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암과 한국철학의 현주소
2019101250 철학과 진한혁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아직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시절 내가 알지 못하는 심오한 불교적 철학을 담은 그런 작품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책장을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삶과 작품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교에 대한 작가의 차디찬 냉소를 제대로 보았다면 나는 결코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세암이란 설악산에 있는 어느 한 암자의 이름으로 오세암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눈이 심하게 내리던 어느날 암자에 홀로 남겨진 설정 스님의 5살 조카가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을 받아 남아남았다는 전설로부터 기인한다. 소설 오세암의 작가 정채봉은 이 전설을 조금 각색하여 스님의 조카가 아닌 떠돌이 거지남매 길손이와 감이의 이야기로 전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갈 곳없이 떠돌던 남매는 한 스님의 도움을 받아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머물게 된다. 분명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지만 안타깝게 스님을 제외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못했다. 절에 공양하러 찾아오는 어른들은 남매를 불쌍히 여기면서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스님들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천진난만한 길손이를 타박하며 근처의 낡은 암자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스님의 보살핌 아래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던 어느날 스님이 길손이를 암자에 남기고 탁발을 나간 사이 폭설이 내려 암자로 가는 길이 막혀버리고 만다. 스님은 무리해서라도 암자로 돌아가보려 하지만 오히려 본인이 조난당하고 간신히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된다. 눈이 녹고 스님과 감이가 암자로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길손이는 멀쩡히 놀고 있었다. 알고보니 길손이가 평소 어머니처럼 여기던 관세음보살이 길손이를 보살펴준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길손이의 순수한 마음을 칭찬하며 길손이와 함께 승천하고 동시에 감이는 눈을 뜨게 된다. 이후 암자는 5살의 아이가 부처가 되었다는 뜻의 오세암이라 불리게 되고 신자들로 북적이게 된다. 하지만 정작 감이와 스님은 기뻐하지 못한다. 결국 길손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찰에 북적이는 신자들도 길손이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진실로 그 기적에 감화된 것이 아닌 그 기적의 영험함을 통한 기복행위에 메달릴 뿐이다.
스님은 자신의 수행과 부처의 가르침을 깊이 고찰하게 고 감이는 눈에 비치는 세상이 남동생이 말로써 표현한 것에 미치지 못함을 한탄한다. 길손이를 화장하면서 나는 연기를 붙잡아달라는 감이의 마지막 말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 소설이 처음 공개된 1985년으로부터 거의 40여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작가 채봉이 타계한 지 20여년이 흘렀음에도 이 현실은 바뀌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이는 비단 불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추구하던 고유의 가치들이 그 본래의 뜻을 잃고 기복신앙으로 변질되거나 박제된 전통으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인한 과거와의 단절과 서구문물의 급격한 유입,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행해진 전통문화 탄압과 같은 외부적 요인들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근본적으론 한국적 철학에 대한 고찰과 재정립의 실패에 있다고 본다
사상가들은 나름대로 유불도합일과 같은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주술적인 요소에 의존하거나 아예 기존의 원형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이비로 전락하거나 사회지도층의 부조리에 침묵하거나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는 마치 오세암에서 댓가성 기도만을 올리던 어른들의 모습을 연상캐 한다. 그렇다면 정말 자성의 여지는 없는 걸까? 그렇다고 한민족 고유의 철학을 그거 구태취급하며 경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전통문화적 가치와 기복신앙을 뛰어넘을 한국적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
첫댓글 신화에서 주로 쓰는 말 가운데 '상징조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징조작은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상징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에는 이러한 상징조작이 자주 등장합니다. 승천이 되었건, 죽었건 세상을 떠난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에 감명 받은 관세음보살이 보살펴서 죽지 않고 있다가 승천한 것이라고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개안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곧 기적과 같은 영험한 일이 덧붙여지면 상징조작이 일어나는 것이랍니다. 본래 이 책은 종교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에 질문들이 연쇄적인 일어나게 되는 것이랍니다. 전통문화적 가치와 기복신앙을 뛰어넘은 한국적 가치는 물론 있겠지만,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게 되는지도 결국은 각자의 몫입니다.