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부동산 실패 땐 모든 것 허사” 경고 명심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4.07.27 00:14
서울 아파트값 상승 18주째, 청약은 과열
정부, 종부세 개편 보류하고 공급대책 고민
부동산 안정에 정책 우선순위 명확히 둬야
사나운 폭염만큼 뜨거운 게 요즘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다. 7월 수도권 1순위 아파트 청약 경쟁률 평균이 100대 1에 육박했다. 최근의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세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셋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엊그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30% 상승하며 18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갈수록 상승폭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번 주 상승폭은 2018년 9월 둘째 주 이후 5년 10개월 1주(306주) 만에 최대치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은 신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불안감 탓이 크다. 시장이 기준금리 인하를 선반영하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3%대 후반까지 떨어진 것도 수요를 키웠다. 부동산 전세사기 여파로 다세대나 연립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신생아 특례 대출을 비롯한 정부 정책도 아파트 가격을 밀어 올리는 효과를 낳았다.
정부는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다양한 정책 패키지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진보·보수 정부 모두 이런 착각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2020년 초 문재인 정부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참여정부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가장 큰 가중치를 두는 이유는 다른 거 다 성공해도 부동산에 실패하면 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관리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도 2주 전까지 “부동산 시장은 약간의 지역적 쏠림 현상이 있지만 추세적 상승 전환은 아니다”고 강변해 안이한 인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정부가 심상치 않은 주택 시장의 분위기를 무겁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늦었지만 다행이다. 정부는 엊그제 관계부처 차관급 회의에서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나온 세법개정안에선 막판까지 검토됐던 종합부동산세 개편이 보류됐다. 최근의 아파트값 상승세를 서울 강남과 동남권, 마포 등 일부 지역의 고가 아파트들이 주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정부 들어 힘 빠진 종부세라도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이다.
일주일 전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시장 과열이 나타난다면 특단의 조치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발표되는 공급대책에는 ▶절차 단축을 통한 도심 정비사업 신속화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 주택공급 조기화 ▶수도권 내 추가택지 확보 ▶비아파트 공급 확대 등이 담긴다고 한다. 이미 시장에서는 수도권에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대규모 신규 택지 공급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린벨트에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해 민간주택의 상승세를 억제했던 이명박 정부의 경험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럴 때 제대로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 아닌가.
내수도 살리고 집값도 안정되고 경기가 살아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숨통이 트이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책의 균형을 잡는다고 미적대다가 지금의 집값 불안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주택시장 안정에 둬야 한다. 다른 것 다 성공해도 부동산에서 실패하면 ‘꽝’이라고 했던 문재인 정부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집값 못 잡아 부동산 정책마저 실패하면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떤 성과로 기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