 확인하려는 사태에 이르렀다. 공판이 진행될수록 곽교육감측의 이른바 ‘비상식적인’ 부조 스토리가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최소한 사건관련자 중에서 이 스토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충격적인 대목은 검찰의 공소장에서 전개된 무너진 스토리가 검찰의 마지막 구형의견에서까지도 거의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그들의 작업가설이 4개월의 심리과정을 통해 수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자부했던 것일까?
혹시 소송을 수행한 검사들은 스토리의 충실성을 의심하면서도 직무상 초지일관 밀어 붙여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참으로 유감이다. 어쨌든 사실인정을 둘러싸고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감각의 차이는 피할 수 없지만 4개월에 걸친 재판부의 집중심리가 검찰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중요한 사실이 아닐까! 사법개혁의 방향은 장기적으로 공판중심주의와 배심제이며, 법정의 변증이라는 것도 실은 사물의 본성과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움직이는 대화적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온갖 합리적인 증명과 토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지일관하는 자야말로 검찰이 말하는 화성인이라고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명망있는 교수들과 고위 공직자가 관련되었기 때문에 공판중심주의가 모범적으로 운용되었으며, 증인과 피고인의 발언기회가 자유롭게 보장되었다는 것이 중평이다. 보통 사람들에 대한 형사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추측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은 수사단계에서 양념으로 간을 맞춘 조서를 작성하고, 변호인이나 피고인들은 공판과정에서 검찰조서를 다양한 이유로 변변히 다투지도 못하는 가운데, 재판부는 조사대로 사건의 실체를 확정한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이 향유(?)하는 바 법치국가의 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중심리과정은 진실발견을 위해 법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웠다. 물론 법정의 심리과정은 유무죄를 논하고, 책임의 유무를 다투기 때문에 검찰이나 변호인은 각자의 유리함을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법정이 협력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포럼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소하고 처벌하는 권력을 국민이 공직으로 설치하고 높은 급여와 명예를 제공하는 이유는 비록 그 권력기관이 게임의 당사자로서 사건에 관여하더라도 최소한 유불리를 떠나 진실을 추구해야할 객관적 책무가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Ⅲ. 재판부의 논리
이 재판의 포인트는 곽노현의 후보매수 스토리에서 박명기의 이해유도로 전환된 부분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제232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 안에 내포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검찰의 사전매수 스토리도 옳지 않고, 사퇴자의 이해유도 스토리도 옳지 않다고 본다. 재판부는 몇 가지 사실을 제외하고는 피고인과 변호인이 주장한 사실들을 대체로 인정해주었다. 이 사건의 향후 쟁점은 주로 확정된 사실을 기초로 법리적으로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에 있다. 필자는 몇 가지 쟁점을 순서에 따라 전개하고자 한다.
1. 제232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의 관계
재판부는 본안 판결에 앞서 위헌법률심사제청을 기각하면서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를 구분하였다.
“다만 공직선거법 제23조 제1항의 특징은, 후보자 사퇴 이전의 대가제공행위를 제1호로, 후보자 사퇴 이후의 대가제공행위를 제2호로 나누어 규정하고, 제1호의 경우에는 ‘후보자가 된 것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라는 요건을, 제2호의 경우에는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라는 요건을 각기 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나누어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의 규정체계는 제1호의 행위와 제2호의 행위가 그 경제적 유인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즉 후보자 사퇴 이전의 대가제공행위는 대가제공자의 입장에서 다른 후보자의 사퇴를 유도하는 양태로 이루어질 경제적 유인이 많은 반면, 후보자 사퇴 이후의 대가제공행위는 이미 사퇴한 후보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퇴에 대한 대가를 수수하는 양태로 이루어질 경제적 유인이 많다고 할 것이므로 상호간에 경제적 유인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 각 행위들의 사회․경제적 실질에 상당히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된다.”
수사와 기소단계인 초기국면에서는 제232조 제1항의 후보매수 및 이해유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 사퇴전 대가지급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지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재판부가 그에 대한 논란을 매듭지었다. 간단히 말해서 사퇴 이전에 대가 지급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퇴자에게 금원이 제공된 경우에는 제2호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감의 후보매수가 없다하더라도 사퇴자의 이해유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호범죄는 후보직사퇴전범죄이고, 제2호범죄는 후보직사퇴후범죄이다. 재판부는 제1호의 범죄를 사퇴에 대한 대가의 제공을 매개로 사퇴를 유도하는 범죄이므로 사퇴자에 대한 범죄로 주로 파악하고, 제2호의 범죄는 사퇴자가 사퇴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데에 있으므로 주로 사퇴자의 범죄라는 측면에 주목하였다. 행위의 주도성이 제1호범죄에는 당선자에게 존재하는 반면, 제2호범죄는 행위의 주도성이 사퇴자에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비교적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확률적인 것이지 필연성과는 거리가 멀다. 제1호범죄(사퇴전 범죄)가 예정하는 상황은 양측 모두가 장래의 사퇴를 매개로 하여 서로 이익을 추구할 여지가 있고 미발생 사태에 대한 협상력(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퇴의 이익이 주로 사퇴예정자의 상대방에게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사퇴시키는 쪽이 주도권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사퇴하는 쪽이 주도권을 가질 수는 있으나 이익은 양측 모두가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제1호조문의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라는 한정적인 표현이 사퇴전 범죄의 모든 경우를 어법적으로 아우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후보자인 자신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라는 상황은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익을 취득할 목적으로’ 사퇴하려는 자가 다른 후보자에게 대가지급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병렬적으로 규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제1호범죄는 조문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처벌할 수 있게끔 대항범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감각적 혼란을 씻어버린다.
재판부는 사퇴전에 사퇴에 대한 대가지급의 합의 없이 금원을 제공하더라도 제2호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전제하였다. 재판부가 조문해석을 통해 상정하는 것처럼 제2호범죄가 사퇴자측의 이해유도 성격을 주로 갖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선거운동이 진행중이라면 그 기간에 사퇴자의 영향력은 선거판에서 본인의 활동과 역량에 따라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거일이 사퇴자의 영향력이 소멸하는 기준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재판부의 견해를 다시 풀이한다면 선거일 이후에는 사퇴자측의 이해유도의 성격이 주로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태를 이른바 경제적 유인동기의 관점에서 보려고 할 때에만 그렇다고 단서를 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경제적 유인동기만으로 사태를 단정하고 몰아감으로써 다른 모든 정치적 고려사항들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재판부가 제1호와 제2호의 해석에서 비교적 표준적인 도식을 성취하였지만 논리의 과잉전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잘 알다시피 재판부는 검찰의 후보매수 스토리에서 사퇴자의 이해유도 스토리로 급반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전향에서는 언제나 불완전한 사태확정과 법해석이 불가피하다.
한편 사퇴전에 금원제공에 관한 합의가 있고, 사퇴후에 금원제공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제232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 어디에 해당하는지 문제될 수 있다. 제1호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와 제2호에 해당하는 행위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원래 제1호범죄는 전형적인 후보매수범죄로 중한 유형으로 이해하고, 제2호범죄는 그 완화된 형태로 보았기 때문에 제1호범죄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반면 박지현은 제1호와 제2호의 행위는 연속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결국 금원이나 대가를 지급한 시기가 후보사퇴 이후라고 한다면 보다 심각한 제공행위를 기준으로 삼아 제2호위반죄로 의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포괄일죄(包括一罪)로 취급한다. 이러한 견해가 기본적으로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재판부도 박지현의 주장과 같다. 재판부는 사퇴와 대가지급에 대한 사전 약속이 있든 없는 제2호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재판을 시작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심각한 의문점은 제1호범죄와 제2호범죄의 구별에 따른 혼란과 불이익은 전적으로 피고인들의 몫으로 돌아갔는데 이것이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법원은 제1호범죄와 제2호범죄의 구조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사퇴전후로 행위가 연속되었을 경우에는 제2호범죄가 제1호범죄를 포함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더욱 곤란한 쟁점은 제1호범죄는 목적범이고 제2호범죄는 목적범이 아니라고 해석하면서 제2호범죄가 제1호범죄를 포함한다고 해석한다면 고의에 심각한 불균형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제232조 제1항 제1호 및 5‧19합의
재판부가 피고인별 양형사실에서 곽교육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①피고인 곽노현은 2010.10. 중순경 뒤늦게 2010.5.19.자 금전 지급합의라는 후보직 매수․매도행위에 자신의 최측근들이 관여하였음을 파악하고도 이 문제를 자신에 대한 법률적․정치적 위험요인이라는 측면, 그리고 피고인 박명기와 피고인 곽노현 사이의 ‘오해와 갈등의 요인’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한 결과 사실상 위 범죄사실을 은폐하는데 기여한 점, ② 피고인 곽노현은 그 후, 스스로 “불법의 뿌리가 있다.”, “법이 말하는 클린핸드가 아니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피고인 박명기의 위법한 대가 수수의 기대를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 …, ⑤회계책임자인 이보훈의 금전지급 합의 관여사실이 만약 공소시효 기간 내에 수사되었다면 당선무효형을 피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곽노현을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
재판부가 곽노현 피고인에 대한 비난근거로서 이른바 이보훈․최갑수․양재원간의 5‧19합의를 원죄처럼 고려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법적으로 분명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검찰, 재판부 그리고 심지어 피고인들까지도 이 합의를 권리금조로 수용하므로 정밀하게 분석해보아야 한다. 필자는 최소한 세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로,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공격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타자의 사정들을 재판부가 피고인(곽노현)에 대한 양형(책임비난)의 사유로 삼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이보훈․최갑수․양재원 등 합의 관련자들이 법정에서 충분히 진술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자체에서 피고인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법적 책임은 이 사건에서 핵심도 아니었다. 법정은 합의가 곽노현의 의도가 깔린 곽노현의 작품(범죄)인가 아닌가만을 문제삼았다. 나아가 애초부터 3인의 합의가 제232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하였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사정은 공판의 전과정을 고려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합의사정을 피고인 곽노현의 비난근거로 재판부가 당연시하는 것은 합당한 계산방식이 아닌 것같다. 혹시 선거진영에서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 진영의 대표자로서 피고인 곽노현에게 책임을 은연중에서 묻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그 경우 법정은 지휘책임을 추궁하는 군사법정과 흡사해진다.
둘째로, 타인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자신의 교육감직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고인 곽노현이 천연덕스럽게 5․19합의의 진실을 공개하고 자신에게 몰아닥칠 비난의 해일을 맞고 수사에 협력했어야 한다는 시사를 재판부의 판결문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법은 참으로 교묘한 것일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단으로서 건전하고 당연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공개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사실은 곽노현 교육감이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는 있겠으나 책임비난의 근거로 끌어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법정이 선의의 부조 스토리를 포함하여 다각도로 도덕적 쟁점들이 불거지면서 재판부마저도 근거없이 종교재판소연하지 않았는지 우려된다. 특히 그러한 합의―속칭 매수합의―가 곽교육감의 직접적인 지시에 입각한 행위가 아니라면 그러한 합의에 대한 책임은 고작해야 정책적 형사책임(법정범)에 지나지 않는 정도이므로 법원의 폭풍같은 비난은 참으로 근거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고려는 기본적으로 기대가능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째로, 가장 결정적이고 참을 수 없는 것은 법리적인 문제이다. 이보훈․최갑수․양재원의 합의가 법적으로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재판과 온갖 비난의 논리적 전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재판부는 그러한 합의를 통해서 박명기 측의 양재원의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곽노현 측의 회계책임자인 이보훈의 범죄가 성립한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그 명시적인 법리적 구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 중요한 재판에서 그런 식의 유죄추정으로 진행해도 되는가? 원래 세 사람이 후보사퇴를 결정하거나 협상할 지위에 있는 사람들인가? 필자는 이 재판이 일종의 선결문제(先決問題)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필자의 결론은 단순하다. 삼자간의 합의는 후보매수의 불능범이라고 본다. 단지 곽교육감측이 그러한 불량한 합의사실이 알려질 경우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여 감추고자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감추려는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가? 심지어 합의 자체가 범죄인지 여부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를 범죄로 생각하여 감추려는 상황은 이른바 역전된 금지의 착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삼자간의 합의가 어떻게 해서 범죄인지를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지 않은 채 곽교육감을 상대로 법의 올가미를 뿌리는 것은 잘못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리적 구조는 다음과 같다.
ⅰ) 회계책임자에 대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은 본인의 당선무효사유이다.
ⅱ) 이보훈은 회계책임자이다.
ⅲ) 이보훈은 제232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하였다.
ⅳ) 이보훈은 공소시효 도과전에서 수사를 받았다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위의 세 번째 조건―이보훈은 제232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하였다―은 충족되지 않은 것 같다. 두 가지 관점에서 이보훈은 제232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이보훈은 곽노현을 대리하여 약속할 권한을 가진 자가 아니므로 이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이 범죄는 본질적으로 합의형범죄이다. 후보자 양측의 동의가 없다면 합의형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원칙적인 문제가 소홀히 다루어지고 삼자간의 합의가 만연히 불법적이라고 전제되었다. 사퇴와 대가지급에 대한 약속은 본질적으로 후보자들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범죄는 일신전속적인 자수범은 아니다. 후보자로부터 합의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도 제1호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에 대한 충심―특정한 후보자의 당선을 위한다는 마음―이 아무리 높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이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이보훈은 곽노현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곽노현을 대신하여 제1호위반자가 될 수 없다. 협상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받은 사람이 이 죄를 완성할 수 있지만, 이는 동시에 위임자의 범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보훈의 행위는 우선 회계책임자의 범죄가 되고, 100만 원 이상의 유죄판결을 통해 교육감직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곽노현의 협상지시를 매개로 해서 이보훈의 협상이 이보훈의 죄이자 동시에 곽노현의 죄가 될 뿐이다. 필자는 제1호범죄는 일종의 신분범이며, 바로 후보자 및 협상대리인의 지위는 구성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보훈처럼 협상권한을 갖지 못한 자의 협상은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곽교육감의 범죄도 아니고, 협상자인 이보훈 자신의 범죄도 아니다. 박명기가 양재원에게 전권을 위임했다고 할지라도 이보훈과 최갑수의 협상권한이 자동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그들이 협상권한을 선의취득할 수도 없다. 결국 후보매수 불능상태이다. 주체의 착오 또는 주체의 불가능성에 입각한 후보매수의 불능범이다. 주체의 착오는 치유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합의는 무효인 것이다.
둘째로, 구성요건을 보더라도 이보훈은 제232조 제1항 제1호를 위반하지 않았다. 제232조 제1항 제1호의 문구를 기준으로 이보훈의 행위를 검토해보자. “후보자에게... 금전ㆍ물품ㆍ차마ㆍ향응 그 밖에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한” 것을 벌하고 있다. 곽노현의 회계책임자 이보훈은 스스로 금품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모종의 허위의 표시에 관여하였고, 그의 역할을 거기에 한정하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점은 공판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공범은 정범의 성립에 의존하므로 정범에 해당하는 주체의 행위사실 자체가 없는 경우에 공범은 처벌될 수 없다는 것이 일관된 법원의 입장이다.
3. 대가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는 다음과 같다.
2.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이었던 자에게 제230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
공직선거법 제23조 제1항 제2호의 핵심은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이다. 나머지 구성요건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이 모두 사퇴한 후보자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라는 부분에서 논리적 쐐기를 만들 수 있다면 불법을 조각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부분에서 밋밋하게 된다면 흡사 뇌물죄에서 작동하는 포괄적 대가성논리가 관철될 것이고, 이 사건에서 유죄판단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판부는 처음부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피고인들이 대가성의 논리적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하였을 것이다. 사퇴를 절구통의 맨 아래 원점(原點)으로 삼으면 절구통에 들어오는 모든 유체물이 원점을 향하여 추락할 것이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대가성이 존재하게 된다. 사퇴를 원점으로 삼기 위해서도 상당한 논리적 조작은 불가피하다. 여기에서 대가, 목적, 대가성, 대가성 인식 등에 대한 재판부의 논리를 검토해보자.
1)목적범의 정지작업?
어떤 범죄가 목적범인지 일반적인 고의범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특정한 목적을 범죄의 성립요건으로 삼는 목적범에서는 그러한 목적이 없다면 해당범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떠한 살인도 내란목적의 살인(형법 제88조)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무리 진품과 진배없는 화폐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행사할 목적이 없다면 처음부터 통화위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목적범(Absichtsdelikt)은 목적이 존재하지 않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제2호범죄가 목적범인지 아닌지가 사건초기부터 크게 문제되었다. 목적범은 기본적으로 범죄구성요건에 ‘~할 목적으로’, ‘~의 목적으로’ 등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목적범 여부가 ‘목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에 좌우된다고는 볼 수 없다. 목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다른 대응문구를 활용할 수도 있으며, 목적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반드시 목적범으로 보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제1호와 제2호간의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답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에서 대가의 의미를 중립화시키고, 나아가 ‘목적으로’를 ‘의미로’라고 해석하고, "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를 결국 일종의 사물논리적 관계로서 대가성으로 규정하였다. 이제 대가성의 속박으로 벗어날 수 없게 조문이 미끈하게 다듬어졌다. 결국 재판부는 사퇴와 2억제공 그것만으로도 ‘넉넉하게’ 유죄판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원이 넉넉하게 이 관문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관문을 무너뜨리고 지나간 느낌이다. 차례로 검토해보자.
우선적으로, 재팜부는 위 조문의 목적 부분―후보자를 사퇴한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가관계 또는 대가성을 매우 폭넓게 인정하여 마치 뇌물죄에서 ‘포괄적 대가성’과 유사하게 입론하였다. 즉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하여’ 정도로 이 부분을 해석하였다. 재판부는 보수와 대가의 의미차이, 심지어서 문언에 명시되어 있는 목적을 완전히 공동화시켜서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법해석을 달성하였다. 목적범에서는 초과주관적 구성요소로서 목적이 결여된 경우에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재판부는 목적범과 관련하여 나름의 구별방식을 제시한다. 목적범은 법문의 표현이 ‘~할 목적’, ‘~하기 위한 목적’, ‘~의 목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대가를 목적으로’에서 대가는 목적범에서 목적의 대상인 ‘결과발생의 요소’가 아니라 ‘사물의 성질’로서 대가성이라고 못박는다. 이제 재판부에게는 대가성의 인식이라는 아주 낮은 문턱만 존재하는 모양새다. 재판부의 설명은 유죄판결을 손쉽게 얻기 위한 언어적 곡예처럼 보인다.
다음으로, 제232조 제1항 제1호와 제2호는 동일한 범죄, 동일한 형량으로 처벌하고 있다. 제1호범죄는 사퇴시킬 목적이라는 매수범죄의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을 명시적으로 포함한다. 제2호범죄는 “대가를 목적으로”라고 규정함으로써 제1호범죄와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조문의 체계상 둘 다 목적범으로 보아야 한다.제1호는 목적범이고,제2호는 조문의 문구를 공동화시켜 보통의 고의범으로 파악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최소한제1호의 목적에 준하는 정도의 강한 목적이 제2호행위에 존재해야만 불법의 질량에서 제1호와 제2호간의 균형이 확보된다. 재판부가 제2호범죄를 해석하는 데에서 목적범의 관문을 부당하게 해체하여 포괄적 대가성과 미필적 인식만을 요구함으로써 사퇴 이후 이루어진 모든 금원제공을 일거에 대가제공으로 파악하여 법의 소나기로 옭아맨다. 제1호범죄와 제2호범죄의 공통성을 목적범에서 찾지 않는 것은 불완전한 법해석이다. 재판부는 ‘사전합의’여부나 ‘사퇴시킬 목적’의 존부도 오로지 대가성을 판단하는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는데, 이것 역시도 매우 자의적인 법해석이다. 제1호범죄뿐만 아니라 제2호범죄도 명시적으로 목적범으로 해석해야 한다.
2)객관적 대가성
재판부는 ‘피고인 박명기의 후보사퇴’와 그 이후에 제공된 ‘2억원’이 급부와 보수(반대급부)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의하여 대가관계가 객관적으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후에 피고인 곽노현이 2억원을 제공하면서 제공시점에서 어떠한 ‘부정한’ 이익을 기대했는지는 대가성 판단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 무슨 의도로, 무슨 목적으로, 무슨 생각으로 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목적범’의 목적이 범죄론의 체계에서 한 순간에 범행동기로서 참고사항 정도로 전락하였다. 재판부는 사물논리상 사퇴와 2억원간의 (조건)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이 관계를 대가관계로 이해하였다. 조건성을 바로 대가성으로 인정한다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조건성에 대한 인식이 바로 대가성에 대한 인식이 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의 법리적 결론은 이것뿐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재판부가 경솔하게 포괄적인 대가성에서 무조건적 대가성 인정으로 막가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흥미롭게 대가관계를 조각하는 사정을 거론하였다. 즉 사퇴자와 금원제공자간의 친족관계나 돈독한 신뢰관계가 존재하는지를 거론하였다.ⅰ)곽노현과 박명기 사이에는 친척관계가 없다. ⅱ)곽노현과 박명기는 교육감 선거를 통해서 처음 만났다. ⅲ)교육감선거후 11월말에 만나 짧은 시일 안에 2억원을 제공할 정도로 돈독한 인간관계가 구축되지는 않았다. 친척관계나 돈독한 인간관계가 있었거나 화해의 모임을 통해 그러한 돈독한 관계가 구축되었다면 대가성을 부정할 여지도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선의의 부조 스토리의 관점에서는 짧은 만남을 통해도 2억원을 제공할 정도로 강한 인간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강한 인간적 책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강력한 지원의무는 특별히 타고나게 빼어난 인간이 아니라면 느닷없이 찾아온 특별한 사랑의 관계(가족, 연인, 동지, 연대, 인류)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러한 관계는 특정한 계기에서 한 순간에도 성립한다. 그러한 책무는 감성의 완전한 고양을 통해서 인식될 수도 있고, 즉물적인 동지애 속에서도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타국의 내전에 참전하여 죽음을 불사하는 얼마든지 있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재판부가 긍휼(矜恤)과 희사(喜捨)의 논리를 그저 듣기만 했기 때문에 선의의 부조를 대가제공이라고 일축할 수 있었다.
3)이해유도죄 프레임
재판부는 본질적으로 박명기의 이해유도 프레임을 사용하였다. 재판부가 박명기를 중심에 다른 피고인을 주변에 놓음으로써 문제를 재조정하였다. 검찰의 매수프레임이나 변호인의 부조 스토리를 이렇게 전복한 것이다. 후보매수나 이해유도는 본질적으로 대향범(對向犯)의 구조를 갖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쪽만 유죄를 만드면 다른 쪽도 더불어 유죄로 만들기 쉬운 상태이다. 대향범은 필요적 공범으로 이해된다. 내란죄나 소요죄와 같은 집단적 범죄도 있지만 수뇌뢰, 증뢰죄, 간통죄와 같은 단순한 대향범이 이 사건과 구조적으로 더욱 유사하다. 그러나 대향범 구조를 가진다고 해서 특정한 행위에 관여한 자 전원이 동일하게 범죄를 실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요적 공범이라고 해서 관련자 전원이 유죄가 될 필요도 없다. 재판부는 후보매수와 이해유도가 필요적 공범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막힘없이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했다고 보인다. 즉 법원은 피고인 박명기의 유도행위, 대가수령, 대가성의 인식 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죄를 먼저 간단히 확립하고, 연이어 곽노현과 강경선의 죄를 확정하였다. 이해유도 프레임이 연쇄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재판부가 후보매수 프레임을 관철시켰다면 이제 그림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후보매수 프레임과 이해유도 프레임 간의 양자택일로 이 사건을 접근할 수 없다.
재판부는 진술의 액면(額面)과 진의(眞意) 간의 차이를 발견하는 창의적 독법을 추구해야 한다. 돈을 받은(요구하는) 쪽이 문제가 아니라 주는 쪽이 왜 주고자 했는지를 명료하게 해야만 이 사건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주는 쪽이 무죄이면 돈을 받는 쪽이 무죄라고 구성해야지, 돈을 받는 쪽이 유죄이면 돈을 주는 쪽도 덤으로 유죄가 된다는 논리구성은 이상하다. 돈을 받는 쪽은 심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돈이 어떤 것의 대가가 아닐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재판부는 금원의 제공과 수령의 상황에서 피고인 박명기의 태도에 주목하여 그를 유죄로 만들고, 더불어 반사적으로 곽노현과 강경선을 유죄로 만들었다. 돈의 힘에 대해서는 금원수령자와 금원제공자간의 인식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 누구의 인식이 우선되는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명기의 인식을 기준으로 삼아 대가성 인식전이론을 전개하였다. 고의감염설(故意感染說)이라고 할까!
4) 고의감염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